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7 네게 갚으리라
열왕기하 9:23-29
강아지가 겁이 많을수록 많이 짖는다고 하잖아요. 빈 수레가 더 요란한 법이고요. 북이스라엘왕 요람이 '평안하냐, 평안하냐.' 계속 묻지만 실제로는 평안과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이제 선거철이라 자기를 자랑하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많은데요. 소란스러운 말이나 언론의 홍보에 진리가 있지 않습니다. 후보 자신의 행위와 삶을 보고 잘 분별해서 소중한 한 표를 꼭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꼭 투표하세요.
열왕기하 1장부터 북이스라엘 왕으로 등장하던 요람이 오늘 본문에서 비참한 죽음으로 퇴장을 합니다. 요람이 다스리던 때 엘리야도 있었고, 엘리사도 있었어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라고해도 손색 없는 두 선지자가 모두 요람이 통치하던 북이스라엘에서 활동을 했어요. 요람이 영육간에 모자랄 게 없는 환경에 살았는데요. 그런데 구원을 받지 못했어요. 하나님이 네게 갚으리라 예언하셨던 공의의 심판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이렇게 심판받는 길을 가지 말아야 될 거예요. 그러니까 아합의 집 길로만 가게 되면 오늘 네게 심판을 갚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즉시 회개하고 돌이키셔서 구원받으시기 바래요. 그럴려면 오늘은 네게 갚으리라는 하나님의 100% 옳으신 심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손이 아닌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 23절, 24절이에요.
온 군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부하 예후가 온다니까 손수 병거를 몰고 나간 요람이에요. 십자가는 착함이 아니고 마지막까지 분별이라고 했습니다. 요람은 마지막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장군 예후를 믿었어요. 이렇게 망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죠. 사람이 망할 때는 어리석은 결정을 해요. 그것은 하나님이 심판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요람도 자기 권세로 존 주고 부린 사람을 끝까지 의지하는 거예요. 악하고 음란한 죄인에게 끝까지 평안을 바라고 믿는 것이 심판이고, 심판은 그 믿었던 사람이 죽이겠다고 돌진을 하는 것이죠. 한 번도 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해 본 요람은 예비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너무 놀라 정신이 나갔어요. 하나님께 질문하고 THINK를 해 본 적이 없으니 그저 몸이 반응하는대로 움직였는데, 곧 손을 돌이켜 도망했다고 해요. 직진하도록 고삐를 잡고 있던 한쪽 손을 확 잡아당겨서 방향을 바꿔서 오던 길로 도망을 했다는 거죠. 그러면서 뒤따라오던 조카 아하시야에게 반역이로다 외쳤어요. 그러자 예후가 추격하면서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겼다고 합니다, 활을.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손을 활로 채웠다는 말인데요. 그럼 거기 이제 예후 손도 나오겠죠. 요람의 손은 도망하려고 확 돌이켰는데 예후의 손은 활로 채워져 있어요. 그러니까 피하려는 손과 쏘려는 손 딱 맞부닥뜨렸는데 누가 이겼을까요? 예후가 쏜 화살이 요람 등에 명중해서 염통을 관통했어요. 그래서 요람은 타고 있던 병거에 그대로 엎드러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면 예후가 실력이 좋아서인가요? 요람의 아버지 아합도 왕복을 벗고 변장을 해서 전장에 나갔지만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화살이 갑옷 솔기를 뚫고 맞았다는 거예요. 갑옷이 막 비늘처럼 되어있는데 어쩌다가 한 번 '와악.' 이럴 때, 그때 한 사람이 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우연이겠습니까? '아악.' 할 때 여기가 들어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피할 자가 없는 거예요. 모든 건 하나님께 달려있어요. '내가 그때 거기 안 갔어야 될 걸.' 그딴 얘기 다 필요 없어요. 그때 거기 가게 하신 분 하나님이야. 우연이 없다고 했죠.
