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원하고 구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며, 남들이 즐길 때 적당히 즐겨가며 아주 특별하지는 않지만 잘 살았다고 생각했던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만족감은 2대 독자라 대접받는 오빠보다 더 인정받고 싶고, 말썽부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착함으로 포장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빠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갔지만 직장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작은 회사를 다니다 다시 시작한 공부를 하던 중,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는 결혼을 한 오빠를 보며 저도 부모님도 만족스러운 결혼은 하고 싶어, 선을 보게 되었고 결혼을 했습니다.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상대라 생각하고 결혼했지만, 너무 다른 부분을 하나씩 맞춰가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결혼 몇 개월 후 아이가 생겼고 행복감을 느낄 때쯤 남편의 돈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화가 났지만, 한 번 있을 수 있는 일이겠거니 덮고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었고 그 후 1년간은 큰 문제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나날이었습니다.
아이가 6개월이 되던 때 남편은 다시 돈 문제를 일으켰고, 여기저기 알아보며 실망감으로 낙담하고 있을 때, 남편은 하루아침에 가출을 하였습니다. 가출 후 수소문을 하여 알아보니 결혼 전부터 쌓여온 빚과 거짓생활이 하나씩 드러났습니다. 안정된 직장도, 결혼 후 모든 일상도 처음부터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배신감으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1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아이에게 혈기부리며, 저조차 숨어서 생활을 했습니다. 남편만 돌아오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아이를 키우며 지냈습니다. 아이가 받을 상처보다는 저의 분함에 가득 차 낙심하고 우울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 후 조금씩 일을 찾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것은 우유부단하고 남에게 의지하는 삶이었던 저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2012년 초, 분에 가득차 소송을 했고, 소송을 하면 남편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친척들에게도 얘기하지 못하던 중 우리들교회를 다니던 사촌언니를 만날 기회가 생겼고,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을 것 같아 그간의 얘기를 하니 교회에 꼭 나와보라며 권유를 했습니다. 불교집안에서 자랐지만, 이혼에 대한 갈등으로 마음이 피폐했던 때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새 가족으로 맞아 주시던 날 ‘나의 안에 거하라. 내가 너를 지키는 자라.’라는 찬송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동안 숨겨왔던 속내를 드러내고 함께 고민하고 울었습니다. 우리들교회가 저의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많은 위로와 지혜를 주심에 감사하고 아이를 공동체 안에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꼭 붙어갑니다. 아이교육에 대해 늘 혼란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엄마인데 부모교육을 통해 아이와 관계가 좋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