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벨을 내려던지라
2024년 04월 14일 일요일 열왕기하 9:30-37
김양재 담임 목사님
인간은 무언가를 새롭게 얻는 기쁨 보다는 잃어버리는 것을 잃는 것에 더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며느리를 새로 얻는 기쁨 보다 아들을 잃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에 고부갈등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내새끼는 가치가 크디고 생각하기 때문에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피하고 싶은 손실은 무엇인가? 거룩을 위해 잃어버려야 하는 것은 깨긋하게 잃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악의 진원지 아합의 집길 근원의 이세벨이 심판을 받아 내려던저 죽는다. 내 안에 이세벨을 내려던지기 위해서는
1.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해야 합니다.
예후가 모든일을 끝내고 이스르엘로 돌아왔다. 그곳에 이세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미친듯이 강한 예후를 통해 이세벨을 심판하러 하신다. 이세벨은 이웃나라 공주로서 이스라엘 왕자 아합과 결혼하여 아들 둘이나 낳고 둘 모두를 왕으로 만들고 딸은 왕에게 시집을 보냈다. 이세벨은 죽는 그 순간까지 왕에게 둘러쌓안 왕중에 왕이었다. 이세벨은 이스르엘 궁궐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들었다. 남편은 전사하고, 아들과 외손주도 죽고, 이제는 자신의 차례인줄 다 알았을 것이다. 이세벨은 엘리야,엘라사의 말씀을 듣고 또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이 얼마나 이세벨에게 회개할 기홰를 많이 주셨다. 아합이 회개하자 그 때에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도 보았는데, 회개가 안되는 것이다. 회개가 되는 것이 얼마나 기적인가? 그런데 이세벨이 예후를 기다리며 한 것은 그처 죽기 직전에 왕비마마의 화려한 치장이엇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에게 바알 숭배를 퍼트리고, 이스라엘을 영육간에 무너지게 한 장본인이다. 예후를 보고도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온 평안하냐고 묻는다. 평안하지 못하니 평안을 부르짖는다. 시므리온은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지만 백성이 왕권에 굴복하지 않아 7일만에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러니 예후에게 너가 지금 성공할 것 같지만 너 그거 7일안에 다 끝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엘리사와 엘리야는 그저 잔소리만 하게 하시고, 아합과 이세벨 등 모든 악한 자들은 그저 악한자가 처리하게 하신다. 인간의 악함중 악함은 하나님이 두려운줄도 모르는 것이다. 이세벨이 그렇다. 하나님이 두려운줄 모르는 사람의 특징은 끝까지 겉치장에 신경쓴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정점은 죽음이다. 내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때가 다가오는 구나 해야 하는 것이다. 이세벨이 이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치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치장에 잘 넘어가기 때문에 이렇게 포장하고 치장하는 것이다. 내 머리, 내 눈보다 크고 좋은 것을 그리며, 내 본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이세벨은 이 치장을 벗은 적이 없기 때문에 본인의 본 모습을 직면하지 않는다. 직면할 생각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예후의 소식을 들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가 있는 것이다. 나의 수치가 드러나는 사건은 재앙이 아니라 내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사건이신 것이다. 그래서 내 옆에 피의 사자 예후를 보내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 축복인 것이다.
적용) 무엇을 제일 열심히 꾸미나요? 왜 꾸미나요? 감추고 싶은 약점은 무엇입니까? 들었으나 내 모습을 보지 못해 내려놓기 어려운 자존심은 무엇인가요?
2. 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망하려고 하면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세벨이 끝까지 왕후 행세를 하며 도발하지만, 예후는 대꾸하지 않고 이세벨이 내다 보고 있는 창을 향해 내 편이 누구냐고 외치니 내시들에게 그를 내려 던지라고 명하자 내시들이 이세벨을 내려 던진다. 평생 자신이 하늘보다 더 높다고 생각한 이세벨이 평생 자신을 섬겼던 내시들에게 배반당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속았다 속았다 하지만 속은 자가 더 나쁜 것이다. 이세벨이 던져져 죽었고, 그 시체 위를 병거가 지나갔기 때문에 그 피가 담장에 뿌려졌다. 방금 전까지 예후를 조롱하던 이세벨이 죽은 것이다. 남유다를 배반해서 나간 북이스라엘에게 이세벨은 바알교를 국교로 만들어 뿌렸다. 그리고 인권이 권림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계속해서 높이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다. 엘리야가 850명을 물리쳐도 이세벨이 얼마나 무서우면 도망을 간다. 이세벨은 그저 사탄의 딸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도록 충동하고 유혹하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이세벨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 안에도 수 많은 이세벨이 존재한다. 내 안에 따라가면 나를 충족시켜 줄 것 같은 불신과 탐욕과 충동질 등의 이세벨이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이런게 악인 줄 알면서도 힘과 능력이 있는 이세벨을 부러워하며 이세벨 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이세벨의 편에 서 있는 것이다. 언제 부턴가 남이 기준이 되어 그 남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이런 이세벨을 이제는 내어 던지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제 내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예후의 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세벨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시는 것이기 때문에 예후의 편이 아닌 하나님 말씀의 편이라는 것이다. 말씀의 편은 다른 것이 아니다. 매일 큐티하면서 내 안에 이세벨을 찾으며 이런 내 안의 이세벨을 던져 주시기를 기도 하면서 적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의 편에 서는 적용인 것이다.
