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삶선 그래프 그리기
조장 : 안미정 집사
조원 : 김주희, 박은정, 양미나, 이안나, 김유경, 서혜진, 강차순
양미나 집사님
예쁜 막둥이로 태어났으나8세 아버지의 부도로 가정이 흩어지고 잦은 이사로 인한 전학으로 적응하기 바빴고인간관계보단 티비, 게임을 즐겨하였지만 그래도 주일학교만큼은 즐거웠습니다.17세 잦은 전학으로 친구 사귀는 법을 잘 몰라 왕따 당하였고20세 대학진학, 성가대활동과 하고싶은 일 맘껏하고 놀며 즐거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21세 친구가 소개시켜준 다단계에 빠져비참하고 힘들고 돈 잃고 사람 잃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23세 다단계에서 나오게 되었고다시 교회나가기 시작하면서 연애도 시작하였습니다.
26세 대학원에 진학을 하였고 새로운 환경에서 즐거움을 만끽하였습니다.
기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안정적이고 똑똑한 새 남자친구(지금의 남편)를 만나게 되었고27세 같이 유학가자는 말에 덜컥 결혼하고 파리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때부터 고난 시작. 말 안통하고 연고없고 춥고외로웠습니다.
29세 적응할만하니 파리에서 큰아이 출산하면서 산후 우울증에 힘들었습니다,
31세 힘든 육아가운데 시부모님과의 트러블이 생겼고둘째까지 출산하면서 첫째를 향한 학대가 심해졌습니다.
32세 큰아이가 자폐성장애 진단을 받는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속에서 육아는 계속 힘들고 시부모님은 여름에 한달씩 파리에 오셔서 함께 계셨습니다.
35세 한국들어오게 됐고 살려고 우리들교회에 오게되어38세 현재 살아나고 있는 중 입니다.
서혜진 집사님
부산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불교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마와 아빠가금전적인 부분으로 어릴 때 부터 많이 싸우셨고 저에겐 행복한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12살에 부산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갑자기 하였고 4인 가족이 단칸방에 지냈습니다.
그렇게 10대를 보내고 대학을 갈 때 IMF가 터져서 가게도 안되고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습니다.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도 천안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엄마가 보험일을 하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그때 불교를 열심히 믿으셨는데 부처님의 존재가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제가 25살이였고 26살에 가장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이유불명이여서 세상을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아빠가 혼자 사시다가 허리를 크게 다치셨는데 척추수술도 하시고 혈액암 말기로 6개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던 중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라는 얘기들이 들려서 급하게 소개를 받았고 그 중 한명이 저희 신랑이였습니다. 조건은 가장 안좋았지만 편안하고 남편도 부모님이
재혼하시고 부모님 사업이 망하고 힘든 고난이 많았지만 열심히 책임감있게 사는 모습에 끌려 30살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시부모님은 결혼할때 경제적인 도움도 전혀 못주시고 제 명의를 빌려 달라고 할 만큼 파산을 크게 하셔서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재기에 대한 기대가 크셨고 제 명의로 따을 사서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서 일을 크게 벌리셨습니다.
이것저것 하셨지만 잘되지않았고 씀씀이도 크셔서 저를 불안하게 하셨습니다.
매달 적자라 아이를 가질 수 없었는데 직접 일을하며 33살에 첫째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좀 편안해지니 첫째가 돌도 되기전에 저에게 사과와 복숭아를 인터넷으로 팔아달라고
했습니다. 거절을 못하고 첫째를 보며 24시간 주문을 받고 열심히 팔아드렸습니다.
첫째가 4살 반 될때까지 일하였고 첫째가 분리불안이 심해서 어린이집도 안보내고 육아와 일을 집에서 하다 판매가 힘들어서 둘째를 급히 가졌습니다.
