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된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은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로 결정을 하고, 이 결정을 형은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하며 자신은 국내에서 유명한 의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동생은 선교사로 아프리카로 떠나서 33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고 외롭고 힘들게 사역을 하고 선교지에서 죽었고 형은 고국에서 의사로서 편안하게 살았는데 누가 지혜로운 결정을 한 것인가? 형의 결정이 어리석은 것이었는가? 형은 평범한 결정을 한 것이며, 동생은 지혜롭고 위대한 결정을 한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데이빗 리빙스턴 선교사입니다.
우리 모두가 리딩스턴처럼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리빙스톤처럼은 살지는 못하더라도 삶에서 처절하지만 더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지혜로운 사람을 살펴보면
1) 하나님의 싸인에 반응하는 사람
16절~17절 :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장터에서 아이들이 결혼식 놀이를 하면서 피리를 부는데 아무도 춤을 추지 않고 장내식 놀이를 하면서 슬픔으로 애곡을 해도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탄식을 하였습니다. 춤도 추지 않고 가슴도 치지 않아 놀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세대는 개념은 하나님 나라와 대치 것이며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징 :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슬퍼야 되는데 어디서 기쁘고 슬픈 것을 모르는 것이고 악하고 음란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하다는 것과 다 같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특징적인 말로서 동일한 세대에 살고 있는 개개인, 전체사람. 한마디로 천국의 초대를 거부한 사람을 의미 합니다.
지혜는 이 세대에 속하지 않는 것이며 그리고 춤추고 가슴을 쳐야 합니다. 근데 이 세대에도 병나고 자식이 대학에 합격했다고 하면 춤추고 가슴을 치면서 반응을 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구원과 심판 두 부류로 구분하고 복음에 대하여 요한은 회개하라고만 하는데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면서 도전과 적용을 결단하라고 하니까 무감각하고 반응이 없는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싫은 것입니다.
이 세대가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난 시간에 세례 요한은 윤리와 도덕적이 면에서 최고이지만 천국에서 작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형편이 없지만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는 것이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가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예는 자기가 관심이 하나도 없으면서 요한과 예수님을 마음대로 비판하고 해석 하는 것입니다.
18~19절을 보면 :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요한이 와서 금식을 하는데 그가 왜 금식을 하는지 관심도 없고 할려는 마음도 없고 자기가 하지 않으니까 요한이 귀신이 들렸다고 최악의 욕을 하고 또한 예수님께서 오셔서 연약한 사람들과 지내는 것을 보고,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죄인과 세리의 친구. 아주 부류가 낮은 사람이라고 비판함
약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아픔에는 관심이 없고 무감각하고 어떠한 간증에도 반응이 없으면서 비판의 사명을 탁월합니다. 비난과 불신앙을 같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가지 잘못을 합리화 시키지 위해 상대방을 비난함.
왜냐하면 비난하는 동안에는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을 하고 모든 사람이 100%죄인 이기 때문에 남에 욕할 때 일단은 집중하며 카타르시스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비판을 즐겨 합니다. 예수 믿는 나를 보고 세상이 통하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얼마나 반응이 없는 지 가장 가까워야 될 가정, 공동체에서 지옥일수 밖에 없는 가정을 소개하고자 함.
어떤 일류 대학출신의 학생이 집에 불이 나서 할머니도 죽고 있을 곳이 없다고 당분간 있겠다고 찾아 왔습니다. 이럴리가 없어서 목사님이 집에 전화를 했더니 온 집안 식구가 놀라서 당장 데리러 오겠다고 하였지만 평소 그 아버지가 교회 가는 것을 반대하였고 그것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교회로 데리러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때를 위해서 교회 한번 오게 할려고 이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모든 식구들이 모두 교회에 오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주일날 삼촌을 포함하여 5식구가 교회로 데리러 와서 아버지를 예배에 참석시키고 주일날 하던 재수생 큐티 모임에 참석시켜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 하라고 하고 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에게 예수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전하고 아이들에게도 적용을 시키면서 부모에게 간절한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울고 웃고 다 천사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 집 식구들은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지만 어머니에게서 전혀 쉼을 얻지 못하고, 완고한 아버지와 가족들 사이에서 어디에서도 쉼을 얻지 못하는 이 아이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그런 아이를 가족과 함께 돌려보내면서 너희를 보내니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냄과 같도다 하는 마음을 이 절절히 들었고 예수님의 심정을 알 것 같았습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고 괴로워하면서도 부모의 강압에 의해서 모범생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집이 지옥처럼 느껴지는데 그 돌아가기 싫은 학생을 보내는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바로 이 사건이 하나님이 피리를 불고 애곡을 하고 계시는 사건인데 자기 딸이 왜 아픈지 말이 안되고 대화가 되지 않는데 바로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세대가 그냥 아무리 사건이 와도 반응을 하지 않고 딸이 죽게 생겼다고 해도 남편이 바람을 펴고 자식이 가출을 해서 자살을 한다고 해도 관심이 없으며 빨리 가서 데리고 가면 된다고 생각하나 데리고 간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입니까?
