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공지능 기술이 계속 개발된다면 인간 고유의 영역은 어떤 것들이 남게 될까요?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무엇인가? 기능적인 측면에서 인공지능이 이미 인간을 많이 앞질렀습니다. 누구도 인공지능보다 빨리 계산할 수 없습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의미를 만들고 상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올림픽 때 달리기를 합니다. 자동차가 훨씬 빠른데 뭐하러 달리기를 합니까? 왜냐하면 인간의 몸으로 뛰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다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해서 거기서 가장 빨린 뛴 사람에게 부와 명예를 주자 결정한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잘 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더 잘 하는 일도 이것은 인간이 했기 때문에 더 가치있다고 얘기하면 끝입니다. 마르셀 뒤샹이 한 것처럼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화장실 변기를 갖다 놓고 이거 미술 작품이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했기 때문에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얘기하는 순간 의미가 있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잘 생각하면 여러분은 직업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보다 인공지능이 잘 해도 그 직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단지 그 일이 우리가 가치가 있다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하는 많은 일들에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의도적으로 인간을 보호해야 합니다. 인간이 중요하다고 우리가 너무 쉽게 쉽게 얘기하지만 인간의 기능적인 면보다는 인간 그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간은 인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인간이 하는 더러운 일들을 기계가 하는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가야 하는데, 자꾸 너는 왜 인공지능보다 일을 못해 밀어내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인공지능으로 얻어진 이득들을 잘 나누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그 이익을 나누지 않기 위해서 자꾸 그런 일을 할텐데 우리가 공포를 느끼고 매몰되면 말리는 겁니다. 이런 일을 누가 결정할까요? 저는 구속사적 큐티로 무장된 호모 큐티엔스들인 우리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란 우리 자녀 세대들이 해야 합니다.
요즘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학교를 다니지 않고 학원에 다니며 대학 입학을 위한 전문 지식들을 집중해서 습득하는 것이 어찌보면 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올림픽 달리기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학교를 잘 졸업하는 일에 학생의 때를 잘 살아내는 것이 더욱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우리가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얘기인 거 같지만 같은 얘기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2. 인공지능이 순수 창작 영역도 잠식할까요?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인공지능 덕에 우리가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되어 참 좋긴 한데상상이 무엇일까요? 상상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상상, 사랑? 그런 영화도 있는데 인공지능이 어느 날 자신의 도를 깨달았다는 주장을 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인간이 판단을 못합니다. 인공지능시대에 순수한 창작이나 이런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 뇌도 단순하게 작동하는 신경세포들의 조합입니다. 인공신경망도 이와 비슷합니다. 인공신경망이만들어낸 결과를 창작, 순수 창작, 상상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이제는 이런 것들이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물음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미 인공지능이 창작했다는 작품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미 소설, 그림도 많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에게 화풍을 공부 시켜 화풍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많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상상이라고 부를지 안 부를지는 아직 기준이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합니다. 상상이라고 부르고 가치를 안 줄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한 것은 가치가 있고 인공지능이 한 것은 가치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의미 부여에 달려 있는 문제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지금까지 인간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철학자들이 근원적인 차원에서 질문을 했다면 이제는 실제적인 질문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단계에 온 거 같습니다.누가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해야 할까요? 아니 누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까요? 구속사적 큐티를 하는 우리들이 공감능력에 바탕을 둔 창조적 상상력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3. 행복이란 무엇인가?
자연과학은 단순히 행복을 호르몬 수치로 말합니다. 행복도 조작될 수 있습니다. 마약을먹으면 행복해 집니다. 불법이고 마약이 굉장히 안 좋은데 만약 사람의 몸을 전혀 망가뜨리지 않고 중독도 되지 않는 마약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런 질문을 과학이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기분 나쁠 때 우울할 때 우울증이 사라지게 하는 약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약이 있습니다. 그게 행복을 추구하는 가장 싼 방법이 아닐까요? 여러분 모두가 거대한 아파트를 소유하고 페라리를 소유해서 행복해 지는 거랑 약물을 주입해서 같은 행복감을 준다면 우리가 자원을 아끼면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약물을 쓰는 것이 아닐까요? 약물을 쓰자는 얘기가 아니라 행복에 대한 생각을 과학기술이 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다 결합해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고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문학과 과학이 같이 이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결국 과학기술만 가지고 답할 수는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 것을. 이것을 알 때 진정한 행복이 우리에게 저절로 온다는 것을. 그러나, 아직 우리가 메타인지하지 못해서 정말 그렇게 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는 거룩을 길로 놓고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기가 온 거 같습니다. 특히 혼돈의 가치관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