적용) 말씀 편입니까, 세상 편입니까? 내게 '말씀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외쳐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내려던져야 헐 내 안의 이세벨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이 다시는 찾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아합은 불신결혼의 끝판왕으로 아합의 집길을 열었다. 이세벨이 아합을 충동질하여 그 길을 가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세벨이 3대를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런 이세벨을 성경에서는 저주 받은 여자라고 말한다. 예후는 자신의 편을 확인하기 위해 그 안에 들어가 먹고 마신다. 그리고 그 이세벨이 왕의 딸이니 대우를 해주라고 하면서 이세벨을 저주 받은 계집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말 개혁을 하려고 했었다면, 예후는 이세벨을 대우해주었어야 한다. 그런데 본인의 욕심으로 그렇게하지 않는 것이다. 왕명을 듣고 부하가 가니 두개골이 없다 이미 짐승이 다 먹은 것이다. 어마어마한 비참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지옥이 있다고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 말을 예후에게 전한다.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가 남지 않은 일이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행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세벨의 편에 선 부하들에게 말씀편에 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후가 하나님의 선지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쓰셨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세벨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그냥 똥이 되었다. 이것을 이세벨이라고도 말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보여 그렇게 되고 싶어 했던 모든 것들이 그저 똥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움켜쥐려고 하는 것들은 다 똥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원하는 불신결혼 직장 스펙이 지나고 보면 그것 자체는 똥아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율법적으로 흠이 없다고 한다. 사도바울은 영적의 장식이었으나, 이세벨은 세상적인 장식이고 이것은 그저 똥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내가 말씀편에 속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나머지 것들은 우리에게 그저 다 똥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을 참 싫어한다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내려던지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명품 하나를 내려던지는 것도 못하는데, 명품을 자랑하고 싶은 내 허영심을 어떻게 내려놓겠는가? 이세벨이 악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책임은 아합에게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졌는데, 이방여인 이세벨을 부인으로 맞아 드린것이다. 그 이세벨이 시아버지 부터 모든 가문을 멸망으로 이끈 것이다. 근데 이게 왜 아합의 책임인가? 나봇의 포도밭은 빼앗으려고 하는데, 나봇이 이 땅은 내 조상의 유업땅이기에 줄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아합이 명색의 제사장인데 율법을 지키지 않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 끙끙 앓는다. 그러니 해결사 이세벨은 율법과 상관이 없으니 나봇이 내 땅을 너에게 줄 수 없다고 하며 나봇이 하나님과 영을 저주하였다고 거짓증언 한 것이다. 이세벨은 죄책감도 없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이 나봇을 돌로 쳐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아합은 그 이세벨의 뒤에 숨어 포도밭을 차지 한 것이다. 충동은 사단의 특징이고 충동은 당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근데 아합은 충동에 넘어가 놓고도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아합은 이세벨과 결혼하고 나서 정치적 유익을 얻었겠지만, 결론은 악의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할 때 배우자 선택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적용) 내려버렸다가도 금방 다시 찾고 있는 습관, 중독, 죄는 무엇입 니까? 그것이 똥을 다시 찾으려 하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인정됩니까? 이번 주 다시 내려버리는 적용으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근황>
A
남자친구랑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신결혼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잘가고 있는 거라고 해준다. 내 기준이 높은 것 같다.
B
바쁜 일이 끝나서 행복하다. 여러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시기 같다.
C
일이 너무 바쁘다. 9-6 안에 못 끝내서 내 실력의 문제인가 싶다. 끝나면 밴드 레슨도 가야해서 정신없다. 그래서 그런지 건강이 안 좋아졌다.
<나눔>
Q. 내가 내려던져야 할 내 안의 이세벨은 무엇입니까?
A
자기애. 부모님 연애 때는 엄마가 갑이었는데 결혼하고 을이 되셨다. 나도 결혼해서 을이 될까봐 걱정된다. 남편이 나를 옥죄게 될 것만 같다. 하나님이 남편을 집안의 머리로 세우셨다고 하는데 그게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여져서 나를 억압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남자친구의 한마디 한마디를 넘어가지 못해 싸우고 있다. 사실 남자친구랑 결혼하면서 나는 포기하는 게 없다. 늘 이세벨처럼 살았어서 언젠가는 하나님이 나를 치실 것 같다는 두려움이있다. 정신 차려야겠는데 잘 안된다. 남자친구보다 내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양육숙제하면서 남자친구가 더 낫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B
자기애.
C
내 열심. 일도 그렇지만 취미 생활에도 열심을 낸다. 화성악 레슨, 기타 레슨, 보컬 트레이닝까지 받는다. 부모님이 가족들이랑 있는 시간을 내라고 하실정도. 요즘 잠을 잘 못잔다. 강박, 고민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열심히 하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 잠 못자고 고민해봤자 쓸모없다는 걸 알면서도 안된다. (취미는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이지 삶의 질서를 지키는데 있어서 해가 되면 안된다. 그나마 덜어낼 수 있는 건 어떤 것?) 레슨 하나 줄이기.
Q. 이번주 내려버리는 적용은 어떤 것?
A
이번주 생일인데 남자친구가 생일 당일에 공부 때문에 못 본다고 했다. 다른 날 보면 되는데 공주병 발동해서 당일에 나한테 안 와?하는 마음이 있었다. 내려놓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너그럽게 보내주는 적용.
B
팀이 새로 배정되는데 그동안의 수고를 인정받아서 보함직한 팀으로 가고싶은 욕심이 있다. 어떤 곳으로 배정되든 생색내지 않고 순종할 수 있도록.
C
일도 취미도 완벽히 하려는 것을 내려놓기. 못하는 걸 못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