2014년 4월 22일 비전홀 9조 - 염선영(조장), 강호진, 송봉심, 김형숙B, 인미숙, 김홍진
어여쁘신 조장님 그리고 처음보는 9조 조원 식구들을 마주대하고 옹기종기 테이블에 모여앉았습니다.
모두 비장한 각오로 오신듯해 보였습니다.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커피도 타서 나눠주시는 섬김의 손길도 나눔하기전부터 느껴져 감사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하기 :-)
염선영 - 딸아이 하나 있습니다. 조장으로 섬기겠습니다.
강호진 - 저두 5살 딸 하나 있습니다.
송봉심 - 6살, 11살 남자아이 둘 엄마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김형숙B - 자녀를 양육하는데 구체적인 지혜를 얻기위해 우리들교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인미숙 - 6살 아들과의 관계가 너무 어렵습니다. 지혜를 구합니다.
김홍진 - 셋째아이 임신을 숨길만큼 셋째가진것이 두려웠으나 막상 낳고 나니 셋째가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들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수요예배 드리고 있습니다. 성경적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삶#65279;선 그래프 그린후 나누기 :-))
염선영
초등기시절 술주정하던 아버지의 혈기로 늘 불안해했었기에 힘든 시간이었다. 중등기에 들어서 방송반 활동으로 즐거운 학창시절보냈지만 이어진 아버지의 술주정과 엄마의 구타로 속은 늘 우울했었다. 고등부 시절 여전히 가정환경으로 힘들었지만 수화동아리로 나눔을 통한 성숙한 아이로 자랄수 있었다. 청년시절 재수했지만 원했던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아이들을 통해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는 행복한 청년시절을 보내었다. 결혼전까지 그렇게 쭈욱 행복하였다. 사랑에 늘 갈구한 나는 나를 사랑해줄 것 같아 선택한 결혼이었지만 남편의 사랑으로 채워지지않는 허무가 있었고 출산으로 인생의 가장 힘든시기를 보냈다. 남편의 외도로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이혼한 후 지금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간인 것 같다. 이혼직후 우리들 교회와서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고 삶이 해석되고 전남편도 교회에 나오게 되어 양육받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강호진
모태신앙으로 부모님의 믿음을 어려서부터 보고 실천하는 평범하고 정서적으로 윤택한 유년기 시절을 보냈다.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어려서부터 자신감이 넘치고 인정받는 아이였다. 중학교때에는 공부의 절실함을 못느껴서 별로 스트레스받은 적은 없었고 고등학교들어서 공부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기독교대학에 입학하여 태어나서부터 계속 말씀과 예배를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됨을 대학다니면서 감사해했었다. 대학때 과수석을 놓친적이 없고 졸업때 졸업생대표 상을 받았다. 공부에 흥미를 느낀 이후 대학원진학을 결심하고 석,박사를 최단기 기간에 받고 국비로 미국주립대학에서 교환연구원으로 2년반을 보냈다. 그 시기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20대후반에서30대초반). 인정받고 잘 풀리고.....귀국후 선을 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33세). 결혼5년차인 지금(38세), 결혼직후부터 지금까지 가장 인생의 힘든시기인 것 같다 (탄탄대로일 것 같은 내인생이 남편때문에 멈추게 된 것 같고, 육아는 독박육아가 되어 워킹맘으로써의 삶도 너무 버겁게 느껴졌고...). 우리들교회 나온지 1년이 다되어가는데 아비새같은 공동체만이 내가 살길이다 생각하고 붙어있게 되었다.
김홍진
행복하고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10대가 되면서 내 인생의 가장 힘든시기를 14살을 정점으로 보내었다. 방황했던 사춘기를 뒤로하고 20대 초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회복되어 30대 초반까지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30대 중반에 동생 가정이 깨지면서 다시 극심한 심적고통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셋째의 임신소식엔 남편과 둘만 알고 아무에게도 알리지못했다. 너무 원망이 되고 싫었다(임신사실이). 셋째를 출산하고는 원망이 감사와 기쁨으로 바뀌어 인생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셋째를 너무 이뻐하게 되었다. 아이 세명을 키우며 어떻게 하면 성경적 부모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우리들교회 부모학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우리들교회 교인은 아니고 수요예배를 듣고 있다.
송봉심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은 지극히 그저그런 유년, 초등,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아르바이트 공부를 하며 20대에 창업을 하였다. 그 때 성취와 성공감으로 자존감이 회복되었다. 29세에 결혼하면서 다시 슬럼프처럼 느껴진듯하다가 창업한 매장이 확장되자 정말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깐, 출산과 동시에 남편의 ?로 인해 힘들고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 34살에 둘째를 출산하고 아파트 분양도 받게되자 우울했던 시기가 보상받는것 같아 기쁨의 나래를 펴게되었다. 그런데 또 웬걸 남편의 사업이 극도로 나빠져 가족이 힘들어졌고 현재 39인 지금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기대감으로 다시 0에서 상승세를 타는 인생그래프를 그려나가고 있고 기대하고있다.
김형숙B
윤택한 유년기 시절 덕분에 행복했던 기억이다. 원하는 대학에 낙방하며 입시 스트레스로 힘든 고등학교 이후 삶을 살았고 청년부시절 다시 유년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힘든시기를 거치면서 회복된 안정적인 시절을 보내었다. 30대 초반 원형탈모로 극심한 우울증이 왔고 32살에 결혼을 하면서 다시 행복한 삶의 기초가 세워지는 듯 했다. 하지만 불임이라는 힘든 신혼을 보냈고 이를 그복하면서 35에 임신과 출산이라는 기쁨을 맛보게 되어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 직후 남편의 실직으로 고난이 왔고 현재 우리들교회에 붙어있으면서 내 나이 40대 초반, 결혼은 행복이 아닌 거룩에 목적을 둔다는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 자녀양육에 있어 구체적 지혜를 구하고자 우리들교회 등록하게 되었다.
인미숙
출생부터 난 힘들었다. 엄마의 투병으로 유년시절은 좋은 추억이나 기억이 없다. 느다없는 동생의 탄생으로 행복한 유년기 시절이 시작되는 듯 그렇게 동생과 함께 놀고 다니게 되면서 회복되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도 평범했다. 20대초반 웬지모를 우울감(힘든시기)이 찾아온듯 하였지만, 일에대한 성취감과 고수익으로 행복을 맛보았다. 결혼하고 나서 신혼여행때 결혼에 회의감(?)이 찾아와 행복해야할 결혼이 과연 이게 맞는가라는 생각으로 다소 주춤한 신혼초를 보냈으나 다시 일에서 오는 성취감과 점점 높아지는 수입으로 대리만족이 찾아왔다. 그러나. 33살에 임신과 출산, 고부갈등, 남편의 외도가 의심되는 등 끊임없는 고난으로 현재까지 내 인생은 곤두박질 치고 있는 기분이다. 특히 육아에 있어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너무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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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의 나눔시간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모두의 얘기를 듣고 나눔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첫시간이었지만, 서로가 얼마나 자녀에 대한 애정이 있고, 함께할 고난이 있는지 체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나게 된 것에 각자의 마음에 안식과 기쁨이 생겼으리라 믿습니다.
1-10조 중 3분의 삶선 나눔을 공개적으로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분들의 삶선을 보고 듣다보니 숙연해지는 이상의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년기 부모학교를 수강하신 2분이 2주차부터는 다른조로 가시게 되어 9조 인원에는 약간의 변동이 있게 되었습니다.
수료하는 날까지 성실히 참여하고 나눔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며 다음 차 주에 만나뵐것을 기약하며 조장님의 기도로 마무리하고 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