영어도 그렇지만 히브리어로 염통을 가리키는 말과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 같아요. 마음이 심장에 깃든다고 보는 것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을 심장이 상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람의 염통을 꿰뚫고 나왔다는 것은 곧 그의 마음이 그 존재의 중심을 꿰뚫고 나왔다는 거죠. 엘리야도 보내시고, 엘리사도 보내셔서 아무리 말씀하시고 각종 사건으로 경고하셔도 절대로 움직이지 않던 요람의 마음을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서 공의로운 심판으로 갚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요람이 재빨리 손을 돌이켜 피하려 했지만 피할 수 없었어요. 완악한 마음을 향한 주님의 심판을 요람의 손으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요람의 심장은 심장이라고 표현하기도 아까워서 동물에 쓰는 그 염통이라고 번역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제 고난의 시대에 번역한 개역한글성경이 구속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개역한글 하나가지고 큐티를 했는데요. 그래요, 그런데 개역한글만 염통, 개역개정은 이거 따라서 하는 거니까. 그런데 다른 성경 보면 다 가슴, 마음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그런데 개역한글을 왜 안 쓰나 몰라. 예, 이것이 알고싶어요, 저는 힘이 없어가지고. 그러니까 이렇게 손으로 각종 방법을 하다가 마음을 돌이키는 거는, 우리 한 집사님도 아내가 암 발병 3년이 지나니까 폐에까지 전이되니까, 목숨 앞에서 다른 것은 할 것이 없게 되니까 구원의 문제에 맞딱드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돌아보고, 하나님끼 매달리고, 살려달라고. 손으로 안 되니까 그때 마음을 돌이키게 된 거예요. 마음을 돌이키니까 이제 팔복 말씀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풀어주시는 것 같다고. 그때부터 이제 말씀이 들리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갑자기 큰 문제가 생겼을 때 다 도망가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대비하던 문제가 아니니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오면 우리가 피하고 싶자나요, 그렇죠?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이 바로 이 방어기제죠. 그래서 이 모든 생각과 감정을 억눌러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죠. 부정하고 외면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합리적인 이유를 대고, 똑똑한 사람들일수록 괜찮아보이는 사람이나 무리와 동일시하거나 이런 여러 가지 심리적인 전략으로 문제를 피하려고 하는 거예요. 요람이 손을 돌이켜 도망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아니예요, 그건 아니고, 니가 뭘 알아.' 요람이 자기 신하의 손을 의지하기도 했고, 모압의 손을 두려워한 적도 있고, 자기의 손을 돌이키기도 하지만 여호와의 손을 생각한 적이 없어요. 여호와의 엘리사 선지자 위에 임하여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데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하나님의 손을 믿지를 않아요.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전해도 자기와는 상관 없는 소리라고 여기면서 듣지 않아요. 눈 앞에 어른거리는 사람들의 손 좀 보지 말고, 자기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용 쓰지 말고 말씀을 들으면 될텐데,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면 저절로 마음이 돌이켜져서 회개하게 될텐데 그렇게하지 않네요. 그 결과는 하나님이 갚으시는 심판이에요. 그 후에는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아요.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한 마디로 '회개하고 구원받으라.' 이게 참 심플한 건데 온갖 방어기제로 그 회개를 피합니다. 그리고는 평안, 평안 외치지만 속으로 불안하자나요. 그러면 그 똑똑한 머리로, 스펙으로, 무서운 열심으로 종교적인 행위와 도덕적인 행위를 합니다. 예배도, 봉사도, 큐티도, 섬김도 그 자체가 내가 좋아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해야 되는데 내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하니까 자꾸 안 하는 사람 정죄하고, 비판하고, 비교가 되고, 생색이 나고 그리고 이제 전공이 판단인 거예요. 내가 진짜 감사하면 어떤 경우를 봐도 판단이 안나오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화살로 갚으시는 목표물은 손이 아닌 염통이에요. 즉, 마음이에요.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중심이 문제인데 우리가 아무리 방어기제나 열심을 작동시켜도 우리 중심이, 마음이 방향 전환을 하지 않으면 이제 심판의 화살을 맞을 수밖에 없는 거이요. 따라서 우리는 손이 아닌 마음을 돌이켜야 되는데요. 눈에 보이는 것이 행위밖에 없자나요. 그러니까 끝없이 행위의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는 거예요. 똑똑할수록 행위를 따지는 거예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행위를 따지게 되는 거예요. 구원을 기준으로 질문하고 생각을 해야 되는데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내가 회개하라고, 내 마음 좀 돌이키라고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하는데, 그래야 심판이 아닌 구원으로 갚으시는 복된 인생이 될 것인데 이게 안 되네요.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갑자기 당한 반역의 사건이 있습니까? 문제를 가리려고 손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라'는 말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2.말씀대로 갚으십니다.
