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1일
마 11:28-30
쉬게 하리라
문제 많은 인생들이 걸어갑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졌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쉼을 얻기를 원합니다.
1968년도에 세계 제일의 부자였던 그리이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그 많은 재산으로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을 했습니다. 돈 때문에 맺어진 그들은 돈 때문에 불행 했습니다. 재클린의 낭비벽을 당시 세계 최고 갑부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에 만 불만 쓰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한 달이면 삼십만 불입니다. 하루에 어떻게 몇 억을 쓰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약속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끝이 없습니다.
미국의 영부인이었던 미인과 결혼을 했지만 오나시스에게도 재클린에게 도 쉼과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나시스가 아들 생일 선물로 경비행기를 사줬는데 추락으로 죽었습니다. 딸 크리스틴은 유부남을 뺏어서 결혼했지만 이혼하고 7년만에 마약중독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오나시스는 죽은 후에 재클린에게 재산이 갈까봐 재산을 그리스에 헌납했습니다. 재클린이 4%를 가졌는데 그 아들에게도 비행기를 사줬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습니다. 오나시스의 돈 때문에 모두가 죽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쉼과 기쁨이 필요한데 돈으로 쉼을 얻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주 망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는 참 쉼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 참 쉼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께로 가야 합니다.(28절)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을 통해 천국 복음을 이야기하시고 병을 고쳐주시면서 천국 복음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를 뽑으시고 복음을 전하는 너희에게 고난과 박해가 있겠지만 받아들이면 천국이 있다. 그럼에도 고난과 박해를 견디지 못해 실족한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슬기롭건 어린 아이건 절대치의 고난을 안고 살아갑니다. 너무 지혜롭고 슬기로워서 예수를 못 믿는 남편 자식을 놔두고 다른 사람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절대치의 고난입니다. 지혜로운 내 남편 내 식구가 안 믿는 것을 옳소이다 감사하나이다 하는 것이 절대치의 고난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28절의 말씀이 나왔습니다.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다 수고하는 인생입니다.
수고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곤하고 지치고 감정적으로 용기를 잃고 낙담하는 것이 계속된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은 절대치의 고난이 있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스트레스와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도덕과 윤리와 죄의 짐에 시달립니다.
주님께서는 배부르고 행복하고 가벼운 짐진 자들을 오라고 하지 않으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초청하셨습니다. 세상에 누가 이런자를 초청을 하겠습니까. 내게 이익을 주는 사람 초청하고 싶지 정말 힘든 사람 오라고 무슨 자신감으로 초청을 하겠습니까. 하루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우는 사람입니까. 웃는 사람입니까. 커피 한 잔이라도 사줄 사람을 만나고 싶지 내가 사줘야 될 사람을 만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계속해서 힘들기 때문에 그들을 계속적으로 섬길 때 나중에 하나님께서 커피와는 비교도 안되는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꼭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되로 준 것을 말로 갚아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대일로 당장 이익을 줄 사람만 찾아다니니까 인생이 무겁습니다.
적용>>
-자식의 결혼식 새로 지은 집 큰 잔치에 어떤 사람을 초청하고 싶으십니까?
-나는 예수님의 초청을 “네“하고 받을 수 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오늘 나의 그 짐이 하나님나라로 초청받는 자격인 것에 감사하십니까?
다 내게로 오라는 것은 명령입니다. 명령하실 때는 반드시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자신이 있으니까 초청을 하십니다. 진정한 쉼은 예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다. 쉼은 현세적으로 이 땅에서 쉼을 맛보아야 천국에서 누립니다. 여기서 쉼을 누리지 못하면 천국에 갈수 없습니다.
쉼이란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시고 다시 살리신다는 의미입니다.
내게로 오라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합니까.
교회 공동체로 오라 목장 모임으로 오라 공동체로 적용합니다.
다 내게로 오라 너를 쉬게 하리라가 아니라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복수로 쓰셨습니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쉴 너희가 있어야 합니다. 사까닥질을 해도 혼자서는 천국에 못갑니다. 쉴 너희와 공동체가 있어야 됩니다. 교회 혼자 다니는 분들은 쉴 수 없습니다.
그러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29절).... 혼자서는 못 얻습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너희 공동체에서 쉼을 얻습니다.
적용>>
-나는 쉼을 얻을 너희(공동체)가 있는가? /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초청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응하시겠습니까?/
수요예배, 목장예배, 일대일양육, 세례. (운동하기. 술 담배문제.....)
초기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신앙 생활을 하였던 터키의 갑바도기아 지하교회를 다녀왔습니다. 로마의 카타콤처럼 그곳에서도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 지하동굴에 은신처를 만들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어떤 곳은 20층까지 있는데 점점 위험해져서 4층까지만 개방을 했습니다. 이천 개 중에 육백 여개가 남았다고 합니다.
작은 구멍을 두개씩 만들어서 들어가면 너무 캄캄해서 로마 사람들이 쫓아올 때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게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만 고개 숙이고 겨우 들어가는 입구인데 들어가면 식당 창고 신학교가 있고 엄청납니다.
