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 편지가 이르거든 ( 왕하 10 : 1 - 11 )
학창시절 때 펜팔이 유행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이었던 시기였기에 미국의 청소년들과 펜팔하면 영어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한다. 만약 공부도 잘하는 아이돌 같은 오빠에게 그런 편지를 받았다면 저는 공부고 뭐고 그 쪽으로 올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언니의 형부는 언니와 연애하면서 만나고 집에만 들어오면 영어로 쓴 연애편지가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는 불행하게도 추억할 그런 일이 별로 없다. 지나고보니 전적인 보호하심 같다. 요즘 그런 편지는 자취를 감추었다. 옛날에는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예후는 종류가 다른 간담이 서늘한 편지를 보낸다.ㅇ ㅣ스르엘에서 사마리아로 편지 두통을 보낸다.이 편지 두통으로 아합의 집이 아예 끝난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는 소식과 사건이 갑자기 찾아오는 일이 많다. 이렇게 이 편지가 이르거든! 하는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1. 두려워하며 생각해야 합니다.
1절
예후가 그야말로 미친듯이 칼을 휘두른다. 아합의 집 모든 악의 끝판왕인 이세벨도, 남유다왕도 북이스라엘 왕도 끝이 났다. 하지만 아합의집에 70명의 아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예후가 군대를 장악했어도 사마리아를 직접 공격해서 점령하는 일은 매우 부담스러우나 정통성을 얻기 위해서 이 일은 예후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예후는 군대 대신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수신자는 이스르엘 귀족들, 아합의 왕자들을 교육하는 자들 즉 북이스라엘의 실권자들이다. 이스르엘은 예후가 머물고 있는 성이다. 말하자면 부산에 있는 예후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수신자가 의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르엘 장로와 귀족들 입장에 있으면 예후의 편지공세는 기가막힌 공세이다. 십여년 전 이세벨이 아합이름으로 보낸 편지를 받은 귀족들이 다시 등장해서 예후의 편지를 받을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그때 편지 내용이 이스르엘에 사는 나봇을 죽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 한통으로 아합의 집 악에 동조했다. 이 편지를 배달하는 사람이 그때도 이세벨의 총애를 받았던 예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사람이 미친듯이 전차를 몰기로 유명했으니 편지를 빨리 가지고 가서 전했을 것 같다. 그런데 왕도 죽이고 이세벨도 죽인 자의 편지가 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열어봤을 것이다. 죄지은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떨린다.
2-3절
아합 집을 위해서 예후 자신과 싸우자 라는 편지 내용이 나온다. 너희 주의 아들들이라고 했으니 하나님 믿는 자들 아니겠는가?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너희와 함께 있다고 한다.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는 최고의 교육을 잘받고 있는 바른 생활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교육을 다 받고 혈통 지위 재산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중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해서 왕으로 세우고 나와 한번 총력을 다해 덤비라고 얘기한다. 이 얘기를 듣고 지도자들, 스승님들께서 심히 두려워한다. 이스르엘에서 이세벨이 아합의 이름으로 쓴 편지를 받았을 때는 두렵기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나봇이 전혀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예후의 편지를 받으니 무서워서 벌벌 떤다. 사실 아합의 신하이므로 역적 예후와 싸우는게 맞는데도 예후가 너무 무서우니 덜덜 떨린다. 자기들의 밥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십여년전 이세벨도 예후도 사실 귀족들, 장로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원오브뎀이 아닌 원탑 금수저이다. 그런데 이런 엘리트들이 악한 이세벨 밑에서 꼼짝도 못한다. 자기 동료를 죽이고 또 다른 실세 예후 앞에서 벌벌 떨면서 마땅히 해야할 저항도 못한다. 조금 자기보다 센 강자가 나타나면 꼼짝 못한다. 만약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면 두려워할것을 거부한다면 나는 강하다 외치는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악을 봐야한다.
