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8 주일설교
사도행전
28:25-28
성령의 옳음
우리가 성령의 나라 시민이 되었다면 그 나라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 성령의 말씀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 성령의 말씀은 100프로 옳다고 인정해야 한다.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하며 성경 말씀이 100프로 옳다고 인정하고 있다.
2.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지면 안 됩니다.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 사도행전 28장 25절
복음이 너무도 강력했기에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통하지 않게 되고 흩어지게 된다.
아심포노이 - 불협화음 - 흩어지다.
합창에서 중요한 것은 내 목소리가 아니라 전체가 내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신앙고백이 있어야 남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먼저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내 소리만 내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먼저 듣고 응답해야 한다. 다 소리를 작게 내는데 나 혼자 크게 내면 그것은 큰 불협화음이다. 나의 불협화음을 깨닫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남의 말 안 듣고도 성공한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기가 너무 어렵다. 한 분야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할지 몰라도, 삶의 여러 분야에서 이런 한 사람 때문에 정말 여러 사람이 고통받게 된다.
결국 이들은 흩어지게 된다. 믿으나 안 믿으나 안 맞으면 헤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다 갈라선다. 결혼 전에는 맞지 않으면 헤어져도 된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성경의 원칙이다.
이제 믿었다면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데 아직 유대인으로 살아온 습관이 너무 강해서 '말씀이 옳도다'가 안 되고 서로 '내가 옳도다' 하고 싸우고 흩어지는 것이다. 기다렸던 로마에서 전한 첫 설교였다. 믿은 사람도 있었고 안 믿은 사람도 있었다. 분명 열매도 있었다. 그러나 믿은 유대인이나, 믿지 않은 유대인이나 모두 우리가 되지 못하고 서로 맞지 않아 흩어졌다고 한다.
내가 은혜를 받아도 안 받아도 불협화음의 주인공입니까?
고난의 양육을 안 받아서입니까? 교회의 양육을 안 받아서 입니까?
일단 양육은 어디까지 받으셨나요?
그래서 서로 맞지 않아 떠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2. '옳도다!!'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망하기 150년 전부터 계속 망한다고 외치던 선지자다. 이사야서 후반부에서는 망한 후의 회복 또한 얘기한다. 이사야가 소명을 6장 1절에서 받는다. 웃시야왕 때였다. 바울이 전한 높은 보좌의 얘기를 통해 유대인들 몇몇도 믿음이 생겼지만 결국 흩어졌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하며 엎드렸다. 이것이 이사야와 지금 유대인들의 차이다. 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살 수가 없다. 나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한다. 사명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입술이 부정한 것을 보지 못하니까 믿은 사람도 안 믿은 사람도 결국 흩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망한다고 외쳐도 그 외침 앞에서 나의 죄성을 보면서 간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사야가 입술의 죄를 고백하자 하나님이 숯으로 죄를 정케 하시고 소명을 주신다. 이 순서가 바뀌어선 안 된다. 회개가 먼저고 그 다음이 소명이다. 회개와 은총을 경험했기에 이사야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사명을 주시면서도 사람들이 아무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신다. 그러니 결국 다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시간을 앞당길 수가 없다. 그냥 기다려야 한다. 목장에서 안 들리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 자기 죄가 보이는 사람은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리는 건 정말 어렵다. 우리는 날마다 큐티를 하며, 옳은 말씀인 성경을 보면서 한 절 한 절 기도를 해야 한다.
