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본문 : 마태복음 5장 9절
제목 : 팔복산의 상속자
말씀 : 김양재 목사님
팔복산의 상속자는
1. 상대와 함께 화평을 누립니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 입장에서만 평화이고 제압 당한 상대 입장에서는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중화사상, 제국주의도 같은 부류입니다. 온 나라가 유대인 600만명을 죽이는데 동참했고 독일은 승자로 화평했지만 유대인에게는 참혹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번영을 주시니 인권의 시대가 도래했고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불립니다. 문제가 생길 때는 거슬러 올라가봐야 해요. 어떤 일이 일어나면 거슬러 올라가서 내 인생의 결론이다 해야합니다. 유대인에게 왜 이런 학살이 일어났는가. 원죄는 예수님을 죽인 죄, 이스라엘이 예수 죽인 죄를 받고 있어요. 온전한 화평은 양쪽이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질서에 따른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상태인데요. 힘 있는 누군가의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가 기준이 된 것이 가장 완전한 조화이자 화평입니다.
생각지 말아야할 일시적 화평이 있어요.
마태복음 10장 34절 ampndash 37절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복음 없이 화평한 것은 영원한 화평이 아닙니다. 싸움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싸움만 그치는 것을 생각지 말라는 거에요. 진정한 화평은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 입니다. 거짓된 연민, 위장된 감정, 일시적 화평이 깨져야된다는 거에요.
핏줄 타령 때문에 불화가 생기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족에게 집착하고 기대하기 때문에, 정이 많아서 기대한만큼 안돌아오면 분노하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해요. 남북 이산 찾기에도 부부는 안 찾고 핏줄만 찾아요. 그래서 이혼은 안해야 해요. 권세와 재물을 포기하면 싸움도 복음 때문에 담대해지고 진정한 평화가 넘치는 데요. 진정한 화평을 위해 주님은 일시적 화평을 깰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적용질문)
1. 여러분의 화평은 한 쪽자리 이기적 화평입니까, 양쪽의 이타적 화평입니까?
2. 일시적인 화평을 지키려고, 주일을 어기는 배우자나 자녀를 못 본 체 합니까?
3. 그러다가 마지막에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4. 백 마디 듣기 좋은 말은 한마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임을 실천하십니까?
2.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룹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화목하게 되는 길은 십자가밖에 없는데요.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한 사람이 밀알이 되고 죽어지고 썩어질 때 하나님과 모든 사람을 화목케 했어요.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해요.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똑같이 상속을 받는 상속자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거에요. 빠질 수 없는 게 고난을 함께 받으라고 하잖아요. 영광을 받기 위한 고난. 면류관을 쓰기 위한 십자가의 가시관을 받아야 혼자 받는게 아니고, 주님과 함께 받으니까 힘들지만 따라갈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요. 공동으로 상속자가 됐다 이겁니다. 대단한 신분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어요. 예수님이 십자가로 우리를 화평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가족과 이웃을 십자가를 길로 놓고 화목하게 해야 할 사명을 받은 거에요. 입으로만 아니고 십자가로.
야고보 2장 5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상속자로 택하셨다는 것을 들어야 해요. 인정 받고 있는 부분에서 가난해지기란 인간의 죄성으로는 불가능해요. 부자가 믿음에 부요하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마음에 쏙 드는 배우자와 살고 있다면 주님을 사모하시겠어요? 배우자가 마음에 안드는 만큼만 내 신랑 주님을 사모하게 된다니까요. 배우자 바꿀 생각하지 마시고, 주님 신랑 만나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별 인생이 없으니까 고쳐 쓰세요. 육이 무너지는 것 만큼 영이 세워져서 주님이 보이는 거에요.
마태복음 10장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녀를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려면 자기 부인이 필요해요. 내 자녀 품질이 좋으면 교만해서 자기 부인이 필요, 품질이 나빠도 열등감으로 닦달하기에 자기 부인이 필요해요. 우리도 내가 죽을 십자가의 처형장을 바라보며 나를 따르라 해야 해요. 십자가를 길로 놓는 거 이게 너무 중요하다고요. 이혼하고 그만두면서 나를 따르라 그러시면 안돼요. 환경을 바꾸려 그러면 안돼요.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화평을 막아요. 주님보다 더 사랑해서 갔는데 본질적 화평을 막는거에요.
유대인들은 2,000년동안 죄값을 받아오는데 그들은 가스실에서 죽으면서도 아브라함, 다윗, 모세를 외치며 죽었어요. 이스라엘은 2,000년을 무시당해도 예수님을 못 믿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죠. 행위로는 유대인을 따라갈 자가 없어요. 나귀 타고 오신 실패자 같은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금 그릇, 바른 생활이 유다가 잘 안깨달아지는 것 같아요. 힘들고 낙망해도 목장가고 예배드리는 게 119고, 구급차에, 팔복산 가는 구원열차에 탄거에요. 끝까지 타고 있어야 해요.
(적용질문)
1. 여러분의 집은 자녀가 문제아입니까, 부모가 문제아입니까?
2. 독일이 이해가 되나요? 유태인들이 이해가 되나요?
3.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구원 때문에 설득해야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무엇이 이익이 될까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득이 될 것을 제시할 줄 알아야합니다. 유명한 사람도 많고~ 등등. 교회 오면 처음부터 희생해야 돼 그러면은 누가 오겠습니까.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그 눈높이에서 설득을 해야 하잖아요. 구속사는 힘든 사람들은 오자마자 다 이해가 됐어요.
유다가 이 설득을 가장 잘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창세기 43장- 44장. 유다가 깨지고 나니 인생이 보이게 됐어요. 예수님 만난 유다가 아버지를 용납하고 껴안게 됐고, 형제들을 화합으로 이끌어내고 예수님이 그 자손으로 오셨어요. 유다는 만고의 죄인이라 화평케 했어요. 유다가 화평의 모델이에요.
