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히 보는 그리스도인 (마 7:1-6)
질문= 우리 집안 식구들 중에 복음을 전해도 그렇게 안 먹혀 들어가서 분한 사람 누구입니까?
시작하기]
코미디언 주병진씨와 서세원씨가 검찰에 고소를 했습니다. 성폭행과 경리직원의 투서가 무고로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했겠습니까? 어찌됐든 이런 사건에서 가장 아픈 사람은 자기 자신들입니다. 가장 비판이 되는 사람은 자기 가족입니다. 그래서 마 11장에서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들이라”했습니다.
교회 홈피에 올라온 글입니다. 어느 집사님 남편이 저녁에 야단을 쳤답니다. 남편은 한번 틀어지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대책이 서지 않는 비판적이 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아내 탓으로 덮어씌운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10년간 이런 싸움을 했답니다. 5년은 죽이고 싶도록 미웠고, 그 다음은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노력했는데 잘 안되었답니다. 그런데 이제 속으로 두 마음이랍니다. 이게 다 내 죄이다, 내가 심했다. 또 하나는 남편이 너무 심했다. 이 둘 중에서 왔다 갔다 하신답니다.
사람들이 비판의 유혹 속에서 자유 할 수 없습니다. 너무 쉽게 험담과 비판을 합니다. 이런 사건이 왔을 때 어떻게 하면 밝히 보는 그리스도인이 될까요?
진행하기]
첫 번째, 오늘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1,2절 읽기)
우리의 인생은 염려 아니면 비판입니다. 강한 자는 비판하고 약한 자는 염려합니다. 또 내 속에서도 염려와 비판이 공존합니다. 조그만 지식 가지고 비판과 분석을 엄청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아는 것이 많아져서 하나님을 경외함은 점점 줄어듭니다. 창조주를 알지 못하고 얄팍한 지식 가지고 비판과 분석을 합니다.
우리는 100% 죄인입니다. 우리는 나한테는 관대하나 남에게는 비판적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검증하여 평가하는 것이 비판인데 우리는 더 나가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비판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구별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특권으로 여겨져서 영적 교만으로 나간다면 이것 또한 이단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문제없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우리들 교회도 그렇고, 지상의 교회가 완전하지 않듯이 문제없는 공동체, 완전한 공동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긴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비판에 더 견딜 수 없습니다.
헬라어에서 비판하지 말라는 현재 명령형인데, 생활습관이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할 때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비판, 이것을 당장 그만 두어야 합니다. 당장!!! 우리가 비판을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보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눔] 가장 내 맘에 안 드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어떻게 비판합니까?
또는 복음이 안 먹혀 분한 사람을 어떻게 비판하고 있습니까?
우리 중에서 아무도 비판하고자 하는데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비판을 안 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3,4,5절 읽기)
이 세상의 얄팍한 지식은 형제의 단점만 보게 해줍니다. 나의 배운 지식으로 형제의 티를 빼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 눈 속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티는 가시요 들보는 통나무입니다. 내 눈이 들보로 가려져 있는데 어떻게 형제의 티를 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내 눈 속에 들보가 있기 때문에 핀트(초점)가 안 맞아서 가슴 아프게 하고 상처만 주는 것입니다. 내 들보를 빼지 않으면 형제의 티를 볼 자격이 없습니다. 내 들보를 빼어야 밝히 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회개할 줄도 더러운 줄도 모릅니다.
나눔] 만약 내가 날 때부터 소경이었다가 눈이 떠진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우리가 소경이었다가 눈이 떠진다면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눈이 떠지면 남의 모습이 먼저 보고 싶습니다. 영의 눈이 떠졌다면 내 자신의 죄부터 날마다 보는 게 은혜입니다. 내 자신의 죄를 들보처럼 볼 수 있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밝히 보고.’는 관심을 가지고 똑똑히 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들보를 제대로 뺄 때만이 처방이 제대로 나옵니다. 자신을 바로 봐서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빼는 것이 주 안에서의 충고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들보를 뺄 때만이 형제의 처방이 제대로 나옵니다. 들보를 빼지 않는 사람은 처방을 내려줘도 성령이 운행을 안 하십니다.
그 부인이 자신이 노력한 회개 속에 허물을 인정하지 아니한 것과 변명하는 죄가 숨어있음을 보았다면서, 자신의 죄를 더욱 처절히 깨닫기를 원하였답니다. 우리가 크게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순간 비판합니다. 집에서... 집에서부터 “비판하지 말라”를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다짐하기] 돌아가며 한 사람씩 큰소리로 말해봅시다. “나는 집에서부터 비판하지 않겠습니다.”