이번 주 간에 목장보고서를 보면서 실직중인 남편이 우리들 교회 나와서 등록한 것만도 기적인데 오랜만에 지방에서 일할 기회가 왔는데 새 가족 4주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면서 그 직장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즉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자리를 주셨습니다. 남편은 딸에게 은밀히 십일조를 해야 하는 것이냐고 묻고, 큐티 교재를 사달라고 하시고 컴퓨터 메인 화면을 우리들교회 홈페이지로 바꾸어 달라고 하였다는 이 말을 딸에게 듣고 엄마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또 하나의 소식은 작년 4월에 시작된 이혼 소송이 1년 되는 이번주에 기각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남편이 이혼 소송을 했는데 초선 국선변호사에 미흡한 준비 서면등으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는데 1년동안 목장 식구들 때문에 승리 하였습니다. 목장 식구들의 불쌍한 여인들이 예수님이 돌아 가실 때 마지막 부활을 지켰던 여인들처럼, 여인들의 인간 승리였습니다. 이 엄마가 처음부터 말을 들은 것은 아니며 처음에는 빨리 아이들 데리고 캐나다에 가서 아이들을 먹이고 살아야 된다고 하였으나, 목장식구들이 그게 문제가 아니고 말씀에 먼저 서야 한다고 하며, 이 엄마가 말씀에 반응하게 해가면서 아르바이트도 수요일에는 한번씩 빠지도록 결정을 하고 이러면서 점점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들어와서 정말 온 힘으로 절대로 이혼하면 안된다고 그 가정을 살리고 그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온통 목장 식구들이 피리를 불고 춤을 추고 가슴이 치고 통곡을 했기 때문에 소송에서 기각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지방의 직장을 거절한 분의 부인이 믿을 수 없는 간증에 전율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장기간 노는 분이었는데 힘든 파출부 일을 하면서도 원망보다는 자신이 남편에 참 많은 상처를 준 사람이었다고 자기의 수치를 고백하였는데 이분이야 말로 징계 중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진정한 온유한 분이 아닙니까? 때마다 피리불고 애곡하고 말씀에 반응하게 하면서 하나님 때문에 선택 한 것들은 반드시 몽땅 책임져 주시면서 말씀을 증거해 주시는 사건이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선택한 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반응을 해야 하고 사건에 반응을 했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고 이 가정을 지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싸인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말씀에 반응을 하여야 합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장에서 행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안다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이 피리를 부는데도 우리는 딴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사건이 떠질 때 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데 듣지 못하면 지혜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함.
사건은 하나님의 피리 소리이고 애곡의 소리입니다. 제발 반응하는 우리가 되기를..
2) 약자의 친구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심.
예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으셨음.
19절을 보면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하였는데
비방하는 가운데 자기들도 모르게 진실을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였는데 내 옆에 누가 있는가로 옳다함을 얻습니다. 한 명사로 유명한 장노님의 방에 들어갔는데 벽에 유명한 다른 명사들과 찍은 사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지와 장애우과 찍은 사진을 붙여 둔 사람은 없을까요?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최근 미국 유에스투데이의 기사에 최근 CEO들이 비즈니스 파트너를 구할 때 웨이터 룰 또는 웨이추레스 룰을 적용한다고 합니다. 이 룰은 일선에서 힘든 일을 하는 하급직원들을 거칠고 험하게 대하는 사람을 동업자로 선택하지 않는 원칙을 말합니다. 즉 하급 직원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게서 높은 차원의 그 무엇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어야 기업에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이랜드가 카르프를 1조 7천 5백억원에 인수를 하였는에 파트너로 선택된 이유가 이랜드의 소매사업에 대한 비젼과 열정, 인력수준, 경영관리등을 높이 평가 함. 2월달에 이랜드 수련회를 갔을 때 한 직원의 시골집에 가서 직원이 바빠서 집에 가지 못하자 그 곳에 방문하여 선물을 하고 영상편지를 보여주는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였음. 또한 그 다음에 갔을 때는 모두 부부동반으로 참여를 하였는데 한 부인이 아이 때문에 참석을 하지 못함. 둘째 날 온 직원들이 총 출동하여 그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깜짝쇼를 해서 모두를 울림. 이러한 저력이 대기업을 제치고 인수하게 된 저력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21세기를 사신다면 많은 경영자들이 채용하고자 하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세리와 친구였다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약자가 있습니다. 창녀는 가진 것도 없고 누가 보아도 약자라고 말한 만한 사람이지만, 반면에 세리는 많이 배웠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고, 돈도 많은 약자입니다. 세리는 일선에서 힘든 일을 하는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는 힘든 약자입니다. 돈 많은 세리, 로마 권력을 자기 권력으로 가지고 있는 세리가 약자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난을 하여도 이러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서 먹고 마셔야 옳다 인정함을 받는 것입니다.