37살 시댁과 함께한 일은 끝이 났고 노산으로 낳은 둘째에 육아가 너무 힘들었고 첫째가 비염이 심해 병원을 갔는데 심장소리가 이상하다고 큰병원을 가보라고 하셔서 서울에 가니 유전병 같다고 엄마도 검사를 해보자고 했는데 심장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바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말판증후군이라는 병명이 나왔고 아이들에게 70~80% 유전이 되는 병이고 평생 관리를 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다행이 정밀검사에서 수술직전 상태로 약먹으며 관리하자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몸이 아프니 어디든 기대고 싶어졌고 주변에 기독교 친구들이 생기면서 지인 소개로 우리들교회에 인도되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안좋고 우울감이 있고 남편과 시댁과의 관계가 너무 좋지 않아서 기댈 수 있는친구가 있는 전라도 광주로 작년에 이사를 왔습니다.
남편은 서울에 두고 광주에와서 떠내려 갈뻔 했지만 친구와 일에 소원함이 생겨 목장에 붙어가게 되었고 남편과의 관계나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게 되어 다시 합치려고 집을 아라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강차순 집사님
혼외자(1남) 포함 2남 4녀 중 5째 위치에있는 저는 6살때 엄마의 외도로인한 가출로 일나가신 아버지와 학교에 가는 오빠, 언니들 사이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원인 모를 이유로 보름이나 학교에 가지않은 적도 있을만큼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잊고싶어서였을까 저의 어릴적 기억은 크게 없습니다.
고등학교때 일탈을하며 할짓, 못할짓을 다 하고 까불며 학교 생활을 했고 20살때 직장에 들어가 학창시절에 놓았던 공부를 병행하며 성과를 올리며 인정을 받고 즐겁게 직장 생활릉 하였습니다. 특히 음주가무에 강했던 저는 회식때마다 놀기도 잘한다는 상사들에 칭찬에 그게 사는 전부인것처럼 일과 음주가무와 인간적인 됨됨이를 열심히 인정 받고자 노력하였습니다.
20살때 만난 지금에 남편과 사귀기는 했지만 다른 남자들과 놀며 즐겼고 유부남인 직장 상사와 불륜 직전까지 갔던 미쳐날뛰는 생활을 하던 중 이렇게는 안되겠다며 20살에 만난 남자친구와 25살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 2년후에 첫째 임신을 하였고 임신 8개월 때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사건에 너무 슬펐습니다.
첫째를 낳고 시어머니는 젖이 안나오는 저를 찾아오셔서 그간 드린 선물들을 집어 던지고 욕설을 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엄마 말에 휘둘리며 엄마와 한편을 먹고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괴롭힘이 심해지니 자살 생각도 여러번 하던 차에 먼저 인도된 작은언니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시어머님은 기분대로 화냈다, 아무일없었다를 반복하며 살고 계시고 시어머니편만드는 중간 역할 못하는 기댈 수 없는 남편 사이에서 아이들을 기분대로 키우지않으려 부모학교를 절실한 마음으로 신청하게 됐습니다.
김주희 집사님
어릴적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그냥저냥 그 나이답게 지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 사업하시는 중국에 엄마와 떨어져 유학을 시작했던 13세 그때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힘들었습니다.
인생의 큰 고난은 대학 입학이 시작이였습니다.
고 2때 학년을 속여서 시험을 봤고 합격해서 어쩔 수 없이 다니게 되어 거짓말을 했다는 정죄감에 눌리고 남들에게 들킬까 두려운 마음에 대인관계도 힘들었습니다.
졸업하고 한국에서 취직을 한 2년차 쯤(26살)에 어머니께서 폐암으로 소천하시는 사건은 인생 두번째 고난이였습니다.
선교사로 살아오신 어머니를 왜 일찍 데려가시는지 해석되지 않아 힘들어할때 우리들교회 지체 소개로 청년부 여름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어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는 곳을 만났지만 다 오픈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재기가 안되시고, 오빠는 신학생이였기에 가정 경제를 제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인지라 또 꾸역꾸역 살았습니다.
지방에 근무하던 제가 30세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우리들교회에 매주 참석하고 양육을 받게 되었고 31세에 결혼하고 담해 출산을 했습니다.
