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5
말씀: 열왕기하 10장 12-19절
제목: 네 마음이 진실하냐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
꽃도 예쁘다 하면 예뻐진다는 말을 남편에게 하면서 당신 멋지다고 하니, 남편도 영혼없이 당신도 예뻐라고 했다 합니다. 주위에서 남편에게 이런 저런 선물 받았다 라고 하면 남편은 내가 선물이야 했다고 합니다. 아들은 아빠에게 꽃을 주면서 엄마에게 무릎꿇고 주라고 했다 합니다. 3명 중 누가 가장 진실할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서야합니다. 네 마음도 진실하냐의 질문에 어떻게 해야 진실 할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1. 내가 사로 잡힌 것을 봐야 합니다.
12-13절)
이스르엘에서 아합의 집에 속한 모든 사람을 죽인 사람 예후는 이제 사마리아로 갑니다. 입성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길에 휴게소 가 있었습니다. 그 휴게소의 집은 목자가 양털 깎는 집이었습니다. 하필 그 시간에 아하시야의 조카들이 있었습니다. 어린 조카들을 아하시야가 돌봤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에 영향을 이 조카들도 받았습니다. 이 조카들도 육적으로는 다윗의 집 자손들인데, 영적으로는 아합의 집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마다 외가집에 놀러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이스르엘로 향하는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가다가 잠깐 쉬려고 목자가 양털깎는 집 휴게소에 들린 것입니다.
누구냐?는 예후의 질문에 아합 집의 태후 이세벨의 집안이니 건들지 말라고 답합니다. 틈만 나면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한 사람의 불신결혼의 영향력이 이렇게 대단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소 이름이 목자가 양털 깎는 집입니다. 사실은 목자가 양을 묶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아하시야는 도망을 가도 정원의 집 길로 도망했습니다. 죽는 순간 까지 저 푸른 초원위의 아합의 집을 찾았는데, 조카도 똑같이 아합의 집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멍에를 금면류관으로 생각하며 묶여 있는 것입니다.
14절)
예후는 산채로 잡으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죽일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그런데 42명 전부를 웅덩이 옆에서 다 죽입니다. 이는 선지자 엘리사를 조롱하다가 곰에게 죽임을 당한 우상숭배에 오염된 젊은이들의 수와 동일 합니다.
아하시야의 조카들은 사로잡힐 때 부터 죽기 직전까지 이 짧은 시간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을 것입니다. 육이 사로 잡히는 사건을 당하면 내가 사로잡혀 있는 죄악은 뭔지 돌아봐야 하는데, 이들은 그런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다윗의 집이 아닌 아합의 집에서 찾고 있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듣겠습니까? 말씀을 듣는 구조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귀를 막고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예루살렘에 사는 왕족인데, 지나가는 선지자,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내가 이렇게 태어난걸 어쩌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후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길은 다윗의 길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길이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열매가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서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게 마음이 진실한 것이고, 바른 것이고, 다윗의 길을 가는 것인데, 아하시야나 조카들 모두 다윗의 길을 떠나 가족신화의 아합 집 길로 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향해 굽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다 군중심리가 있습니다. 모든 왕자들이 똑같이 움직이니 옳은 줄 알고 다 같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렇습니다. 사로잡힌줄도 모르고 가는 죄악이 있습니다. 거짓이 그렇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생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다 사로잡힌 채 태어납니다. 이시대는 더 그렇습니다. 내가 그렇게 태어난걸 어떻게하냐며 이를 선으로 보고 보호해 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합의 집길이고, 하나도 남김 없이 심판을 받으러 가는 길인 것입니다.
내 영을 사로잡고 있는, 구덩이에 빠뜨리는 죄를 보라고 이 일이 온 것입니다. 불안과 여러 중독에 사로 잡혀 계신가요?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살리시려고, 굽은 길에서 바른 길로 오게 하시려고 거짓을 떠나 진실로 오게 하시려고 딱 맞게 주신 환경인줄 믿어야 합니다. 내가 태어날 때 부터 죄악에 사로잡힌 존재임을 볼때, 하나님이 오셔서 벗어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Q. 보통 나를 누구라고 소개하나요? 누구라고 소개하고 싶나요?
어떤 상황에 사로잡혀있습니까?
내가 보고 인정해야 할 나를 사로잡고 있는 죄악은 무엇입니까?
2. 사람만 아니라 하나님께 진실해야 합니다.
15절)
예후가 다음으로 우연히 만난 사람은 여호나답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처가 낳은 여섯 아들중 4째가 미디안인데, 그의 자녀입니다. 이방 출신이지만 모세와 연결이 되고, 갈렙 가문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자기 주제가 이방인이 었던 사람들은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의 정체성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지켜왔을 것입니다. 이삭의 후예로 떨어져나간 에서도 있는데, 그두라의 후손이라도 돌아온 택자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나답은 자기 후손들이 지켜야할 특별한 가훈을 예레미야 35장에 남깁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며 추구하는 삶을 살지 말고 구별된 삶을 살라고 합니다. 왜 여호나답은 이런 가훈을 남기고, 자손들은 이를 지킬까요? 성경에서는 말하진 않지만 오늘 본문이 이에 대한 답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호나답은 엘리야도 엘리사도 봤지만 끊어지지 않는 아합의 집과 온나라가 우상숭배하는 악으로 덮힌 것을 봤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아합의 집을 심판하실까 보며 기다리던 여호나답에게 예후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 한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가 마중까지 나간 것입니다.
