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30 팔복산의 상급
마태복음 5:9-12
그날 말씀으로 목장에서 나누는 것이 좋다.
오늘 팔복 산행을 마치는데 내가 가난 애통 온유 의 긍휼히 여기고 청결하고 화평케하는걸 다 건너왓으면 큰 상을 주셔야 하는데 여러분은 어떤 상을 받고 싶은가?
마지막 최고의 상급에 대해서 설명한다.
1.박해로 나타납니다.
팔복은 서로 구별되지만 구별되지 않는 분리되지 않는다. 서로를 포함하며 연결되어있다.
가난에서 출발해서 박해로 끝난다. 팔복은 복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는 결론이다.
의를 위해서 박해받은 자의 복은 세 구절이나 있다. 아주 그만큼 의를 위해서 박해받은 축복을 유난히 강조했는데 그만큼 최고의 복을 말씀하신다. 이것이 상이라고 하는데 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밑둥잘린 나무같은 인생에서 박해를 받으면 정말 밑둥이 잘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박해를 받는것은 이 땅에서 힘들겠지만 이 땅에서 소망을 버리게 하는것은 상이라고 생각한다.
땅에서 누릴 것이 많으면 하늘에 소망을 두기 어렵다.
유교적인 것이 기독교 적인 것이 있기도 하다. 중재자가 되면 박해가 시작된다.
화평케 한다는 자체가 십자가의 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화평이 듣기에는 좋지만 화평케 하는 자의 입장에선 너무 세상적으로 보면 좁은 길이고 그길이 복이라는 것이 팔복의 클라이막스이다.
박해를 받는자는 이미 시작된 박해가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도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쫓기는 사람 도망자 신세이다.
왜 이렇게 마지막에 박해를 주시는가?
다 각자 향하는 양같은 우릴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마지막에 우리로 몰아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로 몰아가는 그 현상이 박해인 것이다. 여우가 오니까 뛰어가야 되는데 정신 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막 도망자 처럼. 팔복의 끝에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7번째까지 왔는데 너무 박해가 힘들다고 천국 열차에서 내릴까봐. 그리스도의 군사된자 로써 뒤를 보면 다 죽는다. 군인은 사명자이다.
우리가 이겨서 상을 받는게 아니고 사명자의 상급이라는 개념으로 뭘 해서 구원 받는게 아니다.
우린 전적으로 아무 공로 없이 구원을 받는데 일곱째 복까지 올라왔다. 마지막 복을 위해 골인하기 위해 목자가 양을 몰아간다. 양은 제 각각 제길로 행하지만 목자가 몰아가시기 때문에 우린 이미 이긴자이다. 그래서 의를 위해 박해가 있다. 주님이 나를 몰아가는 것이다. 딴길로 가지 말라고. 이것이 복이다.
남이 당한 박해 얘기도 듣기 싫고 무서운데 왜 그렇게 박해가 싫은가 하면 예를 들어서 남편이 바람펴서 나를 박해한다고 하면 남편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보다 남편이 나에게 줄 유익이 있으니 그 후폭풍이 두렵기 때문에 바람이라는 사건에 쫓기는 도망자가 되어 시달린다.
*결국 자신의 유익때문에 두려움에 시달린다.
예수가 없으면 다 마찬가지다. 억울한 일을 경험해서 힘들게 하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 만난다면 너무 가치가 있는 일인데 *내가 하나님 자리에 있는것을 알려주기 위해 박해가 온다.
*우상의 종류가 나타나고 그것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주님은 의를 위한 박해라고 하신다. 의는 세상적인 옳고 그름이 아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백퍼센트 옳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고의 일인 구원이다.
예수님이 곧 의이다. 10절에는 의를위하여 박해 받는자 11절에는 나로 말미암아 박해받는자.
에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이 주신 구원 때문에 박해받는 것은 복이있다. 상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하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이다.하늘을 올려보면 아름다운 하늘 무한한 하늘이 다 네것이라 하는데 하늘나라가 내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어떻게 내 것일 수 있나. 내 아버지 하늘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상상이 안되는 하늘나라가 내가 거기에 멤버라고 한다.
늘 하나님이 우릴 시청각으로 양육하시는데 우리가 하늘을 보면 너무 광활하고 아름다운데 너무 제한적이다가 박해를 받는 자는 천국이 내것이라고 하니까 하늘 보고 우와 이것이 내것 이라고 하면 안될까? 잠시후 갈 것이다. 주권이 중요하다 주권이란 것은 영향력을 미치는것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이 내것에 나에게 임한것이다. 눈에 바라다 보이는 사람은 안보이겠지만 이게 영적인 것인데 들에 백합화를 보라 공중에 새를 보라 라고 우리에게 보는걸로 하늘나라를 설명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씩 하늘을 보고 우와 내것 이라고 생각해 보자.
