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사랑하는 세아이(7살 아들, 5살 딸, 2살 딸)의 아빠입니다.
불교집안의 3남1여중 셋째로 태어나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릴 적부터 큰집은 예수 믿고 저희 집은 불교라 명절 때 마다 제사 문제로 다툼이 있었고 그걸 보고 자라면서 기독교에 대한 좋지 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절에 갈 때면 아무 반감 없이 따가 가긴 했지만 불경이나 목탁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아파서 절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혼자 산 정상에 오르곤 했었지요. 그리고 군 생활을 하면서도 주일마다 종교 활동을 하는데 그럴 때도 성당이나 절에 가는 것 보다 그냥 교회에 가고 싶었고 그곳에서 찬양을 하는 것이 힘든 군생활의 위안이 되었던 것 같아요. 군종을 하던 선임으로부터 군종 해보라는 제의도 받았네요. 우습지요. 믿음도 없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참 착한아들로 큰 사건 사고 없이 잘 해왔는데 군 생활 중에 운전을 하다 빗길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게 하는 큰 죄를 짓게 되었고 헌병대 영창에서 온갖 수치와 조롱을 당할 때면 이 환경이 너무 무섭고 21살의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큰 죄책감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여린 성격 탓에 극단적인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매 주일 마다 인근 교회에서 영창을 찾아 위로 예배를 해 주셔서 위안이 되었습니다.
제가 힘이 들 때마다 주님께선 제 곁에 계서 주셨지만 이때 까지만 해도 잘 몰랐었고 사건이 잘 정리 되어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나머지 군 생활을 마치고 나서부터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복학을 하고 학교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7년 연예를 하는 동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결혼했지만 대부분 그렇듯 행복 끝, 고난 시작을 알리며 점점 감정의 골이 깊어만 갔습니다. 아내는 헤어#49406;을 운영 중이었고 저는 인테리어 기사였는데 수입의 개입이 있다 보니 다툼이 잦아지고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고 아내는 많이 힘들어 하면서도 출산 일주일 전까지 일을 하면서 잘 참아주었고 #49406;을 정리 하면서 마음고생도 심했습니다.
이때쯤 저는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고 아내와 나 사이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거라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지만 이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출산 후에는 아이를 통해서 행복을 찾으려 했지만 부부가 하나가 되지 못했기에 한계가 있었고 아내는 틈만 나면 못살겠다며 이혼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럴 때 저는 10년 전 알고 지내던 여자와 3일 동안 문자를 주고받으며 아내를 욕했고 아내는 문자를 보고 바람 폈다며 이혼을 요구했고 밤낮없이 저를 폭행하고 괴롭혔습니다. 아내의 이혼 요구에도 가정을 지키고 싶었기에 아내와 정신과 치료도 받고 부부클리닉에도 가보았지만 관계는 낳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우리들 교회에 다니는 친한 언니의 소개로 2009년 우리들 교회로 인도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으면 눈물 흘리고 좀 낳아지나 싶어서 다니긴 했는데 여전한 방식의 괴롭힘에 힘들어하던 저는 제 열심에 예배와 목장에 올인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1년 만에 부목자 직분을 받고 섬기고 있지만 아직까지 말씀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있고 첫째 서진이가 우리로 인해 수고하고 있다는 것이 인정이 되면서 부족한 저희에게 잠시 맡겨 주신 세 아이를 올바르게 양육하고자 아내와 함께 부모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좋은 교회를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난다고 하시는데 삶이 힘들 때마다 늘 제 곁에는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제 삶을 되돌아보며 그랬었구나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