25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 말씀, 큐티하고 가면 심판도 구원도 다 구원으로 결론이 나게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알아야 돼요. 25절이에요.
요람의 죽음으로 예후의 반역은 성공하며 혁명이 됩니다. 잠시동안 북이스라엘의 왕이 두 명이었자나요, 예후하고 요람하고. 이제 예후만 유일한 왕으로 남습니다. 지도자를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이세요. 백성의 수준대로 세워지는 거예요. 그래도 하나님 많이 기다려주시는데 백성이 악하면 고생 바가지고 '고생 좀 해봐라.' 그리고 악한 지도자를 세우십니다. 그래야 지금 아합의 악을 참고 참았던 하나님이 새로운 왕조의 창시자로써 예후가 내린 첫번째 명령은 이 요람왕의 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지라는 거예요. 시체를 묻어주지도 말고 밭에 버리라는 거예요. 이 명령을 자기 옆에서 수행하던 빗갈이라는 장관에게 내립니다. 예후는 그에게 '자네 기억하지 그때 우리가 같이 병거 타고 아합을 따라 여기 왔었자나 그때 여호와께서 예언하신 말씀 말야.'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빗갈이 빛깔만 좋았는지 당연히 기억을 못해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을 빛깔만 좋다고 옆에 데리고 다니면 안돼요. 사람이 마음이 진실해야지. 예후가 바로 알려주는 거예요. 26절입니다.
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
-> 하나님이 나봇과 그 아들들의 피를 나봇의 밭에서 아합에게 갚으리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이제 그 말씀대로 아합의 아들 요람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지라는 거예요. 여호와의 말씀대로 처리하라는 거예요. 우리가 열왕기상 21장에서 볼 수 있듯이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셨어요. 예후가 그때 현장에서 엘리야의 예언을 직접 들었었나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아합 때부터 예후를 아들 때까지, 이렇게 신뢰하는 부하였어요, 예후가. 그런데 거기 기록된대로 기억해서 말하지는 않았어요. 사실 그때 예후가 엘리야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겠습니까. '아이고 엘리야 저 양반 또 저러네.', '큐티하라네. 구속사 타령하시네.' 그랬겠죠 뭐. 그러니까 저도 우리 사역자 모임에서도 날마다 모임을 해요, 우리가. 그러면 이제 속으로는 '야, 집에 좀 보내주면 좀 좋아. 무슨 나눔이야.' 이러면서도 너무 그럴듯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아합도 속고, 요람도 속고, 저도 속았겠죠. 사실 이 말씀이 안 들리면 '쓸데 없이 이렇게 나눔을 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죠. 그런데 엘리사가 보낸 청년 선지자가 기름을 부으면서 말씀을 전해줬자나요. 그 말씀 바탕으로 핵심만 추려서 요람의 시체 처리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아합은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아 죽었지만 사마리아 무덤에는 묻혔어요. 그가 타고 있던 그의 병거에 묻은 피를 개가 핥았거든요. 그러니까 열왕기상 21장 19절에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죠. 그런데 요람은 그 시체가 아예, 그러니까 아합, 아버지는 피를 핥았는데 지금 요람은 시체가 들판에 버려졌어요.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엇겠죠. 이 일도 말씀 그대로 응한 일인데요. 자, 열왕기상 21장 24절에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떤 것도 말씀대로 응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 예후가 믿음이 있고 말씀을 깨달아서 이런 적용을 했나요? 행위로 보면 그도 요람왕과 별 차이가 없어요.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예후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개혁을 하거든요. 요람도 열왕기하 3장에 보면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왕 중에 그럴듯하게 바알의 주상을 다 없앴어요, 그러니 예후나 요람이나. 그리고나서 그랬는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어요, 맨 처음에는 개혁을 했는데. 우상숭배하는 여로보암의 길을 떠나지 않았어요. 이 북쪽의 여로보암은 그때 솔로몬 때 반역해서 나갔자나요. 그래서 르호보암 시대 때 북이스라엘 10지파를 안고 시작한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그야말로 하나님 대신의 신이에요, 신. 여로보암의 길로 다 갔대, 여로보암의 길로. 다윗의 길로 간 게 아니고, 예수의 길로 간 게 아니고.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보면 요람은 틀려서 무덤도 없이 죽고 예후는 옳아서 왕이 되는 게 아니예요. 