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자녀와 안정된 애착관계 형성을 위해 고쳐야 할 것이 둔감성 인가요? 부정적 소통방식 인가요? 구체적으로 적용해볼 내용은 무엇인가요?
이창석 :애착에 있어서도아내가 주 양육자라는 생각에 짧은 육아 지식으로 아내에게 이래라 저래라 했던것 같습니다. 저또한 불안정애착으로 자랐는지 스무살때 교육학 책을 보면서 저자신의 결핍에 대한부분에서 많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아이에게는 그런 불안정 애착의 요소가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아내에게 그런부분에 대해 많이 요구했었던것 같습니다. 아이가 지금 초4학년인데 돌이켜보니 제가 그동안 그렇게 편한 아빠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제가 아이를 오늘 강의에서 보면 주로 엄격하게 통제하는 유형의 아빠였던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아이가 표정이 편안하지 않을때가 보입니다. 오늘 강의가 주로 엄마와의 애착에 관한것 같아서 아빠와는 어떻게 애착을 가져야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들었습니다.
한정윤 :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런것 같아요. 육아나 애착에 대한 부분도 아내에게 주로 맡기고 남자는 밖에서 열심히 돈 벌어오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와 자녀와의 관계는 애착이 잘 형성되고 괜찮은가요?
이창석 : 네 아이가 엄마가 없으면 어디있는지 자꾸 찾는거 보면 주로 엄마와 애착이 잘 형성된 것 같은데 항상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잘 보이듯이 오늘 강의에 나온 것처럼 아내가 친밀감과 거리두기 사이에서 아이에게 일관성 있게 대하지 못 하는 부분을 가끔 보긴 합니다.
한정윤 : 네 저도 최근에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아내를 닮았네 하면서 아내를 탓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내를 주신 것도 하나님 이시고 오늘 말씀처럼 자녀를 내 소유가 아닌 객관적으로 잘 바라보고 대해야하는데 머릿속으로만 알지 실제로는 잘 행함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서 이렇게 강의도 듣고 부모학교에 잘 참여하는게 적용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이순철 : 저는 할아버지 입장에서 손녀를 보고 있습니다. 제가 딸하고 아들을 키울때는 너무 무관심하고 저의 아버지 세대 방식 그대로 남자는 출세지향적으로 밖에서 일을 하고 주로 아내에게 자녀양육에 대한 부분은 맡기고 살아왔던것 같습니다.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참 그래도 손녀에게는 잘하려고 저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언어나 공감에 대한 부분에선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손녀가 28개월 인데 한참 자기인격형성이 중요한 시기인데 그래도 마침 제가 우리들교회 부모학교란 곳에 참석해서 좋은교육을 받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집사님들 모두 자녀들을 계속 키워나갈텐데 지금 이런 교육이 많이 도움이 되실것 같습니다. 저희는 딸내외와 같은 동에 살다 보니까 딸부부가 출근을 하면 그때 제가 손녀를 봐줍니다. 그런데 딸이 출근할때 손녀가 누워서 인사를 하는데 제가 손녀에게 인사는 제대로 나가서 해야한다고 가르치는적용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럴려면 제가 또 손녀와 애착관계를 잘 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박지훈 : 제가 가정사역, 상담사역 쪽을 했다 보니까 이런 강의를 많이 들었었습니다. 들을때마다 다시 한번 깨닫는건 제 어린시절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하고도 애착이 없었구나... 그리고 엄마도 엄마의 부모님과 애착이 없었구나 라는것을 느낍니다. 그런것들을 보면서 저의 어린시절의 아픈부분들을 다시 봅니다. 그리고 제가 아이들 양육하면서 놓친부분, 아쉬웠던부분도 보게 되는데 그럼에도 저와 교제했던 상담하시는 분들이나 상담사역자 분들은 저한테 한결같이 정말 이렇게 크시고 자녀를 양육하신게 정말 대단하신것 같다고 얘기를 하셨습니다. 나를 누르고 정답대로 살아오다 보니까 뒤늦게 터진것 같습니다. 아내와 자녀들도 저에게 좋은남편, 좋은아빠 라고 얘기해주더라구요. 작년 이후로 제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이런 시간들을 갖고 있는데 내일 혼자만의 한달간 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 한명 한명씩 따로 시간을 보내주면서 요즘 아빠 마음이 이러이러해서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니 자녀들도 이해해주면서 걱정하지말고 잘 갔다오라고 하니 제가 또 위로를 받았습니다.
