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8 왕하2:15-18 (잘 사는 길)
15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16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동양사상에서는 인간을 최고라고 여기는데 살아있는 인간인 부처가 왜 불행해질까요
효를 가장 최고로 두기에 불효하면 불행한다 합니다. 이슬람에선 코란에 불순종을 최고의 불행으로 둡니다. 어떤 종교든 잘살자고 하는건데, 잘 살게 합니까? 잘 사는길은 무엇일까요?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 구원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죽기전에 우리가 구해야할 한가지는 영적 후손을 잘 세우고 십자가로 갑절의 성령을 구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역사 중에 최고의 역사는 말씀의 깨달음입니다. 최고의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이 없는 개혁은 전부 헛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개혁은 또 다른 옮음에 무너집니다.
말씀으로 사건이 해석이 안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엘리야의 승천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해석하면 해결이 되는 것을 이걸 구속사적 해석이라 하는겁니다.
우리들교회에서 말씀으로 사역하면서 내 삶이 구속사적 해결이 되면 나도 살고 남도 잘 살게 하는것을 많이 봤습니다.
불말과 불수레같은 사건으로 혼자 남겨졌다면 아픔이 사명으로 연결되어 잘 살수있길 소망합니다.
정말 엘리사를 경배했어요. 한마디로 목사 후보생들이 농사꾼 출신인 엘리사를 인정하게 된 거예요
영성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믿고 부활승천을 믿는것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그저 직분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정관념이 깊어서 목사가 어떻게 저럴수있어? 집사가 무슨 믿음이 있어? 라고 합니다.
저도 여자라서 한국교회에서 존경을 받진 못했지만 여자라서 사람을 살리지 못하진 않았습니다. 우리들교회의 집사님들도 엘리트뿐만 아니라 학벌이 고졸도 안되는 분들도 많고 바람피고 중독되어 오신 분들이 말씀으로 살아내서 장로되시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성도님들도 다같이 그분들의 제자가 되어 따라가고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20년간 오면서 수많은 세상 가치관의 고정관념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그럼 무슨 고정관념이 있을까요?
엘리야의 승천을 보고 엘리사를 인정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엘리야 시체를 찾으러 가겠다고 하는 거겁니다.
그 제자들은 요단강이 갈라지는것도 두번이나 봤고, 엘리야를 하늘로 올려가겠다는 것도 미리 알았다고 했었지만 50명을 수색대로 보내서 엘리야를 찾자고 하는겁니다.
제자 50명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엘리야를 승천시키는 하나님이 아니라 엘리야를 들어다 골짜기에 던지시는 하나님인겁니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목사, 목자에 대하여 신뢰가 없어지면 사람과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인간적인 생각을 하는지 모릅니다.
또 여기서 은혜받고 이렇게 세상으로 나가면 눈앞의 현실 때문에 주님의 실체가 안 잡힙니다. 실체가 안보이니까, 선지자 제자들이 지금 엘리야 시체 찾겠다고 난리인겁니다. 이걸 구원의 사건으로 인정을 안 하는 겁니다.
이 제자들은 자기들이 대단하다는것을 보이는것. 그러니 한명이 찾자고 하니까 다 찾자면서 우르르 달려가는겁니다. 예수님 제자들처럼 자기가 으뜸인것을 보이려 하는겁니다.
내가 말을 해도 아무리 말을 안들을때는 보내야 할때도 있는겁니다. 내 열심으로 찾아 헤매는 시간이 선지자 생도들은 3일 걸렸지만 우리는 3년, 30년 걸릴 수가 있습니다. 내 고정관념, 남의 고정관념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잠잠히 있는 사람과 자기 열심으로 이렇게 시체 찾겠다고 나서는 사람 중에는 누가 믿음이 좋아 보입니까? 참 분별이 안 됩니다. 그죠? 그렇기에 열심의 반대는 신뢰입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정신 못 차리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그 시체는 무엇이에요? (돈, 남편, 자녀, 아내, 명예, 권력?)
여러분은 목자로서 목원이 나보다 더 믿음이 좋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합니까?
목원으로서 목자님을 윗질서로 인정하십니까?
