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마음이 아프니 과제입니다.
허윤정
유치원 때 삥 뜯기는 경험이 제겐 큰 상처가 되었고 그건 부모님의 무관심과 방관이 한 몫을 했다는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하는 아버지에게 돈 달라고 하는 저를 유심히 보셨다면 그래서 짧은 질문 "왜 돈을 달라고 하지? 뭐가 필요하니?" 라고 물어보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큰 아이는 피해의식과 집착으로 작은 딸은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병원에 다니고서야, 나의 부모님처럼 나 또한 자녀와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MBTI 유형중 자기의 틀이 강한 ESTJ 인 저였기에 자녀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아이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격려하는 것은 더더욱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부모학교에서 배운 대로 아이의 이야기를 민감하게 듣고 즉시로 반응하면서 같이 놀아주는 적용을 했습니다. 아이가 마블게임을 하자고 할 때 즉시로 대응했고 티격태격하면서도 게임을 2~3일에 한번 유지하고 있습니다. 딸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싸가지다'는 말인데, 게임하는 동안에 그 말을 지속적으로 들어도 화를 내지 않더라고요.
우리 부부한테 이길 때의 아이들의 얼굴에서 엄청난 자신감이 뿜어져 나옵니다. 우울한 내 아이들이 살맛이 나도록 제가 게임에서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져주기를 소망합니다.
이수현
저는 엄마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부족함이 없는 외동딸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의 아이들과 놀아준 것도 별로 없고 놀아 줄줄도 모르고 아이들의 감정을 무시하고, 권위적이고, 명령하며 제멋대로 안 되면 분노하고, 폭언하고, 돌아서면 미안해하는 아주 일관성 없는 제멋대로 엄마였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남편은 초등동창이라 너무 편해 세상 무시도 이런 무시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의 저에 대한 사랑은 일편단심이니 저의 교만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런 저희 부부를 보고 아이들이 무얼 배웠겠습니까? 남편을 무시하는 엄마의 독재!
어느 순간 아이들이 결정해야할 또는 허락받아야 할 일들은 저에게 묻는 걸 느꼈습니다.
이런 저의 양육태도 속에서 자란 아들이 AD인 것 같은 증세를 유치원 때부터 보이며.
저는 제 아들 양육에 지쳐갔고, 아들이 너무 힘에 겨웠고 저 아이가 왜 그럴까만 생각했지 저 아이가 좋아하는 건 뭔지? 저 아이랑 뭘 하고 놀아줄까를 생각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중1인 아들이 거짓말하고 피시방을 갔지만 아무 말 안했더니 거짓말 안한다 했는데, 바로 그 다음날 또 거짓말하고 피시방 갔습니다. 그래서 피시방 가서 아들을 데려왔답니다. 예수님처럼 풀지 못하고 전화 안 받는 핸드폰 뺏고 그 피시방에 이 학생 출입시키지 말라고 무의식의 아니무스가 출현을 해서 다시 괴물 엄마가 되어 버렸답니다.
옛날 같으면 그렇게 막 아들에게 해대고 후회하고만 있었을 텐데. 바로 회개하고 마음 읽어주고 재웠습니다.
이제는 제 아이의 문제가 저의 문제였음을 깨닫기까지는 왔습니다. 하나님이 개입되시지 않는다면 아마 저의 부족함에 회개가 아니라 자책하며 또 다른 괴로움에 시달려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는 것은 저의 엄마가 제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 원죄였음을 해석 받으니. 이해가 되고 제가 또 저의 엄마가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이젠 제 옆에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에게 말씀 구하며 하나님과 함께 가고 있으니 아직 되었다함은 없지만 불안하지 않고 든든합니다.
마음이 아프니. 제목만 들어도 제 가슴이 저려옵니다. 저만 아팠다고 생각하는데 저로 인해 마음이 아팠을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 그리고 울 엄마를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창피하고 미안해서, 이 모든 것 회개하며 살아계신 하나님, 든든하신 하나님 믿고 조금씩 1도씩이라도 달라질 수 있도록 간구합니다.
여진옥
어릴 때 형편이 어렵지도 했지만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의처증으로 어떤 고민이나 육성회비 조차 달라는 소리를 못해 학교에서 집으로 쫒아내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 ㅡ 그렇게 고등학교 까지 스스로 해결하며 자라서 그런지 유학시절에도 알바하며 부모는 그냥 있어주는 존재 돈이 생기면 줘야 하는 그런 부모님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자라서 ㅡ 큰딸이 작곡과를 공부하며 대학 입시 때 피아노 레슨이며 많은 돈이 들어갔는데 그 생색으로 ㅡ 많이 병든 나를 보게 돼요. 지난 주 졸업연주 한다고 5십5만원 달라고 하는데 ㅡ 헉! 속으로 왜 날 이렇게 번번이 힘들게 하지하는 마음이 생겨 참 스스로 힘들었고ㅡ 내가 부모 가격이 없다는 비관적인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아이를 피하고 싶었답니다.