헌신 봉사 헌금 구제 이런게 많지만 박해를 받아야 천국이 내것이다. 최고의 상은 박해를 받아야 나한테 하늘나라 상이 임한다.
늘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하늘 나라로 상급을 설명하신다.
우리도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설명을 해야한다.
*알 수 있는 볼 수 있는 적용과 간증으로 설명해야 한다.
사람들은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싫어한다. *죄책감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미쳤군 이런 소리는 박해라고 할 수 있다.
믿음 때문에 받는 박해라면 어떤 말을 들어도 듣겠지만 아니라면 힘들게 들린다.
*어떤 얘기를 들어도 당신이 옳소이다는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화를 내면 지는 것이다. 리더십을 가질 수 없다. 화내면 밑에서 노는 것이다.
*누가 분노할지 모르는가 거기서 분노를 하지 않는것이 중요하다.
*날마다 순간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구원을 받을까 깨어있어야 한다.
*적용질문
여러분의 박해는 천국이 임하는 박해입니까?
옮음을 증명하려고 참는 박해입니까?
아직 구원의 사건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나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은 잠시후에 얼굴이 썩는다.
이쁘거나 잘생기거나 남녀간에 얼굴이 있으면 사는게 힘들다.
2.그들만 아닌 내게도 주시는 상급입니다.
3절부터 10절 까지 팔복을 다 말씀해 주셨다.
다 3인칭으로 그들의 것이므로 라고 하셨는데 11절 부터는 그들이 곳 너희다 라고 하신다.
날마다 말씀묵상 가정중수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 세속사가 아닌 구속사 구원이 최고다.
구속사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듣는것에 그치는 사람도 있다. 멈춰있는 것이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복있는 사람을 3인칭으로 말씀하시니까 다들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니까 확신을 못한다.
어떻게 가난한자 애통한자 의에 굶주린 자가 복이 있을까? 나는 그런 사람아냐 그런사람이 될 수도 되기도 싫다. 난 나대로 살거야 라고 한다. 왜 이럴까?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은 그들에게 있다고 하니까 그들에게 주신다고 생각한다. 11절에 그들이 바로 너희라고 한다. 핍박받고 박해받는자 바로 너희.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 말씀을 주신다고 한다. 11절에는 박해를 어떻게 받는지 풀어놨다. 박해 거짓 비방 비난. 나와 내 식구와 관계있는 사람을 비방하면 굉장히 문제가된다. 주님 만나서 자유로워야 하는데 아주 자존감 낮고 자존심만 높아서 피해의식이 발동을 하면 욕 레이더를 24시간 돌리면서 산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비난을 받았다고 하면서 상처를 받는다. 내 꿈에 나타났다 너 왜 나타났어라며. 이런것도 이제 박해를 받는 거지만 제일 힘든것은 적극적인 순종으로 주를위해 순종하다가 욕먹고 박해받는 것이다. 기적적으로 주님을 만나서 결단을 따라 하루하루 십자가 길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하는 상황이 닥친다. 주님을 섬기는 내 모습을 온세상이 비난하고 박해한다. 어떻게 할것인가? 지금까지 순종해온 모든것이 다 합쳐져 어마어마한 생색이 올라온다. 그래서 이 비방과 욕설을 어떻게 잘 받아야 복이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가.? 구속사는 유다가 주인공이라고 한다. 유다가 며느리 보고 그녀는 나보다 옳도다고 했다. 무엇이 나보다 옳은 것인가? 자신은 복수심으로 요셉팔고 공동체를 떠나서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았는데 둘이다 악하다고 했다 죽었다. 그때라도 요셉을 팔아서 이런일이 왔구나 하고 내 삶의 결론이요 하고 돌이키면 좋은데 3차흉년이 올때까지 말씀이 안들린것 처럼 유다도 안들렸다.