하나님 없는 인생은 다 악해요. 서로 비교하는 게 의미가 하나도 없어요. 우리 정치도 마찬가지예요. 이쪽 저쪽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고, 국민들도 자기 진영이면 무조건 지지하지만, 그게 마치 엄청난 개혁이고 정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행위를 보면, 결과를 보면, 열매를 보면 선한 게 없어요. 그렇다고 양비론에 빠져서 '예후도 싫고, 요람도 싫으니 난 그싸움에 안 끼련다.' 이래야겠습니까? 그것도 아니죠. 우리는 하나님 말씀 편에 서야되는 거예요. 요람은 왕으로써 누구보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소식읕 잘 알 수 있었고, 원하면 가장 자주 만나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 기회 다 놓치고, 관심도 없고 오직 자기가 꿈꾸는 헛된 평안, 평안, 평안만 외쳤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그렇게 있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아합은 엘리야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 한 번이지만 겸비했자나요. 열왕기상 21장 27절에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아합집에 이 개들 피 이 얘기, 엄청난 경고를 하셨자나요. 경고하시니까
그 악한 아합이 금식하며, 회개하며 그 다음에 풀이 죽어 다니니까 여호와께서 '엘리야야, 아합이 겸비한 거 봤니, 너? 내 앞에서 겸비하더라.' 너무 기뻐하시면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않겠다.' 여러분, 오늘 회개하면 하나님은 나의 심판을 유예하세요. 심판의 결정을 유보하신다고요. 그래서 그 시대에는 심판을 유보하셨는데 그 자손 대에 내리겠다고 그랬어요. 그런디 맏아들 아하시야 지나고 차남 요람까지 왔어요. 하나님은 회개를 그렇게 기뻐하시는데 하사엘과 예후가 심판의 도구로 정해졌자나요. 그거 다 우리한테 예언했자나요. 그런데 아합이 회개하는고로 미루셨다고요. 그런데 그 밑에 아들 아하시야에 이어 요람까지 자녀들이 전혀 회개라는 걸 몰라요. 무슨 차이겠어요. 아합은 이세벨의 남편이지만 요람은 이세벨의 아들인 거예요. 아합을 이세벨이 키우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아합은 그래도 부끄러운 회개라도 했는데 요람은 이방여인 바알도 엣바알, 왕의 딸 이세벨에게서 나서 이세벨 손에 자랐어요. 불신결혼이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불신결혼은 안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아니, 있어야 하죠.' 이게 주제가자나요. 그러니까 없어요, 없는데 데려와서 세례 받게 하고 가서 양육까지 받고, 첫번 양육 THINK 양육 받고 목장 가면 불신 자 떼 줄게요, 불신 자. 그래서 우리는 전도해야 돼요. 불신결혼은 안된다는 이 복음적인 명령에 정반대에 서 있는 게 뭘까요? 이혼과 낙태와 자살이에요. 불신결혼이 안 되는 이유는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과 질서를 지키는 일이에요. 그러나 이혼과 낙태와 자살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과 질서도 인간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권리 주장이에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시는데 이 악하고 음란한 것 밖에 없는 인간에게 권리가 있다, 계속 인권이 왕노릇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완전히 옳은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인권이 왕노릇하니까. 이렇게 말씀과 반대되는 쪽에 서면 정말 안 되는 거예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중수하면서 백성의 삶에서 그렇게 중수하려고 했던 게 뭐죠, 마지막에. 신결혼이에요. 온갖 욕과 공격을 받으면서 불신결혼 막으려고 정말 도시락 싸가지고 쫓아다녔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하는지 아세요? 마지막 13장에서 '나를 기억하소서.' 마지막절에서도 ...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되는 거예요. 욥도 자기는 자기 길을 모르지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 그러자나요. 주님이 우리 수고를 아세요. 가정 중수하려고 애쓰는 적용을 아십니다. 나라를 위해 날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수고를 아세요, 기억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저를 기억해주시기를 바라고, 주께서 우리들교회를 기억하사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 없이 산 요람에게는 심판의 말씀대로 갚으셨어요. 그야말로 미친듯이 강한 예후의 손에 망하게 하셨어요. 말씀대로 된 일이에요. 