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삶의 변화를 이루어 가는 광주채플을 소개합니다.
광주채플의 예배와 말씀 영상을 확인하세요.
목장 공동체 안에서 말씀으로 함께 성장합니다.
연령별 공동체에서 다음 세대의 믿음을 세워갑니다.
광주채플의 새로운 소식과 주간 콘텐츠를 전합니다.
[2026년 7월 19일 광주채플 주일설교]
@ 제목 : 구원의 노래
@ 본문 : 사무엘하 22:1-16
@ 설교 : 이태근 목사
여러분은 인생의 변곡점마다 어떤 노래를 부르고 계십니까? 상처와 연민에 휩싸여 칼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를 살리신 은혜를 기억하며 구원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사무엘상이 한나의 노래로 시작했다면, 사무엘하는 다윗의 노래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다윗이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받은 날에 불렀던 이 구원의 노래(시편 18편)를 통해, 고난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불러야 할 노래가 무엇인지 묵상하고자 합니다.
1.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다윗의 생애는 10여 년의 광야 생활과 수많은 전쟁의 연속이었고, 그 과정에서 밧세바 사건과 같은 치명적인 실수와 큰 오점도 남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생의 변곡점마다 자신을 찾아오신 '나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구원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울은 행위로 보면 다윗보다 더 의로워 보일지 모릅니다. 여자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죽을 때까지 나라를 지키다 장렬히 목숨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노래는 성경에 단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를 지적받을 때마다 이유를 대며 변명했고, 끝내 회개하지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 어떠한 토도 달지 않고 즉시 엎드려 통회하며 회개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구원의 노래는 내가 의롭고 대단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죄악 투성이인 나를 건지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그 은혜를 증거할 때 부를 수 있습니다.
(간증) TT(Think Trip)에 참석하신 한 권찰님의 나눔입니다. 남편이 꿍하게 화를 내며 말없이 방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내 역시 대화를 단절하고 밥도 차려주지 않았습니다. 속으로는 이토록 미워하며 남편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싶었으면서도, 부부 목장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쇼윈도 부부' 연기를 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자기 역할을 못 한다고 정죄하며 스스로 내 목을 쳐들고 있었음을 회개한다"고 고백하며 남편을 무시하지 않고 마음을 풀어주기로 적용하셨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가면을 쓰는 쇼윈도 목장이 가장 나쁜 목장입니다. 차라리 목장 안에서 진솔하게 부딪히며 갈등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말씀으로 다루어지며 회개하는 것이 진짜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시작입니다.
[적용질문]
@ 나는 다윗과 사울 중 어느 과에 속해 있습니까?
@ 나는 즉시 회개하고 자복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유가 많고 변명이 많은 사람입니까?
@ 내 인생의 변곡점마다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가? (구원의 노래, 칼의 노래, 세상의 노래)
2.환난 중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끈질긴 추격과 생명의 위협을 '사망의 물결, 불의의 창수, 스올의 줄, 사망의 올무'로 표현하며 극심한 고통을 토로합니다(5-6절). 이 올무는 누군가 놓은 덫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선택하여 빠져버린 덫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광야 생활의 불편함을 피하고 아내 아비가일에게 안락함을 주고자,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적의 적을 친구 삼아 블레셋 가드 왕에게 망명하여 시글락 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순종의 대가로 시글락은 잿더미가 되었고 모든 처자식은 아말렉에게 사로잡혔으며, 아둘람 공동체마저 돌을 들어 다윗을 치려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내 힘으로 도망친 블레셋 땅이 결국 스스로 옭아맨 사망의 올무가 된 것입니다. 다윗은 이 극심한 환난과 벼랑 끝에 서서야 비로소 다시 여호와께 애통하며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내가 선택한 얄팍한 피난처가 지옥의 덫이 되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변명하거나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회개하며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간증) TT(Think Trip)에 참석하신 한 목자님의 큐티 나눔입니다. 부목자와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해 파괴적인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내 목이 아니라 부목자의 목을 매달고 싶을 만큼 마음이 지옥 같았습니다. 마음이 힘드니 내 죄를 직면해야 하는 큐티 말씀조차 보기가 싫어 억지로 눈과 귀로만 훑고 지나갔음을 고백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가문의 죄악 속에서도 묵묵히 시체를 지켰던 첩 리스바의 헌신을 묵상하며, 관계의 갈등 속에서 억지로라도 큐티하며 내 죄를 보는 것이 바로 시체 옆에서 들짐승을 쫓는 리스바의 적용임을 깨달았습니다. 온전히 회개함으로 부목자와 진정으로 화해하기를 기다리며 구원의 노래를 부르겠다고 결단하셨습니다.
@ 사망의 물결, 불의의 창수가 홍수처럼 덮쳐 올 때는 언제입니까?
@ 스올의 줄, 사망의 올무가 되어 찾아온 사건은?
@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고 생각하며 세상을 의지할 때는?
@ 척박한 광야 생활이 힘들어서 내가 찾아가는 블레셋 땅은?
@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 어떤 환경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게 되었는지?
