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순B 조장님

1. 지원동기
: 세 자녀가 있는데 다 결혼해서 독립했어요. 제가 목자이고 교사여서 아이들과 늘 가까이해야 하는 관계로 손주들에게는 좋은 할머니, 아이들에게는 좋은 선생님, 목원들에겐 좋은 목자가 되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2. 나의 삶
: 저는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결혼했는데, 경제적인 어려움과 문화적 충격으로 마음이 힘들고 황폐해져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인격적으로 성령체험을 했던 때가 인생의 황금기 같애요.
그리고서 세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다 보니, 저의 저질체력이 드러나서 늘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됐어요.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아가던 중에 남편의 외도가 드러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침체기를 보내다가 성지순례를 통해서 다시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되어지고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기쁨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어요.
그러다 4,50대가 되면서 다시 방황이 왔던 게, 그동안은 하나님 앞에서 달려갔다면 이때 이제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 거에요.
그러면서 나만 사회에서 도태된 거 같은 마음과 아이들이 정말 믿음으로 잘 자라주기만을 바라고 그때만 해도 제가 기복의 가치관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세상적으로 막 두드러지지 않은 게 굉장히 저에게 실망감도 주고 하면서 영육 간에 방황이 시작됐어요.
그러던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들교회를 허락해주셔서 만나게 됐죠. 그렇게 큐티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너 진짜 잘 믿어볼래? 하고 시험하시듯이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했던 딸 아이가 혼전임신으로 결혼하는 사건이 왔고, 그후에 두 아들이 결혼했어요.
지금은 이제 큐티하며 가면서 계속 내 죄보는 훈련을 하다 보니까 계속 남을 향해 정죄했던 손이 나를 향하게 되면서 성숙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 강성숙 집사님

1. 지원 동기
: 제가 아이들을 좀 통제하고 주관할려는 무데뽀적인 게 많은 거 같애요. 그걸 고치고 수정하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도움을 좀 받고 싶었고, 또 제 주위에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나 자녀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이 되게 많은데 어떻게 해야 되나? 기도 외에는 해줄 것이 없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부모학교를 하면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2. 나의 삶
: 저는 올해 56세고요. 대학생 큰아들과 고2 막내 딸을 둔 엄마에요. 어렸을 때는 엄마를 되게 무시하면서 자랐는데, 아버지한테 제 어머니가 두 번째 부인이었어요.
그래서 우울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23세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을 계기로 인간의 영혼이 어디로 갈까? 천국과 지옥이 정말 있을까? 해서 23세에 처음 교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됐구요.
그리고 27세쯤 예수님을 정말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체험을 많이 하면서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 섬기는 것이. 그래서 이렇게 인생을 쭉 살았으면 좋겠다, 그때부터 예수님 믿으면서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제 상황이 하나님 믿으면서 희락과 기쁨이 생겨 밝아지는 삶을 살았구요.
33세에 결혼해서 그냥 무난하게 아이 낳고 우편취급소도 운영하면서 살게 됐거든요. 긍까 일을 같이 하면서 그냥 무난하게 삶을 살아오다가, 남편이 5년 전에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아서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됐구요.
남편이 우리들교회 말씀을 들으면서 저도 자연히 우리들교회 말씀을 듣게 되서 줌으로 목장과 부부목장 참석하면서 신앙생활 해오고 있습니다.
☆ 박은선 집사님
1. 지원 동기
: 우리들교회 와서 기초양육하고 일대일까지 받았어요. 목장에서 이제 양육교사를 받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일대일양육 받은 지 얼마 안 되었고 양육교사를 아직 할 준비가 안 됐다, 제 나름대로 그냥 저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많거든요. 그래서 양육교사 안 받았기 때문에 뭔가 한 가지 받긴 해야겠다 생각했고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아직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에게 접목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2. 나의 삶
: 저는 59세에요. 그리고 1남 2녀를 뒀어요. 첫애가 30세, 막둥이가 22세에요.
제가 교회를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는 했는데 제대로 다녀본 적은 없고 그냥 마음이 힘들 때마다 잠깐잠깐 다녔어요. 어렸을 때 여름성경학교를 처음으로 다녔고, 믿음은 없었지만 내 마음이 힘들 때 친구 따라서 갔던 적이 많아요. 말씀이나 그런 건 전혀 모르고 작년에 저희 집안에 힘든 일이 있어서 동생 전도로 우리들교회 와서 인제 말씀들으면서 지내고 있어요.
제일 힘들었을 때는 아무래도 19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후 2년에 걸쳐서 외삼촌 큰아버지 할머니 다 돌아가셨을 때에요. 그렇게 2년 사이에 네 분이 돌아가셨어요.
작년엔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막내 딸이 8세 때 시어머니가 돌아가셨고요. 우울증 같은 것도 왔었고, 성향 자체가 좀 느리고 게으른 사람이라 제가 우울증이라는 걸 인지를 못해서, 남들이 우울증 같다고 하는데 제가 인정을 못해서 병원에 한참을 안 갔어요.
2년 정도 됐을 때 제가 삶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아무 생각이 안 됐었으니까. 그래서 병원엘 갔는데, 제가 이렇게 낯선 사람하고 얘기하는 게 익숙지가 않아서 그런 게 좀 많이 힘들거든요. 병원에 가서도 그냥 약만 타먹는 수준이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 얘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지금 여기서 얘기하는 것도 떨리고 말하기가 어색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좀...
박정순B 조장님 : 너무 잘하고 계세요~
☆ 박혜숙G 집사님

