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
엄마가 저를 임신중일때 아빠가 군대에 가서 영유아기를 아빠의 부재와 엄마의 불안속에서 컸을것으로 짐작해서 마이너스에서 출발했다고 표시했습니다. 아빠가 상경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하셨는데 30대 초반에 간경화가 발병했음에도 아픈내색을 하지 않으셔서 경제적인 여유와 심리적 안정을 누리며 청소년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음주가무에 눈을 떴고 동호회, 여행, 이성교제 등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는데 가장 친한 친구이자 보호자였던 아빠의 소천으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고 이후 3년 동안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최초의 실패를 경험하며 우울한 20대를 보냈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다시 시험전 일했던 학원 강사로 취업을 했는데 시험문제를 틀려오는 아이들이 체휼되어 일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31살 꿈에 그리던 이상형과 드라마 같은 연애를 하다 100일 만에 까이는 사건으로 2년 전쯤 직장동료에게 소개받아 설교들으며 처음으로 울었던 우리들 교회가 생각나 제발로 교회에 등록했고 20년이 넘는 신앙생활가운데 처음으로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지금은 말꺼내기도 민망한 이 입교 동기로 남동생과 시누이가 불신결혼을 하고 이혼과 자살의 위기에 처했을때 나의 경험치와 지식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권면으로 두 가정을 지킬 수 있어서 최소한의 고난으로 최고의 선물을 받았음이 인정된다. 34살 소개로 남편을 만나 35살 결혼한 이후 36살 첫번째 임신이 유산되었고 그해 말 친정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게 되고 남동생이 혼전 임신으로 불신 재혼까지 하게 되니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38살 그런 힘든 시기를 위로해 주듯 첫아이를 출산해서 너무 기뻤는데 그 아이가 100일이 되기도 전에 남편이 내가 그렇게 선망하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오는 사건이 있어 힘들었지만 공동체의 권면으로 남편을 이해하고 소통이 원활해지니 우울감을 빨리 떨쳐버릴 수 있었다. 39살 둘째를 출산하며 저질체력으로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 것이 어려웠고 작년 친정에 소송이 3건, 남동생의 공황장애 발병, 남편이 재취업한 회사 계약이 만료되어 실직상태에 있는 불행하고 힘든 경험은 현재진행중이지만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니 고난중에도 행복감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손희경
어렸을때부터 잔병이 많았고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1년에 3-4번, 이틀정도 녹색물까지 수차례 토하는 왼쪽창자막힘증 증상, 22살때부터 비행기 타면 토하는 증상, 26살에 발등뼈 부스러져 굽있는 신발을 못신게 된 사건이 있었다.
혈루증 여인처럼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내 질병들을 고치려 했지만 고치지 못했고
나같이 특이한 건강고난 가진 사람은 없다며 열등감과 자기연민에 빠져 지옥을 살았다.
모태신앙으로 여러 교회들을 다녔지만 우리교회 처음 왔을때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솔직한 간증에 정말 놀랐고, 나와 똑같은 고난은 못봤지만 모두가 절대치의 고난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로가 되었다.
담임목사님 주례로 결혼했지만
내 죄를 못 깨닫고 남편을 머리로 놓지 못해 신혼초부터 결혼생활이 힘들었고 아이를 빨리 낳고 싶었는데 계류유산하고 3년정도 생기지 않다 낳아서 너무 기뻤는데 생후 50일쯤부터 전신에 진물이 나는 티비에서나 볼 수 있는 극심한 아토피가 시작되어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작년 코로나 덕분에 막내동생이 신천지에 빠져 있던걸 알게 되어 큰충격을 받았고 가출한 상태이다.
6년만에 둘째 임신하여 정말 기뻤는데 조산 위험성이 있다 하여 조심하고 있는 상태이고 올해 남편이 희귀난치병인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고 회사를 휴직하였다. 작년부터 큰 고난들이 계속 연이어 찾아오는데 정말 주님께서 만나주시길 기도하며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이남이
나는 아버지의 혼외자로 태어났다. 생모는 아버지가 이혼을 할 거라는 기대로 나를 낳았지만 아버지는 오빠 두명과 여동생이 있는 가정을 지키셨고 나는 8살에 본가로 가게 되었다. 키워주신 엄마는 애는 죄가 없다며 차별없이 대해주셨고, 다른 남매들과도 잘 지냈다. 속으로는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며 아빠, 생모와 나를 원망하였지만, 겉으로는 문제 없는 학생의 때를 보내게 되었다.
20~30대는 열심의 때를 보내며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돈도 잘 버게 되니 자신감도 생기고 술, 음란의 죄를 짓게 되었다. 33살에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을 알고나니 항상 물음표였던 나의 인생도 느낌표가 되어 자존감도 회복하게 되었다. 35살, 하지말았어야 할 연애를 하게되어 헤어지고 영육이 황폐해졌다. 그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고 만난지 4개월만에 초고속 결혼(36살)을 하게 되었는데, 신혼생활은 좋을때도 있지만 진흙탕 부부싸움을 하며 나의 밑바닥도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우리들 교회로 옮기게 되었고, 계획임신이 계류유산이 되면서 그때 나의 죄를 보게 되었다.