=구호가 끝나면 모두 손을 가운데 모으고 “약속, 약속, 파이팅!!!” 하기=
자기를 바로 보는 것은 상대방의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들보를 보는 것이 기본입니다. 조그만 충고라도 하려면 먼저 나의 들보를 내 놓아야 합니다.
나눔] 나의 들보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씩 만 얘기해 봅시다.
세 번째 그러나 거룩한 분별력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6절)
우리는 아무에게나 회개하고“내가 들보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는 배교자(믿음을 배반한 자), 돼지는 먹지 못할 부정한 짐승, 진주는 아주 귀한 것입니다. 진주를 개, 돼지에게 주면 귀한 것인 줄 모르니까 짓밟으며, 준 사람을 물고 찢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자에게는 천국 복음을 감추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자에게는 복음을 밝히 드러내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나를 부인하고 들보를 빼고 상대방의 티에 대해 충고하면서 복음을 전하려 했을 때, 개, 돼지처럼 달려들어 나를 상하게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거룩한 것을 개,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처받지 마십시오. 그래서 은혜는 내 죄를 보는 것인데, 은혜가 없기 때문에 부부가 쌍벽을 이루어 분열하게 됩니다. 이런 자에게 직분을 주면 가는 곳 마다 분열을 일으킵니다. 직분을 잘못 주어 교회가 분열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두 눈을 밝히 뜨고 분별해야 합니다.
내 들보를 보는 사람에게 밝히 볼 수 있는 눈을 주셨습니다. 말만 하면 비판하는 사람에게 직분을 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회개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 생활에서 예의에 벗어나는 행위들 하나하나가 거룩한 것을 개, 돼지에게 주는 것이 됩니다. 나의 들보를 보는 마음이 거룩한 진주인데 개,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것은 상대방이 아무리 나를 찢어 상하게 할지라도 내가 거룩한 진주라면 나는 이미 개, 돼지에게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개, 돼지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기대를 하면서 나에게 들보 보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절대로 나는 상처를 안 받는 것입니다.
직분을 맡아 일하면서도 마음속에 녹아내리지 않는 증오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전하는 곳에 은혜가 많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개,돼지 같은 자식, 부모, 배우자라고 해도 내가 개,돼지로 보지 않으면 내 마음은 찢어지지 않음을 믿습니다!! 그럼으로써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가운데 개,돼지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거룩함을 보여 찢어지지 않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정리하기]
모든 사람들이 비판, 유혹의 사건이 왔을 때 어떻게 하면 밝히 보는 그리스도인이 될까요?
첫 째,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가족부터 비판하지 맙시다.
둘 째,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내 들보를 바로보고 내 놓읍시다.
세 째, 거룩한 분별력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회개하고 '내가 들보다' 라고 하지 마세요. 우리 가운데 개,돼지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거룩함을 보여 찢어지지않고 복음을 전합시다.
기도]
=나의 들보를 봄으로 상대방을 기대하기를.
=하나님도 나를 기대하시는데 어떤 사람도 기대할 수 있기를.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에 돌아오지
않아도 기대하기를.
=내가 내 속의 개와 돼지, 악과 음란을 본다면, 아무도 개,돼지라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내 속
에 들보가 있고 내 마음에 들보가 있다 하면 믿어야 합니다. 내가 들보를 봄으로 내 식구들이
하나님의 모습으로 달라지도록 기대할 수 있기를...
요약] - 참고로 하세요.
복음과 구원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내 마음에 분별, 밝히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판하지 말고 내 자신을 바 로 볼 때 나의 들보를 보게 되고 들보를 빼는 아픔을 감당해야 되며, 아무리 무시를 당해도 그것은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기대하기 바랍니다.
내가 내 자신을 볼 때 그것은 내 남 편, 아내, 자식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헛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통해 계획하신 일이 있습니다. 나를 발로 밟고 찢어 상해도 내가 들보를 보게 되면 이미 밝히 보는 총명을 주시기 때문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 사건에서 우리들이 밝히 보는 시력이 있으면, 밝히 보는 그리스도인 이라면, 누가 나를 발로 밟겠습니까? 누가 나를 찢겠습니까? 제일 무서운 것은 내 속의 개 같은 마음이고 내 속의 돼지 같은 악이랑 음란인 것입니다. 내 속의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찢어 상하고 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때문에 내 들보를 보는데 어떻게 마음이 상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룩은 반드시 이깁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하나입니다. 어떤 이상한 사람도 하나입니다. 모습은 달라도 우리가 내 안에 있는 주님의 모습을 보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