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를 겪지 않으시는 주님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연약한 우리를 회복 시키신다고 하십니다.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은 멀리서 보면 표가 나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가만히 두어도 곧 꺾여지고 마는 갈대와 같은 사람입니다. 상한 갈대가 꺾이지 않는 이유는 이에 주님께서 꺾이지 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 형상을 회복해야만 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만 두지 않는 것입니다.상한 갈대가 꺾이지 않게 주님께서 철사를 사용하였다면 바로 우리가 이 철사와 같은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나눔) 내 주위에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은 누구 입니까?
상한 갈대의 대표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롯 입니다. 아브라함의 겉을 떠나고 세상의 것을 택하고끝까지 하나님의 도리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재산을 빼앗기고도 목숨을 걸고 롯을 구해 주었지만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유황심판을 당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내 옆의 롯과 같은 사람, 즉 내 옆에서 끊어져야 할 사람. 없어졌으면 좋은 사람. 보탬이 않되는 사람등 이러한 롯을 끝까지 도우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바로 이러한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을 우리가 도와야 하는데 상한 갈대를 도울려면
1.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9절을 보면 주님께서 자기를 고소하는 바리새인들을 떠나서 그들(바리새인)에게 속한 회당에 병자들을 고쳐주기 위해서 들어감. 이것은 안식을 가르쳐 주고 안식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안식을 잘 아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며, 쉼이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이 안식이 없고 안식을 잘 못 알고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백성들을 잘 못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쉼이 없어 죽게 생겼으면서도 안식을 그 환경에서 도망하는 것으로 잘 못 알고 있는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쉼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욕심.정욕.탐심.자기의 죄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할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고쳐주어야겠다고 했을 적에 두려워하지 않고 회당에 들어가심.
적용)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안에서 안식을 찾기 보다는 도망가고 싶은 환경이나 사건이 있습니까?
12절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올바르게, 탁월하게 아름답게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구혼. 영육간에 사람을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안식일에 악을 행하는 것은 영혼구원과 상관없이 쌓는 구제와 봉사입니다. 안식일에 영혼구원과 상관없이 쌓아 놓는 것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가 되어서 행했던 구제와 봉사가 아까워서 예수님을 죽임. 바리새인들은 열심이지만 구원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고, 종교적이고 율법적으로 살고 하나님과 생생한 교제가 없기 때문에 안식일에 주인이신 주님을 죽이면서 안식일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나는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안식일에는 영혼구원에 항상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구원을 위해서 육적인 운동도 하여야 하며, 아름다운 일을 행하고 모든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한 모든 일이 아름답고 옳은 일입니다.
10절을 보면 회당에 들어가 손이 마른 사람을 만나 13절에서 손을 내밀라 하심. 이것은 최소한의 자유의지를 요구하는 것이며, 손을 내밀 때 치유가 됨. 바로 우리가 손.발.머리.입도 다 마른 상한 갈대입니다. 말랐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사용을 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나는 꺾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제대도 된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14절을 보면 이러한 예수님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일꼬 의논을 합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항상 WIN : WIN 하는 방법이지만 따르면 손해 볼 것 같아서 따르지 않고 나는 살고 예수를 죽이는 회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나의 마른 부분은 어느 부분입니까?(손.머리.발.입 등)
손을 내미는 자와 바리새 인중 나는 어느 쪽입니까?
손을 내밀라 할 때 손을 내미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상한 갈대를 다 도와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한 갈대와 같은 인생이 축복입니다.
2. 나타내지 않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알아주어야 신명이나지만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타나야 할 때 와 나타내지 않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15절은 주님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때를 맞추어 떠나심을 말합니다. 비겁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구원의 일이 있기 때문에 떠나신 것입니다.
16절에서 예수님께서 대중을 경계한 이유는 이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자기 병만 나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때문입니다. 이들이 말씀에 순종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경계는 하지만 끝까지 병을 고쳐주심.
구원 때문에 숨어야 할 때 와 나타내야 할 때가 있어야 하는데, 나아가 나타내는 것에 목을 메거나 칭찬받는 것에 목말라 하면 안됨. 생색내지 아니하고 나타내지 않으시는 예수님. 바로 이러한 사람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100% 죄인인 내가 100% 옳으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데 100% 죄인인 인간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서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이 죽일 것임을 알면서도 병을 고쳐주셨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에게 말씀이 들려서 자기 죄가 보이는 것이며, 예배만 드리면 자기 죄가 보여서 하나님에게 압도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자기를 나타내야 할 때와 나타내지 않아야 할 때를 압니다.
적용) 말씀 때문에 순종하고 죽임을 당한 경우가 있습니까?
나는 말씀에 순종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병만을 고치려 하고 있습니까?
어떤 일에서 생색이 나지 않고, 인정을 받지 못해서 안타까워 한 적이 있습니까?
내가 그렇게 잘 알고 가게 되면
3. 이방인들이 그 이름을 발하게 됩니다.
17~18절은 알리지도 나태내지도 않았지만 심판을 이방인들에게 알게 하심. 이것은 손 마른 자를 내가 영접을 하고 또 그 것을 알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종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 사랑하기 자 이기 때문에 이며, 이러한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심판을 이방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가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을 꺾지 않고 내 옆에 있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내게 있지 않고는 안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심판을 이방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19절처럼 다투지도 아니하고, 들레지도 아니하고,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과 산다면 싸울 일. 외칠 일, 소리 소리 지를 일이 많은데, 그런데 성령이 함께 하시면, 다투지도 아니하고, 들레지도 아니하고,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 해도 성령이 내 소리를 전파하게 하심. 내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내가 아무소리 안해도 그 소리를 이방이 듣게 하십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20절처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함.
적용) 내 주위의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과 살고 있다면 현재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성품 때문에 싸우지 않고. 외치지 않고 살고 있습니까?
내 앞의 상할 갈대가 없어졌으면 하지만, 바로 내가 상한갈대임을 알아야 합니다.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는 바로 그 사람을 보면서 내 속에서 심판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구원과 사랑의 마음이 생긴 것. 아브라함이 롯을 끝까지 사랑했던 것처럼 사랑의 마음이 생길 때 이방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상한 갈대가 나인 것을 깨닫고 그 사람의 연약을 보면서 나의 연약을 보고 그 사람을 심판하지 아니하고 사랑하게 되고 긍휼히 여기게 될 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적용) 내 주위에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을 보고, 보게 된 나의 연약함은 무엇입니까?
내 옆에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로 누군가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일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을려면 아브라함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사랑하여야 합니다.
상한 갈대와의 전쟁은 나와의 전쟁에서 이겨야 하며, 바로 이것이 안식의 위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