그래서 잘 살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말아야 되고 고정관념을 버려야 결혼을 잘합니다.
2. 양육이 필요합니다.
시체찾고 있는 사람에 대한 얘기는 신약에도 문자적으로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 신약은 오신 예수님,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게 구약은 화면으로 신약은 자막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자. 그래서 이 엘리사 생도들의 얘기하고 아주 비슷한 얘기가 요한복음에 마리아 얘기로 나옵니다. 이렇게 신구약을 보게되면 시야가 넓어지는겁니다.
(요한복음 20:13-15)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결론만 얘기하면 주님을 그다지 사랑하는 마리아가 주님이 어디있냐고 울었다는 겁니다. 이건 마리아가 자기 자신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얘기인겁니다.
예수께서 서계신것을 보았으나 예수인지를 모르더라 합니다. 동산기지 인줄 알고 묻는겁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는데 계속 시신이 없으니 자꾸 가서 보는겁니다. 그냥 운게 아니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뭐때문에요?
예수님 시체가 없다고 우는겁니다.
내 힘으로 돌이키려 하니까, 마리아는 시체 생각만 하니까, 바로 앞에 계신 예수님이 보이겠습니까?
내 식구, 내 아내, 내 부모가 하나님 자리에 있기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안돼. 이렇게 안돼니 우는겁니다.지금 내 사건으로 그 주님을 딱 만나야 되는데, 그 사건으로 예수님의 시체찾겠다고 왔는데, 주님이 딱 앞에 서 계신데 울고 통곡하고 있는겁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와서 우는게 사랑이라고 우리가 생각할까봐 예수님이 알려주시려고 하는겁니다.
우리는 예수님 생각하며 우는것같지만 나때문에 우는겁니다. 인간적으로 우는겁니다.
마리아의 계획은 날마다 무덤에 가서 우는게 마리아의 평생의 프로젝트인데 시체가 없는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울고있는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울고 있냐고 집적 물어주시며 양육해주시는겁니다.
우리는 무엇때문에 우는겁니까?
목장에 가서 왜 우는지 솔직하게 대답을 해보라는겁니다. 목장에서, 일대일 띵크 양육할때, 양육교사할때, 이렇게 왜 우냐고 계속 물어주는 것이 최고의 양육입니다.
우리는 왜 우는지 모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거를 계속 양육을 시키고 받아야 되는겁니다. 이렇게 계속 물음을 받을때 우리는 양육을 받을때마다 왜 우는지에 대한 내용이 달라지기에 양육을 받아야 성숙해지는겁니다.
왜 울었나는것에 우리는 무슨 답을 해야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면, 엘리사가 말하는데, 해보고 안됐을때 하지말라고 했잖아, 가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잘못갔을때. 결혼 하지말랬잖아, 사업하지 말랬잖아 라고 담대히 전할수 있어야 하는겁니다.
나중에라도 구원때문에 말리셨구나 라고 돌아오게 하는것이 영적인 부모인겁니다.
결국 우리는 이런 말하려고 실제적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이 말을 해주기 위해서 얼마나 큐티를 하고 실재적으로 기도해야하는 겁니다. 그냥 입으로 내뱉으면 안돼고, 정답만 들이대면 안 됍니다.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면 못할 말입니다.
어떤 부목자님은 자기가 생각해봐도 잘난 사람, 죄 안 지어본 사람, 자기 일 잘하는 사람은 우리들교회 오면 분해서 설교 못 들을 거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솔직한거는 제정신 가지고 솔직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임해야 됩니다.
(인두겁을 이렇게 끼고 인격적으로 만난다는게 가면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게 다 가면 쓰고 만난다 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적용 질문
여러분은 어디까지 양육을 받으셨나요? 그리고 어느 양육에서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나요?
그래서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는 질문에 답해보세요.
3. 의외의 사건에서 주님이 불러주시는 이름을 들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우는 이유, 또 우리가 우는 이유가 내 고정관념으로 나는 잘돼야 되고 하기때문입니다.