셋째아들 까지 주면 셋째도 죽을것 같아 자기 생각으로 다른곳으로 보냈다. 회개를 안하고 죄를 감추고 일에 미치고 창기하고 놀았는데 그게 며느리라는 것이다. 유다가 얼마나 악을 계속 행하고 있는지 모른다. 말씀이 안들리니까 하늘을 보고 내 땅이라고 해야 하는데 *이 땅에서 제한적인 것을 가지고 내 왕국을 세우려고 한다. *이기고 이기려고 하니까 모든 사람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 제한적인 조그만 곳에서 내 왕국을 세워야 하니까 이런 것이다. 말씀이 안들리면 목장 같은데 안가 라고 한다. 이렇게 계속 땅끝까지 내려갈떄 까지 죽음으로 치닿는 것이다. 며느리가 구원을 위해 수치스런 일을 행했다고 한다. 며느리와 동침하는게 왜 구원을 위한 일인가? 며느리가 이 집의 셋째 아들도 안주니까 예수씨가 계속되기 위해 시아버지와 동침을한 것인데. 임신 했다고 하니 불에 태워 죽이라 한다.
자기가 이렇게 적용을 했는데 이런 박해가 어딨는가. 이게 예수 씨 때문에 하는 것인데.
며느리는 적용을 했다. 하지만 유다는 자기 동생 시기하고 팔아먹은 것을 아무에게 고백하지 못했다. *며느리는 오픈을 하고 죽을 각오로 적용을 했다. 이 적용이 처음으로 유다에게 들렸다. 말씀이 들렸다는 것은 유다가 *죄가 보였다는 것이다. 죄가 보이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해도 안듣는다. 유다는 그다음 무슨 박해를 받았을까? 며느리로 인해 베레스를 낳았다 베레스가 예수님 계보에 올랐다 그녀는 나보다 옳도다 하고 다시는 동침하지 않았다. 이게 음행의 일이 아닌 것이다. 완전히 유다가 바뀌었다. 창세기 38:26절 이후로 완전히 변했지만 완전히 바뀌었다. 베레스도 심한 조롱을 받으며 컷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악한 말을 들었을 것이다. 유다도 다말도 모두 악한 말을듣고 *묵묵히 살았다.
이 죄 많은 유다와 수치스런 일을 겪은 다말도 모두 예수님 계보에 올랐다.
*유다는 회개 이후로도 요셉에 대한 말을 못했다.
*못 하는 그 한가지 떄문에 유다는 수없이 회개하고 낮아졌다. 그 말을 못하니까. 며느리 사건을 인정하고 오픈을 한 것 처럼 말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다.
*유다가 훌륭해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른것이 아니다.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 짐과 같은 조롱과 욕을 받은것이다. 모두에게 천국에 창대함을 보여줄 수 있는 화해를 하게한 것이다.
*내가 말을 해도 때가 될때 까지 입을 다물어야 하는게 있다. 어떤 말이든 받아야 하는데 야곱이 못 받아 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야곱 보다는 유다가 예수님 직계조상이란 말을 듣는 것이다. 상대를 위해 못하는 것이 있다. 구원을 위해서. 유다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태생적인 고난이 있다. 말씀이 안들리고 이해 안되는 분들의 고정관념에서 여자 목사는 그렇다.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는 믿음으로 보지 않으면 완전히 이상한 얘기다. 무시받는 환경은 굉장히 의를 위해 박해받는 이런 환경일 수 있다고 한다. 큐티를 하니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어가 아니라 *그럴 수 있어가 되어야 한다. 의를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박해를 받는데 어느날 어린딸이 목사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건이 왔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고 덮어 두려니 안타깝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시댁은 교회라면 이를 가는데 어떻게 알리겠는가.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럴수도 없고 저럴 수 도 없는 일이 이땅에 너무나 많다. 이런 사건을 어떻게 구원을 위해서 의를 위해서 박해받는 것으로 해석이 되고 해결이 될까?
*어떤 경우에도 내가 보여야할 구원의 적용은 내 죄 보는 것이다.
*언제나 우린 하나님 계시다면 이럴 수 있어 라고 해야한다.
박해 속에서 교회를 다닌 것이 이분에게 의를 이룬것일 수 있다.
*우린 객관적으로 내 자신을 보고 세상을 보는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한다.
*누굴 탓하면 해결이 안된다. 세상은 갈 수록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영적으로 깨어서 누구보다 자녀를 지키고 양육해야 한다.
내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지 라고 하는게 아니라 지상의 공동체에서 완벽한것이 없다. *내 자리에서 역할을 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혜롭게 인도받는 하나님의 싸인이 있다.
내가 해석이 되야 하기 떄문에 큐티와 나눔이 중요하고 항상 묻고 나누고 해야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사람은 백프로 악하고 음란하다. 누굴 믿겠는가?
