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양입니다.
제가 어릴 적 부모님은 부부싸움을 자주 하셨고, 엄하게 훈육하셨기에 눌림이 있었고 불안하며 자존감은 바닥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 부모님은 이혼 얘기가 오갔고, 같은 집에 있으면서 아빠는 엄마와 형 그리고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혼자만의 생활을 하셨던 기억이납니다. 엄마는 그때 형과 저를 데리고 새벽에 버스를 타고 판교에 있는 우리들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후로 부모님 사이가 다시 회복 되어졌습니다. 축구를 좋아했고 너무 하고 싶었기에 늦었기는 했지만 6학년 여름방학부터 축구를 시작해서 중학교 때 축구부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구를 하는 것은 좋았지만, 축구부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선배의 구타가 있었고 부모님께 말도 못하며 당하기만 했어야 했고 코치님들의 언어 폭력등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대회도 있고 리그가 시작되는데 족저근막염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되니 슬럼프가 와 축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만 자꾸 들면서 하기 싫어졌습니다. 나는 그만 두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성화로 그만 두지는 못했지만 중학교 졸업을 앞두면서 비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질이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서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게 되었습니다. 운동도 안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재미있게 되니 부모님께는 반항하게 되며 가출도 했었습니다. 비행은 점점 더 심해지면서 놀아야 하니 돈이 필요해 차털이까지 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술에 취해 벤치에 잠자고 있는 사람의 지갑까지 훔쳐서 특수절도라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더 많은 범죄를 저질러도 걸리지 않았지만 내가 했던 몇 번의 차털이등 범죄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걸렸습니다. 그때 엄마가 다니던 목장의 목자님께서 저에게 찬양아 너는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시니 그냥 넘어가는 건이 없는거란다 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저지른 범죄에 피해자들을 찾아가 사과하시면서 합의하시고 합의금까지 물어주시는 것을 보니 조금은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때 엄마가 너 예배라도 가자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죽을 것 같다고 해서 예배는 오게 되었고 왕복 8시간이 걸리니 쉽지는 않았습니다. 간다고는 했지만 새벽5시에 출발해서 가는게 짜증나고 싫었지만 예배 오면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샘 때문에 마음이 풀리곤 했습니다. 얼마 전 청소년부 목사님과 부장샘과 담임샘 그리고 부모님과 저 이렇게 심방이 있었는데, 부장샘께서 찬양이가 가야할 힘든 다메섹이 어디일까 라고 하셨을 때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의 모든 사건들로 보호관찰을 받게 하셔서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이끄셨습니다. 아직 말씀은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늘 지켜보고 계시고 예수님이신 참포노나무에 가지로 잘 붙어가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항상 저를 챙겨주시고 사랑으로 양육해주시는 홍석률선생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