교육을 통해보니 부모로써 당연한 것을 나의 상처로 반응하며 아이에 마음을 아프게 하고 모든 문제를 아이스스로 해결하게 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앉혀놓고 훈육을 한다면서 아이를 질리게 하고 중학교 때 교복을 꽉 끼게 고쳤을 때 이런 미친XX하며 교복을 찢기도 했었고, 어버이날 성의 없는 선물에는 어떻게 이렇게 부모를 대접할 수 있느냐며 야단을 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었습니다.
강압적이고 무서운 아버지로 인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나또한 아이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옵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엄마로써 온전치 못했던 것을 용서해주고 이해 해 주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적용으로 어떤 힘든 일이라도 함께 풀어보자고 예기하고 일단 해결해 주었습니다.
송명희
바람나서 집나간 남편의수고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고, 우리들교회로 함께 올 수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지랄총량이던 아이가 말씀에 놀라워라 하며 우리엄마가 변하고 있다며 고발과 찔러 줌으로 자식은 배반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고 노후대책이 아니다 이런 언어로 엄마에게 비수를 꽂았다고 고백하며 아이들과 언어가 같아지니 소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은아이는 늘~엄마의 무시대상1호 찌질 한 내모습의 또 다른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바른말로 지적하고 공부도 못하던 아이었는데 지금은 돈 벌어서 남편자리 대신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외박하면 문도열어주지 않고 못되게 굴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돈 안 벌고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양육숙제는 다했느냐고 숙제하고 놀아야지라며 자리가 바뀐 건지 헤깔립니다.
우리아이들의 상처가 별이 되기를.. 나의십자가를 기쁘게 지고가야 겠습니다, 옳다그르다 판단하기 좋아하는 것 내려놓고 말도 부드럽게 하고 귀를 기울여서 들어주어야겠습니다. 엄마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잘못은 사과하는 속 넓은 엄마가 되어야겠습니다.
권경효
어린 시절부터 열등감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힘들었습니다.
속으론 너무 놀고 싶었지만 친구들 관계와 성적, 가정형편 부모님 직업 부모님의 인맥이 친구관계를 이루는 보이지 않는 끈인 게 보이고 난 공부도 형편도 인맥 없는 부모다 보니 어디에도 끼지 못했고 건강하게 관계를 형성해 본적이 없고 항상 보이지 않는 아이였지만 속엔 분노가 많았습니다.
미움, 열등감, 분노, 두려움, 불안의 원인을 나름 찾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괴로워서 잊고 싶었는데 안 되니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제 무의식속에 꼭 감추어 두었는데 큰 아이를 낳은 후에 모든 감정들이 타올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움이 올라오면 예전에 눈 못 마주쳤던 습관으로 아이에게 눈을 피했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봤기에 아들을 왕따 시키는 옆집에 아무 말도 못해 피하는 방법을 썼고 앞에서 못하니까 뒤에서 아이가 듣게 궁시렁거렸고, 공부를 해 본적이 없으니 아이에게 학습을 챙기지 못했기에 아들도 끝까지 학교를 못 마치고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갔더니 제가 건강해졌습니다.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도 정식으로 여러 번 했고 대안학교에서 문제도 함께 고민하며 풀어가고 있습니다.
김에스더
결손 가정이서 태어나 열등감속에 늘 비교 당하며 존재 자체에 대한 불만감을 가지고 어린 시절을 보냈고 대학시절 주님을 영접하고 자존감을 회복했습니다.
그 후 난 건강하다, 신실하다 생각하며 자기 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 지혜를 믿고 시작했던 사업은 오년 만에 빚더미에 앉게 됐고, 그 덕에 유방암이라는 병도 얻게 됐습니다.
그즈음 우리들교회 수요 예배 참석하며 내 죄를 보게 됐고 회개하며 하나하나 씻어 나갔습니다. 자기의가 강한 저는 아이들도 나의 기준과 테두리에 집어넣어 내가 원하는 데로 만들려 했던 독재자였습니다.
부모학교를 수강하며 제 안에 다듬어지지 않은 성품을 보게 됐습니다.
