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감정코칭 수업을 듣고 나서 어떻게 적용해볼까? 생각했습니다. 겉으로 지극히 온유한(?) 사춘기를 보낸 저에게는 요즘 아이들의 현실이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가면을 너무도 잘 쓰고 있는 저였기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폭발하는 사춘기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적용을 고민 중인 저에게, 저와 사이가 가장 안 좋은 둘째가 바로 다음날 제게 적용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아이가 쭈삣거리며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이거 말하면 엄마가 혼낼 것 같은데...” “뭔데? 이야기해봐~” “음~~~” “괜찮아. 혼 안 낼 테니까 말해봐~ 시험 못 봤어?” 아이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몇 점인데?” “......” “OO점?”(아이가 점수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해서...) “엄마 어떻게 알았어, 내 점수?” 내가 점수를 말해놓고도 순간 화가 났지만 전날의 강의 약발이(?) 남아 있어서 조병은 사모님의 흉내를 냈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눈을 쳐다보면서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로서는 최선을 다했는데 점수가 나빠서 기분이 안 좋겠네. 어떡하지? 기분 풀리게 매운 떡볶이 해먹을까?”하고 말하니 아이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저를 힘껏 안았습니다. 저는 평소에 둘째에게 성적에 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아이 나름대로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환경적인 것 때문에 지식의 방에도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못하고 감정의 방은 무관심하고 행동의 방만 문턱이 닳아 없어지도록 드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의 감정의 방조차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감정의 방에도 무관심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진심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씀을 듣고 나의 우울함 때문에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입으로는 말씀과 구원만이 최고라고 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저의 세상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가치관 때문에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지 못하니 아이들에게 제 가치관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1번이 큐티, 2번이 학교 숙제, 3번이 구몬이야~ 다하고 나서 놀아~ 알았지?” 도대체 언제 놀라는 건지... 말로는 큐티가 1번이이라고 하지만 세상적인 것도 놓지 못하는, 주님과 세상, 양쪽에 발을 걸친 저입니다. 저의 돌 같은 가치관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