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말씀
'이세벨을 내려던지라'열왕기하 9:30-37
여러분이 피하고 싶은 손실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손실회피성향을 피해야겠습니다. 아합의 집 길의 최종 보스 이세벨이 드디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내안에 이세벨을 내려던지려면
첫째,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해야합니다.
권력을 차지한 예후가 이세벨을 내려던지려는 부분입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여사제이기도 하는 그는 여호람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고, 왕들에게 둘러쌓여 사는 인생을 누립니다.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는것을 보며 자기 차례가 올것을 알았을겁니다. 이세벨은 앨리야와 앨리사라는 선지자들이 있던 시기에 살았지만, 850명의 제사장이 죽는 그 기적을 보았지만, 하나님의 긍휼도 보았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후를 기다리며 이세벨이 한 것은 눈을 부릅뜨며 자신을 치장하던 것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우상을 퍼트렸던 그는 창을 통해 에후가 들어온것을 보고 그 앞에서 너의 주인을 죽이니 평안하냐?고 몯습니다.
비꼬고 꼬집으며 저주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세벨을 우리는 멋있다고 칭송할것인가요?
인간타락의 정점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보이는것처럼 있는것입니다. 마치 이세벨이 한 것처럼 말이지요. 여러분의 인생의 정점은 언제인가요? 교제를 했을때?, 돈을 많이 벌때? 믿는자들의 정점은 죽음입니다. 내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때가 다가오는것입니다.이세벨의 모습과는 조금 다릅니다만 자기 자존심이 자기 목숨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었을겁니다. 그러니 예후가 그 앞에 왔을때도, 화려하게 치장할뿐 회개할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리는것입니다.
적용질문
무엇을 제일 열심히 꾸미나요?왜 꾸미나요? 감추고 싶은 약점은 무엇입니까? 들었으나 내 모습을 보지 못해 내려놓기 어려운 자존심은 무엇인가요?
둘째, 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예후는 이세벨의 부하들 앞에서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라고 외치며 눈이 마주친 내시들에게 이세벨을 내려던지라고 명령합니다. 평생 자기가 하늘보다 높다고 생각한 이세벨은 한 순간에 내시들에게 배반을 당합니다. 속은자가 더 나쁘다고 합니다.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를 밟으며 그의 최후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이세벨은 악의 대명사, 자칭 선지자인 이단처럼 우상을 섬기고 우상의 제물을 백성들에게 먹게 했습니다.
내 안의 이세벨을 기도로 하나님께서 던져주시길 적용을 해야합니다. 그게 바로 첫걸음이에요.
적용질문
말씀편이에요 세상편이에요?
내게 '말씀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외쳐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내려던져야 할 내 안의 이세벨은 무엇입니까?
셋째, 하나님이 다시는 찾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예후는 하나님을 통해 이세벨을 심판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이세벨의 인생의 결론은 아무것도 없느니만 못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닯고 싶어하는 모습일 줄 알았더니 다 쓸데없는것 이었던 거죠. 우리가 세상 원하는것들이 세상 쓸데없는것일수도 있어요. 우리의 모든 수고가 아무 의미 없는것이수도 있습니다. 작은 습관 하나 버리는것도 힘든데, 이세벨이라는 정욕을 우리가 스스로 극복하기 힘들더라도 책임은 나(?)에게 있을수 있습니다. 이세벨은 당시 어떤 사람으로 기록 되었을까요? 악녀였을까요? 아니요 누구보다 아름답고 사람을 홀리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기록이 되어있어요.
내가 내 속의 이세벨을 집어 던진 이후에야 내 자신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돈이 계속 없는 사람이 돈 있는 시절을 그리워할 수 있나요? 자꾸 이세벨을 보여주시니 자꾸 손해보는 적용을 하게 하시지만 조금씩 조금씩 버리다보니 어느 정도 버릴수 있게 되더군요.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우리 인생에서 적용하면서 나아가면 버린것들이 아깝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을 겁니다. 훅을 한방 맞는것보다 잽을 날리는게 더 무섭다고 하더라구요. 매일매일 조금씩 작은 회개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릴때부터 성경을 보는 가치를 알고
적용 질문
내려버렸다가도 금방 다시 찾고 있는 습관, 중독, 죄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똥을 다시 찾으려 하는 어리석은 일이라는게 인정됩니까?
이번 주 다시 내려버리는 적용으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