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도, 거리에서도, 직장에서도 늘 갈등과 다툼이 이어지는 인생이지만 지금은 세계 도처에서 무기를 사용하는 전쟁까지 일어납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주님께서 고쳐주시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간절한 기도를 담아 오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의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나아만을 고치기 위해서 어린 소녀가 안주인에게로, 안주인이 나아만에게로, 나아만이 아람 왕에게로,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로, 그리고 엘리사로 이어지는 우연 같은 만남이 지금 이어집니다. 내 인생 모두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여기에 내 생각이 들어 갈 틈은 없어요. 그러나 이 땅에서 무언가 이룬 사람들은 그 악한 내 생각이 하나님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믿기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아만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아만이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렀다고 합니다. 여호람 왕에게갈 때는 은 십 달란트, 금 6천개, 의복 10벌을 가지고 갔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모습으로, 겸손한 모습으로 갔습니다.
근데 엘리사를 찾아가는 나아만의 모습은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점령군 사령관의 모습으로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선지자의 집 문 앞에 딱 섰습니다. 이 세계적 지도자인 나아만은 벌써 사람을 차별하고, 하나님 자리에서 하나님을 자기 병이나 고쳐주는 분으로 오해하는 이런 내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말을 탄 채 이리 오너라 하면서 대문 앞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나아만을 특별대우하지 않고 여전한 방식으로 비서인 게하시를 보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번 씻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고 예언을 합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처방에 분노하여 엘리사의 집 문에서 몸을 돌이켜 떠납니다. 나아만의 그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내 생각은 모든 것의 분노를 가져옵니다. 자기가 이룬 것이 많을수록 분노를 가져옵니다.
⓵ 첫째로 선지자 자신이 직접 자기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화가 났습니다.
이스라엘 여호람 왕도 자기가 왔을 때 탄식은 했지만 어쨌든 쩔쩔 맸는데 이스라엘 왕도 아닌 선지자가, 큰 저택도 아닌 산속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이 직접 나와서 인사하기는커녕 종을 보내 처방만 내리니 나아만 장군의 자존심이 확상했습니다. 이것이 선한 것이 없는 내 생각이에요.
⓶ 화가 난 두 번째 이유는, 선지자의 처방도 너무 성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병을 고치기 위해 아람에서 안해본 주술과, 시술과, 요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아만은 여러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적어도 자기의 여호와 하나님께 치료를 구하는 화려한 의식도 버리고, 온 정성을 다해 자기를 치료해 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선지자라는 인간이 자기 종 한 명을 틱 보내더니 강물에 가서 씻으면 나올거다! 말 한마디 툭 던지고 마니까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⓷ 세 번째 이유는 그 처방의 내용도 너무너무 찌질했기 때문이에요.
나아만이 요단강을 너무 잘 알기에 지형상 그 물은 흙이 많이 섞여서 색이 누렇고 더러워 보일 뿐 아니라 신비하거나 영험할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반면 나아만의 고향,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흐르는 아바나와 바르발은 서쪽 산 지에서 흘러나온 강이라서 매우 맑고 깨끗합니다. 전체 길이는 요단보다 짧아도 훨씬 생명력이 있어 보이는 강입니다. 그러니 나아만 입장에서는 나병을 치료하기 위해 요단강에 들어가는 게 전부라면 굳이 적국 깊숙한 곳까지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집 옆에 있는 아바나와 바르발이 요단과 비교할 수 없이 깨끗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요단에 들어가면 나을 것이라는 처방은 나아만에게 너무 초라한 치료법 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리에서 하는 내 생각은 이 분노만 일으키는 겁니다.
말들과 병거들이 상징하는 나아만 장군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있습니다. 나아만은 내 생각으로 특별히 꽉 차서 거만할 수밖에 없는 군대 장관입니다. 이런 거만한 나아만 에게 엘리사의 태도나 그가 전한 말씀은 그냥 공격일 뿐입니다.이렇게 거만하면 들어야 할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그러면서 나아만은 내가 맞는데~ 내 방식이 옳은데~ 당신이 뭐를 알 아? 당신이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세계를 알아? 정치를 알아? 이러고 있습니다.나아만이 나병이라는 고난이 있으니 자기 집 여종이 전한 말을 들었고, 왕에게 부탁을 했고, 직접 이스라엘 왕에게 왔고 또 그가 알려주는 대로 엘리사의 집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그가 낮아질 수 있는 내 생각의 한계였습니다.
금 그릇이 아무리 낮아지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만함은 잘난 사람들만 갖는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마음이 다들 종류별로 있습니다. 나아만의 거만함은 '나만 잘났어' 하는 생각입니다.그것이 가장 자신을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교만함의 끝판왕 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목장에서 나누는 걸 보고 여러분들이 찌질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한 사람인 겁니다.이 거만함은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커집니다. 이 거만함은 말씀을 들을 수 없게 하고, 말씀을 듣지 못하면 결코 깨끗하게 될 수 없습니다. 영적인 복의 첫째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합니다.내 생각을 버리고 남을 낮게 여길때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다들 내 생각을 부르짖기에 어디서든 죽자고 싸우는 겁니다.큐티하며 하나님이 누구신지 찾고,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은 내 생각을 버리는 훈련입니다. 다들 문제가 안 풀리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하면서 다 같이 큐티하며 질문하기에 우리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 겁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모아져야 합니다.