한정윤 : 네 감사합니다. 지랄총량의법칙이란게 정말 맞는게 어렸을때 힘든아이라면 커서는 좀 덜할거라는 것에 위로를 받고 순하고 착한아이라고 안심하면 안 될것 같습니다. 박집사님 말씀하신 것처럼 그동안 정답대로 사시고 본인을 누르고 사셔서 본인을 잘 못챙기신것 같은데 지금 그런 시간들을 가지는게 참 필요한것 같습니다.
한정윤 : 이창석집사님 지난 주 시간관계상 못 했던 살아오면서 기뻤던 일,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 믿음이 나를 살아나게 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자기 소개 하면서 해주시고 지원동기도 한번 말씀해주세요
이창석 : 제가 어렸을 때아버지는 교회 안 다니셨고 어머니는 저 어렸을때부터 다니셔서 지금은 집사님 이십니다. 그런 집에 태어나서 제가 장남이고 두명의 남동생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많이 사랑해주셨구요. 경북 성주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자랐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때 부산으로 이사갔는데 시골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도시 학교로 가니 반 학생들도 많고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도시생활을 적응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활기차지 못 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를 가면서도 내성적인 아이들이 그랬던것처럼 저의 10대 시절도 조금은 우울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시절에 교회는 계속 다녔었습니다. 대학에 재수 하고 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고 우울한 시간들이 20대 초반까지 이어졌었습니다. 대학을 가서 졸업하고 취업하는 과정에서도 그때가 IMF를 지나고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좀 늦게 37세에 했는데 그 사이에 대학원도 다니고 일도 하고 했었습니다. 결혼초기 2년 정도는 허니문 기간이었지만 3년차때부터는 싸울일이 많이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나름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결혼 3년차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는데 버지니아에서 4년 정도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아내가 임신, 출산을 하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인생에서 즐거웠던 때는 대학 다닐때 CCC로 한달간 중국에 언어연수 겸 단기선교를 갔었는데 그때가 제 인생에 가장 즐거웠던 때로 기억에 남습니다. 억압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자유함이 없었는데 거기에 가서 자유를 얻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박지훈집사님의 자유에 대해서 저도 일부분 공감을 합니다. 30대 때 직장 다니면서도 단기선교로 해외에 나가면서 참 좋았는데 부모의 억압을 벗어나는 탈출구 역할을 했던것 같습니다. 부모의 억압으로 자란 환경때문에 저도 모르게 자녀에게 억압 통제를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것들이 대물림 될 수 있어서 통찰을 하고 잘 벗어나야 될 것 같습니다.
최우영 : 딸 하고는 제가 성향도 좀 맞고 해서 어느정도는 애착이 형성이 된 것 같은데 첫째 아들(8세) 하고는아직까지 제가 잘 못 맞추는것 같습니다. 제가 따라갈수가 없습니다. 제가 몸이 피곤하지 않거나 할 때는 어느정도 맞춰줄려고 하는데 일 끝나고 몸도 피곤하고 하다 보면 아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화가 좀 많이 나더라구요. 짜증도 좀 나구요. 그러다 보니까 말도 무뚝뚝하게 나가게 되고 짜증도 좀 많이 부리게 됩니다. 아들이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는게 있어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말을 잘 안 듣는 편이라서 그런것 때문에 많이 힘든것 같아요. 지금 놀이치료도 하고 있는데 ADHD는 아직까지는 아니라고 하는데 분노조절, 불안 성향이 보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