4-5절
이 모든 사람들이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고 납작 엎드린다. 이 시대의 금송아지 숭배 즉 물질우상 성공우상이 판을 치니 그때 교육의 메카 사마리아에서 왕자 교육을 받은 정예 에이스들 중 이들 중에 어질고 정직한 자가 70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그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선생님들이다. 자기네들이 가르치고 여기는 없다고 한다. 함께 있는 중에 스승이 제자들을 다 죽인다. 그럼 지금까지 무슨 교육을 했을까?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 없는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는 것일까? 세속사에서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치니 결국은 나 살고 너죽는 이기심을 가르치지 않겠는가? 입으로는 좋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과 귀족들이 보여주는게 오직 나 살고 너 죽이는 것이다. 금세 제자들을 다 죽이고 나봇을 죽였다. 이세벨 밑에서 꼼짝 못하고 예후 밑에서 꼼짝 못한다. 그러고 무슨 교육을 할까? 그러니 뽑고 뽑힌 로얄 엘리트 왕자 중 어질고 정직한 왕자가 없다는 것은 그 시대의 결론이다. 그런데 1,2,3대를 거쳐 잘살고 있으니 우리는 그런 집을, 귀족을 부러워한다. 탁상공론으로 공부를 아무리 해도 삶으로 부딪혀보지 않으면 실제 생활에서 답이 안 나온다. 다들 하버드출신이었을 것이다. 오늘 교육하는 자, 양육하는 자 11절동안 3번이나 나온다. 오직 내가 잘 사는 것 이것이 이 시대의 풍조이다.
세종대의 김종은 교수의 6월에 발표된 따끈따끈한 논문에 부유층 사교육비 지출 감소가 저소득층 사교육비 감소로 이어졌는데 사람들이 실제로 비교하는지를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가 여부를 발표했다. 김교수는 각 지자체가 청소년의 건강권,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원시간을 제한한 조례를 도입했을 때 그 조례가 고소득층의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들의 사교육비가 줄어드니 저소득층에서도 같이 사교육비를 줄였다고 한다. 소득대비 저소득층에서는 사교육비의 63%, 부유층은 37%줄이는 효과를 가지고 왔다. 그러니 출산율도 모든 소득층에서 증가했고 저소득층에서 높았다고 한다. 저소득층 무자녀 가정도 5.2-> 0.2%로 감소했다고 한다. 이게 왜 그러냐하면 비슷한 환경이라면 아무리 가난해도 잘할 놈들은 잘한다 그게 공평한 것이라는 것이다. 은사가 각각 다른데 동물도 각자 다 은사가 있는데 한쪽에서 돈으로 바르게 되면 내 아이도 똑같이 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비교의식이 맹렬하게 올라오기에 똑같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비교에 민감한 나라가 중국과 한국이라고 한다. 우리들교회 구속사는 가치관이 바뀌기에 어려서부터 세속사가 아닌 구속사를 계속 넣어주고 있으니 저절로 내가 비교하지 않아야겠다 이 생각이 드니 결혼율, 출산율이 높다. 우리들교회도 데이터를 내봐야할 것 같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교수의 강의가 유튜브에 떴다. 중국학생보고 무엇을 차별하냐고 물어보니 가난하고 지방에서 온 아이들을 차별한다고 가책도 없이 대답을 했다. 중국의 지방 아이들이 차별을 받으며 차별받지 않으려고 이를 갈며 공부를 하니 스펙이 다고 예수가 전혀 없다. 그렇게 출세한 그들은 또 그대로 차별을 한다. 금송아지 숭배는 이 시대와 다를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공부를 해서 세계10위권에 들어간 한국은 교육열이 최고이고 돈이 최고라고 부르짖는다. 그런데 그것으로 오늘같이 나약하고 부정직하고 어질지 못한 아합의 70명의 왕자를 키워내는 나라가 됐다. 인정하십니까?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선생들은 예후보고 당신이 보기 좋은대로 행하세요 하며 자기의 생사를 이세벨에 맡겼다가 금세 예후에게 맡긴다. 그래서 일단 죽음을 면한다. 조금있다가 죽을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여러분 내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과 싸우는게 무서우세요? 이스르엘 엘리트들은 나봇을 죽이는 것보다 자기가 죽는 것이 더 무서웠다. 두려워할줄 모르는 사람은 생각도 잘 못한다. 탱크처럼 돌격하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두려울줄 아는 사람은 멈출줄은 안다. 그러나 너무 두려움에 빠지면 씽크해서 가라앉는다. 하지만 두려워할때 두려워해야 띵크할 수 있다. 두려움이 없는게 좋은 것만은 없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365명령이 나오지만 두려워하라도 10번 이상 나온다. 주님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다.그런데 우리는 두려움도 고장이 났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이 두렵지 않은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늘 세상에서 심히 두려워 떨린다. 병때문에 아들때문에 돈때문에 떤다. 결국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특별히 자기애성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안 두렵고 내가 당할 것들만 두려워한다. 무슨일을 당해도 두려움이 없다. 따라서 예후의 편지처럼 나를 두렵게 하는 소식이 오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내가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멈춰 세우시는 일이다. 두려운 편지가 이르거든 원망하지 마시고 말씀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두려워하지않고 확신하며 밀어붙였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무서워하지 않은지, 내가 납작 엎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적용 나를 심히 두렵게 한 소식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그것이 비교에서부터 비롯된 것을 인지합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고 있습니까?
