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선 그래프
제가 태어났을 때 저의 집안은 아버지가 사업하다 사기를 당하고 망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영아기 때 저는 워낙 순하고 울지도 않아서 엄마가 젖만 먹여놓고 행상을 다니셨다고 합니다.
엄마와 애착형성이 되지 않아서인지 6세까지의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7~8세에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난초캐고 풀 #46913;고 놀던 때가 즐거웠습니다.
9세 초3때 집도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고 숙제도 잘 안해가는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 육성회비를 안낸다고 혼나고 벌서고, 하루는 수업시간에 육성회비 가져오라고 쫓겨가기도 했습니다.
그 때의 담임선생님 이름은 지금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을만큼 제게 -80 정도의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이듬해 초4때 예쁜 여자 담임선생님께서 수학시간에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앞에나가 칠판에 문제를 풀었는데 "글씨를 잘 썼다. 잘 풀었다" 칭찬해 주신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행복 +80지수) 그 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가지고 되었고 그 선생님은 제 삶에 작은 소망과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중1 사춘기가 시작될무렵 땀냄새가 나기 시작해 체육시간은 너무 고역이었습니다. 부모님과 대화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기에 혼자서만 힘들어하고 어찌할 지 몰라 주눅들고 우울한 청소년시절을 보내다가 (-90)
고2 엄마의 권유로 교회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며 주일, 토요, 금요철야, 새벽기도,수련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내 병을 고쳐달라는 기복도 있었지만 기쁨이 넘쳤던 시간이었습니다. (+90)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과 시집살이까지 하며 열심히 남편을 뒷바라지 했지만 인정받는 목회자가 되기는커녕 사역도 안하고 돈도 안벌고 날마다 집에서 잔소리하고 힘들게 할 때(36세) -100의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창피해서 이혼은 못하겠고 죽고 싶은데 천국 갈 확신은 없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지옥을 살고 있을 때 큐티모임에 인도받아 김양재목사님을 만났습니다.
44세 말씀을 들으며 사역이 야망이었던 내 죄를 깨닫고 나를 살리는 회개를 하며 +100의 참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면 은사가 개발된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4세 유아들을 담당하는 교육부서장과 목자의 사명 주심에 감사하며 힘들때도 있지만 기쁨으로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