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주일예배
마태복음 5:7
긍율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율히 여김을 받을것이요.
'팔복산의 통로'
[ 주일 설교 ]
팔복의 중앙에 있는 의인은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미션인 긍휼로 나타난다. 팔복산의 통로중 5번째인 긍휼에 대해 말씀하신다.
1.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긍휼은 인류애의 박애나 인간의 동정이나 조건부적인 긍휼과는 다르다. 동정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것이며 긍휼과는 다르다. 이는 자신의 선함을 기억하고 억울해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조건적인 긍휼은 남이 부당하게 고통당할때 고통스럽게 여기는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조건적인 긍휼이다. 그런 일을 당할사람이 아닌대 부당한 고통을 당한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긴다. 세상의 상식이나 윤리 기준에서 긍휼은 조건적/차별적이다. 이런것은 도덕이고 법이다.
그러나 주님의 긍휼은 이런 상식을 바로잡아주신다. 그저 긍율히 여기는자 누구든 가리지 않고 긍율히 여기는자는 복이있다. 인간의 옳고 그름은 팔복산의 통로가 될수 없다. 왜 긍율히 여겨야 하는가? 우리 모두가 죄가운데 동일하게 찾아오는 죽음 때문이다. 죽음이 다가오는데 내가죽을수 밖에 없다는것을 인정하는것이 복이다. 죽음앞에서 모든사람은 동일하게 불쌍하므로 모두 긍휼히 여겨야한다. 고난은 죽음의 예고편이고 이것을 알면 복이다. 고난을 통해 죽음을 생각하면 그 고난이 맞은 고난인것이다. 고난이 없으면 그런 기회조차 없이 살아간다. 이에 고난이 없는 사람은 더 불쌍한 사람이다. 긍율히 여김은 큰것이 아니라 작은것부터 말한마디부터 시작된다.
2.긍율히 여김을 받아야합니다.
죄가운데 죽는 모든 인간에 대해 긍율히 여기고 너가 나보다 옳도다 하는 사람은 긍율히 여길수 있다. 그들은 지옥에서 살고있기 때문에 그 반대인 천국응 보고 믿고 그넘어 있는 우리는 그 지옥과 같은 고통속에 있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율히 여길수 있어야한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우리죄를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시기까지 사랑해주신것이 긍휼이다. 가장 큰 예시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이 되신것이다. 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우리는 이 사랑을 모르기때문에 1만 달란트의 탕감을 받고도 100데나리온을 용서해주지 못한다. 긍휼을 베풀어주는 존재는 100퍼센트 하나님이다. 8복은 근본적으로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종말론적인 이야기로 볼수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긍휼은 동정과 자선과는 다르다. 다른이로부터 긍휼을 받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긍율히 여김을 받는것이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긍율히 여김을 받으려하지 마라. 자식만 내려놓아도 큰 적용이다. 자식 / 마약 / 애인도 다끊어보면 이게 집착인지 사랑인지 알수있다.
호세아때에 백성들이 너무 악하고 음란하나 당장 망할것이 보이지 않기때문에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않고 악하였다. 모든 악함과 중독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끊어질수 있다. 고난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가장 좋은 약재료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큐티를 해야한다.
3.가장 힘든 사람을 데리고 함께 올라야합니다.
긍휼은 팔복산에 오르는 통로로 동정, 조건적 긍휼이 아니라 원수를 용서함을 넘어 사랑해야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단단한 틀은 절대 깨지지 않고 인간의 존재의 한계때문에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것이 어렵다. 피해자로 가해자로 살면 우리의 인생만 밑동 잘린 나무의 인생이 될 뿐이다. 나는 선한것이 없어 도저히 용서할수 없으므로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어야한다. 이것이 가장 힘든 사람을 데리고 팔복산에 올라가는것이다. 긍휼은 우리가 애기로써 하나님께 받은 것이므로 뒤뚱뒤뚱 아기와같이 넘어지기도하고 일어서기도 하면서 나아가는것이다. 이렇게 나의 부족한 부분들이 한걸음씩 메꾸어진다. 우리는 주님의 긍율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한다. 나를힘들게 하는 그사람 덕분에 내가 내 모습을 볼수있게 되고 나를 힘들게하는 그 사람이 복의 통로이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되면 긍율히 여기게되고 긍율히 여기가되면 창자가 끊어질듯이 아프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음욕을 품의면 간음이라고 하신다. 주님이 나를 긍율히 여겨주셨기 때문에 누구도 세상에서 긍율히 여김 받지 못할 사람이 없으며 우리는 모두 100프로 악하고 음란한 죄인이다. 내 자신이 얼마나 긍율이 필요한가를 아는 사람만이 긍율히 여길수 있고 상대와 같이 갈수 있다. 의인은 니가 나보다 옳도다이고 긍율히 여김은 불쌍히 여겨주세요이다. 교회에 나오는데 우리가 예수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망하기 직전의 이스라엘의 모습인것이다.
[ 적용 질문 ]
남을 불쌍히 여김이 나보다 못한 사람 동정입니까? 의인과 죄인 차별하는 긍휼입니까? 무조건적인 주님의 긍휼입니까? 우리모두 밑동 잘린 나무라는 인식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긍휼을 입을 만한 자력이 없다며 정죄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사랑받고 자랐나요? 무너진 내 가정때문에 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리고 있나요? 내가 다른 사람을 긍율히 여기는것 자체가 하나님께 긍율히 여김 받은 증거라고 몇% 생각이되나요?
용서해야하지만 내가 용서할수 없는 존재임을 얼마나 인정합니까? 주님만이 용서의 종결자이심을 빋습니까? 부활절 전도축제때 내가 팔복산의 통로가 되기 위해 어떤 순종을 하시겠습니까?
[ 기도 제목 ]
부영
1. 이번주도 일이 많고 바쁜데 맡겨주신 회사 업무 충실히 할 수 있도록
2. 더디 오는 것 같은 신교제, 신결혼이지만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다섯 처녀처럼 영육간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도록 - 환절기 피부관리, 체력관리
3. 인간관계에서 불편함이 생겨도 괜찮아하면서 그냥 넘기는 게 있는데 말씀으로 내 마음 잘 비추어 볼 수 있도록
4. 우리 목장 식구들 한주간 지켜주시고 다음주에 여전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도록
효정
1. 남자친구고난을 두고 내가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저 동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한 주도 깨닫게 해주시고 저 또한 주의 긍휼을 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2. 누구때문에 누구를위하여가 아닌 제가 스스로 온전히 하나님앞에 서있을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 주시고 주어진 자리를 잘 지켜낼수있기를
3. 직장내에서 네가 옳도다섬기며 자만하지않기를
4. 목장식구들에게 기도제목 함께 나누며 기도할수있음에 감사하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 나아갈수있기를
지은
1.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게하시는 사건들을 계속 주시는데 고난이 축복임을 마음에 새기며 흔들리지않고 떠내려가지 않도록 기도할수 있기를
2. 배우자기도, 결혼을 위한 기도는 많이 했는데 정작 신교제, 신결혼을 위한 기도를 못했는데 신교제 신결혼을 거룩한 삶의 방향으로 두고 이를 위해 기도할수 있도록
3. 긍휼히 여기지 못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리고 100데나리온 탕감받은 용서받은 죄인임을 한주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갈수 있도록
4. 한주간도 건강지켜주시고 매일 큐티와 말씀으로 하나님 붙잡고 살아갈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