요셉은 에브라임, 므낫세를 아버지가 어긋나게 안수했다며 불평하는 게 마지막 대화 장면이에요. 유다는 마지막까지 화해시켰어요. 화평케 하는 자도 공로나 자격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어떻게 며느리하고. 전부 행위로 보죠. 다말이 자기 집안의 씨를 위해 수치를 감당했기에 유다는 며느리보다 못한 자신을 보며 일생 겸손하게 살았어요. - 똑같은 사건에서 롯(딸들과 동침)과 유다(며느리와 동침)의 차이는?
다말은 도장, 끈, 지팡이로 영적 후사를 위해 수치를 무릅쓰고 왔어요. 우리집의 구원을 위해 수치를 무릅쓰고 목장에 오픈하잖아요. 롯은 음행을 위해서.
그러나 유다가 화평의 메신저가 되었어도, 사는 날까지 형통한 사람은 요셉. 유다는 회심 후 그림자처럼 살았어요. 그는 비교하지 않고 요셉을 시기하지 않고 야곱을 정죄하지 않고 자기 주제를 알아서 입을 다물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찌질해보여도 하나님 나라가 그에게 임했기에 그렇게 살게 된거에요. 유다는 요셉과 비교할 수 없이 예수의 씨로 창대합니다. 예수의 씨인 유다와 예수의 표상인 요셉은 하늘과 땅 차이에요.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보일 수 있는 길이 화평케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하는 것이 예수의 씨 맞습니다.
스가랴 8장 16절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사건이 왔을 때 두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건 자체 때문이라기보단 그것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지나갈 건데 말하면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숨기고 싶잖아요. 진리와 진실을 말하는 것은 너무 외로운 길이에요. 진실은 모든 것을 까발리고 옳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각자 믿음의 분량, 행위의 분량이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리와 진실을 말할 때 화평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제가 이 세상에서 뭘 해도 재미가 없는 거에요. 회개를 하니까 유다가 깨달아졌어요. 그 다음부터 한결같이 오게 하셨는데, 하나님의 아들로 자리매김하는게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아무리 힘들어도 저처럼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점점 살려야할 사람이 많고, 안 아픈데가 없는데 책상에 하루종일 앉아있는 거 고문이에요.
우리가 다 밑동잘린 나무, 짧은 인생에서 다른 나무도 살리고 가야하는데, 사람으로써 할 일이 아닌거죠. 주님이 물과 불과 동행해 주셔서 가는거죠. 날마다 두려워요.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날마다 겪고 있어요. 이사야 43장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번주 읊조리며 지냈어요. 별 인생이 없습니다. 저는 유다가 이해된다는 것이 십자가 길인 것 같아요. 맨 처음에는 너무 기뻐서 다른 사람에게 전했는데, 깨닫는 것, 처방도 거부감 있는 분들이 언제나 있었어요. 그래서 눈물이 저절로 흘러요. 제가 상속자 맞기에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걸어가는 거죠. 꼭 살아나는 분들이 한 분이라도 있는 거에요. 그 분 때문에 얘기해야하는 거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도 인류는 요셉만 좋아해서 유다는 이름도 갖다 쓰기 싫어해요. 공병호 경영 연구소 소장이 전하는 성공의 비결은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 안에서 해결책을 찾으면 부자의 길로 들어선대요. 문제를 타인으로 돌리기 시작하면 가난한 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거에요. 당신은 나보다 옳습니다 는 손해가 아니라 부자의 비결 맞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도다가 교회의 표어에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로 일컫는다고 하십니다.
(적용질문)
1. 진실이라고 까발립니까? 믿음의 분량을 인정하고 화평을 수반해서 말합니까? 빙자해서 회피합니까?
<나눔> 참석: 전유정, 김주원, 홍지은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와 적용질문 몇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어피치: 요즘에는 말씀 안에서 살고 싶고 쓰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긍휼의 마음, 평안의 때를 보내는데 제 안의 화평을 가정과 목장에서 잘 나누고 싶다. 눈높이를 맞추어 친한 언니를 전도하고 싶다.
라이언: 구체적으로 나눔하라는 권면을 듣고, 요즘 구체적으로 부모님, 가정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네 탓이다'라고 해와서 지금 내 환경이 삶의 결론인가 싶다. 그래도 아팠는데 부모님이 챙겨주시는 것에 감사했다.
조르디: 직장에서 상사가 지적을 했는데 이번주 큐티하면서 내 교만, 판단을 보려고 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당신이 나보다 옳도다' 해야겠다. 진짜 아닐때는 못할 것 같다.
<기도제목>
어피치
1. 육신(팔, 감기)이 회복되길
2. 이번주에 '당신이 옳아요' 3번 이상 말하기를
3. 주일예배, 목장예배 승리하길
4. 가족에 긍휼을 느끼고 구원으로 이끄는 딸이 되길
5. QT책 살 수 있기를
조르디
1. 할 수 있는 만큼, '당신이 옳아요'하고 직장에서 순종하기
2. 상사의 한마디에 불안이 몰려올 때가 많은데, 불쌍히 여겨주시고 평안 주시길
3. 아빠, J, S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
4. J에게 QT책 전하려고 하는데(5/20 만날 예정) 전할 수 있는 용기 주시길
라이언
1. 구체적으로 잘 나누고 갈 수 있도록, 신뢰하는 마음 허락해 주시길
2. 할 수 있는 만큼 일상 살아낼 수 있도록
3. 가족 구원
<공통>
- 진로 인도해주시길
- 신교제와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