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5주차 나눔
아이들이 10개월 ~ 29개월이라 나의 사춘기에 대해서 나누고, 나는 어떻게 이 시기를 반추삼아 아이에게 해야할지 나누자.
가집사님 : 사춘기 방황했다. 당시 할머니 할아버지와 3대가 같이 살아서 힘들었다. 엄마아빠 많이 싸우고 그래서 힘들었다.
식구가 많아서 내 방도 없었다. 그래도 그 시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사춘기 방항기에 교회와 선교단체 언니 오빠들 (대학생 언니오빠들의 ) 보살핌이 있었다. 그래서 진로도 심리학과 상담으로 결정.
엄마의 감정이 첫째딸에게 가는 것. 그래서 싸우는 엄마아빠 관계에서 엄마의 감정이 나에게 그대로 이입되어서 아빠를 많이 미워했다.
그래서 10년 넘게 아빠에 대해서 나누고 기독교 상담학을 전공하며 상담을 했다.
지금은 관계가 회복되고 아빠와의 관계도 회복되어 감사. 나의 사명으로 연결되었다. 남편도 비슷한 상처가 있다.
이번에 아버지 학교왔는데 친정에 갔다가 아침부터 와서 오후 수업 들었다. 남편은 되게 좋았던 것 같다.
남편 더 가정에 충실하고 섬기는 아빠가 되었다.
퇴근하고 운동을 하는 것을 항상 하는데 왠일로 운동을 포기하고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변화가.
나집사님 : 나의 사춘기 특성 나와 너무 비슷해서
나는 사춘기때 안과 밖이 다른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너무 전쟁을 치르고 부모님의 싸우고 혈흔이 낭자하는 시기를 보냄. 큰 딸이라서 동생들까지 챙겼었다.
밖에서는 초등학교때 반장 중학교때 고등학교 때도 항상 학생회 리더였다. 밖에서는 인정받고 안에서는 늘 보살필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외로웠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선교단체에 들어갔다. 여고에 있는 선교단체.
거기에서 반대로 보살핌을 받고 싶은 사람이 욕구만큼 보살핀다고 내가 그랬다. 여러 사람을 섬기고 근본적인 내 외로움이 있었다.
부모님은 밖에서 내가 인정을 받으니, 칭찬만하고 깊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칭찬만 받았다. 나도 당시 부모는 위로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어서 나의 내면까지 부모님이 알길 원하지 않았다. 교회 공동체... 스무살이 되어서 서울에 와서 채울 곳이 없어서 연애로 채웠다. 그리고 내 속에 불안아 너무 높아서. 헤어짐의 이유도 너는 좋은 아빠가 못될 것 같아. 이런 이유로 외부에서 평생교육원 같은 곳에서 상담을 배웠다. 그렇게 외로움을 채우려는 관계에서는 안식이 없었다.
감사하게 시댁 공동체가 우리들교회이다. 그 당시에 사춘기에 그 감정들을 묵혔고 풀지 못했다. 성인되어서 그것이 좀 터지고 있는 것 같다.
자녀양육에도 그런 면이 나오지 않나?
맞다. 남편과 싸워서 불편한 것을 아이가 빨리 캐치하는 것 보면 내 슬픔이 내 딸이 겪는 것이 싫다. 남편에게 내 불안을 넘기고 싶지 않아서 자연스럽지 않게 대하는 것이 있다.
다집사님 : 나도 3남매의 첫째다. 저희 엄마는 힘든것을 티내지 않는 분이었다. 엄마가 일을하고 할머니가 우리를 다 키웠다.
고부갈등 같은 것을 못보고 자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힘들어도 다 순종했다. 엄마도 속마음을 잘 이야기안하고 나도 좀 그런 면을 닮았다.
순종을 강요하는 점... 인정욕구가 강한점 나도 억눌린 부분이 있는데. 그래도 감사하게도 청소년기에 하나님 만나서 중요한건 주변에 누가 있는지가 중요한것 같다.
나는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같이 피아노 하는 언니중에 교회 신실하게 다니는 언니가 있었고, 그 시기를 잘 넘어갔다.
대학교때 선교단체에가고 아빠에 대한 미운마음 같은 내용을 많이 나누고 그러다보니 아빠와의 관계가 조금씩 풀렸다. 지금은 아버지도 신앙생활하고 있다.
돌아보면 나는 우울함이 많았던 것 같다. 친구가 나한테 욕을해도 엄마가 들을까봐 일이 커질까봐 걱정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혼자 생각하던 것을 교회에서 그리고 같이 피아노 치는 언니와 나누면서 조금 풀었던 것이 큰 문제 없이 자랐던 것 같다.
엄마 나 힘들어 그러면... 우리 엄마는 원래 그런거야 이런식으로 공감을 안 해주신다.
엄마의 방식은 관계를 공감하고 하는 것을 못하셨다. 엄마의 사랑은 알지만 방식이 나랑 안 맞다.
라집사님 :
나도 아래위로 아들있는 세남매 둘째였는데 있는듯 없는듯한 존재였다. 어릴때 몸이 약했다. 많이 안아주지 않고 다들 모든 친척들이 아들 중심으로 살았다. 그래서 나도 존재감이 없었고 칭찬받기를 늘 원했다. 그래서 어릴 때 칭찬받는 것이 목적이 되었다. 사춘기가 없었던 것이 비행을 생각한 적도 없었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자녀가 자라서 폭발이 될지 언제 그럴지 모르겠지만 희로애락.. 엄마는 늘 힘들고 아빠는 늘 폭발하니까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친구는 내가 더 힘들어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우리들교회 오기전까지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너무 슬플때 그렇게 슬프지 않고, 기쁠때 확 기쁘고 희노애락을 잘 못느끼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런 점들이 상담에서 내 인생에서 간다.
그래서 내 아이를 보면 아이가 아파도 아파하지 않고. 그런거 보면 마음이 나때문이거 같아서 서릴때가 있다.
나의 정서적인 부분이 아이에게 갈까봐 불안하다. 저는 자녀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 슬퍼하는 것도 못보겠고 너무 기쁜것도 공감이 안되서 힘들다.
항상 절제된 감정만 경험해서 아이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
나도 학폭 피해자다. 여고에서 상고애들이 괴롭힘. 뺨맞고 돈 뜯겼는데 이야기를 못했는데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이야기를 못했다. 근데 그때 엄마가 자취방에 와서 그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주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엄마는 너의 친구처럼 그런 이야기를 알고싶다. 하는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서 목장에서 엄마가 너무 불행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에게 마음을 닫는다.
나는 지금까지도 엄마한테 힘들다는 이야기를 잘 못한다. 지금도 그런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문자로는 하는데 얼굴보면 엄마 얼굴 보면 힘들단 소리가 안 나온다.
마집사님 :
어렸을 때 엄마아빠가 많이 싸우시고, 엄마는 믿으시고 아빠는 믿음이 없어서 어렸을 때 엄마가 아빠의 구원위해서 많이 울었다.
그래도 엄마가 나에게 그 감정을 풀지 않고, 아빠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우리들교회에 인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리들교회 와서 20대 때 나누며 해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