적용)
내 옆에 있는 친구는 누구인가? 내 옆에 누가 있어 옳다함의 인정을 받습니까?
돈 있는 약자가 내 옆에 있습니까? 돈 없는 약자가 내 옆에 있습니까?
가난해도 세리라도 죄인이라도 서로 사랑을 줄 수 있고 만나면 기쁜 것이 있는 것이 영적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에도 또 하나의 오픈을 소개하면 시댁 집은 그래도 믿고 있는데 친정 집은 믿지를 않고 그 형제들 중에서 다른 형제들과는 뭉치고 좋은데 큰 오빠만큼은 꺼내고 싶지 않고 숨겨두고 싶은 가장 수치라고 합니다. 큰 오빠는 고교 시절부터 문제를 일으켰고 결혼해서는 올케가 집과 돈을 모두 가지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 오빠의 방황을 끝이 없고 감옥은 내 집 드나들 듯 했으며 나의 결혼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이제껏 가족 모두가 진정한 대화를 한 적이 없고 내가 이렇게 먼저 믿게 됨은 집 나간 남편의 수고와 큰 오빠의 공이 크다고 했어요. 그래서 복음을 전해야 하고 기쁨으로 가야 하는데 고 2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건이 있었고 다행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면하기는 했지만 이것 때문에 너무나 큰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오빠가 너무나 무섭고 누구한테도 말도 하지 못하고 작년에 아버지가 작고하시고 처음으로 교도소를 찾아 갔는데 주위사람으로부터 성경을 가지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작은 오빠 내외와 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늘 불안하고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고백하면서 이 오빠를 주께서 만져주시고 치유하심을 간절히 원하며 오빠에게 갈 수 있기를 원하시며 오픈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들 교회만 있는 일이겠습니까? 전 세계가 성적으로 방종했는데 날마다 신문에 나타나는 그 많은 수많은 일들을 왜 교회에서는 아무도 오픈을 안 하는 겁니까? 이것이 어떤 한 목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아버지 사랑을 받지 못해서 시아버지에게 너무 잘해 주었는데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잘 해 드렸는데 어느 날 시아버지가 자기를 여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이야기 하였을 때 너무 쉬쉬하고 문제 해결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시적 허물을 오픈한 분도 계십니다. 어디에서도 말하지 못하는 오픈을 하는 우리들 교회를 사랑합니다. 성령님의 힘이 아니면 이렇게 모든 일을 가족과 같이 편하게 할 수 있겠는가?
오픈하는 사람보다 이렇게 오픈하는 것을 비웃는 사람들이 훨씬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정말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내 자신이 100% 죄인이고 어떻게 될 줄 모르는데 그렇게 무관심하고 비판으로만 일색을 할 수 있겠는가?
