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안에서 부모와 가정을 세우는 학교입니다.
강의를 듣고 자료와 과제를 함께 나눕니다.
부모학교 구성원이 소식과 자료를 나눕니다.
1주차 부모학교 10조 나눔
"삼선 그래프를 통해 자기 소개와 참여 동기와 삶을 돌아보는 나눔의 시간이었습니다."
*A 집사님
자녀 고난이 많아서 목자님 권유로 신청하게되었습니다. 충남 예산에서 2남 2녀 장녀로 태어났고 저희 집안은 가부장적이고 부모님의 가정 불화도 있어서 가난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20살에 재수 할 때 첫사랑 남편을 만나 7년 연애하고 결혼해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다 아들 딸 낳고 살고 있었어요. 인생 최대 고난이 31살에, 오빠 33살에 명문대 나와서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최연소 승진도 했는데, 회사에서 주변 사람들이 주식을 해서 주식 부자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오빠도 주식을 하게 되었고,오르면서 욕심이 생겨 올인을 했다가 주식이 상장 폐지가 되고, 휴지 조각이 되어 오빠가 괴로워하다가 투신 자살을 했습니다. 제 인생에 해달별이 떨어졌고, 오빠가 친정의 우상이었는데 저의 인생이 다 끝난 것 같았고, 괴로웠습니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저를 찾아와 살려 달라고 기도하고 성경을 폈을 때 마태복음 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는 말씀이 살아서 저에게 들어오면서 그때 부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말씀 없이는 살 수 없었고 하나님 때문에 제가 살게 되었다는 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 인생이 해석이 되지 않았는데 김양재 목사님 설교 중에'자살'이란 말씀이 있었는데 '오빠의 죽음이 우리 집안의 구원을 위해 수고 했구나' 깨달아지면서 '부족한 내가 아니고 왜 오빠를 데리고 가셨을까' 그게 의문이었고 인생이 풀리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장자의 재앙'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해주셨습니다. 해석이되니 우리들 교회 오는게 소원이 되어 기도하다가 아들이 휘문고에 붙게 되었고 4년을 성전 옆에서 살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고, 자녀의 고난을 겪으면서 가고 있고, 목장에 붙어가며 큐티 하면서 하루하루 해석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느낀점은 저의 자녀의 고난이 하늘에 올려지는 최고의 상이라는 것과 저의 구원을 위해 자녀들이 수고하고 있구나, 내 자녀를 내려놓으면 내가 보이고 자식이 보이면 상을 주신다는걸 깨달아가면서 부모 학교에서 많은 은혜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B 집사님
중 2딸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직장생활 하면서 27살에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병명은 자가면역질환인 류마티스였고 넘 아프다 보니 죽고 싶었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중에 지인의 소개로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세번의 유산을 겪는 중에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내가 살고자 열심 특심으로 말씀 들으며 왔지만 기복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니 이해가 안되어 힘들었고, 육탄전을 벌이며 싸움도 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자녀 양육의 힘듬으로 지쳐 있을 때 우교로 오게 되었고, 붙어가고 있습니다. 자녀의 등교 거부로 인해 가족 관의 갈등이 심했고, 아이의 마음보다는 나의 옳음으로 판단하며 정죄했는데 ,이제는 잘 해서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먼저 부부 연합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말씀안에서 질서가 잘 세워져 가길 원합니다.
*C 집사님
51세이고, 중2 아들이 있고, 우리들 교회 온 이유는 남편과 별거 중에 남편이 먼저 우교에 왔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았고, 대학에 붙으면 기쁠 줄 알았는데 하루 밖에 안갔고, 삶의 기쁨은 정말 짧다는 것을 느꼈던거 같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쓰러지시면서 긴 투병이 있었고 아버지가 간호도 하시면서 가정을 이끌어 주셨는데, 아버지의 고난으로 끝난 것 같습니다.언니와 저는 대학생, 남동생은 고등학생이어서 마주칠 일이 없이 각 자 살았고,1년 반동안 투병하시다가 병원에서 해줄게 없다 해서 집으로 모셨 왔고 제가 서른 다섯에 돌아가셨습니다. 사귀던 남자 친구와 결혼했고 출산을 했을 때 기뻤으나 성품이 잠도 많고 게으른 저에게는 잘하고 싶은데 안되는 육아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면서 '내 평생에 나는 이혼하면 애를 안키운다'라는 말처럼 남편이 애를 키웠습니다. 언니가 중재 역할 하면서 한번만 돌이켜 달라했는데 싫다고 해서 저도 정이 떨어지면서 보름만에 남편은 집사서 나가고,저도 보름만에 집 팔고 서울로 와서 일하면서 지냈습니다, 1년 반 동안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고, 그동안 애를 못 보다가,봤더니 남편이 다른 여자랑 살았고, 우리들교회 와서 외도가 먼저였고 이혼을 요구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1학년에 별거를 해서 6학년 중반에 합가를 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남편은 미친 듯이 일하고 아들은 혼자 방치되다 보니 말하는데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저도 완벽주의가 있다보니 '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남편을 탓했습니다. 코로나 때 벌었던 돈을 재 투자 한다면서 남편이 빌라 세 채를 샀는데, 전세금에 대한 돈을 갚을 수 없어 파산 신청한 상태입니다. 남편이 빚에 시달렸고 1년은 백수로 있었고 ,저는 1년치 생활비를 건드리지 않았어요. 중등부 교사로 큐페 다녀오면서 어깨를 다쳐 6개월간 재활치료 받았고 , 버스 기사 준비했는데 신입 연수를 기다리면서, 현재는 철물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기본적으로 착하고 말 잘 듣고 있는데 정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편은 작년부터 중등부 교사를 하면서 아들을 이해하며 가려는 상황 속에 지내며 가고 있습니다.
*D 집사님
어릴 때 예산 농촌에서 살았습니다. 엄마는 말끝마다 아빠에 대한 원망이 여러가지로 많았는데, 엄마는 불쌍한 엄마, 아빠는 능력이 없다는 원망이어서 어릴 때는 좋은지 나쁜지 몰랐습니다. 그림을 잘 그려서 대회 나가고 상도 받고 , 미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뭔가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데 하나도 모르겠고, 기대치도 높고 병이 나서 힘들었습니다. 조현병이었는데 병도 이기고 ,초등학교 교사도 되고,결혼 할 때 쯤엔 약을 안 먹을 정도여서 남편과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애 둘도 낳고 했습니다. 관계가 어려운 사람인데, 초등학교 교사하면서 우울해서 힘들었습니다. 교사이니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내가 공부가 부족해서 아이들을 못 가르치는것 같아, 아이들을 어린이집 보내 놓고 방학 때도 도서관에 가서 어린이 책을 세 권 씩 읽기도 했습니다. 초등 담임은 생활 습관을 잡아주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잘 안되었습니다. 현재는 남편은 안 믿는데 아들은 아파서 함께 교회에 나오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