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학교 1기 허지영
불신 가정에서 태어나서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서 31살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알게 된 지인의 소개로 2006년 11월에 귀국하면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고 15, 11, 7, 5살 된 네 딸이 있습니다. 성품적으로 우울한 기질이 있고 혼자있는 것을 즐기다가보니 네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 힘들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시어머니의 기도로 주님을 만났지만, 믿음의 반대인 열심 있는 저와 똑같은 시어머니를 통해 끊임없이 훈련을 받고 있고 남편을 통해서 나의 음란과 역할의 불순종하는 죄를 깨달으며 아이들을 통해서 교만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첫째의 사춘기 무기력증과 둘째와의 불협화음이 생기면서 부모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즈음에 우리들 부모학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모학교 1기를 마치며
네 딸을 양육하면서 나와 남편을 골고루 섞어 닮았음에도 넷이 너무 달라서 힘들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되지 않으니 달라서 좋은 것들을 즐기기 보다는 힘들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국수 먹을까?’ 하고 물으면 ‘냉면, 칼국수, 자장면, 우동’ 이라고 각각 대답합니다. 이 때 저의 지혜롭지 못함과 완벽주의 성향의 양육으로 인해 한 번에 네 가지를 하려다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람보다는 일이 중심이라서 각각의 마음을 헤아려주려고 하기보다는 무언가 보여지는 것을 해주려다 보니 몸은 하나인데 아이가 넷이어서 영육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감정의 소통이 안 되다보니 자녀뿐 아니라 남편, 시댁과의 관계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교육을 통해 나의 삶을 먼저 돌아볼 기회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자존감이 낮아 늘 남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사건이 왔을 때 나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표현하고 상대방의 감정까지 만질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양육태도로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던 것을 고치려고 노력중입니다. 분과 혈기를 내는 횟수가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내가 변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니 아이들의 변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내가 하는 일만 중요하다고 여겨서 아이들이 나갈 때, 들어올 때 목소리로만 인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하던 일을 즉시 멈추고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고 안거나 뽀뽀해 주면서 아이를 보내고 맞이합니다. 짧은 시간의 투자였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끌어내기에 효과는 좋았습니다. 솔직히 아이들에게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하던 일을 네 번씩 멈추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을, 언제 멈추어야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시간이 지나서 아쉽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애착관계를 잘 해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가 잘 못했던 시간만큼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나와 다른 것을 머리로, 가슴으로 인정하게 되니 아이들의 입장이 될 수 있어 잔소리가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은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기 위해 지속적인 말씀 묵상과 십자가 지는 적용이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첫째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세상적인 방법도 구해보고, ‘하나님! 저 어떻게요? 애를 넷이나 맡기셨으면 키우는 방법도 알려주셔야죠~’ 하고 기도(?)했는데 뜻밖에 교회 안에서 부모학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받는 동안 배운 것을 적용하기도 하고 감정 조절이 안 되어 실수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이고 나를 거룩하게 하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부모학교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훈련이 교육하는 동안에 그치지 않고 홈페이지나 이후 활동으로 연결되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부모학교 1기가 맏물로 드려지게 되어 기쁘고 7주 동안 헌신으로 섬겨주신 강사님들과 사역자님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저에게 네 딸들을 양육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