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흉년의 때에 말씀의 공동체에 머물러 앉아야 합니다.(38절)
엘리사가 갈멜산을 주요 기점으로 삼고 다시 길갈에 말씀을 전하러 갔는데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흉년은, 8장에 나오는 7년 흉년이라고 합니다. 이 기적의 사건들은 연대기 순은 아닙니다. 엘리사의 사역을 주제별로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에브라함 산지에 길갈이라고 할 것 같으면 흉년이 들은 이유가 짐작되지 않습니까? 금송아지 숭배를 하고 있는 북이스라엘은 오므리부터 아합과 아하시야와 여호람까지 4대를 이어지는 오므리 왕조의 악행으로 하나님이 반
복해서 말씀하시고 사건을 주시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흉년이 오면 항상 영적인 문제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기근과 결핍이 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늘 흉년과 기근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 이시니까 이 흉년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삶의 결론입니다. 이제 엘리사 때도 가뭄에 이어 기근으로 이어지는 흉년이 또 온 것입니다. 이 흉년의 악순환을 우리는 지금 가장 가까이 북한에서 보고 있습니다. 어떤 흉년을 주셔도 회개하지 않고 또 다른 흉년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그 당시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 앞에 앉았다고 합니다. 왜입니까? 여기서 앉았다는 히브리어 단어 야샤브의 기본적인 의미는 움직임을 멈추고 한 자리에 머물다 입니다. 그러니까 움직임을 멈추는 것도, 또 한 자리에 머물러 앉는 것도 다 목적이 있는 행위입니다. 근데 제자들은 흉년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는 일을 멈추고, 엘리사 앞으로 이렇게 나왔습니다. 가르침을 듣기 위해 그 앞에 자리를 딱 잡고 앉았습니다. 선지생도 공동체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적응하는 이 훈련을 하는 학교입니다. 흉년이라는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이런 공동체가 무슨 힘이 있어 보이겠습니까? 당장 쌀 한 톨 만들 수 있는 게 필요한 상황인데 여러분들의 흉년에서 우리들교회에 와서 앉아있는 게 무슨 힘이 된다고 생각하시겠나요? 그러니까 흉년 앞에서 떠나지 않고 이렇게 남아있기가 더 어려운 공동체 입니다. 하지만 43절에 보니까 그냥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제자가 100명이나 됩니다. 밥 한 공기라도 줄 것 같은 부자나 왕 앞으로 가면 그 금송아지 제단으로 가면 밥 안 굶고 삽니다. 모든 제대로 된 제사장들은 다 남유다로 피난 갔습니다. 문제가 생겼는데 그 해결책 중 하나가 가정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는 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가정과 교회는 말씀으로 직접 세우신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에 가정과 교회는 그 모습이 때로는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말씀의 공동체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가정과 교회는 문제가 생겼다고 떠나야 할 곳이 아닙니다. 문제가 생길수록 더욱 굳게 머물러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극심한 흉년 같은 문제가 와도 거기 붙어만 있으면 수지맞는 공동체입니다.
적용: 어떤 흉년을 겪고 있습니까? 흉년을 핑계로 떠나려고 하는 곳은 가정, 교회 어디입니까? 내 역할의 자리에 딱 앉아있습니까? 어정쩡하게 서있습니까? 딴 곳을 바라보며 억지로 있습니까?
2.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38~41절)
지금 엘리사는 흉년에 대해서 강의하지 않습니다. 흉년을 극복하는 믿음에 대해서도 설교하지 않습니다. 자기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서 국을 끓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환은 뭘 해야 될지 모릅니다. 이 고대 사본은 이 사환이 게하시라고 하는데 게하시의 무능력함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솥에 국을 끓이려면 국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근데 말씀 듣는 중에 이 국거리를 가지러 나간 사람은 한 사람 이었다는 겁니다. 100명 중에 한 사람. 항상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갔다고 합니다. 42절에도 바알 살리사의 한 사람이 나옵니다. 나 한 사람이 큐티하고, 예수 믿고, 적용하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인 줄을 믿습니다. 나 한 사람쯤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디를 가도 한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흉년이 든 밭에 무슨 변변한 채소가 있었겠습니까?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땄다고 합니다. 호박이 아니고 들호박입니다. 겉모습은 호박인데 유사 호박입니다. 근데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심한 복통을 일으키는데 그럼에도 그가 그것을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국을 끓이고, 이를 무리에게 먹게 했다고 합니다. 흉년이 들었을 때는 이게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분별이 안 됩니다. 유혹이란, 이렇게 들호박처럼 교묘하기 때문에 이런 모든 유사 호박에 너나없이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무리가 국을 먹다가 솥에 죽음의 독이 있어요 하고 외칩니다. 지금 엘리사 말 듣고 들에 나가서 들호박을 따가지고 끓였는데 거기 독이 있다는 겁니다. 근데 평소에는 먹을 것이라고 생각도 안한것을 지금 궁하니까 가지고 온 겁니다. 가지고 오긴 했는데 와서 보니까 독을 같이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가 종류별로 흉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내 수준에 전혀 안 맞는 것 같은 배우자와, 회사와, 학교를 낮추고 낮추어서 택했는데 거기에 죽음의 독이 같이 온 겁니다. 그래서 날마다 복통과 흉통과 막 살 수 없는 아픔이 지금 밀려옵니다. 이렇게 모르고 그렇게 들호박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은, 교회 다니면서 인도받으면서 결혼을 했는데도 먹어보니까 죽음의 독이 딱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 듣고 적용한 일 중에도 실패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작아서 실패하기도 합니다. 인도함 받았다면 주님은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배우자 탓하지 말고, 나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적용한 한 사람이 엘리사 공동체에 있으니까 공동체의 그들이 외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내 결혼에, 내 직장에, 내 학교에, 내 건강에, 독이 있어요 한겁니다. 