3.땅이 진동하고 하늘의 기초가 흔들리게 하십니다.
다윗이 환난 중에 부르짖었더니 문제가 단번에 술술 풀린 것이 아닙니다. 8절은 "이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오는 심판자의 모습, 캄캄한 흑암과 먹구름의 장막을 두르신 두려운 모습으로 임재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녀에게 이토록 무서운 모습과 더 큰 고난(부도, 암, 외도, 가출 등)의 사건으로 찾아오실까요? 이는 우리를 죽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 깊숙이 뿌리내린 더러운 죄악과 탐심을 남김없이 끄집어내어 거룩한 숯불로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함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나를 향한 저주가 아니라, 내 영혼의 불순물을 정결케 태우고 물 밑에 감춰진 세상의 기초(나의 밑바닥)를 드러내어 나를 온전한 사명자로 빚어가시려는 하나님의 변장된 사랑(헤세드)입니다. 좋으신 하나님만 기대하지 말고, 때로는 칼을 물고 무서운 사건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 그 속에서 내 죄를 불태워야 합니다.
(간증) TT(Think Trip)에 참석하신 한 부목자님의 고백입니다. 암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는 피로가 극에 달해, 항암치료 중인 아내에게 "암 빨리 낫고 이혼하자"는 잔인한 막말을 쏟아내 상처를 주었고, 아내는 삶의 의욕을 잃고 치료마저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병실 침상에서 3시간짜리 링거를 맞고 있는 아내가 발이 차다며 만져달라고 했을 때, 투덜거리던 예전과 달리 묵묵히 아내의 발바닥을 주무르며 그 발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기적 같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10년의 위기 부부가 이혼 소장 대신 발바닥의 온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해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달라고 기도하는 부부로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부르짖을 때 즉각적인 평안 대신 땅이 진동하는 고난(암 투병 등)을 주시어 내 안의 죄성을 불태우시고, 결국 이 아름다운 구원의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 땅이 진동하고 하늘의 기초가 흔들렸던 사건은?
@ 좋으신 하나님만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까?
@ 이에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사건은 무엇입니까?
[결론]
참된 구원의 노래는 흠 없고 완벽한 자가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처럼 인생의 굽이마다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사망의 덫에 빠질지라도, 변명 없이 즉시 엎드려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 중에 부르짖을 때 즉각적인 평안 대신 땅이 흔들리는 고난의 숯불을 허락하시어 우리의 교만과 죄성을 남김없이 태우십니다. 내 힘으로 피하려 했던 세상의 피난처(블레셋)에서 돌이켜, 징계를 축복으로 여기며 변곡점마다 나를 살리신 구원의 노래를 찬양하는 거룩한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목장장소: 카페
참석인원: 목자님, A, B
@ 내 인생의 변곡점마다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구원의 노래, 칼의 노래, 세상의 노래)
목자님: 회개 아닌 방어의 모습이 있음. 사울 인 것 같음. 회사에서 인수인계 하고 새로운 업무를 하면서 홍보 일을 하게 됨. 팀장도 같이 넘어왔는데 업무에 관해 죄송하다고만 말함. 회피하는 듯한 모습이었음. TT 때도 장비가 안돼서 그런 건데 누가 물어보면 변명할 것 같음. 교회나 회사에서나 불편한 것을 만들기가 싫음. 말을 잘 안 하는 편. 아침에 TT찬양영상 올려달라 요청을 받았는데 뭔 일 있었나 불편해서 말을 안 했나 궁금함. 집에서는 사고 치고 사역 정리하고 집으로 내려왔을 때 부모님이 물어보면 어차피 다 알기 때문에 편하게 얘기해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됨. 회개가 아직 진정으로 안 된 것 같음. 전에 연락했던 사람이 예배 중에 생각이 남. 왜 그런 진 모르겠음. 아마 피곤한 탓인 듯함.
B: 신교제 중. 만난 횟수는 얼마 안 되지만, 만나 가면서 나를 알아가는 게 사울이고, 바리새인이고, 정죄를 잘 하는 사람인 걸 앎. 일에 있어서는 실수에 관해 먼저 자수하는 편. 하지만 주입식 교육 탓인 듯함. 일에 있어서도 그렇게 처리를 하고 나서도 오늘 말씀을 들으며 나중에 그 일에 대한 또 후속조치로 어떻게 하겠다 하는 말이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 하나 싶음. 사울이 변명하는 것 같음. 가족과 친구들 에서도 먼저 사과를 하는 편, 내가 먼저 잘못한 것도 있고 상대방의 잘못도 있음. 그 때 회개하는 게 내 진심인가 습관인가 헷갈림, 이게 내 변명인가 싶음. 괜히 일이 커질까 귀찮아 변명하는 것 같음. 전 목자님이 자기성찰이 좀 필요하다고 말함.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씀하심. 초원님은 해결중심적 사고라고 말씀하심. 해결중심적 이어서 다윗이 아닌 사울이라 생각됨. 나름의 변곡점이 있었을 텐데 내가 먼저 사과하고 하는 것이 구원의 노래가 아닌 세상의 노래 인 듯함.