어떤 부목자님이 자기는 말씀이 들려지고 곤고한 사건은 아들 사건인데 아들이 중학교 시절부터 각종 사고를 치고 구치소에 가게 됐는데 절반정도의 시간이 흐르니 처음에는 아들의 살려달라는 탄식에 마음이 아팠고 괴로웠지만 지금 내 환경과 처지에는 아들을 뺄 방법도 없지만 이번일로 아들이 지난날의 잘못을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믿는 우리는 구원의 관점으로 이런 시간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긴다, 아들이 주님을 만나 담대하게 나아가기를 소망하며 나의 본분을 항상 가족에게 비추며 구원과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가겠다고 나누셨다.
2. 회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6절
사마라이에 있는 이스르엘 귀족들과 기타 지도자들의 항복 편지를 받은 예후는 두번째 편지를 보낸다. 앞서 보낸 편지가 사마리아 전서라면 지금 보낸 편지는 사마리아 후서인가요? 이번에는 내 편이 되어 아합의 아들들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한다. 왕족을 다 죽이라고 한다. 그때 나봇을 죽인 귀족들은 양심의 가책이 없었을까? 애써 외면하고 잊으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사마리아로 이사온 것 아닐까? 아합도 하나님을 믿지만 나봇의 포도원은 너무 갖고 싶어했다.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는 산수갑산 가고 싶다. 아들이 잘됐으면 좋겠고 승진이 됐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믿어도 불법을 행해서라도 하고 싶다. 그러니 이제 왕자들을 다 죽이라는 편지가 이르렀을때 그동안의 죄책감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 죄악을 기억하고 회개할 때인데 그들은 이 기회를 또 놓친다. 이세벨과 똑같다.
6-7절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이라고 한다.이 세상에 누구를 믿겠는가? 나랑 같이 있다가 나를 죽인다. 내가 너 때문에 죽으면 안되니까 배반한다.
70명이 들어갈 광주리면 얼마나 커야할까? 그런 광주리도 준비했다. 나봇을 죽일때와 똑같이 편지가 시키는대로 죽였다. 십여년전 저질렀던 잘못을 그대로 반복한다.