목장에서 같이 다 외쳐줍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만나서 힘들어도 저는 인도받고 결혼했다면 독이 와도 어쩌겠어요 좋은 일 하려다 독이 생겼다면 그냥 독이 있어요 하고 날마다 그냥 외치면 됩니다. 기도하고 나누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리고는 그 국을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합니다. 근데 독이 든 듯한 맛이 나는 국을 다시 먹어야 되는 겁니다. 조금 전에 먹었던 죽음의 맛의 기억에 갇혀서 먹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을 맛입니다. 하지만 그 쓴맛의 기억을 넘어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을 믿으며 국을 다시 먹었으니 국이 해독되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걸 내가 먹기로 작정을 하면 그 옛날 맛이 다 사라집니다. 생명의 맛으로 바뀌는 줄 믿습니다. 그 가루가 특별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권능이 역사한 복음의 가루인 것입니다. 날마다 하는 큐티는 엄청난 가루가 되어서 우리를 해독합니다. 오직 복음만이, 말씀만이 삶의 중독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말이 안 되는 술 중독, 도박 중독, 게임 중독, 쇼핑 중독들호박처럼 이 독을 품은 온갖 중독들도 복음가루 하나면 해결이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내 인생에도 독이 사라집니다.
적용: 말이 안 되는 적용으로 결혼하고, 회사 가고 했는데 죽음의 독이 올라옵니까? 죽음 같은 고난에서 말씀 듣고 채소 캐러나가는 한 사람입니까? 말씀의 해독가루로 없애야 하는 내 안의 독은 무엇입니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말씀하신 대로 독이 없어진 구원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관계는 나를 위한 것임이 이해되십니까?
3.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2~44절)
바알 살리사에 사는 이 한 사람이 흉년 중에 수확한 보리로 처음 만든 떡 20개와 채소를 가져옵니다. 바알 살리사는 세 가지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이 보여주는 것처럼 거기 이름에 바알이 들어가 있습니다. 농사가 잘 됐지만 기복으로 아주 끈끈히 뭉쳐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떤 한 사람 입니까? 바알 살리사는 셋째 우상 또는 셋째 남편이라는 뜻이 또 있습니다. 이 사람이 흉년의 때 처음 만든 떡을 가지고 온 것은 굉장히 예배를 사모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의하면, 모든 곡식의 첫 소산는 여호와께 바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한 사람이 또 있는 겁니다.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드리는 경건한 예배가 전체를 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는 끊임없이 무리에게 줄 것이 있는가 생각을 하는데 믿음 없는 사환은 내가 어찌 죽겠어요? 내가 어찌 주겠어요?하며 내가 어찌가 전공입니다. 예수 믿고 주님을 잘 따른다고 하면서도 십자가 지라고 하면 입이 나오고 힘들다고 불평합니다. 그런 내 모습을 이 사환을 통해서 보라는 겁니다.
진짜 말씀이 들어가면 가난해질 수가 없습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이상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힘은 바로 여호와의 말씀에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엘리사에게 말씀하습니다.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떡 20개와 채소 한 묶음이지만은 100명이 되는 선지생도들이 다 먹고도 남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그 어떤 흉년도 하나님의 사람을 돌보려는 이름 없는 그 한 사람의 사랑을 막지는 못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길갈과 바알 살리사의 한 사람입니다. 또한 그가 드린 들호박과 작은 떡 20개로 무리를 넘치게 먹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막지는 못합니다. 흉년과 기근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지만, 흉년을 통해 더욱 큰 사랑과 능력을 더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민수기에서 계속 헌물드리는 얘기가 나옵니다. 헌물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가까워야 그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우면 화목제가 저절로 되는데, 화목제 재물이 제일 많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가까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면은 사람들에게 줄 것이 많아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만든 떡을 드릴 만큼 경건한 바알 살리사의 믿음으로 공동체가 복을 받고,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은 뭐든지 헌금도 십일조도 자발적으로 잘하지만 목장 섬김도 자발적으로 섬기니까 먹고 남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니까 이제 우리들교회의 열매로 보일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린 기본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납니다. 그런 흉년이라는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만 살려고 애쓰는 건 너무나 당연한 모습입니다. 평소 잘 감추고 있지만은 이 원죄가 흉년의 사건이 오면 그냥 다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래서 이 본성을 거슬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흉년 같은 사건이 올 때 아무리 내가 먼저 생각되고 나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주신 말씀으로 다시 한 번 띵크를 하게 됩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할 때, 주님이 그 마음을 받으시고, 흉년 때에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는 후한 인생이 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예배가 회복된 한 사람입니까? '내가 어찌 이것을!!' 이라며 지체들과 나누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에요? 시간이에요? 돈이에요 목장이에요? 나눔이에요? 여러분의 집과 목장은 해독 공동체입니까, 갈등 공동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