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김영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엄마 친구분의 전도로 가족 모두 우리들 교회에 출석하게 됐습니다. 제게 있어 고질적인 고난은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청소년기 때부터 등락을 반복한 일입니다. 저는 10년간 성실하게 교회를 다니고 예배에 참석했지만, 말씀은 말씀이고 내 삶은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당연히 고난이 해석되지 않고 약재료도 되지 못하였고 그저 수치스러운 일로만 여겨졌습니다.
특히 교만한 저는 제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가정으로부터 저를 분리하여 생각하고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의 사건이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공동체에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빠가 사업을 정리하며 가정경제가 한 단계 더 어려워지는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겸손한 자는 없고 겸손한 환경만이 있다고 하셨던 담임목사님의 말씀처럼 여전히 교만한 제가 다시 한번 땅 밑 지하까지 내려가게 되니 저절로 겸손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청소년기의 우울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막연한 두려움과 수치가 찾아오자 그제서야 말씀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게 예레미야 5장 말씀이 들어왔습니다. 자꾸 망하는 사건만 생기는 것 같고, 벌을 주시는 듯한 기분이 들어 괴로웠는데 (18절) 그럼에도 완전히 진멸하지는 않으신다 하시는 말씀을 주시며 그럼에도 남아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을 경제적으로 치신 사건으로 가족 모두가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알아가고,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환경으로 인도하신 것이 뒤늦게 인정이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저와 제 가족들에게 있어 구원의 사건이며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사건이었던 것이 해석 되었습니다.
교만한 저여서 가난한 환경이라도 주지 않으시면 직장이고 가정이고 교회공동체고 제 입맛에 안 맞으면 냉큼 떠날 것이 확실했기에 저의 악한 모습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주 큐티에서 바울이 디도에게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몇 주 전 스트레스가 쌓인 상황에서 직장 상사의 능력에 대한 무시, 인격에 대한 무시가 올라오자 참지 못하고 소리 지르며 대든 일이 있었습니다.
다툼을 피하는 것은 제 안의 다투려는 욕구를 제압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한척 순종하는 척 하는 제가 속으로는 판단하며 호시탐탐 대들 기회만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자마자 냉큼 대든 것 같습니다. 제 성에 차지 않으면 그 누구보다 다투고자 하는 욕구가 만만한 죄인인 것을 고백하게 만드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두려운 환경이 주어지고 나서야 하나님을 찾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이런 저를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100% 옳으시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시간들을 보내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공동체 안에서 제 연약함을 나누며 잘 붙어가겠습니다. 지금 낮아지고 있는 이 사건이 해석되어 언젠가 약재료로 쓰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