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집사님
초등 고학년 아들이 전남편과 살고 있는데 이혼의 환경을 물려준 것에 늘 고민이 되어 신청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혈기 많은 아빠, 엄마는 피해자라는 인식 속에 자랐으며 집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결혼했다. 이것이 가족신화를 꿈꾸던 나의 우상이였고 건강하지 못한 결혼생활의 시작으로 제대로 된 다툼없이 참다가 맞바람이 걸리게 되면서 결국 이혼을 막지 못했다.
이혼 후 잘 살거라 생각했지만 일중독으로 지내다가 억대 사기를 당하는 사건으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 `별 인생 없다.`는 목사님 어록과 삶을 말씀으로 해석받는 것이 좋았고, 내 안의 힘이 빠지니 어릴적 들었던 찬양을 다시 듣게 되었다.
이혼 후 남자친구와 5년간 교제하였는데 남자친구의 바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때보다 더 큰 배신감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아닌 남자를 의지하는 나의 우상이 있음을 깨닫게 하셔서 회개가 나왔다.
B 집사님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우울하게 성장했다. 음대에 진학했는데 해외가 돌파구였던 나는 캐나다 어학연수를 갔다. 이후 취업하여 결혼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우울하다며 일을 하지 않았다. 3년 후 이혼하게 되었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취업도 했다. 이후노르웨이 1년 살이를 하였고 포르투갈로 갔으나 비자가 나오지 않아 귀국하게 되었다.
결혼업체를 통해 남편을 만나 3주 만에 결혼했다. 이후 사업도 하고 간호대를 진학했으며 올 12월에 출산 예정이다. 지금 아니면 부모학교에 올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신청했다.
C 집사님
가난한 집안 환경속에서남아선호사상이 짙었던 부모님은 아들을 제외한 3명의 딸들에게만 일을 시키셨는데 학창시절에는 그것이 너무 창피했었다.다행히 공부를 잘하니 부모님이 자동차까지 구매하여 등하교까지 시켜주셔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부모님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서울 소재의 대학에 합격하고 서울에 살면서 취업까지 하니 새 세상이 열린 듯 즐거웠다. 행복했으나 결혼 후 남편의 외도사건이 터졌다. 힘든가운데 우리들교회 공동체 속에서 즐겁게 지내려 노렸했다. 하지만 결국 이혼을 당하게 되었고 이후업체를 통해 불신 재혼하면서 바로 아이가 생겼다. 예민한 남편때문에 집에만 있어도 이전의 결혼생활의 고난이 너무 힘들었기에 이마저도 행복하다. 아이를 잘 양육하고 싶어서 신청하게 되었다.
D 집사님
5살 아이가 있는데 아이에 대한 집착과 걱정이 많아지면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부모학교를 신청했다. 평탄하고 유복한 유년기를 보내고 중학교때 혼자 유학길에 올랐다. 힘들었지만 싱가폴과 미국 대학교 시절이 좋았던 것 같다. 아빠의 한 사건으로 가세가 기울게 되면서 한국에 취업하고 결혼하였다. 아빠의 일이 해결되고 육아로 힘들지만 회복되는 단계에 있다.
E 집사님
모태신앙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모범적인 학생으로 부모님의 자랑이였다. 중1때 사업부도로 서울 단칸방에서 살게 되면서 모든 것이 흔들리고 우울했다. 대학교 시절 아빠가 개척교회를 시작하시면서 가세는 더 기울었고 온 가족이 다 힘들었으며 나는 방황하며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 취업 후 결혼했으나 사기결혼으로헤어지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이 시작된 듯 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남편의 술문제로 이혼위기에 처하면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고 구속사의 말씀을 들으며 조금씩 살아났다. 지금은 느린 ADD 아들과 믿지않는 남편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