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8살 어린 나이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엄마의 얼굴은 모르고 아빠는 방랑하며 사시느라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린시절 산동네에 살았던 저는 생계를 책임지시는 할머니가 새벽에 노동일을 가시면 종일 동네에서 놀곤했었는데 그러다 동네 사람들에게 초등학교도 가기전에 여러차례 성폭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여러 환경들로 어린시절 늘 불안했고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는데 어려서는 할머니께 버림받을까 두려웠고 지금의 남편을 만난 20대에는 남편에게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제 삶은 불안하고 두렵고 죽고 싶은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과 6년의 연애 끝에 26세에 결혼했지만 집착으로 만나 시작된 결혼생활은 숨겨왔던 나의 무기력과 우울이 드러나며 결혼 일년도 안돼 이혼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리들교회에 다니던 친구의 소개로 2007년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하나님은 저희 부부를 만져가기 시작하셨습니다. 태어나 처음 가 본 교회에서 찬양을 들으며 마음이 상해서 아픈 나를 하나님께서 불러주셨다는 생각에 매번 은혜 속에 예배는 드렸지만 삶이 변하지 않는 저를 보며 남편은 저의 눈물을 가증스럽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삶이 변하지 않아도 찌질한 나의 눈물을 하나님은 믿어주셨고 질긴 나를 기다려주셨고 가정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다 30세에 귀한 첫째 자녀 하영이를 주셔서 내가 엄마가 될 거란 생각을 못하고 살았는데 하나님은 목장공동체의 만남을 통해 남편의 부인이, 딸의 엄마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다 산후우울증과 함께 묻어두었던 상처들이 우울과 분노로 드러나며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라는 진단으로 정신과에서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저를 감당하느라 남편은 교회 온지 3년만에 하나님께서 목자로 만드셨고 저는 6년만에 부목자가 되었습니다.
부목자가 된 후 바로 34세에 하나님은 둘째 아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이는 임신 5개월 무렵 검사를 통해 에드워드증후군이라는 염색체 이상의 기형아 진단을 받고 임신 9개월이 넘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하나님 생각’이란 뜻의 “이유하”라는 이름으로 한달 절반을 살다가 천국에 갔습니다. 제가 살면서 잘 한 일이 두가지 있다면 첫째는 우리들교회에 오게 해 주신 것, 그리고 둘째는 유하를 낳게 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다닌지 7년이 되었지만 제가 얼마나 수준이 낮고 연약한지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같이 찌질한 사람을 쓰셔서 아픈 유하가 왔다 가는 사건을 허락하셨습니다. 유하를 임신하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내 상처로 사람을 바라봤고 비교, 시기하며 지옥을 살았습니다. 유하를 낙태하진 않았지만 임신기간 내내 생각으로 아이를 살인하고 저주했던 악한 죄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통해 하실 일을 잠잠히 이뤄가셨습니다. 우리 유하의 사건에서 정말 제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할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유하를 통해 하신 일들을 알리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유하는 2kg정도로 태어나 심장에 구멍이 두 개있어서 태어나자마자 자가호흡이 불가능해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입으로 직접 젖을 먹을 수 없어 위에 튜브를 넣고 있었습니다. 초음파로 본 것처럼 손가락은 기형이였고, 한쪽 귀도 기형에 위치도 다른 모습으로 중환자실의 인큐베이터에 누워있었습니다. 매일 아이 면회를 왔다 갔다하며 하나님을 원망도 했다, 매달려도 봤다 정말 하나님과 함께 씨름하는 시간들이였습니다. 성경에 나온 말씀처럼 목놓아 울기력이 없도록 우는 것이 그때 울었던 제 마음과 모습이 아니였을까 생각합니다. 남편이 다니는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는 의사가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서 심장의 구멍 한쪽을 막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솔직히 에드워드 증후군은 모든 장기에 기형이 와서 때마다 수술을 하고 병원에서 살아야 하는 병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기에 병원비도, 세 식구가 떨어져있어야 하는 환경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기도하며 공동체에 묻고 가자고 하여 주일을 보낸 후 월요일이 되었는데 병원에서 아이의 심장 구멍 중 하나가 막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3일을 약을 써도 구멍이 안 막히는 것은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5일을 쓰고 주일을 보내는 동안 심장의 큰 구멍하나가 막혔다니...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어찌할 줄 몰라 공동체에 묻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지낸지 한달이 넘으며 유하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코로 산소를 꽂고 위관튜브를 달고 집에 기계를 갖고 퇴원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간호대학을 나오게 하신 것이 이럴 때 쓰시려고 하신 것이란 걸 알게 되어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의 계획에 놀랍고 참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5일간 아이를 돌보며 우리 유하는 살도 붙고 눈도 또랑해지며 참 예뻐졌습니다. 잠깐 보던 아이를 계속 보니 마음이 아파 눈물도 났지만 힘들어도 그냥 수술해주며 감당하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을때 유하는 급속도로 나빠져 다시 입원을 했고 입원한지 이틀 만에 천국에 갔습니다. 저희 네식구가 모두 모여있던 새벽에 유하를 남편이 안은 상태에서 천국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태어나 몸에서 기계를 뗀적이 없던 아기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아침이 올때까지 아기를 안고 남편과 저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유하가 천국 간 날 말씀은 여호수아 1:1절로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로 시작됐습니다. 저를 위해 수고하다 간 유하를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종이라고 칭찬하시는 것 같아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침이 되어 하영이가 깼고 하영이는 울며 “유하야, 우리 또 만나자”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수준 낮은 저를 주님이 하시는 일에 사용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유하사건을 지나오며 느낀 것은 너무나 힘들기도 괴롭기도 했지만 나와 같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픈 유하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믿음없는 저에게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처럼 고통 속에서 왔다 간 우리 유하를 통해 예수님을 직접 보게 해 주신 것이 너무나 영광스럽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는 겪은 것 만큼, 당한 것 만큼 남을 체휼할 수 있기에 이런 사건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너무나 감사한 것은 모든 상황이 예전엔 두렵고 불안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이렇게 일하고 계시는 걸꺼야 하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생겼다는 겁니다. 제 뒤에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니 조금씩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어려서부터의 여러 사건을 통해 저를 겪은 것이 있어 남을 체휼할 수 있는 자로 만들어 가시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견고한 저의 틀을 깨주시기 위해 두달 전부터 다시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통해 제 모습을 보고 가게 해 주십니다. 지금 이 시간이 어느때 보다도 저에게는 평안한 시간이라 또 세상으로 흘러갈 저를 하나님께서는 예배로, 양육자로, 부모학교로 목장공동체의 권찰과 부목자로 바쁘게 하십니다. 이제는 유하의 사건을 기억하고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