오래 사귀었고 우리들교회를 같이 다녔지만 피터지게 싸웠고첫째 아이 낳고 휴직하면서 돌보다가 복직할 쯔음 우울증이 심해져서 맨날 죽고프단 생각하며 일어나기 힘든 몸으로 출근하게 되어 결국 정신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잦은 부부싸움으로 첫째가 틱이 몇달 오기도 했습니다.
38살에 둘째를 출산했는데 코로나로 작년 첫째 초1 아이가 학교에 안가고 집에 같이 있다보니 나날이 전쟁 같았습니다.
40세 들어서야 제 속에 돌봄 받지 못한 어린 내가 있고 혼자 씩씩하게 살았던 내가 있어서 어린 초딩 아들과 이렇게 대립하고 싸웠었구나 이해가 되기 사작했어요,
남편은 온라인 예배다 보니 잘 안드리고 부부목장도 뛰쳐나와 있어 말씀으로 하나가 못되고 있어요.
가정에 예배가 회복되고 부모가 제대로 잘 서 가길 먼저 제가 이렇게 부모학교에서 배운 것을 삶으로 잘 실천하고 가길 기도합니다.
이안나 집사님
아버지의 음주로 잦은 부모님의 싸움을 보며 자랐기에 행복한 기억이 없습니다.
다른 가족은 다 행복해 보였기에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들교회 오고나서보니 아버지가 술을 자주 마시긴 했지만 바람을 피우시거나 큰 돈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시고 정년까지 일하셨던 것을 보며 우리집이 그냥 평범한 가정이였던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대학을 기독교대학으로 진학하게되며 거제도였던 집을 떠나 부산으로 오게되었고 선교단체 활동을 하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때부터 교제했던 남친(지금의 남편)의 부모님께서 의대생인 남친과 제가 만나는 것을 반대하셨고 교사가 되면 허락해주신다고하여 직장을 그만두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공부로 힘든 화중에 음란의 결과로 혼전임신까지 되면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재수끝에 임용고시에 합격하게 되었고 경기도로 거처가 옮겨지면서 우리들교회에 오게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임용합격의 단꿈에 취해 있어서 매일 남친과 음란한 삶을 살고 있을때 도 한번 혼전임신이 되었는데 자궁외 임신이 되며 친정과 시댁에 다 알려지며 거룩한 척, 착한척하고 살아온 제가 수치를 당했던 시간이였습니다.
29살에 결혼을 하였고 다음해 첫째를 출산했습니다.
출산으로 휴직을하며 평범한 생활을 하던 중 남편의 군의관 생활때문에 충주라는 연고도 없는 곳에서 3년을 보내며 독박육아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우울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3년이 지난 뒤 복직을 하고 수지에서 워킹맘으로 2년간 평범한 생활을했고 36살 남편 직장때문에 또 연고가 없는 인천에 오면서 부목자와 예목훈련을 받고 직장고난으로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주셔서 지금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 부부관계의 가장 좋은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 세상욕심으로 아이들을 공부때문에 힘들게하고 그럴때마다 혈기가 올라와서 여전히 안되는 제 모습에 무너질때가 많아 부모학교의 도움을 받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가치관으로 아이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주는 부모가 되길 기도합니다.
김유경 집사님
부모님의 맞벌이로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출근하면 할머니집에 맡겼다가 퇴근하면 엄마, 아빠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알콜중독자에 교회다니는 할머니를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초3때 구원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조부모님 밑에서 대부분에 시간을 보내며 제대로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불안도와 예민함이 높은 성격인데 집안 자체도 편하지않고 싸움이 끊이질 않으니 불안도는 점점 높아져 소아자위도 했고 긴 시간 이어져오다 공부에 집중할 때 쯤 자연스럽게 소아자위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한 살 터울 언니가 있는데 지금까지도 언니 때문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어릴적에는 남의 돈에 손을 대었고 중1때 남양주로 이사하며 전학함과 동시에 나쁜 아이들을 사귀게 됐고 언니의 비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가출, 술, 담배... 언니가 가출하고 돌아올때마다 집안은 전쟁터였습니다. 아빠는 언니를 때리고 화내고 소리지르고 엄마, 아빠는 싸우고... 싸움이 나면 너무 무서워서 방에 들어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랐습니다.