죄인의 친구인 주님을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을 껴안고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고등학생이 가출을 해서 몇 일이 지난 후 부천에 있는 피시방에 들어 갔는데 부모님이 저에 대한 이야기를 홈페이지와 기도 제목에 올리셨고 그 글을 읽은 목사님과 집사님들이 중보 기도를 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무사히 들어 온 것은 어머님의 말씀 적용에 오픈과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기도 덕분 인 것 같습니다. 피시방 주인이 집에 전화를 한 것은 분명 기도에 대한 응답인 것 같습니다. 방황하던 저를 붙잡아준 주님과 기도를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전부터 전 학교에 가는 것보다 교회에 오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이 학생처럼 학교에 가지 싫어해도 교회에 오기를 좋아하면 소망이 1,000%로 있는 것입니다. 가끔씩 방황을 하기는 하지만 교회의 뜰안에 있음으로 잘 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자신을 보호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고 1인데 아침에 적용을 시켰더니 한 아이는 술 담배를 끊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다 좋아서 기도 제목이 없는데 그래도 큐티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 제목을 내어 놓았습니다.그래도 우리들 교회에 와서 큐티를 하면서 공부가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멸시를 하고 싶습니까? 저는 이렇게 반응을 해서 우리가 무슨 이야기든지 이렇게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까 그 일류 아이는 부모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병원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 세대는 어떻게 이렇게 반응을 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말을 할 수 있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고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말을 할 수 있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3) 회개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심
20절 :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특히 반응을 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권능을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않습니다. 이것을 예비하여야 합니다. 회개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병도 낳고 집도 얻게 돈도 벌고 성경도 보게 해 주었는데 회개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회개가 없는 것은 책망의 대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이 방향 전환이 아주 무뎌졌습니다. 얼마나 영적 교만이 무서운지를 21절을 보면
21절 :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항상 두로와 시돈고 같이 아름다운 것들은 화를 입기 쉽습니다. 하늘에 까지 이르는 권세를 가졌기 때문에 심판 날에 개인의 종말에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암이 결려도 아이가 집을 나가고 견디지를 못합니다. 두로와 시돈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떤 분은 어렸을 때 브륵 실즈가 되어 가지고 모든 남자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시달림을 받았다고 합니다...예쁘고 잘났으면 어렸을 때부터 말씀으로 키워야 합니다. 교만해서 너 심판 밖에 받은 일이 없겠구나 하고 말을 날 마다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우상이 되어서 쳐다 보고만 있습니다. 그래서 다 망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만하는가 하면 23절을 보면
23절 :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다 교만한 곳인데 왜 교만한 곳인가 하면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제 2의 고향입니다. 나사렛이 고향이었지만 거의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셨습니다.그래서 본 동네로 불리움니다. 그러나 가버나움에 대한 예수님의 질책은 그들이 하늘에 까지 높아 졌다고 하십니다. 교만해 졌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면 교만의 길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사람들이 바로 11장 첫 번째의 세례 요한이고 2 번째는 이 세대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3번째는 예수님이 가장 화 있을 진저를 경고한 고라신과 벳세다 하늘 끝까지 교만한 가버나움 이었습니다.
이 세상이 무서운 것은 복음을 받아 들이고 교만해지는 영적 교만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이 세대에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나라라면 한국을 들 수 있는데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만큼 24시간 라디오 및 TV로 인터넷으로 자국어뿐만 아니라 외국어로 선교 방송이 흘러나가는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성경책이 우리나라만큼 많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나라도 없습니다. 전 세계의 성경제작의 15% 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다고 합니다. 미국이 일년에 400만부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600만부 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부패 지수가 1,2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성폭력 근친상간등이 언론을 뒤 흔들고 있습니다. 바로 뒤 흔드는 문제를 교회에서 내 놓아야 하는데 내어 놓지를 못하고, 정화조가 없는 집이 없는데 잔디로 덮어서 없는 것처럼 하고, 점점 더 가버나옴의 교만, 예수님께서 말할 수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면서도 이제는 주일 예배 잠깐 나오고 여기에 대한 감흥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받을 심판이 큰 것을 말하는데 이제 예수께서 오신 후에 복음을 들은 성도는 이제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두로와 시돈은 음란과 교만과 우상숭배의 분명한 죄악이 있습니다. 그러나 벳세다 고라신 가버나움은 그 성읍 전체가 심판의 대상으로 선정될 만큼 특별한 잘못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 심판을 선포한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가하지 않지만 복음을 듣고도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앞장 서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차지고 덮지도 않던 나오디아게 교회가 가장 심각하고, 살았으나 죽은 사대와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진 교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세대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대는 예수님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오셨는데 우리는 이 기가 막힌 선물을 받고도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받은 벌이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회개하라는 이야기들 듣고 니느웨가 돌아 왔지만, 이 세대에 주님께서 화 있을 진저라고한 이유는 예수님 때문에 높아진 권세를 예수님을 위해서 쓰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쓰고, 하늘에 까지 높아졌기 때문에, 진짜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과 벳세바에서 수많은 이적을 베풀고 가르치셨지만 이들이 회개치 않을 뿐만 아니라 배척까지 하고 모든 기득권이 하나님 앞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오래된 전통교회들이 과거의 하나님의 은혜의 추억의 박물관 속에서 직분자들의 그룹이 하나의 기득권층이 되어 가고 있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세워 질려면 수많은 이적과 은혜가 베풀어 졌을 것인데 이제는 이 열매만 따먹겠다고 하고 핍박을 하지 않고 교회는 다니나 은혜가 되지 않고 죄가 깨달아 지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