1. 지원 동기
: 저는 자녀고난으로 왔어요. ADHD가 있는 큰아들은 29세인데 얼마 전에도 분노폭발을 해서 자녀를 잘 돌보기 위해 지원했어요.
2. 나의 삶
: 저는 결혼할 때까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구요. 고향은 지방이고 대학을 서울로 왔는데, 문화 차이로 대학생활이 힘들었던 거 같애요.
그리고 결혼할 때는 시댁이 너무 형편이 힘들었지만, 남편 하고 사이도 되게 좋고 해서 굉장히 행복했었구요.
아이들 낳고 살면서는 제가 경제적으로 시댁을 많이 돌봐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냥 제가 할 만하다 여기고 제 열심으로 잘 섬겼고 나름 잘 살았었는데, 저희 큰아이가 어릴 때부터 좀 산만한 게 있어서 키우기가 좀 힘들었었어요.
근데 제가 38세에 둘째 아들을 낳고 딸을 하나 더 낳을려고 임신을 했는데, 계류 유산을 하면서 제가 좀 힘든 와중에 있다가, 그때 다시 공부해서 한의대에 들어가서 한의사가 되고 하면서 약간 행복하고 즐거운 시기였는데,
큰아이가 중3 때부터 분노폭발과 우울 증세가 시작이 되면서, 그때부터 아들 고난으로 진짜 아들 고난으로 접어들기 시작했구요.
저희가 지방에 살다가 2010년에 남편 직장이 서울로 옮겨와서 저희도 서울로 이사를 했고, 그때 큰아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때부터 계속 학교생활도 적응 못하고 우울 증상으로 힘들어 하고 저하고도 싸우는 상황이 됐었고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2016년에 자녀고난으로 우리들교회에 인도받아서 오게 됐어요. 그전에 신앙생활을 계속했었어요. 저희 가족 네 명 다 신앙생활하고 있으니까 같이 다. 부부목장에서 아이 문제로 남편하고 많이 다퉜고 제가 고발을 굉장히 많이 했었구요.
그러다가 큰아이는 계속 안 좋았어요, 그 이후로도. 근데 이제 나이가 29세인데, 증상이 갈수록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져서 지금 공익을 하고 있는데, 한 달 전부터는 분노폭발을 계속해서 아 정말 너무 바닥을 치는..말씀을 들으면서 많이 해석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지금도 바닥을 치고 있는 중입니다.
☆ 이순덕B 집사님