우리가 살인, 강도를 했어도 회개하면 그 회개를 믿어줘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또 그 잘못을 행한다. 그래서 여러분은 바람피는 남편을 예수 믿게 해야한다. 공동체에 데리고 와야한다. 사람은 안 변한다. 어떤 경우도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최고의 권세자, 지도층들이 이런다. 나봇사건을 다 알고 있으나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때도 동료를 돌로 쳐죽였고 방금전까지 섬기던 왕자와 왕손들을 칼로 잔인하게 죽인다. 엘리트, 지도자들이 이런일을 그냥 저지른다. 믿을 사람 정말 없다. 학벌이 무슨 소용인가? 이 세상교육은 이렇게 죽이고 죽이는 교육이다. 머리 좋아서 율법을 외워도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교회 큐티하는 아이들이 20년 보니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 이것만 해도 최고의 교육이다. 물론 이들은 그때와 달리 예후편에 서서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일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일뿐 말씀듣고 순종한게 아니라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조차 선하게 사용하셨다. 이 귀족들은 오직 자기가 누리는 것을 지키기 위해 이세벨, 예후를 두려워한다. 이것이 경외함이 아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하지만 욕심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두려워한 것이다.예수도 없이 내게 잘하는 사람 믿으면 안된다. 회사에 평생있다가 은퇴하면 동료가 안 된다. 나한테 결혼식 청첩장 보내서 할 수 없이 가줬떠니 그 다음에 인사 한 번 없다고. 그러니 싹 끊어요 그냥. 이 세상은 이기적이고 예쑤님잉 ㅣ타적이기에 이타적인 공동체만이 지체가 된다. 그러니 목장에 들어가라는 것은 여러분들의 노후보장이다. 보험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두려워했지만 속으로는 생색이 얼마나 많이 났겠는가? 여러분 생색은 반드시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 쏟아내게 되어있다. 그래서 그 약함은 악함으로 이어져서 나봇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다. 그 잔인함으로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아합의 자식들을 다 죽인다. 성경이 정치교과서이다. 이것이 회개없는 삶의 결론이다. 우리가 정치인들을 욕하지만 그들의 수준은 딱 국민의 수준이고 우리의 자화상이다. 욕할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을 보고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가정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보기 싫은 사람 안 보면 그만일수 있지만 싫은 사람일수록 더 잘보이고 더 거슬린다. 그 싫은 사람에 사로잡혀 사는 것, 판단하고 욕하고 미워할수록 그 싫은 사람의 노예가 된다.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은 오직 회개밖에 없다. 내 모습 보라고 보내신 편지이다. 미운 사람이 곧 내 자신이고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로하시고 경고하시고를 알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거절하든 말든지 우리는 예수 믿으라고 해야한다. 무서운 소식을 담은 편지같은 사건이 갑자기 이르거든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내 약함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며 생각해야 한다.거기서 멈추지 말고 회개까지 나아가야 한다. 주님은 왜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지 않고 수고스러운 인생에 머물게 하실까?
베드로전서 3장 9절 - 내가 회개할 때까지 주님이 기다리시는 것이다. 내가 고집부리고 버틸수록 주님이 인내하신다. 우리가 그래서 오늘 회개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고집부리고 버틸수록 부모가 인내하는 것이다. 사과는 미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해야한다. 가족과 지체에게 사과할 것이 있으면 바로 하시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바로 회개해서 인생 최고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요즘 너무 미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에게 비친 내 미운 모습은 없습니까?
회개하기를 미루며 반복하는 죄악은 무엇입니까?
어떤 목자님이 해외 나가서 물건 사는게 중독이라고 하셨다. 해외에서 가져온 물품이 많기에 전시도 했고 퇴직후 박물관을 만들 생각으로 땅도 사놓았다고 한다. 은퇴준비를 그렇게 다 했는데 당시 모든 대화 내용을 녹음한 직원때문에 성희롱으로 감사를 받는 사건으로 이어져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렸다고 한다. 많이 억울하고 힘드셨다고 한다.그런데 저희 아내는 그 일이 너무 잘됐다고 그 일때문에 지금 당신이 목자하고 있자나요! 그 말이 또 맞다고 인정하셨다. 여직원이 편지를 잘 보냈다. 이것을 나누니 옆에서 억울할만하시네요, 이세벨을 던진게 내시잖아요, 가장 믿었던 내시가 던졌따고 하는데 그분이 미투하신게 이세벨이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던졌구나 생각하세요, 가족들 말씀하신 것처럼 그곳에 계시면 치장이나 하시고 쇼핑이나 하셨을텐데 이곳에 오셔서 이세벨을 내던지고 살리는 역할을 잘 하신다고 그 여직원이 아주 잘했다고 해석해주셨다.