그러나 세상의 비난 다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불철주야 뛰어다닌 느혜미야는 하나님이 축복의 말씀대로 갚으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다 이런 복을 받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 편에 서시기를 바라요. 하나님의 심판으로 아까도 말했지만 망하는 때는 정말 우리가 보기에, 우리가 다 아는데 그 지도자들이 말도 안되는 다 어리석은 결정을 해요. 말씀이 안 들려요. 우리가 망할 때를 보면 누구 말도 안 들려서 투자를 하고, 결혼을 하고, 결정을 하고 그러자나요. 보여주고 들려줘도 귀머거리에 소경이 되는 거예요. 낫 놓고 기역을 몰라요. 지금 요람이 그러자나요. 다 아는데 자기만 몰라. 그 연락병이 두 번이나 갔다가 안 왔는데도 예후를 믿는 거예요, 자기만 몰라. 그런데 권세가 있으니까 그 권세로 아무도 뭐라고 말하지를 않아요. 망하는 길로 가는 거예요. 백성의 악도 때가 차서 심판의 때가 무르익어서 이제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고생 좀 해보고 돌아오게 하시려고 악한 자를 뽑게 되는 거죠. 악한 날에 악한 자를 붙이시고는, 지도자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그 시대에 악해서 가치관이 다 그렇게. 그러니까 우리가 가난한 나라는 예수 믿기가 쉽자나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제 뭔가 목적이 있으니까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는 정말 그 예수가, 예수님이 멀리 멀리 가셨어요.
[적용] 내 인생에 주님이 말씀대로 갚으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내 인생의 결론임이 인정됩니까? 나는 지금 말씀 편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권 편에 서 있습니까?
3.남김없이 갚으십니다.
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 심판을 홀이라도 남김 없이, 참고, 참고, 참아서 이 심판의 때가 온 거예요. 27절입니다.
이 아하시야는 삼촌 요람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아주 착한 아하시야예요. 아하시야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데요. 착한 게 악한 것이죠. 아무리 요람의 조카라도 이다윗의 후손, 남유다의 왕이에요. 그런데 정말 아하시야는 가족 신화, 가족 우상에 꽉 사로잡혔어요. 자기 인생은 온데 간데 없어요. 그저 가족, 가족 외치다가 가족 따라서 죽어요. 외할머니가 이세벨과 어머니가 아달랴가 아하시야 인생을 완전히 망쳐 놓았어요.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가 믿음으로 키워서 사도 바울의 제자가 되었자나요. 아하시야는 디모데와 정반대예요. 가정에서부터 말씀으로 양육하는 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삼촌이 화살 하나에 심장이 뚫려서 죽는 것을 본 아하시야는 황급히 병거를 돌려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을 합니다. 여러분, 도망을 가도 어떻게 그런 이름의 길로 도망을 가는지. 정원의 길이래요. 정원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정자 짓고. 그 저 푸른 초원 위에 있는 우리집, 우리 가족, 우리 집안, 이것만 따라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우연이 아닙니다. 가정은 교회 만큼 귀한 것이에요.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가정의 존재 목적은 구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예요. 가정 자체가 구원 이상의 목적이 되면 그것 또한 우상입니다. 그래서 가정마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보다 훨씬 복이에요. 그래야 그 가정 위에 있는 구원을 보게 되게 때문이죠. 그런데 가정 자체가 천당이 되면 진짜 천국 바라지 않아요. 그래서 그게 좋은 게 아니예요. 진짜 행복한 가정은 문제와 갈등에 둘러싸여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가정이에요.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가족들이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으로 하나되고 통하는 가정이 진짜 행복한 가정인 거예요. 고난이 주제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고 성령이 스승이 되시는 가장 거룩한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인 거예요. 정원의 정자 길처럼 세상적인 행복만 찾으면 다 망하는 거예요. 1부에 기도하신 집사님도 재혼을 하는데 너무 혈기 많지만 믿음 좋은 집사하고 재혼을 했대요. 그런데 파킨슨병이신데 1부에 막 떠듬하면서 기도하시는데 기도 끝나고 박수 받은 건 처음인 거 같애. 아니, 막 기도 중간에 막 박수가 나오더라고, 기도, 기도인데. 오늘 여기 유아 세례 간증도 청년부가 그렇게 다 그래도 살아날 수 있는 건 목장 때문인 거예요, 공동체에서. 