그동안 아합집의 관점에서 보면 여호나답은 루저고 방해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던 예후가 바라크의 복을 빌어 줍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예후의 질문이 중요합니다. 여호나답을 향한 자기 마음이 진실 한 것처럼 여호나답도 진실한지 묻습니다. 물론 예후의 질문은 전략적인 것이었습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만, 자기 실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후는 뼛속 깊게 아합가문의 사람인 것입니다. 남유다에는 영적으로 뼈대있는 믿음있는 한사람 여호나답이 있는데, 그사람이 자기를 보러 문안하러 찾아온 것입니다. 여호나답이 있다면 개혁이 정당화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금세 여호나답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예후의 질문은 여호나답에게 심각하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인이 나라를 위해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예후를 통해 네 마음이 진실하냐 묻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이 질문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 까요? 순교한 선지자 들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사마리아 수도에 살며 마음으로만 이리저리 판단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네 마음이 진실하냐는 질문이 여호나답을 새롭게 일깨웠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여호나답이 후손들에게 말하는게 나오지만. 죄악에 맞서는 일에 마음은 헌신하지만, 몸은 헌신 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후손들에게 200년 넘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후는 이런 마음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것입니다.
16-17절)
예후가 정점에 있는데, 나오는 단어가 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는 단어는 딱 2명에게 쓰였는데, 한명은 예후이고, 한명은 엘리야인 것입니다. 둘의 차이는 엘리야는 인생의 가장 고생의 때에 하나님께 하소연 하듯 말하지만 예후는 가장 정점의 때에 친구 여호나답에게 자랑하는 듯 말하는 것입니다. 예후의 이기고 또 이기는 열심조차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아합집 사람을 진멸하는데 사용 하십니다.
여호나답과 예후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여호나답은 스스로 진실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음을 졸이며 살았는데, 네 마음이 진실하냐는 그 질문을 하나님이 하신 말로 듣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예후는 그 시선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죽여야할 요람, 아하시야, 이세벨만 보이고, 자기 편드는 여호나답만 보입니다.
Q. 어떤 일에 열심을 내고 있나요? 그 열심은 성공 때문입니까? 구원 때문입니까?
내가 항상 틀렸다고 생각합니까?
3. 내 계책에 의존하면 안됩니다.
18-19절)
예후의 혁명이 완성 됩니다. 아합에게 속한 사람들을 다 정리 합니다. 이제는 왕노릇 하며 대접 받아도 되는데,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에 사는 성도들을 모아놓고 자기가 아합보다 바알을 더 섬기겠다고 합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바알숭배자들은 이제 우리 순서다 하며 걱정했을 텐데, 갑자기 예후가 자기가 더 섬길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제사를 드릴 테니 모든 선지자, 제사장들 다 오라고 오지 않으면 살려들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알 숭배자들은 경사났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예후의 계책이라는 것입니다. 계책이라는 것은 구부러졌다는 뜻이 있습니다. 계책을 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 할 수 없습니다. 바알과 척결은 예후가 받은 사명에는 없지만 여호나답이 건 드라이브 였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하나님께 돌아오길 바라는 한 사람이 여호나답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알교를 척결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후는 이 바알교를 척결하면서 기도했다는 말이하나도 없습니다. 너무나 완벽한 전략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진실함이 없는 계책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는 데,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무서운 인본적인 열심입니다. 열심의 끝은 속임수입니다. 스스로 속이며 욕심을 연료 삼아 불태우는 열심은 결국 속임수로 끝이 납니다. 예후의 끝이 속임수와 계책으로 끝나는 것은 정해진 일입니다. 여호나답도 아직 분별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바알교를 없앤다는 목적이 좋아서 수단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이 무너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니 마음도 진실하냐는 질문에 분량이 찰때까지 회개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물어야 합니다. 내 계책에 의존하면 안됩니다. 내 머릿속의 작전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펴고 공동체에 물어야 합니다. 뭘 물어? 하는 생각이 영적 진실성을 좀먹어 가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도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Q. 계책이 통해서 좋아했던 일이 있습니까? 아직도 자랑스럽습니까, 이제는 부끄럽습니까?
반대로 계책이 막혀서 회개한 일이 있습니까?
내 열심과 계책을 내려 놓고 목장에 물으며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 A
- 사람에게만 의지하고 싶어했던 것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 가족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아버님 사업의 지혜와 만남의 축복을 부어주시길
- 둘째동생 졸업논문 마무리 잘하고 한국 들어올 수 있도록, 막내동생 훈련소 건강하게 마치고 예비하신대로 자대배치 잘 받을 수 있도록
- 신결혼 준비 잘 해갈 수 있도록
- 진로의 길 열어주셔서 사명 잘 붙들고 갈 수 있도록
* B
- 매일 큐티할 수 있는 시간과 의지 주시기를
- 그림 공부하는데 집중 잘 하고 진로에 대해서 불안해 하지 않도록
- 아버님 건강과 구원을 위해서
- 독립하는 거 어머님께 말씀 드리려고 하는데 문제가 잘 풀릴 수 있기를
- 산교제를 위해서
* C
- 하나님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 프로젝트와 공부에 기름을 부어주시기를
- 식단관리가 안 되는데 식단관리와 운동 잘 할 수 있도록
- 부모님이 싸우시면 동생이랑 아버님이 집에서 나가시는데 가족들을 위해서
- 할머니와 삼촌의 교회를 위해서
- 가족이 평안할 수 있도록
- 신교제에 대한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 D
- 은사를 찾고 진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 가족 구원에 대한 마음이 생길 수 있기를
* E
- 진로와 신교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도 드리고 하나님께 맡기며 갈 수 있도록
- 가족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 이번주도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며 규칙적으로 시간 보낼 수 있도록
* F
- 매일 큐티하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 공부와 학교생활에 기름 부어주시기를
- 앞으로 목장에 잘 나누며 갈 수 있기를
- 믿음생활 잘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