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어릴적 기억은 4~5세부터 시작됩니다. 유아기때는 2남 5녀중 막내라 외향적인 성격으로 춤과 노래에 관심이 많아 티비에서 한번 들은 노래와 춤을 따라하고 아버지에게도 최신곡과 춤을 가르쳐줘 아버지가 모임에서 히트 친 기억이 나며 엄마 아버지 앞에서 시키지 않아도 마루와 마당을 무대삼아 공연을 펄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는 엄마 아버지도 유머러스하게 서로 대화도 많이 나눴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들어가고 3~4학년때부터는 할머니가 우리집에서 머무실때마다 아버지와 엄마는 많이 싸우셨고 할머니는 새벽에 물 받아놓고 부처에게 빌고비는 기도를 많이 드렸는데 고부갈등이 심하고 할머니는 불화의 원인이라는 생각에 불교는 너무 싫었고 크리스마스때 교회서 합창하고 했던 기억이 나며 뭔지는 모르지만 교회가면 마음이 편하고 좋았던 기억이납니다. 작은 아버지에게 빚보증 서주고 작은 아버지가 그 돈을 가지고 도망갔기에 그 빚을 갚아야했던 부모님은 힘드셨고 아버지도 뭔가 하시려고 하는 사업마다 실패로 끝났고 엄마는 그 스트레스 때문인지 나에게 화도 많이 내고 작은 잘못에도 욕하고 화내고 했었습니다. 아버지도 술을 점점 많이 드시고 많이 싸웠지만 원래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격려도 잘 해주시고 그래서인지 아버지 모습은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정이 이랬으면 사춘기가 심했어야겠지만 나의 사춘기는 중학교때부터 도덕 선생님을 짝사랑하면서 오히려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했고 중학교 들어가서 첫시험에서 전교 4등하면서 선생님들께도 인정받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 중학교때부터는 오히려 해피포인트 50 이상의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중의 하나일때였습니다.
그러다 고2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우울의 시기가 있었지만 그 이후 서울로 와서 교회도 맘껏 다니고 신앙 생활하면서 교회-집-회사, 교회-집-학교 이렇게 모든 생활의 중심은 교회 신앙 생활 중심이였고 돈벌어서 혼자 힘으로 대학도 다니고 직장에서도 연차가 늘면서 연봉도 오르고 서른이 넘어서는 일년에 한번씩 해외여행 다니면서 서른 다섯까지 서서히 상승 곡선에 올랐습니다. 서른 다섯살에는 또다른 생애 최고점입니다. 우리들교회에 왔고, 김 양재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도 하고, 미국에 살고자 고집했던 남편을 설득해 우리들 교회에 남아 말씀으로 제대로 양육받으며 살고, 신혼을 즐기고자 임신을 미루었다가 영적후사 외치시는 목사님과 목장의 처방으로 불임약 끊고 적용했을때 노산임에도 불구하고 귀한 딸과 아들 주셨고...감사한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4년동안 두아이 양육하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는 것과 집이 없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때도 있었지만 말씀하신것처럼 앞으로는 무한 상승만 남아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