아이와 공감하지 못했고, 놀아주지 못했고, 청소년시기의 3가지 특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상황판단과 인지가 부족한 아이를 물건 자주 잊어버린다고 구박하고. 동생을 배려하지 못한다. 핀잔 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우리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되서 무엇보다 기쁘고 시원합니다. 축구에 몰입해있는 6학년 아들에게 축구공도 사주고 원하는 장갑, 가방도 사줘가며. 놀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딸에게, 줄넘기놀이, 블루마블 놀이 하며 적용하고 있습니다.
윤문경
내 자식만큼은 내 소유물처럼 특히 큰딸에게는 상처가 많습니다.
주도형 억압형 엄마로 내편안함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유치원 때 치마입고 싶다는 아이에게 바지만 입히고 초등시절 공부 가르치다가 이해 못하면 머리줘어박고 울면 왜 우냐고 다그치면 말로서 기를 죽이는 놀다가 늦게 들어오면 때리는 엄마였고 네가 잘해야지 하면서 아이편이 되어 주질 않았습니다.
불안이 있는 나로써 사람과의 관계와 감정표현 하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었으며, 사람의식을 해서 긴장된 삶을 살았습니다. 부모교육을 통해 명령하고 심판하고 비판하는 엄마였음이 인정이 되고 정말 문제엄마부모였음을 고백합니다.
인정이 되었습니다.
아프고 문제 부모라는 것이 인정되어지니 부모교육도 병원 가서 상담 받은 것도 기쁨이 되고 아이 앞에서 미안하고 잘못했다. 용서를 빌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이후로 아이가 손을 내밀게 되었고 스킨십이 없었는데 조금씩 회복하며 가고 있답니다.
내 힘이 아닌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고 모든 삶을 주관하심을 느끼며 체험하고 갑니다.
안미숙
저는 딸 여섯 명중 셋째이고 그중에서 제일 무난한 성격이긴 했지만 아빠의 경제적 무능함으로 인해 온 가족이 히든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한가진 6학년3반 담임선생님입니다.
운동회 연습을 하려고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나에게 다가오시더니 집게손가락으로 어깨부분을 살짝 집으시며 "너는 이 옷밖에 없냐? 어떻게 한 옷만 그렇게 입고 다닐 수가 있냐!" 어린 난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던지 그 일을 집에 와서 엄마한테 말했더니 그 먼 시장을 바로 데리고 가셔서 처음으로 흰 반팔 티와 청바지를 입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여섯 명의 자매들은 나보다 가슴앓이를 많이 해서 그런지 성격이 까칠하고 대하기 힘든 자매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정죄하고 비판을 했습니다.
친정 엄마는 53세의 나이에 신경성악성대장암 선고를 받고 돌아가시고 까칠했던 언니와 동생들에 비해 스스로 성격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결혼한 후에 모든 것이 들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상처가 많은 남편을 만나 사사건건 참견에, 무시에 멸시하는 남편을 몇 년 동안 속으로 정죄하고 이후에는 겉으로 정죄와 도덕선생님처럼 가르쳤고, 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남편을 아이들 앞에서 훈계를 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들과 비인격적인 언어와 태도에는 중간에 끼어들어 옳고 그름으로 정답을 들이댔으며 그것이 올바른 줄 알고 살았습니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잘 키웠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살았는데 큰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큰아이는 학교가면 선생님들을 무시하며 만만한 여선생님들한테 함부로 대하고 조금이라도 비인격적으로 대우를 받았다싶으면 잡아먹을 듯 대드는 일과 엄마를 우습게 보는 언행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은 내게 큰 고통이었지만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죄가 깨달아졌습니다.
내 의가 하늘에 닿았고 남편이란 질서에 순종하지 못했다는 것에 눈물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부모학교를 통해서 막연히 기도하며 깨달았던 것들을 더 확실한 깨달음으로 확인 시켜 주셨고 나의 부모, 남편의 부모, 남편, 언니, 동생들, 울 아이들 다른 아이들 교회성도들까지도 그들의 아픔도 상처도 더 확실히 알게 되었고 중보 해야 함의 무게를 더 확실히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 드립니다.
나의 적용은 큰아이에게 여태껏 잘 키운 줄만 알고 있었던 엄마의 생각이 너무 완전이 잘못 키웠음을 고백하였고, 아이들의 말에 건성이 아닌 작은 말에도 깊이 생각하며 들으며, 남편의 말에 더 집중하여 인정하고 순종하고 위하고 사랑하려 노력하며 아무리 옳다는 생각이 들어도 욥의 친구들처럼 정죄하지 않겠다고 날마다 적용하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