목자님: 얘기를 안 하다 보면 오해가 쌓이고, 사람들은 잘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하고싶은 대로 하는 것도 괜찮음. 나도 처음에는 사과하지만 구구절절 말 하진 않음.
A: 말씀을 들으면 다윗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봄. 비슷한 맥락이지만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회개를 하는 편. 변명도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들으면 짜증나고 나도 잘 안함. 그럼에도 엄청 불리하겠다 싶은 건 변명함. 큰 맥락은 귀찮음. 편한길로 보이기 때문임. 사소한 것도 잘못을 인정 안하고 끝까지 늘어지는 사람들이 바보같이 보임. 이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더 손해보는 느낌이 들기도 함.
목자님: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 필요함. 차단하는 것이 있는지?
A: 손절은 제가 하는 편. 그룹에서 튕긴 느낌 때문에 스스로 나온 느낌.
B: 세상사람들과 비교해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점은 우리가 믿는 사람이니까 하는 것이지 않을 까 생각함.
목자님: 부모님 승진 전에 유력했는데 잘 안됨. 윗사람들 쫓아다니는 성격이 아니었음. 그런 것 안 해도 결국 잘 된 것이 정도를 잘 지키면서 가는 게 제일 빠른 길 같음.
목자님: 전 사역할 때 여자 만날 때 여서 무너진 때였는데 설교는 이전교회에서 했던 걸 그대로 했음. 말씀 보면서 어려운 것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면서 단순히 좋으신 하나님만 설교하고 내려옴. 술 담배는 안 하지만 스트레스 받으면 더 악한 음란을 하고 다님. 살려고 한 것인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경험이 많아서 아버지에게 한 거짓말이 밝혀 졌음.
B: 크게 그런 사건은 없었음. 회사에서 불량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인데 클레임이 무서워서 불량을 보내야 한다고 윗선에서 압박이 왔음에도 거부함. 안전제품이기 때문에 사고가 터지면 죄책감이 클 것 같기 때문. 그 때 힘들어서 술을 많이 찾음. 부모님께 잔소리도 들음. 그 때 하나님이 아니라 술을 의지한 것이 인정이 됨. 다른 것은 허리 통증으로 인해 선데이 크리스쳔으로 살아온 것이 돌아오란 말씀으로 들림. 이 사건으로 인해 부목자와 초등부로 섬기는 것 같음. 좋으신 하나님만 찾는 것 같음.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제목도 결국 좋으신 하나님 찾음. 항상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덜 때리시는 하나님 같음. 가볍게 맞아서 돌아오는, 각자의 믿음의 총량이랑 그릇에 따라서 고난을 주시는 데 남들의 고난에 비하면 가벼움. 여자친구도 하는 말이 쫄보라함. 결론적으로는 간증거리가 없음.
목자님: 아버지도 고난이 없어서 고민임. 질문 타임에 고난에 경중을 따지느냐 물었는데 목사님이 모두에게 고난은 큰 것이다 라고 얘기해 주심.
B: 성도들 입장에서 생각해서 무거운 것만 얘기하는 게 인정됨.
B: 신교제 중에도 음란한 생각이 들지만, 말씀보다 인공지능에게 해결책을 물어봄. 답은 간결했음. 운동. 그리고 아깝지 않냐는 말이 와닿았음. 아까운 것도 있지만 한 번 다시 하게 되면 계속 하게 되는 게 있기 때문에 악바리로 참고 있음.
A: 맥락이랑 좀 다른 느낌인데 어제 야동 보기로 하자마자 엄청 큰 번개가 침.
이 번개가 경고의 말씀으로 들렸지만 거사는 치뤄졌음.
그래서 오늘 말씀을 듣고 기도시간에 회개의 기도를 드림.
음주와 음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를 회개함.
어쩔 수 없는 것 같음.
B. : 진짜 TT 다녀와서 힘들었지만 나도 거사를 치뤘다.
A : 다른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함으로써 마음이 많이 무너짐.
이번에 연락을 씹은 것도 미안하다고 전화가 왔는데.
약 10분간 연락을 했는데 더이상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을 그었음.
앞으로 교제를 할 때 편하게 마음을 먹지 않을까.
B : 전화로 말하게 되면 100% 감정이 전해지지 않을거 같지만 전화로라도 이야기 해서 다행인 것 같다.
A : 상대가 지금동안 우리는 만나기만 했었지 감정의 교류가 있지는 않았던거 같다고 함. 이대로 우리 친한 관계로만 지내자고 말함.
B : 다음에 교제에 있어서 친해지는 관계가 있은 뒤에 교제를 하는게 좋지 않을까?
자연스러운게 가장 중요함, 보여지는게 중요하지 않음.
일은 하면 되지만, 관계는 정말 어렵다.
관계는 다 경험이니깐.
송종민 : TT때 말씀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김은우 : 좋으신 하나님만 보며 죄를 짓지 않기를
정진홍 : 죄를 회피하려고만 하는데 정말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