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선 그래프를 중심으로 한 나의 삶
제가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안 좋았던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밥 먹듯이 하셨고 그로 인해 외할머니와 이모의 손에 자랐습니다. 4~5세 쯤 시골에 맡겨졌을 때 젊은 신혼부부에게 잠시 맡겨졌는데 심하게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기억으로 인해 싸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서 큰 소리 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결혼 후에도 남편과의 관계에서 큰 소리 나는 것이 두려워 속으로만 욕하고 불만이 있어도 말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외가식구들이 “네 엄마가 너를 임신하고부터 아프게 되었다.” 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것이 상처가 되어 내 존재를 부정하게 되었고 자존감도 낮았습니다.
그래도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부모님 말씀 잘 따르며 별 문제없이 잘 지냈지만 고등학교 가면서 부모님께 반항도 하고 고3때는 독서실에서 거의 지냈습니다.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고 대학에 입학하였으며 2학년 때 복학한 남편을 만나 사귀게 되었고 대학원 재학 중, 25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 1년 반 살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처음에는 같이 어학공부도 하고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했지만 IMF 이후여서 시댁에서는 제가 공부를 그만두고 아이를 낳고 집에 있기를 강권하셨고 제 능력도 부족하여 27세에 첫 아이를 낳고 살림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예뻤지만 서툰 살림과 육아로 외로움과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몰랐기에 남편을 머리로 놓지 못해 돕는 배필이 되지 못하고 남편을 경쟁상대로 여기면서 내가 공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을 냈습니다.
남편의 끝날 것 같지 않은 박사학위 때문에 미국 간 지 5년 만에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고 믿지 않는 남편에게 믿음의 동역자를 붙여달라고 기도하던 중, 교환교수로 오신 김한호 초원님을 만나 성경공부(큐티)를 하면서 남편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에 무사히 학위를 마쳤고 미국에서 살기를 원했지만 남편의 직장문제로 한국에 오면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강한 시어미니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사는 것이 싫어서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망설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세밀하게 인도해 가셨습니다. 믿는 시어머니였지만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장예배가 밤늦게 끝난다는 이유,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저를 많이 힘들게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화가 나시면 최소 3시간에서 6시간동안 무릎 꿇고 앉아 어머니의 살아온 이야기와 억울한 이야기를 다 들어야했고 극심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인해 저는 시름시름 죽어갔습니다. 저의 우울증이 극에 달해 죽고 싶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들 즈음에 낮목장의 처방으로 정신과를 다니게 되었고 부부목장의 처방으로 분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댁과의 갈등도 최고조였고 남편의 불안정한 직장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지만 말씀과 공동체가 있었기에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출신학교에서 대학 교수 채용에 연속 두 번 실패한 후에도 여전한 방식으로 공동체에 잘 붙어가니, 지금의 연구소에서 정식 연구원이 되었고 여유롭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네 아이를 양육하다가 막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어 몸이 조금 편해가던 중 큰 아이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심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알고 나를 변화시키고자 우리들 부모학교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미래는 55세에 아이들의 학업이 마칠 쯤 홀가분해질 것 같고 목장에서 사명 감당하면서 가끔 손주들 봐주고 지내다가 73세쯤 남편과 사별하여 힘들어 하다가 75세쯤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고 천국으로 입성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