교회를 가도 물을 사람이 없으니 혼자만 교회를 다니다 변을 당할 수 있다.
*사건으로 묵상하며 주님을 만나야 한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되고 말씀 묵상을 하게된다.
육적으로 무슨 일을 당해도 그것 때문에 주님을 만나면 누구탓을 안한다.
거꾸로 내가 의를 위해 박해를 받지 않으면 지옥이다.
이게 다니까 못 가질것 같으면 그게 죽을것 같은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라며 생각한다.
*지금 듣는 욕 박해에 속지말고 의를 위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사건만 묵상하면 지옥을 산다. 인간이 뭐 그렇게 선한게 있다고...
당신이 나보다 옳소이다는 천국이다. 그게 안된다 사과 한 번을 못해서 이혼하고 자살하고 한다.
*적용질문
욕,박해,거짓된 악한 말로 비방받으며 내가 복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어집니까?
내가 받은 박해가 전도의 열매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힘들어도 우린 오르막 길로 계속 가다가 입성해야 한다.
3.지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한다.
팔복 설교의 결론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내가 참을 순 있지만 용서는 못해 용서할 순 있지만 난 사랑은 못해 이런 식이다.
각자 적극적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너무 어렵다.
하늘에서 우리가 받을 상이 너무 크기에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있다.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비결이 믿음 영혼구원 이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이 영혼구원이다. 영혼구원이 제일 상급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구원과 천국은 저절로 따라온다.
주님이 아브라함 에게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라고 하셨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인 것이다. 구원 천국 모두 같은것.
*아무리 좋은것 같다줘도 좋은건 잠시다. 환경은 결국 소용이 없다.
우리가 욕먹고 박해 당하고 온갖 악한말로 비난을 받을 때도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고 신랑이시니 나를 떠나지 않고 함께 나보다 더 탄식하시고 넘어질 때마다 손 잡아주시고 안아주고 함께 걸어가주신다. 내가 아무리 노력에 걸맞는 상만 받아도 기쁘고 즐거운데 우린 노력에 걸맞는 상을 날이갈수록 받을 수 없다는걸 안다. 임원이 되어도 결국 명예 퇴직이 있다.
결국 내 힘이 아닌 오직 주의 은혜로 내가지금 믿음위에 서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우린 합격자 승자도 아니고 택자이다. 합격자 승자 좋아하지 말고 택자가 되어야 한다.
팔복은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하늘을 보고 내 집이 저기구나 하고 기뻐하면 된다.
공동체 안에 꼭 붙어가고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는것. 말씀과 공동체가 우리가 주와 함께 통과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도 힘들고 맘대로 살아도 힘들다 인생은 힘든 것이다. 이왕이면 사명을 감당하자. 마음껏 술먹고 여자 만나고 놀아도 힘들다. 사명 감당해도 힘들다.
*똑같이 힘들지만 승산이 있는걸 택해야 한다. 유다가 22년 기다린 만큼 기다려야 한다.
말씀으로 정확히 양쪽의 화평이 있어야 한다.
말씀만 있으면 언제나 팔복산의 상급을 받을 수 있다.
내것인 하늘만 쳐다보면 된다. 하지만 우린 맨날 땅만 본다. 갓과 골드는 한글자 차이.
해석을 하고 기다리면 잠시후에 돌아온다. 누군가 기도해주는 부모가 있고 위에서 부터 같은 말씀을 보고 가야 한다. 말씀이 있으면 상처에서 다 벗어난다. 인생은 별 인생이 없다. 내가 당한게 참 축복이다. 이러지 않았으면 어떻게 주님을 알았을까? 이렇기에 박해 받는자가 복이있다.
팔복산의 상급은 가면을 쓴 박해로 나타난다. 진정한 상급을 봐야 하는데 그들만 아닌 내게도 주시는 상급이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시는 것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적용질문
박해받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하나님 자체가 상급입니까?
하나님이 주신다며 환경이 상급입니까?
-나눔
오늘 조인데이로 목장 첫 조인을 했습니다. 새로온 친구 두명도참여해서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기도제목
민규 - 의를 위하여 박해를 견딜 힘을 주시고
신교제를 위해서 말씀과 기도에 더 힘쓸 수 있길
현진 - 내 죄를 잘 돌아보고 회개할 수 있길.
목장식구 모두 공동체에 잘 붙어갈 수 있도록.
제주 아웃리치 문제없이 다녀올 수 있도록
성은 -목장분들 다 건강하고 공부할때 집중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