이게 아합의 왕자들보다 낫다. 자기들끼리 로타리 클럽하고 놀다가 망했다. 사실 목자가 문제를 해결할 일은 없다. 목자에게도 말씀이 들어가야한다. 그냥 목자가 문제있는 부부 모두 때마다 어떻게 다 찾아가겠는가? 그런데 목자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각자 자리가 있다. 베헤못같은 하마도, 들소도 타조도 하나님이 창조하셔으나 우리는 그들을 이기지 못한다. 풀만 먹은 소도 이기지 못한다. 왜 그들을 창조하셨는지 이해가 안된다. 말은 이기거나 지거나 전쟁에 나가기 위해서 늘 서있고 잠도 안잔다. 말은 서서 잠을 잔다. 우리는 서서 잠자는게 이해가 안된다. 그러니 좋은 사람인지 나쁜사람인지 모르고 생색내지 않고 나간다. 그냥 자기 자리 지키는 것이 최고의 사람 살리는 일이다. 반드시 가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재혼과 이혼을 밥먹듯이 하면 안 된다. 결혼예비학교 청년들 반드시 가서 들어야 한다. 작년 목자들 앙케이트 조사 결과를 보니 결혼 전 고르고 고르고 또 골라도 결혼하면 그놈이 그놈이다. 그년이 그년이다, 그러니까 결혼전과 후에 너무 달랐던 배우자 모습은 생각외로 너무 효자여서 장점으로 알았는데 결혼하고 보니 단점이더라, 잡아놓은 물고기 밥 안준다고 사랑표현도 안하고 그렇게 더러워서 안 씻는다고, 그렇게 큐티생활하는 척하더니 결혼하고 나선 큐티도 안하고 식습관도 배달의 민족만 좋아하고 맨얼굴을 보니 누구니 너 이렇게 된다고 했다. 그래도 칼끝의 신중함으로 하고 결혼 후의 목적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행복이 아닌 거룩임을 잊지 말고 청년부 예비부부들에게 한 마디 말은 부부 목장에 꼭 꼭 꼭 나가는 것이 살길이다라고 해주셨다. 별 인생이 없다. 아셨나요? 그런데 이 세상사람들은 옳고 그름으로 있는대로 침소봉대 한다. 인간이 죄인에서 출발하지 않으니 지역감정, 진영논리가 우리들교회에도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이루어집니다.
8-9절
이스르엘 귀족들이 아합 자손의 머리를 가지고 이스르엘로 왔다. 이 나쁜 지도자들님께서 예후는 왕조가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두 무더기로 쌓아서 예후에게 절대 복종하게 했다. 그리고 아침에 나가서 이 끔찍한 짓을 벌인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 이스르엘 백성도 아니고 자신도 아닌데 누구냐고 한다. 지도자들이 이러는 것이다. 귀족들의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시키는대로 주인을 배신하고 그 집 자손을 죽이고 증거까지 가져왔는데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나는 시킨 적 없다고 한다.왕자들도 자기 손안대고 그들의 스승이 죽이게 했고 이세벨도 내시보고 죽이라고 했다. 이걸보고 세상이 너무 무섭다 이래야할까? 우리는 나봇처럼 순교한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똑같이 죽기 때문이다. 의롭게 죽어야지 이렇게 죽으면 2천년동안 이 사람들의 한 일이 나타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이제 한 명도 안 남기고 다 죽인다.
