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목장을 참석하고 계시던 엄마의 권유로 중학교 2학년 때 우리들교회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의 우리들 교회는 성전도 없었고 낯선 통성기도의 현장을 보며 이상했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교회 분위기가 신기하고 재미있어 점점 마음을 열고 정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충격적인 간증을 들어도 지금의 화목한 우리집과는 상관이 없다며 친구들과 떠들고 놀기만 하며 공동체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성악을 전공해 교회에서 찬양팀을 시작으로 보여지는 사역을 많이 섬기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드러나고 인정받는 것이 좋아서 섬겼을 뿐 말씀을 들어도 근본적인 외로움은 드러내지 않고 그저 성품으로 잘 섬기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큐지컬 증인 2주 앞두고 아빠가 여자와 연락하는 일이 있었고, 이 일로 인해 평생 회피하며 묻어두었던 어렸을 때의 일이 떠올랐고, 감당 할 수 없는 우울이 올라와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5살 때 아빠는 바람을 피고 계셨었는데 그것을 안 고모들이 아빠의 바람 현장으로 데려가 아빠를 데리고 오라고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려가 보니 아빠는 다른 여자와 있었고 놀란 아빠는 저에게 소리를 치며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화를 내는듯한 아빠의 모습이 무서워 올라가니 고모들은 왜 아빠를 안 데려왔냐며 저를 다그쳤고 다시 내려가 보니 아빠는 도망치고 사라지셨습니다.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그 당시 갔던 다방의 벽지 색깔과 무늬가 지금도 생각이 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에게 말하면 아빠가 떠날까봐 아무렇지 않은척 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저만 아빠의 바람을 봤다는 존재의 대한 죄책감으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나까지 속썩이면 안돼” 라는 생각에 성품으로 참아왔고, 늘 밝은 모습으로 우울함을 감추기 바빠 어느새 저는 안팎이 다른 사람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급기야 청년이 되어서는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했지만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하는 사건으로 인해 감추고 싶어도 하나님 앞에서 저의 외로움과 불안함을 숨길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6월 남아공 아웃리치를 준비하던중 아빠가 또 바람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다음날 말씀이 시편 46편 1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라는 말씀으로 남아공으로 잠시 피난시켜주셨음을 해석 할 수 있었고 남아공 땅에서 만났던 지체들 그리고 같이 갔던 찬양팀 지체들이 정말 환난중에 만난 큰 도움이자 위로여서 덕분에 든든히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남아공에 도착한 후 바로 사사기가 시작 되었는데 제가 얼마나 자기 소견의 옳게 살고 있는지를 보며 다시 한번 제가 하나님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란하게 살고 기복적으로 살고 있던 저의 모습을 회개 할 수 있었습니다. 늘 아빠 탓을 했지만 저도 아빠 못지 않게 제 소견대로 살고 있음을 직면할수 있었고 사사기가 끝나니 우연이 없이 형제와 처음 감정을 싹텄던 사도행전의 말씀으로 결혼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제가 평생 부정하게 여겼던 것들의 대한 편견을 깨주시려고
제가 교양과 상식에 갇혀 얼마나 옳고그름이 강한 사람인지 알려주실려고 또 성품보다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실려고 형제와의 만남을 허락하신 것 같아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결혼을 준비하고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인본적인 사람이라 앞으로의 결혼생활도 두렵고 힘들까봐 걱정이 더 앞서지만
부족할지라도 삶으로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고백하는 결혼생활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