적용: 내 생각으로 분노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말씀을 듣고 분노해서 예배나 목장의 자리를 박차고 떠났던 적은 없습니까?나는 적어도 거만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나의 고등교만, 고등거 만이 있을까요?그래서 가족, 직장, 목장을 향해 내게 이 정도는 해줘야 되는데...라며 거만하게 기대하는 내 생각은 무엇입니까?
2. 벌 떼처럼 나아와 해석해 주는 지체들의 말을 잘 들어야 됩니다.
13-말들과 병거들을 몰고온 나아만 행렬은 분노해서 왔던 길을 돌아가고 있습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자신의 힘과 시간을 들이면서 온 길인데 병도 고치지 못하고 헛걸음을 했으니 이제 너무 속이 상해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이제 그 어린 소녀를 잡아 죽이려고 벼렀을 것입니다.그래서 오늘 종들 여럿이 함께 벌떼처럼 이제 장군에게 나아갑니다. 나아오다는 뜻은 그냥 가까이 간다는 뜻이 아니라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공손한 태도로 나아가는 거를 말합니다.기분이 많이 안 좋은 장군님을 잘 설득하려고, 기분이 또 상하시지 않기를 바라면서 꼭 들으셔야 하는 말씀을 올리려고 그런 마음에 준비를 하고 생각을 많이 하고 나아갑니다. 선지자가 하라고 말한 것이 너무 쉬워서 우습죠?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니 그냥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하면서 나아만을 설득합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모두 옆에서 '저도 저도 한표 저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종들이 그냥 칼날에 물방울처럼 조심하며 벌떼처럼 설득을 합니다. 이렇듯 구원을 위한 이런 태도가 너무 중요합니다.나아만에게 엘리사가 처방하는 방식과 내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마음이 높아서 그 말씀이 들리지 않고 튕겨져 나가습니다. 나아만이 내 생각으로 귀가 막혀서 듣지 못하는 말씀을 그의 종들은 들었습니다.종들은 이스라엘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하면 고침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종들은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고 쉽게 순종할 수 있는 낮은 환경에 있습니다. 어려운 선지자의 말씀을 한 목소리 로 해석해서 외쳐줍니다. 이렇게 벌떼처럼 나와서 해석해주는 지체가 있을 때 이제 물에 들어가기가 쉽게 됩니다. 우리는 다 연약하지만 우리를 한 공동체로 불러주신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강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은 말을 잘 듣는 편입니까? 일단 '아니!! 그게 아니고!!'부터 하는 편이에 요?벌 떼처럼 나아와 외치는 지체들의 말을 들었더니 어느덧 깨끗함을 얻은 경험이 있습니까? 아니면 이 공동체를 맹신주의라고 생각합니까? 지체들과 함께 나아가 공감해주고 해석해 줘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3.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14-15절)
나아만은 못 이기는 척하고 아람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요단강 쪽으로 내려갑니다. 종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순종합니다.내 생각에는 할 때는 분노했는데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사람의 말대로 하니까 내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기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 몇 번은 몸을 씻을 수도 있지만 한두 번 했을 때 몸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순종할 것 같은데 7번이 될 때까지 아무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좋은 강에 들어가서 고친다면 이건 주술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순종해서 치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강에 들어가서 치유되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주로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 죽어지는 순종은 십자가의 겸손을 의미하고, 회개를 의미합니다.요단강으로 내려갈려면 갑옷을 벗고 수치스러 웠을 것입니다. 감추고 있던 니병을 벗고 종들과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데서 벗고 가는건 죽음을 상징합니다.
근데 오늘 14절 마지막에 깨끗하게 되었더라는 해석을 하면, 나병에 걸린 나아만의 흉측한 피부가 마치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된 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게 아니라 요단강에 7번 몸을 이렇게 담근 직후에 바로 단번에 이루어졌음을 얘기하는 겁니다.타하르는 병의 치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요. 이 단어는 단지 깨끗하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나아만은 엘리사가 명령한 것보다 더 진심으로 회개를 했고, 그러므로 단순히 나아만을 육적으로 치료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차별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겁니다.이 같은 회복을 체험한 후에 오늘 15절에 엘리사에게 되돌아옵니다. 그러니까 나아만은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모두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궁극적으로 나아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치료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깨끗한 자는 살아난 자이고, 살아난 자는 겸손한 자이고, 겸손한 자는 남을 낫게 여기는 자 이것이 깨끗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백성의 일원이 됩니다.
적용: 여러분은 병 낫기가 목적입니까?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이 목적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