여름에도 추운 그곳에서 삼백년 이상 아이 낳고 살면서 어떻게 쉬고 안식을 누릴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은 어떻게 쉬게 하셨을까요?
서로 모여서 기도하고 떡을 떼었기 때문에 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가장 천국은 너희가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핍박이 있는 교회(목장)가 최고의 천국 공동체입니다. 바로 이런 너희가 있어서 고난 가운데 삼백년을 지켜 올수 있었고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고 봅니다. 그들이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다 끝나고 포도원교회에서 성찬식을 하는데 설교가 없어도 저절로 은혜가 되고 눈물이 났습니다.
오나시스는 돈 가지고 주님께로 못 갔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갑바도기아 교인들은 삼백년 핍박을 견디면서 주님께로 갔습니다. 핍박하는 로마를 위해 계속 기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거운 짐입니다. 당대에 로마가 구원되고 자녀가 해방되는 것 못 보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삼백년이 잠간입니다. 이천년을 기리고 있습니다. 팔십 평생 고난을 받아도 잠간입니다. 죽을 때까지 받아도 잠간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의 공동체만 있으면 최고입니다. 오나시스와 재클린에게 없었던 공동체입니다.
재클린은 말년에 친한 친구 남편하고 살면서 망원 렌즈로 파크 애버뉴공원의 사람들 쳐다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고 합니다. 갑바도기아 교인하고 누구를 부러워하겠습니까. 그래도 돈과 명예 가진 재클린이 부럽습니까?
예쁘고 영부인이고 가장 부자하고 살고 국립묘지에 묻혔습니다. 지옥에 가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으십니까.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오직 부와 명예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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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난에 함께 기도하고 떡을 뗄 너희가 있습니까?
-오늘 내가 제일 부러운 사람이 누구인가?/재클린, 갑바도기아 성도, 춘화자매.....
ex)정은미 나눔
할머니병 수발로 그날 그날 말씀만 붙잡고 살았던 그때가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새삼 그리운 것은 영적인 쉼이 최고의 쉼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계실 때는 기가 막힌 은혜의 글을 쓰더니 돌아가시니까 글이 뚝 끊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이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쉬게 하시는 방법은
2.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29절)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사랑에서밖에 나올 수 없습니다. 세상에 누가 나를 온유와 겸손으로 사랑해주겠습니까? 남편 자식입니까?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모르면 어디에도 사랑이 없고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친밀함]이라는 책을 보면 "사랑의 3대 특성"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성은 진실함입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이 거짓말입니다. 집이 불타서 갈 곳이 없다고 한 아이의 거짓말은 사랑받지 못하는 괴로움의 절규였습니다. 상처가 치유되지 못하기 때문에 피상적인 것에 집착해서 허황된 말들을 지어내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 하면서 바람을 피웁니다. 욕할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해서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 입니다. 불쌍히 여겨 눈물 흘리며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이 내 남편 내 자녀도 만나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거짓말과 욕이 몸에 밴 사람이 있습니다. 놀지 말아야 돼가 아니라 그 사람을 보고 기도해야하기 때문에 붙여주셨습니다.
사랑의 두 번째 특성은 부드러움입니다. 사랑의 두 번째 특성은 #43088;부드러움#43089;입니다. 사랑할 때 이를 악물고, 날카로운 눈빛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을 하면 저절로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집니다. 내게 따뜻함이 없어서 나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하셨습니다.
세 번째 특성은 무장해제입니다. 육체적으로 사랑 나눌 때도 갑옷입고 만나지 않고 벌거벗고 만납니다.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나의 약점을 다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천지보다 높은 분이 더할 수 없이 비참한 나를 위해 벗으신 그 사랑이 온유와 겸손입니다.
적용>>
우리 가정 (부부, 공동체)은 쉼이 있습니까?
내가 먼저 온유와 겸손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철갑을 두르고 만나는 부부 고부 교회 공동체는 아닙니까.
레벨과 문화가 달라서 남편 시어머니 며느리 목원.....서로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먼저 벗으십시오. 목자가 먼저 벗으십시오. 다 벗으세요 솔직하고 쿨-해지십시오.
3.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배우는 것입니다.
쉰다고 하면 노는 것으로 생각하고 멍에를 벗고 싶겠지만 예수님의 안식은 멍에를 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새 멍에이고 기쁘게 지는 멍에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사정이 너무 딱합니다. 너무 딱해서 도와주고 싶어서 말씀의 진도가 안 나갑니다. 세상적으로 도와야 될것같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환경이 있어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가 되어 예수께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 짐이 예수님의 멍에로 바뀌어야 쉼을 얻습니다.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 멍에가 예수님의 멍에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로 바뀌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내 멍에로 지고 있기 때문에 짐이 무거운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김은태 집사님 간증.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있으니 제발로 걸어 옵니다. 주님의 멍에로 바뀌면 부끄러운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부끄러움이 없고 그러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쉼을 얻고 나면 태산 같던 내 사건이 콩알 만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인생은 다 절대치의 고난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시작이 되기 때문에 남편이 있건, 없건, 바람을 피우고, 안 피우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오늘의 사건을 해석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남편이 외도하고 자식이 속 썩이고 실직을 하고 재산을 잃어도 말씀으로 해석이 되면 예수님의 멍에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예수님의 멍에로 바꿔맬까요.
