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일 17기 부모학교 11조 나눔
삶선 그래프와 지원동기
▷윤희원:힘들었던 일
저희 집은 재혼 가정으로 아빠자녀 5명, 엄마자녀 1명 두 분의 자녀 중 제가 막내로 2남 5녀로 자랐다. 농촌가정으로 첫쨰 둘째 오빠들이 저지른 빚을 농사 수입으로 갚아주시는 부모를 보고 자라고 새엄마의 자리에서 힘들게 2~3시간 자면서 일하시는 완벽주의 엄마 밑에서 ADD로 자라 우울증이 있어 넥타이로 죽으면 어떨까 생각 한거 같다.
저희 가정의 가장 큰 고난은 주의력 결핍이 아닌가 싶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맘대로 되지 않고 열심히 해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함이 너무 힘든 시간 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와 편입 해서 들어간 대학생활이 힘들었다. 늘 학교 갔다 교회 가서 기도하고 집으로 가는 모습으로 살았는데 홀로 신앙이라 말씀을 읽어도 삶이 해석되지 않아 늘 기독서적을 읽었다. 그러나 교회에서 만난 교회오빠가 퇴폐업소 출입과 출장비 등을 숨겨 주식하고 보증서고 홀로 육아로 남편과의 갈등 공부만 잘하길 원하는 저에게 ADHD자녀 3명을 주셔서 양육하고 결혼생활 하는 과정이 힘들다.
기뻤던 일: 농촌에서 살아 산과 들로 다니며 수영하고 썰매 타고 했던 시간이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며 지방대학생활과 대학원 때 레슨하고 지휘하여 인정 받았던 시간과 인생이 해석되어 지지 않아 늘 주님을 갈망했는데 우 교를 만나 하루하루를 살 수 있어 감사하다.
지원동기: 저희 집은 ADHD집안으로 미디어, 음식중독이 있어 건강한 삶을 살고 싶고 나의 양육을 객관적으로 보길 원하여 지원하였다.
▷유미향: 가정의 가난과 ADHD의 아버지 고난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냄, 그런 아버지를 벗어나고 싶어 잘난 남편을 만나 신 결혼 함. 5년 동안 자녀가 생기지 않다가 시험관 아기 태어남, 아버지의 피를 이어 닮아 중2 아들이 ADHD이며 이사 오고 환경이 바뀌면서 여라 가지 모습들이 드러나게 됨. 아들은 5학년때 대안학교로 옮기면서 조금 편안한 학교생활을 해왔었음, 2018년 우 교 오면서 QT 시작하고 지금은 아들과 상담치료 받으며 중학교 생활을 하고 있음. 22년1월 남편이 우,교에 등록 함.
지원동기: 중2 ADHD첫째아들과 초3 둘째 아들 각자에게 맞는 양육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그리고 나의 양육방식을 체크하기 위해서 지원하게 됨
▷ 이영아: 20대 후반 결혼까지 평범한 삶이었고(가끔 부모님의 싸움다툼이 있긴 했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의 싸움은 없엇던것 같다) 크게 불행하거나 행복하다라는 생각 없이 지냈고대학졸업후 원하는 곳에 취업하여 인정받고 결혼하고 싶은 남자와 결혼해서 지내다가둘째가 신생아 뇌경색으로 출산해서응급실에서 한달 정도 입원하고 퇴원 후 병원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는 아무 후유증 없이 잘 자랐다. 그 후셋째가 태어나고남편사업도 잘되어서 편히 지냈고 3년 전 남편이 사업장을 하나 더 늘리면서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부부목장도 나오게 되었고그 과정에서 다니지 않는 상황도 맞이하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과정 중에서 진정한 남편의 모습을 보게 하셨고 지금은 남편 우상인 저에게 조금씩 남편을 내려놓게 하시는 일들을 주셨다. 올해 초 큰딸아이의 ADHD검사결과로 그 동안 딸아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일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약이 잘 맞아 지금은 학업과 실기에 집중력이 더해져 아이에게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은 둘째의 사춘기로 잘 지낼 때는 너무 좋지만 숙제해라, 핸드폰 보지 마라, 이런 얘기가 나오면서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관계 속에 가족들이 힘들어 한다.
