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6 부모학교 15조 조별 나눔>
- 일시 : 2021.03.16
- 참석자 :유금녀,김경선,이지은,김선영,조혜련,이지향.
1) 삶 선 그래프 그리기
유금녀
23살 에 결혼 하여 33세에 교통 사고 (동생 차에) 로 사별하였습니다
두자녀 키우면서 다른사람들 시선에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그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두자녀 잘 자라주었다고 생각 했습니다 대학 또한 편하게 가서 졸업했고 큰 자녀가 아버지 없는것에 우울이 온것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큰 딸의 취업등 을 하나님이 막으시는 사건으로 신교제 신결혼 하고 둘째 자녀 결혼 4개월 만에 갈라서는 사건으로 우교 로 다 옮겨 주셨습니다
저는 53세에 직장서 하나님이 치시는 사건으로 출애굽 시켜서 수술과 치료로 일년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직장에 채무관계가 복잡 했던 차에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경륜 인것 같습니다
제가 우교 2015년 오게 되어 지금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부목자로 섬기고 가고 있습니다
우교 와서 지난날 삶이 말씀으로 해석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모든것이 남편 죽음 자녀 사건 내 사건 등 이 사람으지 한것이 하나님 심판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가족 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1강의 듣고 깨달음점은
제가 자녀 키울 때는 내 주장이 강하고 억압으로 키운것이 회개가 됩니다
이제는 자녀 눈높이 손녀 눈높이에 맞추어 적용 하며 가길 기도 합니다
김경선
가난해도 방임적으로 키우시는 부모님의 양육아래 자유분방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때 자퇴를 하면서 갈길을 잃은자처럼 헤메이면서 한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면서 낙태를 하고 결혼하고도 두번의 낙태를 하였으며 두딸을 낳고 이혼을 하게 되었으며 너무나 곤고한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금식과 전도로 주안에 살면서 소망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지은
중국 길림성 한 작은 시골에서 6남매 다섯째로 태여 났습니다. 온갖 귀염을 받으며 학교도 대학을 졸업했고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몸조리를 잘 하지 못하여 치질이 생기게 되어서 치료하는 중 추수 감사절에 처음으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치료를 받으면서 무서운 열심으로 찬송가를 모두 적었습니다. 치료 후 집에 돌아와서는 교회가 없어서 성경책만 읽었는데 남편이 성경책을 찢어버렸습니다. 그 후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세상가치관에 사로잡혀 돈을 벌어야 된다고 식당을 해서 아파트를 샀고 또 식당을 그만하고 외국에 까지 가서 돈을 버는 등 열심히 죄를 지면서 살았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불법자로 있으면서 음란을 저질렀습니다. 딸이 사춘기 때 싱가포르에 갔다가 3년 방탕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탕자처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딸은 지금도 원망을 합니다. 엄마가 제일 필요를 할 때 없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혼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전 남편과 위장이혼을 하고 지금의 남편과 사기결혼을 했습니다. 나의 목적은 국적 취득 후 이혼의 생각을 가지고 2년 동안 돈을 벌어주지 않아도 참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법이 변했다며 아이를 낳지 않으면 4년을 같이 살아야 국적 취득을 신청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또 2년을 기다렸습니다. 4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습니다. 남편은 저의 속쌤을 모르고 국적을 취득하는데 공이 컸습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이혼을 못한다는 남편이었습니다. 딸을 결혼 시킨 후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남편과의 대화는 점점 적어졌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다단계에 쫒아 다니며 열심히 돈을 번다고 했지만 막히고 막혀 돈은 나와 점점 멀어졌습니다. 건강우상인 남편은 쉽게 돈을 벌겠다고 사업을 한다며 여기저기 다니며 생활비도 주지 않았습니다.서로 무시하며 살아왔고 이혼을 노래처럼 부르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2005년 한국에 왔을 때 남녀 호랑교에 다니던 막내 시누이는 제가 와서 치매초기에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고 팔도강산에 두 번째 효자라 해도 서러울 오빠가 중국 사람을 만나서 불효자식이 되었다고 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들교회에 가서 목자가 되어 예전에 있었던 일을 사과하고 부부싸움을 일삼는 우리에게 우리들교회는 가족을 살리는 교회라면서 소원을 한번 들어달라는 권유에 우리들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도에 우리들교회에 등록하였고 일대일 양육을 받고 양육교사도 우리부부는 함께 직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부부는 함께 부목자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지금까지 부목자로 잘 섬기고 있지만 저는 목장보고서를 무서운 열심으로 쓰다가 시험에 들어 목장에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심한 욕을 하는 등 죄를 지면서 남편한테 이혼을 당할 번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한 달 숙려기간동안 공동체 목장이 있었기에 남편은 예목까지 받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아직도 서로 자기 죄를 보라고 아웅다웅 싸우며 목장에 안간다는 말로 서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을 해도 하루만에 푸는 등 나선형같은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고 공동체 기도덕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강 소감:
돈에 우상인 저는 아이를 할머니께 맡끼고 돈을 많이 보내며 돈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줄로만 알고 방임한 저의 죄가 보여 후회가 됩니다.