10-11절
금세 다 죽었다. 성경을 이렇게 봐야지 여러분들이 모든 사회생활을 담대하게 잘할 수 있다. 당황한 귀족들을 포함한 뭇백성들에게 예후는 이제는 모두 알라고 한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아 ~ 그런가보다 흘려보내지말고 내가 알아야 할 게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어떤 말씀이 이루어졌는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 아합에게 속한 남자는 다 멸하신다는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예후가 지금 하나님의 사자로서 악한 자의 손에 심판을 한다. 그 역할로 쓰인다. 그리고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있는 자들, 귀족들, 신뢰받는 자들, 제사장들, 70명의 머리를 들고 온 교육하는 자들 다 죽었다. 그 심판을 예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루셨다고 하니 말씀대로 다 죽었다. 그 말씀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스르에루귀족들에게 불현듯 임한 편지는 그들이 회개할 마지막 기회였다. 두려워하든 두려워하지 않았든 죽었을 것이다. 그들이 살길은 회개였으나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으니 회개하지 않았다. 나봇은 담대하게 죽었으나 이스르엘 귀족들은 두려워떨다가 예후에게 죽임당한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면 안된다.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며 구속사를 살아야 한다.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이다. 모든 일은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전부 이루어진다. 평소 말씀에는 하나도 관심없이 있다가 일이 생기면 살길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은 어리석다. 물론 그렇게라도 말씀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좋지만 미리들어두면 두려워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해석이 된다. 그래서 목장에서 대신 말해주고 해석해주고 말씀을 입에 딱딱 넣어준다. 보험은 그렇게 들어두면서 영생보험은 안 드시나요? 목장만한 보험은 없다. 전부 목장에 나가셔서 여러분에게 이르는 편지를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적용 기대했다가 뒤통수 맞은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뤄졌다는 것이 믿어지나요? 이번 주 매일 큐티로 예방주사 잘 맞겠습니까?
우리의 부족함을 보는 곳이 목장임을 아십니까?
한 평원님이 나누셨다. 우리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마음이 딱 닫히니 옳은 소리 하는게 조심스럽다. 공감이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옳은 소리를 하면 마음이 딱 닫히고 떠난다. 아줌마는 말을 많이 하는데 할머니 상담을 하라고 한다. 우리 손주 그랬어~ 하며 토닥여주신다. 아줌마 이야기는 잔소리지만 할머니는 받아주는 할머니니 그렇게 들어주고 받아주면 본인이 이런 과정만으로도 치료되는 것이 있다, 그러니 아줌마 상담이 아닌 할머니 상담이 훨씬 효과가 좋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알게 된다고 했다. 어떤 일으든 그럴 수 있어 붙어만 가라고 얘기해주세요. 그런데 한부모가정은 할머니 상담이 한계가 있는데 무서운 사람이 없으면 절대로 쓴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무조건 쓴소리만 하면 아이에게 상처를 주니 이것을 분별해야 한다고 한다. 구원의확신이 없으면 분별이 안되니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큐티하고 양육을 받으면 된다고 한다. 여러분이 달라지는 것은 목자가 인도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편지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붙어만 있으면 된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때까지 좌충우돌하지만 우리는 그게 다 하나님의 편지라고 생각하고 잘 들어주고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붙어만 있으면 최고의 편지가 될 줄 믿습니다.
<04.28 기도제목>
우지현
- 회사 일을 잘 마무리하고 부모님과 여행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 일이 많아서 하기 싫은 마음 잡아주시길
- 큐티하면서 신결혼 인도해주시길
- 아빠의 구원을 위해
유진
- 이번 한주도 회사 잘 다니고 잘 적응하길
- 내 죄를 보는 큐티할 수 있길
- 이타적인 마음이 생기고 생색이 줄 수 있도록
- 신교제 신결혼 잘할 수 있도록
지원
-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 집을 잘 구할 수 있도록
은미
- 이타적인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 신교제의 만남과 환경을 열어주시기를
<05.05 기도제목>
지원
1. 매일 큐티와 기도할 수 있길
2. 집 계약할 수 있게, 대출 원활하게 잘 될 수 있길
3. 주례 목사님 잘 구할 수 있도록
유진
1. 엄마 말로부터 분리 잘하고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2. 한주도 직장에 잘 적응하길
3. 신교제 신결혼 과정 온전히 주님께 맡기길
4. 동생 2차시험까지 붙들어주시길, 가족이 평안하길
은미
1. 내 계략 세우지않고 하나님의 계획 신뢰할 수 있도록
2.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배우자를 찾을 수 있도록
슬아
- 지금은 야단 안맞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하는데 지금 이 상태 유지하고 더 노력할 수 있도록
-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좋아하는 노래와 찬양으로 풀 수 있도록
- 급여나오면 계획 세워서 조절해서 잘 쓸수 있도록
- 우리가족 건강과 구원
- 신교제 신결혼
그림
- 건강 지켜주시기를...(체력도....)
- 금요일에 필기시험 잘 보고 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