3개월 후 다시 임신하게 되었고(38살), 이때 받은 1:1양육으로 피해자로 산 나의 삶이 가해자였으며, 교만, 욕심, 성공우상의 등의 죄를 낱낱이 보게 되며 그간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말씀들으며 지금은 아내와 엄마의 때를 온전히 보내고 있으며 기도 응답으로 주신 둘째 임신중이다. 41살, 현재 삶의 그래프는 살림과 육아로 힘들지만 제 인생의 제일 평온한 때이며 믿지 않은 양가 식구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김희강
어린 시절은 무난하게 보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빠의 사업이 망해 부모님의 불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입시 실패, 입사 실패로 우울한 20대를 보내던 중 우리들교회를 먼저 다니고 계시던 부모님을 따라 청년부에 등록했고 일대일 양육을 받던 중 신명기 말씀으로 내 삶이 해석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부모님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큐티말씀으로 결혼도 하였지만 결혼 후 남편과 싸우느라 힘들었습니다. 목장에 붙어만 있었더니 아이도 태어나고 어느정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시누가 죽는 사건을 통해 사건없이 편안히 살고싶어했던 제 죄가 보였습니다. 현재는 진행중인 시누 사건의 재판과 시부모님을 신경쓰는게 지치고,점점 커서 말을 안듣는 아이를 혼내고 나면 기분이 안좋아 아무 일 없이 살고싶은 편안한 동쪽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부모학교를 통해 육아에 미리 예방주사 맞으며 아이의 감정을 잘 읽어주는 엄마가 되고싶습니다.
원연신
11살되던 해에 아빠가 외삼촌의 차에 치어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인생이 허무했고 외삼촌에 대한 원망과 피해의식이 마음 속에 가득했지만, 모범적인 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사춘기도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대학시절 뒤늦은 사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아빠를 데려가셨는지 해석이 되지 않아 하나님 원망, 외삼촌 원망으로 우울하고 무기력한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청년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남편을 만나 2011년에 결혼했지만, 갑상선암 투병과 불임은 나만의 고난으로만 여겨져 늘 외로웠습니다.
그때 교회동생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듣게 된 김양재목사님의 주례말씀이 생각났고 2013년 9월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불임문제는 해결이 안되었지만 내 인생이 해석되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고 늘 불안하고 긴장된 삶을 살다 난생 처음 평안이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3번의 인공수정과 2번의 시험관아기시술, 1번의 계류 유산의 과정 끝에 2017년에 아기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기만 생기면 행복시작일거라 생각했는데 매일매일 아기를 통해 내모습을 보게 되고 어떻게 양육해야할지 매순간 갈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늘 아빠없는 불쌍한 내모습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았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보니 33세에 과부가 되신 친정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됩니다.
이번에 친정엄마와 함께 부모학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시간 보내고 싶습니다.
추연주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때까지 부모님의 극심한 다툼으로 항상 불안하고 두렵고 우울했다. 고2때 배우가 되는 탈출구를 선택했고 20살에 한국최초 뮤지컬학과를 지망해 집을 나와 살며 32살까지 뮤지컬과 연극을 하며 살았다.
부모님의 싸움을 안봐서 좋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화려한 직업적 만족감이 컸으나 공연이 끝나면 외로움에 술과 담배 음란에 빠지며 방탕하게 행복을 외치며 살다가 32살에 나를 공주님처럼 대해주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이제 나의 외로움이 끝나는구나 이제 진짜 행복해지겠구니 하며 밥청소빨래를 다 해주는 남편과 3년을 끝내주게 행복했고 임신도 계획대로 한방에 되어서 이제 내 인생은 되었다~ 하며 지냈다. 아이를 출산하고 100일쯤 남편이 6개월째 바람을 핀것을 알게되었고 그렇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최악의 사건이 터지고 우리들교회에 응급실에 실려오듯 오게 되었다.
그후 목장에 붙어가며 3년을 지옥을 살았다. 피해자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며 남편에게 온갖 욕설과 무시 , 개취급을 했더니 결국은 죽고싶다고 말하는 남편. 그렇게 지옥같은 3년을 보내는 와중에 38살 겨울,둘째를 계류유산하는 수술대에서 에스겔, 돌이키고 살지니라의 주일 설교가 해석되며 말씀이 나를 깨웠다.
남편이 아니라 내가 돌이키고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내가 얼마나 완악한 죄인인지가 회개가 되었다. 그날을 계기로 담배중독이 끊어지고 남편을 괴롭히는것도 딱 끊어지는 자유함을 얻었다. 2020년 39살 부터 가정의 질서를 깨달아가며 일을 내려놓고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지키며 가정주부로서 내가 가해자였음을 사과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