삶선 그래프 그리기 ~~ 다시 잘 그리고 싶어져요
김선영
저는 부모님의 별거로 우울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저의 방황을 막으시려고 초등3~중3까지 육상선수를 했어요.
운동이 힘들어서 한눈팔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고 중2때 큰언니의 죽음도 슬퍼할 겨를이 없이 지나쳐 갔습니다
사울이 죽은후에 처럼 우리는 큰언니가 죽은 후에 다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고1때 부모님의 재결합으로 함께살게 되었습니다
3대째 모태신앙인 저는 오직 주님만 찬양하고 바라보다가 말씀이 없었고 엄마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고 나에게 잘해주는 남편을 만나 21세에 불신결혼이 죄인지도 모르고 결혼했습니다
집경매. 시댁살이. 아들의 잠시방황과 죽고싶다는 말에 마음이 녹았고 결과로는 시댁 제사가 예배로 바뀌었고 딸은 영재로 뽑혀 교육까지 받았는데 고1때 자퇴를 하며 또한번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자녀고난으로 우리들교회에 2019년에 오게 되었고 조금씩 말씀을 듣는 한 사람이 되고자 했더니 아이들 둘다 올해에 청년 목장에 들어갔고 남편은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남편은 교회안다니는거 빼고는 가정에 충실한 편이고 부부목장 한번 가고는 안갑니다
코로나로 무뎌진 신앙과 엄마의 자리를 확인하고자 신청했습니다
조혜련
4대째 모태신앙인 교편생활을 하신 아버지와 오직 예수만 부르짖는 어머니밑에서 쌍둥이로 태어나 자란 어린시절은 몸이 약하여 늘 보호속에 누워만있었던 기억만 크게 부족함이없이 자랐던것같습니다.미션스쿨을 나오고 평생 교회를 다녔으나 세상가치관으로 가득차,혼전임신으로 죄 인줄도 모르는 불신결혼을 직행했으나 결혼 다음날 교통사고로인한 친정어머니의 소천에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이 해석되지않아,죄의식과,정죄로,늘 죽고싶다를 외치며,달라도 너무다른 시댁환경에 적응해가는 지옥의삶을 살았습니다.자녀들에게 집착하며,돼지엄마의 열심으로 잘되고 잘됨만 가르키며 살아온 결론으로,큰딸이 미국에서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후부터 조용하며 잠잠하던 집에 싸움과 분란이일어,환란당하고 빚진자들이 모인다는 우리들교회를소개받아 하나님의 경륜을 맛보아 알아가며,큰딸은 수요예배 반주로,청년목장 마을로 저는 부목자로 섬기며 말씀듣는 환경속에 온가족 믿음의 성장을 기대하며,조용할시간없는치매시어머니를 모시고,퇴직한 남편의 하루세끼를 차리며 성령의 직행을해 가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