선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목장에서 늘 말씀으로 갚아주시니까, 말씀이 들어가니까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관절과 골수와 양을 찔러 쪼개는 거예요. 그런데 말씀, 목장에서 그 말씀을 넣어주는 거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을 하지만 예후를 떼어낼 수 없어요. 오히려 그 길을 지날 때에 예후가 아하시야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명령을 내려요. 북이스라엘 요람이 죽었는데 유다 왕 아하시야가 왜 도망을 갑니까? 게다가 예후는 왜 또 그를 죽이려고 쫓아가죠? 기왕에 칼을 뽑았으니 '아유, 남유다왕까지 다 죽이고 내가 내친김에 이스라엘을 통일하자.' 그런 예후의 개인적인 야심 때문이 아니예요. 아하시야 역시 악으로 요람과 결탁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인 거예요, 이게. 자꾸 누구 때문이라는 얘기를 좀 하지 마세요. 이게 하나님이 지금 심판하시는 거예요, 돌아오라고. 그런데 이 심판에서 말을 안 들으면 요람처럼 기회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빨리 돌아오라는 사인인 거예요. 아하시야는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이블르암 근처 그루 비탈을 지나는데 거기서 공격을 당하는 거예요. 요람과 마찬가지로 화살을 맞았을 거예요. 겨우겨우 요새 도시인 므깃도까지 도망을 하는데요. 그런데 므깃도는 남유다의 요새가 아닌 북이스라엘의 요새였어요. 그러니까 거기서 그냥 적군에 들어가서 잡혀 죽은 거예요. 그런데 요람, 자기 삼촌인데 삼촌 나라에서 잡혀 죽은 거예요. 그러니 누구 인간을 믿어요. 그래서 역대하에서는 그 22장 9절에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그를 예후에게로 잡아가서 죽이고 ... 이 정권이 바뀌고 이렇게 되면 갑자기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나를 완전히 죽이고자 하는 저승사자가 되는 거예요. 누구도 믿음의 대상이 아닌 거예요, 오직 예수씨. 사마리아가 북이스라엘 수도자나요. 그러니까 이 북이스라엘 땅에서 이 믿었던 삼촌, 북이스라엘 땅에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잡혀서 죽였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유다왕 아하시야까지 심판하셔서 아합 집의 악을 남김없이, 홀이라도 남김없이 갚으세요. 아하시야는 정말 불쌍한 인생이에요. 불신결혼으로 망가진 가정의 피할 수 없는 열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러고 싶은 게 아니자나요. 그저 태어난대로, 생긴대로, 자라난대로 그냥 나름 착하고 의리있게 산 것인데요. 그런데 남김없이 갚으시는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 이것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에요. 우리 스스로 악을 원해서 행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요. 의도하지 않는데 저지르고 보니까 악인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100%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생이 슬퍼요. 소망이 없는 인생이에요. 그런데 정치는 자꾸 헛된 희망을 주면서 자기들의 권력 잡으려고 하지만, 우리는 그걸 다 알면서도 매번 속아요. '나를 도와줄거다. 저기 북이스라엘 삼촌이 나를 도와줄거다.' 그냥 속고 후회하고 또 속고 후회하고 '이번에는 도와줄거야, 나를.' 또 그만큼 후회하고. 이게 정치인들만의 문제입니까? 속을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의 악이 슬픈 거예요. 십자가 예수님 불쌍한 게 아니고 못을 박고 있는 내가 불쌍한 거예요, 내가. 다윗의 후손이 아합의 집 길로 간 결론이에요. 다윗의 후손이라고 저절로 구원되는 게 아니예요. 자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 이게 하나님의 길인가, 아합 집의 길인가에 따라서 맞닥들이는 결론은 하늘과 땅차이인 거예요. 여러분은 왜 그렇게 지역 감정에 몰입하시고, 진영 논리에 그렇게 몰입하세요. 어떤 사람이 나를 도와줄 것 같아요. 사람은 100%, 100% 그런데 우리는 나를 도와줄 거 같은 사람을 자꾸 찍게 되는 거죠.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고 이 땅에 예수, 구원 때문에 생각하는 그 한 사람을 봐야 되는데, 하지만 우리가 힘써 이루어가는 것이 또한 구속사예요. 그런데 구원은 전적인 은혜로 되는 거자나요. 공로로 이루어갈 수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구원의 값을 치뤄주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구원해가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가시지만 우리가 또 힘써 이루어 가는 것이 구속사예요. 하나님과 사람이 구원을 두고 경쟁하는 게 아니예요. 서로 다른 지분이 있는 게 아니예요. 