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15조 나의 삶선 그래프
작성자명 [정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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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4.04.28
#65279;과수원,논농사 대농사를 하신 부모님 밑에서 부요하게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문중에서도 존경받는 분이시고,나라에 경제 발전 이바지 한 공로로 상까지 받으셨습니다 천지사방이 나의 놀이터였고 친구들을 모다 캠핑도 하고 크리스마스때면 산에 가서 직접 소나무를 베고 트리장식도 했으며 늘 호기심이 가득 했습니다. 농사일기와 문중 대,소사를 쓰시며 한문을 늘 공부하시는 아버지,절기마다 음식을 만드시는 어머니의 사랑안에서 유독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어머니의 교육열땜에 5학년2학기 고향 근처인 대구에 오빠,막내여동생과 저는 우리집에서 친척언니랑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타 도시에서 대학생이었고 바로 밑의 여동생은 고향에 남았습니다. 저는 경제적으로는 부요했지만 늘 외로웠고 동생을 돌보아야 하기에 애 어른이 되어 갔습니다.제가 고등학교 3학년 5월에 해,달,별이 떨어 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존경하던 아버지께서 돌아 가셨습니다. 고향친구가 전도를 해서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저는 크리스챤대학 중문과에 다니면서 제 의로움이 꿈틀 되면서 대학 1,2년은 학생회 활동에 바빴습니다 선전부,편집부,중국문학회,율동패 등등 하여튼 감투는 다 썼습니다 . 공부가 하고 싶어 중국북경으로 어학연수와 유학을 하면서 중국한인교회를 섬겨며 공부와 교회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20년 전이라 중국에서 전도하는게 힘들었기에 몰래 기숙사에서 선교사님과 성경공부 찬양을 하며 대학생들을 전도하며 제 생에 제일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같은반 언니랑 한달 간 남방 여행도 하며 모험심과 여유로움도 맛보았습니다. 졸업하기 전에 서울에 취업이 되었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한 동생과 같이 자취를 하며 저는 기업체,대학교 교수님 통역을 하면서 온누리 교회 중국예배를 드리고 있을때 중국 유학 모임에서 남편이 저를 중국에서 봤다며 백수인 남편은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를 출,퇴근 하면서 기다렸고 불쌍하면서 연민의 정에 쌓이다보니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한 정죄감에 자포자기 하듯 친정 어머니의 강권적인 반대에도 결혼을 했습니다 만난지 4개월만애 결혼을 했으니 증조할아버지,증조할머니,층층시하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장손며느리로 귀머거기,장님,벙어리 3년씩 9년간 아들 딸 낳고 참았습니다 남편의 여자 편력과 무능함 주색잡기는 새댁의 경제력으로 다 덮었고 노골적인 집착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아들 사랑은 하나님보다 우선이었습니다. 아들 딸이 대학생이 되면 고향으로 간다는 생각에 경제력을 키워야만 했습니다. 단발머리만 고집하시는 증조할머니,저의 외모로 정죄하시는 시어머니 반발 심에 저는 청담동에 있는 헤어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유학파 선생님께 레슨받고 봉사다니면서 그리고 중국어와 접목시키면서 칼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때 왼쪽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과 천식,섬유근육통,담낭의 용정 등이 생기면서 7년간 일해온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와 남편은 새며느리와 새아내가 얻고 싶어서 아예 노골적으로 분당에 치킨가게를 외도녀와 차려 주었습니다 이것을 안 친정언니와 동생과 함께 자녀양육 포기,위자료 포기를 하며 일사천리로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숙녀기간 3개월동안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친정어머니와 오빠가 알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이혼정리하고 일주일 지나서 용서를 빌고 시댁에 들어갔습니다. 시댁에서는 달가워 하진 않았지만 수억의 사채가 터진 상황이었기에수습하기에 바빴고 같이 치킨가게를 하며 빚 갚는 적용을 하기로 하고 서울에서 분당으로 15평 월세로 분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서울 교회에 다녔기에 가정 중수를 하는 우리들 교회를 소개 시켜주셨습니다 때마침 가게 근처에 우리들 교회가 있었기에 살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며 목장에 붙어 있다보니 숨이 쉬어집니다 행동발달 장애가 있는 남편의 분노 , 경계성 학습장애가 있는 딸,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게임을 즐기는 아들, 한 열심인 나 ! 여전히 남편은 변함이 없고, 생활고에 힘들지만 울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는 사건이 와도 굴속으로 숨는 회피도 감정을 덮는 부정도 하지 않고 직면하는 힘이 생겨 납니다 내 죄를 보며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가르쳐 주시는 목사님과 양육해주시는 우리들 공동체 ,목장이 있기에 소망을 두고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