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5 주일설교
제목: 네 마음도 진실하냐
본문: 열왕기하 10:12-19
설교: 김양재 목사
1.내가 사로잡힌 것을 봐야 한다.
예후는 사마리아를 지나 북이스라엘 중에 별궁 이스르엘로 간다. 그러다 잠깐 쉬려고 목자가 있는 양털을 깎는집 휴게소에 들렀다. 거기에 아하시아의 형제들이 있었다.
그는 너희는 누구냐고 묻자 굳이 아합의 집 길 태후의 아들에게 인사드리러 간다고 말한다.
이들은 다윗의 자손임에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아합의 집 태후를 자랑하며 자기들을 건들지 말라고 한다.
가문좋고 재력좋은 집이라서 죽는 순간까지도 아합의 집 세력에 묶여있다.
금면류관으로 이고 지고 쓰고 있기에 사로잡으라고 명령한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42명을 다 죽였다.
선지자 엘리사를 조롱하다가 곰에게 찢겨죽은 우상숭배에 오염된 젊은이들의 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아하시야의 조카들은 죽을 때까지 짧은 시간만에 사로잡혀 있다는 게 무엇인지 태어나서 처음 경험했을 것이다.
내가 사로잡히면 내가 사로잡힌 죄에 대해 회개해야 하는데 그저 자신의 정체성을 아합의 집에서 찾고 있다.
말씀을 무시하는 아합의 집 구조 안에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듣지 못한다.
아하시야 집안은 아합의 집 길로 갔다.
자신의 가정을 우상삼아 좁은 길로 간다. 우리는 그런 것도 모르고 사로잡히는 죄들이 있고 그 죄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구덩이에 빠져야 내 영이 사로잡혀있고 심각한 죄악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굳은 길을 떠나 진실하게 하시려고 딱 알맞는 환경을 주신다.
회개하는 한 사람도 없어서 다 멸망하였다. 왕자들끼리 죄를 지으니깐 더 안 보인다.
적용질문 : 보통 나를 누구라고 소개하나요? 누구라고 소개하고 싶나요?
어떤 상황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내가 보고 인정해야 할, 나를 사로잡고 있는 죄악은 무엇입니까?
2. 사람만 아니라 하느님께 진실해야 한다.
예후가 이후에 만난 사람은 여호나답이다.
300년간 신앙의 전통을 지키며 살았고 아합과 이세벨의 악한 영향에 가슴아파하며 보고 있었다. 언제까지 내버려 둘꺼냐 부르짖었다.
이때 아합의 집 가문을 심판하는 예후가 등장한 것이다. 예후는 하느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여호나답은 하느님께서 준비해둔 그 한 사람, 예후를 만났던 것이다.
예후가 아합의 집을 멸망시키면서 안부를 물어본다.
네 마음도 진실하냐. 내 마음이 네게 진실한 것처럼 말이다.
예후는 아합의 집 길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있다. 선한 것이 없는 북이스라엘 가운데 여호나답이 예후를 인정하고자 찾아오니 최고의 명분을 얻게 된 것이다.
예후의 네 마음도 진실하냐는 인본적인 질문에 영적인 여호나답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레갑족속은 믿음의 가문이다. 아합의 집안에 저항하다가 순교한 세력들이 생각났을 것이다.
나그네 인생처럼 살아라. 유목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진실되지 않음을 회개하게 된다. 예레미야 때 포도주를 한번 먹어보라며 시험해 봤지만 먹지 않았다.
엘리야는 인생의 최저점에 나의 열심을 보라고 하였지만 예후는 인생의 최고점에 자신의 열심을 자랑한다.
엘리야는 호소하는 열심을 말하지만 예후는 이기고 또 이기는 열심을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예후의 열심도 사용하셔서 심판을 완료하신다.
하느님 앞에 진실하지 못했던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후는 시선이 사람에게만 머물러있다.
자신의 편을 들어줄 여호나답만 보이고 이기고 또 이기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겸손하기가 불가능하다.
내가 배반당했다가 아니라 그 사건 통해서 거룩해지는 것이다.
하느님이 100프로 옳으시면 내가 틀렸구나가 진실한 것이다. 내가 언제나 누구에게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진실해보이는 걸로 만족하면 안된다. 하느님 앞에서 진실해야 한다.
적용질문 : 가족과 지체에게 내 마음은 진실합니까? 하느님을 향해서는 어떻습니까? 어떤 일에 열심을 내고 있나요?
그 열심은 성공 때문입니까, 구원 때문입니까? 내가 항상 틀렸다고 생각합니까?
3. 내 계책에 의존하면 안된다.
예후는 이제 할 일을 다했고 왕노릇을 해도 되는데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합의 집과 바알은 하나이다. 예후가 아합의 집을 진멸였고 예후가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합보다 더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느님 앞에 진실한 사람은 계책을 쓸 수가 없다. 하느님 앞에서 진실하다고 하면서 계책을 사용한다.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척결하기 위한 계책을 쓰는데 이것은 북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돌아오길 바라는 여호나답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계책은 진실함이 없는 하느님을 찾지도 기도하지도 않은 자기 열심이라고 한다.
스스로 속이면서 욕심을 연료삼아 열심을 내는 것은 결국 속임수로 끝난다.
예후의 끝도 속임수와 계책인것도 정해진 것이다.
여호나답또한 이 계책에 동조한 것은 목적이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물어야 한다. 내 계책에 의존하면 안된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계획을 의지하면 안된다. 사소한 일도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아야한다.
적용질문 : 계책이 통해서 좋아했던 일이 있습니까? 아직도 자랑스럽습니까, 이제는 부끄럽습니까? 반대로 계책이 막혀서 회개한 일이 있습니까?
내 열심과 계책을 내려놓고 목장에 물으며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목장기도제목
강민
- 생색 내려놓고 사람을 진실되게 대할 수 있도록
- 이직준비 잘 할 수 있도록
- 이력서 시험관리 잘 할 수 있도록
- 결혼에 관하여 말씀대로 잘 묻어갈 수 있도록
- 동생가족 영혼구원 받을 수 있도록
세형
- 신교제 신결혼
- 양교 끝까지 잘 수료 할 수 있도록
- 주일성소 할 수 있는 직장 구할 수 있도록
- 부모님건강
- 동생 우울증 잘 극복 할 수 있도록
민교
- 어머니 건강
- 진로 인도 받을 수 있도록
- adhd 치료 잘 받을수 있도록
승현
- 말씀보고 잘 회개 할 수 있도록
- 마음의 평안 찾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