그런언니를 보며 나까지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에 사춘기도 없이 공부하고 교회만 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가정환경 탓으로 참 많이 우울했고 자존감도 많이 낮았습니다.
대학때 적응을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왕따를 당했고 1학기도 다니지 못하고 자퇴를하고 재수해서 간호대학을 갔습니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직장 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그만두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남편을 만나 도피처로 생각하고 32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하고 첫째 아이가 태어났는데 남편은 첫째 아이를 싫어하고 미워했습니다. 훈육이라는 핑계로 아이를 때리고 막말을 하고 저는 그런 남편이 더 싫어지고 정말 죽이고 싶었고 하루빨리 죽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저도 아이에게 혈기로 대하고 때리기도하고 소리지르고 화내고 그래서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각 아이가 눈썹을 다 뽑아버리고 저 처럼 소아자위도하고 몽유병까지 있게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보다 지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문제행동을 지적하며 또 화내고 혼내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우리들교회 집사님을 알게되고 말씀을 들으며 제 죄가 깨달아져 주님께 눈물로 회개하고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 가정이 회복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맡기신 두명의 자년를 제 방법이 아닌 주님의 뜻과 방법으로 양육하고싶은 간절함이 있어 부모학교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안미정 집사님
딸 여섯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빠의 무능력과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재산을 큰 아빠에게 선뜻 주고 그로 인해 엄마의 생활력으로 유션시절을 보냈지만 사랑은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10대때는 2살 터울에 언니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지병으로 관심이 언니에게 집중이 되었고 아프다는 이유로 나의 일들을 사사건건 참견하며 그때부터 가정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은채 존재없이 지내며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언니들이 엄마에게 돈 타가는 모습이 실어 시키지도 않았는데 중3때 국수집에서 알바를 시작하며 학비를 벌어서 다녔고 한번도 집에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20대때는 대기업에 특채로 들어가기까지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엄마가 좋아하셔서 버티다 엄미의 대장암으로인해 사표도 내지않고 회사를 안나갔습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교회를 박차고 나왔고 언니와 사업을 시작하며 마찰이 있었으며 잠시 휴식기를 보낼 때 다시 공부하여 수능을 봤지만 입학금이 없어 제일 가까운 언니에게 처음으로 부탁을 했고 50만원을 준 언니가 마음속으로 원망이 되며 그 돈을 들어 나와 술로 다 마셔버리며 학업을 포기하였습니다.
그 뒤로 다시 돈을 벌다 노래하는 사람을 만나 도피처로 결혼을 하였는데 잘못된 사랑방삭으로 폭력과 사랑한다며 사과를 하는 모습 외에 다른 것은 힘든것이 없었기에 그냥 버티다 죽음의 위협앞에 결국은 1년만에 친정에 터뜨렸지만 무능력한 아빠는 무릎 꿇고 앉아 싹싹 비는 그 사람에게 화도 내지않은 채 결혼하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좌절을 시켰고 그 말이 결국 그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줬고 날씨에 따라 감정 기복이 있는 그 사람은 또 한번 식탁을 엎는 사건으로 이혼을 감행하였습니다.
30대때는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려 준비하다 지인에 소개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초혼인 남편은 일중독과 당구, 게임으로 매일 새벽에 들어왔고 소통도 안되었지만 바로 임신한 큰 애로 인해 날마다 죽지못해 겨우 살았습니다. 큰애가 다니던 선교원으로 아이를 보내면서 말씀으로 키우는 방법을 깨달았고 반복되는 유산으로 가장 밑바닥을 경험하며 형부가 개척하신 교회에서 신학공부를하다 둘째를 임신하였고 큰애가 초1때 엄마는 행복해보이지 않는것같다는 말에 우리들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앞에서는 한,두번 싸운것이 전부였기에 그런말을 들었을때는 해달별이 떨어졌었습니다.
40대인 지금 남편과 저는 부목자로 아이들은 크리스챤 학교에 다니며 잘 지내지만 커가는 아이들에게 초심을 잃고 감정대로 양육하는 것 같아 다시 부모학교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