지원동기: 14살사춘기 둘째 아들과 소통이 되지 않아 다툼이 많아져 서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고 편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최미선: 나는 어릴 적 아빠가 지어주신 이름처럼 착하고 예쁘고 공부 잘하는 맏딸이었다. 중1까지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바르게 할 일을 먼저 알아서 야무지게 했다, 그런데 중2 무렵 사춘기에 접어들며 삶이 무기력했고 우울하고 지루했다, 성적은 떨어지고 공부할 마음은 없는데 주변사람들은 여전히 공부 잘하는 착한 딸이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선 수학시험을 다 찍어 0점을 받기도 해서 원치 않았던 전문대에 갔다, 중2~고3까지는 백지처럼 기억이 없다. 그래도 주일에 교회엔 나갔는데 대학교에 들어가니 세상을 알게 되고 통제적이었던 부모님의 눈을 속여가며 밖으로 돌았다. 그러다가 24살 기독교잡지사로 직장을 옮기고 교회오빠였던 남편과 교제를 시작하며 27실 결혼을 했다. 신앙도 회복되고 결혼도 하고 인생의 봄날 같았지만 시어머니, 시할머니가 계신 곳에 합가하여 사는 것이 힘들었고 큰아이 임신으로 인한 퇴사로 달라진 환경에 불안과 산후우울증이 왔다. 2살 3살 터울로 삼형제를 낳고 기르며 주말부부였지만 남편이 지인의 벤처회사로 옮겨 재정에는 안정을 가져다 주었는데 노래방도우미 사건 2,3차까지 가며 답례를 하고 접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사건이 들어나고 대표와의 갈등으로 권고사직까지 가며 우 교에 오게 되었다. 다시 직장을 구하며 남편의 반 토막 난 급여로 아들 셋을 데리고 시댁으로 들어갔고 아이들 학습을 봐주는 재택근무를 시작했는데 일 중독과 인정중독이 있어 밤낮을 열심으로 일하니 성과는 있었지만 아이들이 방치되었고 제 몸에 무리가 왔다. 그러다 40에 원치 않는 넷쨰를 임신하였는데 친정도 남편도 주위에 친구들도 축복받지 못하는 갈등 속에 낳은 딸이었지만 야무지고 예쁜 아이로 자라고 있음에 감사하다. 이젠 한숨 돌리나 했는데 남편은 지난달또 이직을 했고 부족한 재정에 알바 라도 찾아보자 갈등하다가 지금은 엄마의 자리를 잘 지킬 때 같아서 부모학교를 신청했고 이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 양육에 지혜와 스킬을 배우고 말씀을 채우면서 편안한 엄마가 되고 싶다.
지원동기: 4명의 연령대가 다양한 아이들(중3, 중1, 초4, 5세)를 키우며 육체적 정서적 한계가 오고 무엇으로든 채워지지 않으면 더 이상 안될 거 같은 갈급함에 신청, 아들 셋 키웠는데 하며 부모교육에 뒷전이었는데 유아기에서 커가는 5살 딸을 키우는데 지혜와 스킬이 필요할거 같아서, 최근 남편의 이직으로 재정이 어려운데 작년에 6년하던 재택근무를 그만두었는데 다시 일하는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으나 아이들 양육과 정서적 돌봄을 위해 집에 있는데 무기력 하고 답답함이 있다.
