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주제>
-자녀와 안정된 애착관계 형성을 위해 고쳐야 할 것이 ‘둔감성’인가요? ‘부정적 소통방식’ 인가요?
-이를 고치기 위해 구체적으로 적용해 볼 내용은 무엇인가요?
-안정된 애착형성의 키워드는 ‘민감성’ 과 ‘일관성’ 입니다. 내가 좀더 취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생가개 보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생활 가운데서 적용해본 내용을 적어보세요.
* 가 집사님
저는 양가감정인거 같다. 낮선 사람을 어려워 하고 무시하고, 어차피 말해도 안돼 하는 맘이 있었다. 어린시절 새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너무 막는게 많았다. 친구집에 절대 자는 경우도 없었고 그러니 수련회도 절대 안되는 거였다. 이런 부분이 저의 아이에게 민감한 부분이 있다고 했지만 되물림 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관적이지 않은것도 있다. 어떤때는 민감하고 또 어떤때는 그러지 못할때도 있다. 옛날일을 곱씹는 혈우병도 있는 거 같다.
고쳐야 할 부분은? 일관적이지 않고 냉담함이다. 인간적 방법으론 되지 않고 하나님이 고쳐 주셔야 할거 같고. 제 죄를 깨닫게 해주시길 성령의 은혜를 구해야 겠다.
* 나 집사님
엄마 아빠가 이단 종교 전쟁으로 거의 방치되어 형제끼리 케어하는 상태로 자랐다. 이것이 저도 되물림되었는데 아이가 5살 18개월에 남편과 헤어졌다. 양육을 못받은 상태다 보니 저와 똑같이 부모가 권위가 없고 무섭고 그런 상황인거 같다.
아이가 다 커서 31살 20대다 보니 적용은? 카톡을 하고 관심 가지는 적용을 했는데 도저히 그 아이 마음을 모르겠다. 그래도 관심을 가져 주는걸 원하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존재감 없이 지내 보는 적용을 하고 있다. 작은애는 교회 안다니고, 큰애가 지금 양육교사 받고 있는데 관심을 주고 싶지만 지금 최대한 조용히 지내자가 적용이다.
* 다 집사님
저는 엄마가 너무 맘대로 내키는 대로 하셔서 엄마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딸 넷에 아들을 낳고 싶었는데 계속 딸을 낳아서, 큰딸인 제가 아들이길 원하셔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려서 엄마가 많이 때리셨고 애착이 형성이 안되었다. 그래서인지 자라서 엄마에게 모든 것을 상의한 적이 없다. 아버지도 존재감 없는 아버지였고 그래서 저도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다 공부가 우상이 되고. 그런 우상으로 결혼도 했다. 그럼에도 어려움 가운데 낙태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웠는데 (둘째 낙태까지 하려 했지만 차마 아이를 낙태하지 못하고 낳는 적용), 혼자 아이 두명 키우다 보니 회사일에 지치고, 몸도 아프고, 잘해보려 했으나 시간적으로 민감할 수가 없었다.
저도 불안형으로 자랐기에 아이가 자라고 코로나 시기때 아이 통제 하니 엄마가 자기를 제압한다 하며 아이들이 많이 수고하고 밖으롤 돌고 있다.
코로나때 양육 받으며 물질적으로는 많이 주지만 영적으로보면 여전히 아이들에게 쓰레기 엄마구나 깨닫게 되었다. 말로는 안해도 눈으로 속으로 얼마나 아이에게 죄를 졌는지 모른다. 회개 하고 아이들에게 사과도 많이 했다. 직면하는 것이 적용인데. 용기있게 직면하고 사과할건 하고 해야 할말은 하는 용기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적용은? 오는 연락 회피하지 않는것이 적용이다. 십자가에 잘 달리겠습니다.
* 라 집사님
저는 예민하다 생각했다. 애착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은게 많은데 아이가 7-8개월에 처음 가게를 했었다. 한복 이불 가게를 했었는데 한복은 전혀 모르는 부분이라 아이가 순하니 아이 눕혀 놓고 일을 했었다. 함께 있기에 애착 형성에 아무 이상이 없었겠다 했는데 양보다 질이라고 해서 그런 부분에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지금도 일관성이 없다. 오늘 아침에 새벽 설교에 자기가 기분대로 감정대로 하는 것이 절망 적이라고 하는데 저도 솔직히 그런 마음이다. 기분이 괜찮으면 미안해서 잘해주다가도 제가 감정적으로 힘들면 귀찮게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 부터 계속 이렇게 해온거 같다. 엄마가 민감하지 못하고 일관성 있게 못하니 혼란스러워 하고 딸같은 경우도 자기 표현을 건강하게 잘 표현 못한다.
부정적 소통방식으로 이렇게 하면 죄야 , 지옥가 하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불안한 신체적 반응도 있다. 그나마 공동체 붙어 있고 붙어 가다 보니 그나마 조금씩 변해 가는게 있다. 처음에는 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이 드니 입이 다물어 지고 강압적으로 하는 것도 생각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 묻게 되고 말씀이 뭘까 생각하게 된다. 내 본성대로 나오는게 많아서 아직 우리 가정이 회복이 더디 가는 구나 하게 된다. 어느 한사람 죽어지고 썩어지고 그러면 살아난다고 하는데 아이들도 내게 보여지는게 없으니 그런가보다 한다.
적용은? 큰아들과 주말에 밖으로 나가는 적용을 하고 싶다. 집순이라 밖으로 나가는거 싷어 하는데 하나님 주신 자연을 보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게 하는 적용을 하고 싶다.
* 마 집사님
저도 율법적이고 냉담한 환경에서 자라며 민감하지 못하고 일관성 없는 양육을 받고 자란거 같다. 늘 관심보다 해야할 의무를 배워야 했고 공감보다는 혼자 해내야 하는 착한 딸이 되어야 칭찬을 들었다. 그러다 밖에서의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이 너무도 다른 부모님께 실망하여 다른 사람에게는 호의를 베풀고 한없이 좋으신 부모님을 보며 저도 밖에서 친구를 찾고 위로를 받는 아이로 자랐다. 되물림이라고 하는데 저의 이런 양육환경을 딸에게도 그대로 되물림 할때가 많았다. 부모님 보다는 민감하고 일관성 있다 생각하며 양육을 해왔는데 우리들 교회에 와서 제가 정말 문제 부모임을 알게 되었다.
저도 아이에게 부정적 소통방식을 많이 사용한거 같다. 율법적으로 그렇게 하면 벌받는다, 하나님 무서운줄 알고 살아라 하며 나도 감당 못할 막말을 하며 살았던 거 같다. 그리고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기 보다 나의 피로함으로 모른척하고, 일관성 없는 태도로 양육을 해왔다.
적용은? 지금 아이가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한 상태라 카톡이 오면 바로 반응을 해주고, 통화를 한다면 딸의 이야기를 끝까지 공감해주고 경청해 주는 것이다. 반찬해주는 적용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