1. 지원 동기
: 저는 27년간 아들에게 집착하고 의지하며 살았기에 아들 우상이 있어요. 27세 아들은 군인이 되서 진짜 독립한 장정이지만, 아직은 제가 아들과 분리되는 준비가 안 됐어요.
아들이 군입대를 2016년도에 하면서 저에게 거식증이 온 거에요. 그래서 그 계기로 8,9월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됐어요.
매일 군에 있는 아들한테 전화했었는데, 목장 처방으로 전화 안하기를 하면서 처방대로 분리했지만, 아직 마음이 분리가 안 된 거에요.
이번이 부모학교 두 번째인데, 작년엔 아들 때문에 상처받은 딸을 위해서 했구요. 이번엔 제가 아들이 너무 보고 싶고 아들에 대해서 너무 못 놓으니까, 그래서 아들을 객관적으로 볼려고 지원했어요.
목장에서 말 잘 듣는 아들이 더 아플 거다, 그렇게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는데 아들이 얼마나 아플까 자꾸 얘기를 해서요...우리들교회 구속사를 배우고 싶어요.
2. 나의 삶
: 저는 여덟 살 때 조실부모했어요. 아버지가 박수무당이었고 엄마가 선천적 지적장애에 조현병이셨어요. 그게 제일 나빴던 경험이에요.
그래서 당숙 집에서 네 살 터울인 오빠랑 둘이서 자랐어요. 거기서 8년 동안 자란 후에 17세에 산업체에 갔는데 그게 좀 힘든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행복했던 것은 20세에 전도받아 교회를 처음 가게 된 거에요. 근데 저는 아무래도 아버지가 박수무당이다 보니까 영적인 게 굉장히 힘들어서, 교회에 발만 들여도 이유없이 일주일을 아프고 그랬어요. 그래서 잘 때에도 부적을 붙이고 자고 다닐 때도 몸에 부적을 지니곤 했어요. 교회를 못 다녔어요, 교회 가면 아프니까. 그랬는데 20세에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최고 행복했어요. 그때는 100이었던 거 같애요.
그리고 26세에 기독교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는데 되게 행복했어요. 그래서 26세부터 28세까지 아들이랑 딸을 낳았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그렇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46세 때 아들이 군대를 갔는데 근데 제가 아들을 많이 의지해서 그때 거식증이 온 거에요. 그래서 아주 힘들었어요, ㅎㅎㅎ.
그리고 그 9월에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게 됐어요. 권사님 부부를 통해서 우리들교회로 와서 큐티를 배우면서 다시 100으로 올라갔어요.
제가 지금 51세인데, 좋은 공동체를 만나서 인생의 방황을 마치고 매일 큐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홍경애A 부조장님

1. 지원동기
: 하루 아침에 엄마를 잃고 나니 부모의 마음이 알고 싶어졌고, 가끔씩 내가 정서적으로 너무 어려져서 내 (마음)의 나이가 몇 살인지 알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2. 나의 삶
: 저는 딸을 원치 않는 가정에 막내 딸로 태어났어요. 5,6살 때부터 심한 성추행을 겪으며 자랐고 초등학교 마칠 무렵 나아졌는데, 고3 때 3일간 성폭행을 겪고 깊은 우울이 시작됐어요.
20대초에 일본에 유학해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우울증이었던 작은 언니가 일본 큰언니네 놀러와서 자살했어요. 그 일로 일본이 너무 싫어져 귀국하여 방황할 때, 먼저 다니던 교회에서 한 언니를 만나 같이 살면서 나아졌어요.
그러나 결국 10년만에 그 언니와 결별하면서 다시 깊은 우울로 갔다가, 2017년에 우리들교회 와서 숨이 쉬어졌는데, THINK 양육 받다가 (우울에서 불안 공황) 조현병이 와서 너무 힘들었어요.
2020년 늦가을부터 말씀이 들려 마음이 많이 회복됐는데, 두 달 전에 엄마가 하루 아침에 돌아가셔서 마음이 무너져 있는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