▷ 정혜윤: 3대째 모태신앙 가정에서 평범하고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저의 희망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부모를 떨어져 외롭고 힘들었지만 교회에 붙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30살에 결혼을 했고 평범하게 생활하다가 38살즘 남편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다 하며(저는 반대하였고) 오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 후 용접 일을 시작하면서 남편은 거제도 쪽으로 내려가고 저는 혼자 직장을 다니면서 두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의 자리보다는 제 커리어에 욕심이 많았고 엄마의 역할을 잘 못했던 엄마였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서 죽 제가 키우지 않고 상주아주머니가 여러 번 바뀌면서 키웠기 때문에 아이가 불안함과 안정감이 없지 않았나 싶다. 2018년 하반기 우. 교 오게 되면서 양육 받고 제 고난이 해석되었다. 21년도 아들이 중2때 부터 새 학기에 학교를 가기 싫어하면서 다시 아들고난이 오고 싸우고 하는 시간들을 보냈고 작년 말부터 아들이 상담, 우울증 무기력, ADHD약 복용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원동기: 중3아들의 사춘기 방황을 말씀으로 잘 해석하고 잘못된 제 양육방법을 점검하고 바꾸고 싶다. 또한 첫째와 둘째 딸 (초4)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데 관계회복 목적도 있다.
▷ 박선희: 신 결혼을 하고 싶었으나 서른이 넘었다는 조급함에 교회에 다니겠다고 하는 남편과 불신결혼을 하여 바로 아들을 낳고 연이어 딸을 낳았다. 그러나 딸아이 3살때 어린이 집에서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라는 말을 듣고 검사결과 뇌성마비라는 장애판정을 받아 해와 달이 무너지는 사건을 경험했다. 그 이후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까지는 재활치료를 하였고 힘든 맘에 작은 개척교회에 등록하여 피아노반주를 하였는데 아이들이 어린데 교회에 자주 가는 저를 남편이 못마땅하게 여겼고 급기야는 별거에 이혼까지 하려고 했다. 그러나 친구의 소개로 우 교에 왔고 내 죄를 보고 점차 가정이 회복 되었으나 딸이 사춘기가 오면서 자신의 장애로 인해 아이들의 시선이 싫고 부담스러워서 학교를 자주 빠지고 있다, 이번 부모학교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 학생의 때를 잘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왔다.
지원동기: 장애로 힘들어하는 딸아이가 자꾸 아프다고 학교를 빠져서 어떻게 이 상황을 해쳐나가야 할지 고민이다.
▷ 유미(조장): 슬프고 힘들었던 경험:
유년기 때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에게 나는 데려다가 키우는 아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20살까지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살아온 시간과 초등학교 저학년떄 어머니가 던진 막대기에 이마가 찢어져서 보건소에 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 돌봄을 받지 못해 빨리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20대 중반에는 어머니와 친구분들의 권유로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가 밤새도록 끌녀다니고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이해되지 않는 시간이었고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못하게 되면서 자살 시도를 했었다. 무기력하고 무능한 시간들이었다. 이때 방탕하게 살고자 했는데 쉽지 않았고 30살에 아들을 혼전 임신하면서 미혼모가 되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방황이 끝났다. 아들9살에 9살적은 지금의 초혼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내 새끼 니 새끼의 갈등과 남편의 우울증 공항장애를 통해 우 교에 오게 되었다. 해석되지 않는 인생의 고난이었다. 말씀을 들어도 내 새끼 니 새끼의 벽을 넘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 최근에 아들과 남편의 불화로 아들은 쫓겨나고 남편의 우울증이 재발한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경험:
어릴 때 친자식이 아니라는 말이 충격적이었지만 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있었고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즐거웠고 그 당시 캔디라는 만화주인공을 보면서 롤모델을 삼았다. 주변이 친구와 선생님이 늘 돕는 손길이 있었다.
불우했지만 따듯했다. 문제가 늘 있지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나도 힘들지만 늘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면서 나름 행복했다. 미혼모가 되었지만 아들의 엄마로 사는 시간이 참 행복하고 부족하지만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면서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을 맛보며 가는 것 같다.
지원동기: 큰 아들과 불화를 겪으면서 이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고 싶어서 부모학교 지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