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은 쓸데없는 생각이나 걱정을 지나치게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셨는데
내안에 침몰된 세월호가 있기에 나를 먼저 돌아보고 나의 어린시절 상처 된 부분을 치료하고 지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던 것만으로도 무언가 위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딸 여섯에 넷째딸로 태어났습니다.
누가 봐도 내게는 우울이 깊어도 너무 깊은 우울이 있었습니다.
늘 막연하기만 했던 흩어진 기억속에 상처의 잔상들로 인해 깊은 우울을 넘어 무기력이 있던
저에게도 45년만에 AD와 BC가 나뉘는 날이 왔습니다.
말씀묵상을 하던중 내 깊은 어둠에 대해 A4 한장으로 정리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눈빛에 제압당하는 동굴, 큰언니의 일방적인 미움의 동굴, 둘째언니의 손찌검과 언니로의 권을 마구 휘둘렀던 동굴, 셋째언니의 의로움과 옳고 그름의 잣대의 동굴, 아랫동생의 무시의 동굴 속에 자신을 가두고 또 가두었기에 생존본능을 위해 철저히 이기적인 생활을 하며 세상을 향해서는 두려움이 많은 삶으로 나만의 동굴속에 나 스스로를 가두고 또 가두는 삶을 살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죽음을 위해 먹으면 죽겠다 싶은 것들 왁스를 포함한 것들을 통속에 모으던 기억등이 있습니다....
20대가 지나며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런 제게 결혼이 인생의 목적이 되었지만 거듭되는 거절의 상처들을 겪으며 자살 시도도 해보았고 정신적 두려움을 해결 할 길이 없어 어떤 해에는 1년동안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에도 불안감으로 우산을 늘 들고 다녔었고, 어떤 해에는 관광기념으로 샀던 은장도를 칼날을 예리하게 갈아서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던 중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 남편을 만나 많은 무리수가 있었음에도 연애2년 만에 결혼했지만 사업의 실패와 폭력과 폭언, 성적학대로 지옥을 사는 중에도 연년생 남매를 낳았고 자주 지방생활을 했던 남편으로 인해 그야말로 혼자서는 버거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4년전 8년간 섬겼던 교회의 목사님 부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소천하는 사건을 겪으며 해석이 되지 않아 힘들어 하던 중에 우리들교회를 알게 되었고 이후로 말씀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이길 만이 살길임을 알았기에 예배만이 피난처가 되는 시간들을 살았습니다....
'마음이 아프니'라는 프로그램을 듣는 것 만으로도 내 우울이 위로받는 것 같았고 묵상하던 중에
나를 둘러싼 동굴들의 모습들이 객관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해석이 되기 시작했고
그들을 향한 원망이나 미움이 아닌 객관적으로 각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함께 상처에 직면 할 때는 참을 수 없이 서러운 눈물도 흘렸지만 이 날까지의 시간들을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있는 내 모습이 대견하고 기적과 같은 일임이 느껴집니다.
그날의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27장45-56절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육시부터 구시까지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던 시간이 내 45년의 시간들이었고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며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며 무덤들이 열리는 사건이었습니다....
늘 말씀을 들어도 안개속에 있는냥 뿌연 모습이 남아있었지만 그날 이후 맑은 머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 아픈 시간이 오랜 시간 계속되는 동안 딸은 고1, 아들은 중2년생으로 겉보기에는 어였한 성장을 했지만 딸은 심한 우울증으로 아들은 자기표현이 힘든 아이로 성장을 했고 또한 남편에게는 질서순종을 하지 않은 시간들을 지났기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가정을 돌아보니 온통 훼파된 길이 없는 모습들로 인해 애통의 눈물을 흘리며 비로소 가정예배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모하는 시점에 이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퇴근 후 요구가 많은 남편으로 인해 피곤하지만 투덜거림을 자제하고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려 애를 써보고 존댓말도 스스로 해 보고 있으며 서툴기만 하지만 반응적 경청과 나 메시지를 활용해 보므로 전 같으면 화나는 감정을 말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온 몸으로 표현했었지만 요즘은 내 마음이 어떤지를 표현해 보기도 합니다. 자기연민에 흘리던 눈물보다는 나의 살아온 날로 인한 결론을 보며 구원을 위한 애통의 눈물이 나기도 하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