하나님 51%, 나는 49%, 그거는 성화될 때는 그렇게 가지만, 구원이라는 거는, 구속사는 100% 하나님이 써내려가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러므로 100% 또 내가 써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주실테니까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돼.' 이러면 우리는 구속사를 한 줄도 써내려갈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연약한 내 안에서 100% 역사하심을 믿고 내 100%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하자나요. 누구보다 은혜를 강조한 바울이 로마서 2장 6-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여기서 보응하시되가 바로 갚으시되입니다.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거예요. 어떻게요? 달리 갚으신데요.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갚으시고,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갚으신데요. 아합 집에 속한 후손은 남김없이 진노와 분노의 심판을 받아야 했기에 다윗의 후손 아하시야도 예후의 손에 죽었습니다. 말씀대로 갚으신 심판이에요. 하지만 들판에 버려진 요람과 달리 아하시야는 여러분, 유다왕의 묘실에 들어가는 거예요. 28절 보죠.
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 예후가 아하시야의 시체는 예루살렘으로 보내줬어요. 그래서 그의 묘실에 장사됩니다. 다른 유다왕들처럼 다윗성에 장사되기는 했죠. 아니, 심판받아 마땅한 아하시야인데 뭘 잘했다고 죽은 후에 다윗성에서 그의 묘실에 장사되었을까요? 그에게 무슨 공로가 있어서 이랬을까요? 역대하 22장 9절에 딱 한 줄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 이거 너무 눈물 나는 얘기 아니예요? 아하시야의 할아버지인 여호사밧은 아합 가문과 혼인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그가 여호와를 구한 것을 기억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행위로 판단하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할아버지 덕분에 손자 아하시야까지 은혜를 입은 것이죠. 그럼에도 열왕기 기자는 아하시야가 그의 묘실에 장사되었다는 것을 강조해요. 유다의 여느 왕들처럼 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인 것인 거 같아요. 그런데 유다 최악의 왕이었던 므낫세도 왕의 묘실이 아니고 자기가 따로 만든 동산에 묻혔어요. 그의 아들 아몬도 악한 왕이었는데 자기 묘실에 묻혔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 아하시야도 다윗성에 묻혔지만 마치 격리하듯 자기 묘실에 따로 장사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들의 실패와 악을 영원히 기억하고 반면교사 삼으라고 따로 그의 묘실에 묻혔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와 요람과 아몬 등은 마태복음의 계보에 올라갔더라고요, 또. 따로 그의 묘실에 묻혔지만.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한결같이 행위로 판단하지 말라는 거예요. 북이스라엘왕들은 반역하고 나가서 이 예후부터 아무리 어쩌고 저쩌고 해도 한 왕도 선한 왕이 없어요. 한 왕도 구원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유다왕은 이렇게 형편없는데도 다윗의 묘실에 묻혔다는 것은 이게 참으로 예수님의 구속사, 계보에 구원을 받았다 이런 뜻이에요. 그게 보이지를 않으니까 손이 하는 일과 심장이 하는 일을 우리는 분별하지 못해요. 막 행위로 하는 일과 이 심장으로 분별하는 일이 분별이 안돼요. 그러니까 날마다 행위로 판단하는 거예요. '니가 예수 믿는데 그럴 수가 있어? 야, 안 믿는 사람도 너보다는 낫다.' 맨날 이게 예수 믿는 우리 입에서 나오는 얘기예요. 우리는 내 아이가 절벽으로 막 떨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예수 믿었다고 온유하라고 그래서 우리는 화를 내면 안 되니까 얘가 막 낭떠러지로 가고 있는데 '아유, 얘 다쳐.' 이러겠습니까? '야, 거기 멈추지 못해.'이러지 않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도 소리지를 때는 질러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아유, 저런 게 권사래, 장로래.' 이럴 거 아니겠어요. 구원 때문에 우리는 못할 일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게 너무너무 필요한 거예요.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게 최고의 복이고 최고의 기적입니다. 남김 없이 멸망된 채로 밑동잘린 나무로 태어난 우리도 예수님이 계시기에 구원을 받아 살아갈 소망이 있는 거예요. 평생 죄악 가운데 거하면서 남김 없이 갚음을 당하는 인생도 주님을 믿으면 단 하루만이라도, 한시간이라도 쓰임 받고 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적용이에요.
