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겉으로 초긍정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매우 불안이 높은 사람이다.
불안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너무 감당이 되지 않고 힘들다 보니 도리어 무딘 사람처럼, 긍정적인 사람처럼 회피의 가면을 쓰고 살고 있다.
육아에 대해 불안했던 나는 첫째 아이를 낳으면서 양육서를 탐독하였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내 한 몸 편한 육아를 하기 위한 어떤 비법 같은 것을 추구했다. 양육서에서 시키는 데로 시간표를 짜서 아이를 키우고 잘 안아주지 않았다. 모유만 주었을 뿐 아이를 돌보는 일은 거의 친정엄마와 친정이모가 도맡아 하셨다. 나는 자는 아이의 모습이 가장 예뻤다.
아이는 기질상 까다로운 아이였다. 다행히(?) 안아 주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체력이 좋고 에너지가 풍부해서 주로 아빠가 놀아주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육아에서는 손을 떼고 그저 아이를 바라보면서 예뻐했던 것 같다.
나는 무척이나 감정적인 사람이고 현실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되지 않고 참아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아이를 예뻐하다가도 한 순간에 이게 아니다 싶으면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었다.
항상 나의 관심이 나의 감정과 나의 몸에만 집중되어 있으니 예민한 아이의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는 커녕 나의 혈기로 억누르고 때로는 매를 들면서 아이를 굴복 시키려고만 했다.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뒤.. 32개월 쯤.. 말이 서툰 아들이 나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화 내는 것을 보고 덜컥 겁이 나서 놀이치료실을 찾아가게 되었다. 거기서 불안정 애착이라는 말을 들었다. 치료실에 계속 다니고 소소한 육아의 팁 을 받으면서 적용해 보기도 했지만, 아이와의 관계 개선은 매우 더뎠다. 우리들 공동체에 와서 보니, 내가 변하지 않고 아이를 치료실에 보내기만 했기에 아이도 나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리에 "나"를 올려둔 우상숭배하는 엄마였으며, 그런 엄마 옆에서 아이는 상처받으면서 수고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내 감정을 쏟아내면서 어린 마음에 알 수 없는 억울함과 화를 심어 주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그것을 받아 먹은 아이.. 내가 그 아이에게 피를 먹인 것이다. 유아세례를 받게 하고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는 자녀로 키우겠다고 서원했지만, 정작 내가 한 일은 아이의 구원을 가로막고 힘들게 한 일이었다.
이제서야 8살이 된 아들과 애착을 다시 형성하려니 이미 커버린 아들의 기분을 읽어내고 욕구를 맞추어 주는 것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나의 혈기를 누르고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어렵고 어디에서건 엄마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아들로 인한 수치심을 참는 것도 곤욕이다.
그래도.. 지금부터라도.............아들과 제대로 된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면.... 그래서 아들의 수고를 덜어줄 수 있다면.... 아들과 나의 죄만 생각하면 늘 눈물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