그 방법이 바로 "배우라"입니다. 배우기 전에는 바꿔 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습니다. 내 짐을 지고 가면서 그것이 나에게 주는 영적 유익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사건이 오고 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 남편 시어머니 상사를 허락하셨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언젠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월급을 안 받고 일을 해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라면 훌륭한 요리사 밑에 가서 온갖 궂은 일을 하고, 구박을 받아도 거기에서 실력 쌓을 것을 생각하면 하나도 속상하지 않은 겁니다. 내 인생에 목적이 있고, 그것으로 쓰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어떤 일이고, 월급이 얼마인가에 상관없이 감당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것으로 쓰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력을 쌓기 위해서 더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듯 이왕 고난 받는 것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 더 힘든 일을 겪어야 되겠구나 생각하십시오. 내가 백프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힘든 일을 겪어야 겠구나 생각하십시오.
욕을 먹으면서도 시댁 직장 장인 장모 남편 아내에게 욕을 먹으면 ‘아, 오늘도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저 욕! 할렐루야!!’ 이러면서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에게 꼭 맞는 멍에를 내게 주셨습니다. 제 남편이 저에게 꼭 맞는 멍에였습니다. 남편만이 저의 교만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꼭 맞는 멍에로 남편이, 직장문제가 왔습니다. 그 멍에를 매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잘 배우는 비결입니다. 배우기 위해서 큐티하고 목장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배우는 비결은 내가 배운 것을 가르치고 나누어야 합니다.
내가 바뀌어 진 것을 간증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내 짐이 어떻게 예수님의 멍에로 바뀌어졌는가. 간증을 해야 합니다.
간증은 안하고 말씀만 가르치면서 내려놓으세요 하면 가르치는 겁니까. 모임에서 레벨이 안 맞아서 못해 이럴 사람은 없습니다.
30절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멍에로 바뀌는 것은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차적으로 내 남편 섬기고 그 슬기롭고 지혜로운 남편이 안 믿으면 옳소이다 하고 다른 사람 섬기면 됩니다.
말 그대로 미워 죽겠는 사람이 있을 때, 미운 사람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쉼일까요. 주님의 방법은 미운 사람은 가만히 놔두면서 사랑하면서 내가 무장해제를 하고 벗은몸으로 다가가서 섬기는 것이 진정한 평안이고 쉼입니다. 미워 죽겠는 그 사람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내게 꼭 맞는 멍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무 온유하고 겸손하지 못해서 붙여주신 멍에입니다.
적용>>
-내가 너무 온유하지 못해서 붙여준 꼭 맞는 멍에는 누구인가.
-눈앞의 미운 사람에게 어떻게 무장해제를 하고 다가갈까?
두 가지 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다 내려놓는 쉼이 있습니다. 무거운짐은 무조건 내려놓아야한다. 먹고사는 짐, 욕망의 짐. 남편의 짐. 건강의 짐, 미움의 짐 ...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멍에로 바꿔어지는 쉼이 있습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짐을 지려고 하면 쉽고 가벼워집니다.
꿈속에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무거운 인생의 짐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쉽고 가볍게 되는 것을 믿으십니까. 멍에를 당장 치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멍에로 바꿔주심으로 참 사랑을 배우게 하시는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내게 허락하신 꼭 맞는 멍에가 무엇인가.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남의 멍에와 비교해 가며 원망과 자책만 일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멍에에 눌려 점점 침몰하느냐, 주님의 멍에로 메고 배우고 자라 가느냐는 전적으로 내 선택입니다. 내가 얼마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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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허락하신 꼭 맞는 멍에가 무엇인가?
꿈속에서라도 벗고 싶었던 나의 멍에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ex)오늘도공동체의 고백은 진정 수고하고 환난 당한 춘화자매의 나눔입니다. 육체적으로 지치고 곤하고 낙망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계속해서 오는데서 누리는 춘화자매의 쉼 속에서 우리가 함께 쉼을 누립니다.
여기까지 굶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남편이 돈 주지 않아도 비참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왜 이리 내가 초라할까... 목사님께서 뭘 바라는 인생은 불쌍하다고 하셨는데 내 맘이 이렇게나 많이 바라고 있었구나!!
돈 주고 가는 남편 뒷모습에서 급히 가져다 줄 만큼 서두르셨을 하나님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상스런 문자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 같았습니다.
춘화야 무엇을 ..또 어떤 남편을 바라느냐 기댈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를 천국에서 낳았고 지금까지 키웠느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지에 목이 메였습니다.
남편에게 남아있는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하며 돈을 주고 안주고 나가 지내든 들어오든 하나님 아래 있다는 확실함과 내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 외엔 소망이 없습니다.
육체를 따라 사람의 종이 되지 아니하고 나를 칭대케 하시고 하나님 말씀의 종이되게 하신 하나님!
내가 누린 믿음의 땅이 준형이에게 물려줄 최고의 기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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