[적용] 예수 믿게 해 준 부모가 최고임이 인정되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를 전심으로 구하는 믿음이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임을 알고 계세요?
내가 어쩔 수 없어서 회개하며 지고 가야 할 나의 연약함, 아픔, 악함은 무엇인가요?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내가 100% 힘써야 할 역할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희연
1.주님의 말씀으로 구원받고 회복되는 빛을 보게 하소서
2.이식된 신장과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회복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3.엄마의 구원과 건강을 위해
4.언니가정의 평안과 은혜가 넘쳐나길 언니 가족 모두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5.언니/형부 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 하옵시며 가는 발걸음 마다 함께 하시어 무사히 일할 수 있게 하옵소서
6.귀중한 생명을 주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뇌사자분 주님 곁에서 평안하게 해주시고 남은 뇌사자 가족분들에게도 은혜와 은총 내려주시옵소서
7.목장 식구들 목자 언니 포함하여 주님 안에서 하는 일들 모두 다 이루어가며 승리하며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바라는 기도들이 모두 이루어지길
8.연약하고 나약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위로하시고, 눈물 닦아주시고, 용서하시고 하루하루 주님의 말씀과 믿음 안에 살아감을 감사드리며 기도합니다
주희
1.보내시고 세우신 모든 자리에서 내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 살게 수 있게 하시길
2.엄마 무릎 통증 감해지고 남은 입원 기간도 푹쉬고 잘 회복되어서 예배에 자리에 나아갈수 있기를
3.연약한 우리 엄마 불쌍히 여겨주시어 지켜보호 하여 주시옵고 엄마가 교회와 목장에 잘 붙어 갈수 있도록
4.참기쁨과 소망과 참된 평안되신 주님 우리 가족에게도 참기쁨과 소망과 참된 평안되어주시길
5.우리의 아둔함과 어리석음을 아시는 주님 미혹된 주님의 어린 양들을 긍휼히 여기시어 엄마를 신천지로 이끈 이모와 다른 지체들도 신천지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그 이모가 더 이상 신천지로 다른 지체들을 끌어 들이는 것을 막아주셔서 하나님께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지켜주시길
6.딸의 구원을 위해 날마다 간절히 기도할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 기억하여 주셔서 선미를 포함한 수연, 가림 모두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예선
1.날마다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손이 아닌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한 주 되도록
2.직장에서 갑자기 당한 반역의 사건같은 일이 생겨 사람들의 말을 묵상하게 되는데 누구 때문이 아닌 것을 알고 구원을 위한 선택으로 돌아나오도록
3.목요일 오후에 고객사 추천 인원 Interview를 진행해야 하는데 준비된 질의 사항만 읽고 모르는 부분은 겸손히 물어보며 진행할 수 있도록
은우
1.어두운 곳에 사무엘을 세워주시고, 눈물의 자리마다 남김 없이 갚아 주시도록
크리스틴 (해외 목장 참석하는 크리스틴이 잠시 귀국하여 함께 하였습니다.)
1.성령께서 나의 영적인 귀와 마음을 열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