그러나 '1 + 1 = 2' 이런 정답만 말하는 환경에서 주님이 오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못 알아보는 것은 기대하지 않은 장소에서 기대하지 않은 사람, 사건을 만나기 때문이에요. 마리아는 예수님을 지금 동산지기인 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부활의 예수님이 오실 때는 전혀 생각지 않은 장소와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그래서 못 알아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고통에서 쓸개 탄 포도주는 받지 않으시고, 신 포도주는 받으시는데 이 똑같은 포도주인데 하나는 진통제고, 하나는 입술을 축이는 겁니다. 이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상황에서 분별하시는것이 정말 대답합니다.
결국 십자가는 착한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분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착해서 천국가는것이 아닙니다.
착해서, 거절못해서 쓸개탄 포도주를 먹누 착함으로 망하는것 같습니다.
주님을 꼭 만나야 하는 시간과 장소를 내가 결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주님은 의외로 다른 곳에 나타나시는 겁니다.
동산지기라고 믿음이 없는게 아닙니다. 동산지기 같지만 예수님이잖아요? 그분.
내 힘으로 돌이켰을 때 주님이 안 보였는데, 주님이 이름을 마리아라고 불러주시니까 돌이켰습니다. 이 돌이킴이 다른 돌이킴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직접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직접 양육하십니다.
(시체는 가짜잖니? 내 몸을 붙들지 마라. 이제는 실체이신 주님이 네가 찾는 내가 여기 있다. 나를 보았잖니? 그만 수고해라. 하고 마리아에게 사명을 주시는겁니다. 비천한 나에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사명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에 여러분 모두 죽은 시체 그만 찾고 내게 흐르는 모든 눈물과 근심과 한숨이 다 마르는 역사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질문
내 뒤에 있는 예수님이 바람, 부도, 사기, 질병, 중독의 모습으로 온 것을 인정 하십니까?
남편이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만에 회개하고 갔을때, 하나님 이건 아니라고, 아 도 안떨어지고, 삼십대에 어떻게 감당하고 하시는지, 그런데 그날의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에스겔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당시 큐티 본문인 에스엘 18장 23절부터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겠니?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니?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않아. 근데 너는 왜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해?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서 구원받고 살았는데 네가 왜 죽고자 하니?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않으니 아니하노니 너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아라.'
주님은 정확하게 내가 어찌하여 우는지, 누구를 찾는지 알려주시고, 양육해 주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하루아침에 아내를 데려갔단다. 너 슬퍼하지 말고,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너는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표징의 선지자가 되거라. 그러니까 내가 주를 보았다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제자들부터 시작해서 주의 형제들에게 외치는 사명을 감당해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가 정확히 누구를 위해 우는지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의외의 사건으로 주님이 양재야 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양육해주셨습니다.
시체찾으러 돌아댕기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고 표징의 선지자가 되라고 하는겁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보라고 하는겁니다.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부활하신 주를 보여주셨고 이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주의 형제들에게 시체가 아닌 주를 보았다고 외치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해주시는겁니다.
큐티를 매일하는게 이렇게 중요한겁니다. 정말 제가 시체 찾다가 우울증 걸려서 지옥을 살 뻔했는데 이 사명을 감당하는 기가 막힌 기적의 인생을 살게 하신 줄 믿습니다.
내가 시체가 아닌 주를 보았다고,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우리가 큐티를 하는것은 그날의 말씀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겁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어떤 의외의 사건에서 주님이 이름을 불러주셨나요?
여러분이 똑같이 앉아있지만 억지로 앉아있어도 내말이 하나도 들리지않는데, 성령이 임하시면 진짜 주를보았다고 주님을 보았다고 말하는 여러분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들 기도제목>
다님
아파야 하는 때 아픔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환자의 경계를 지키도록
괜찮은 가면을 벗고, 천국 자녀 자존감으로 변화시켜 주시도록
아웃리치,청소년큐페에 임하는 모든분들 몸 건강히 준비하고 갑절의 은혜받고 돌아올수있도록
지윤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혜인것을 알고, 자기개발 보다는 큐티를 우선으로 두며 한주 잘 살아내도록.
세정
두려움 가운데 이름을 불러주시고, 아픈곳을 들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큐티로 양육하시고 갑절의 영감과 은혜 구하도록.
은우
말씀따라 믿고 잘살고 누리는 저와 우리들 목장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