바울은 큐티를 했기에 흩어지는 유대인들을 보고 말씀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말씀이 떠오르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하면서 억울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성령의 나라가 아니라 내 나라를 세웠기에 당연한 결과다. 바울이 얼마나 고생을 하며 로마에 왔는지 생각해 봐라. 말씀이 없었다면 완전히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평소에 묵상한 말씀이 기억났기에 감정이 요동될 수밖에 없는 상황 앞에서 '옳도다!!'하고 외칠 수 있었다. 우연이 아니고 억울한 일도 아니고 슬퍼할 일도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해석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깨달아 가는 것이 해석이다. 사건의 본질을 해석해야 요동되지 않는다. 성령의 나라 백성은 옳은 말씀이 있기에 요동해서는 안 된다. 변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보라. 우리의 변화를 나보다 성령님이 더욱 원하신다. 성령님이 훨씬 안타까워하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 사건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당신이 옳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이사야의 의지의 대상은 웃시야였다. 나에게는 남편이 의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으로, 남편보다 높이 들린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 에스겔의 아내를 하루 아침에 데려가신 하나님을 보라. 에스겔은 그 사건 앞에서 하나님 앞에 '옳도다'가 되었다.
힘든 사건이 왔을 때 말씀이 기억나 이 말씀이 옳도다!하고 해석한 일이 있습니까?
아프거나 뭐하나 성령받으면 하나님꼐 다 쓰인다. 최도원 전도사님의 ADHD가 한 영혼 살리는 데 쓰이고 있다. 오승이가 가정의 남은 자가 되어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애들이 무서운 아빠가 있다는 것 만으로 흩어지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옳도다밖에 할 말이 없다.
3. 돌아와 고침 받으라는 간절한 초청입니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 사도행전 28장 26절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 사도행전 28장 27절
하나님은 우둔하고 완악한 우리를 향해 돌아오라고 간절히 외치신다. 우둔한 자는 자신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고집을 부리는 지도 알지 못한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악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모든 현장에서 이 모든 것을 방해하는 딱 한 존재가 있다. 바로 나다.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어떤 말씀도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 마음 속에 이미 안 듣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는 사람은 들으면 깨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자는 체하는 사람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절대로 이를 악물고 안 일어난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술먹고 담배피고 바람피는 사람이 아니라 바리새인처럼 교양있게 의로운 척 있는 사람이다. 믿지 않는 죄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 내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내 속에 욕심, 시기, 미움, 음란 등이 성령의 옳은 말씀을 가로막고 있다. 성령 받아야 한다. 왜 성령을 안 주시냐고 따질 게 아니라, 내가 들을 생각이 없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내 생각, 내 판단으로 내 나라를 세우느라고 듣기를 들어도 안 들리는 것이다.
음란한 사람들이 심판당한 것이라는 말씀 앞에서 유대인은 귀를 닫아버린다. 우리가 눈을 감는 이유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때문이다. 내가 누리는 이 세상이 너무 좋기에 눈을 감는 것이다. 고침받는 길은 지금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회개는 반드시 손발이 가는 구체적인 적용이 있어야 한다.
바울은 완악한 유대인들, 골육 친척들에 대한 애통함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이 구원받길 원한다고 로마서에서 말하였다. 이처럼 영적 근심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주님을 섬겼는데 나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고 낙심한다면 그것은 육적 근심이다.
말씀이 들려서 옳도다가 되면 인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 내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야망의 근심을 하면서 자꾸 영적 근심을 하는 것처럼 가장하지 마라. 바울은 골육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위해 죽기까지 섬긴다. 얼마나 사랑의 깊이가 깊으면 이런 기도를 하겠는가. 내 주변의 그 한 사람이 안 돌아와도 끝까지 주님 사랑하고 사람들을 섬기다가 가면 그것은 영적 근심이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
내가 내 옆의 사람이 계속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나는 어떤 말씀 앞에 눈을 감고 있나요?
올해에 내가 고침을 받고 싶은 부분은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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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보
04 또래 시온, 지호, 현민, 정우 참석
부목자 기상이는 아직 군대에 있어서 못 왔습니다. 다음주에 말출휴가를 나온다고 합니다.
규빈이는 제주도 여행 중이라 못 왔습니다.
나머지는 연락이 안 됩니다.
- 현민이는 고3때 큐티짱도 받고 지금도 큐티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매일 알바를 하며 나태한 모습을 경계하고 있고 주일에는 고등부 스탭을 지원해서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스탭을 지원했기 때문에 올 3월에 일대일양육을 받겠다고 합니다. 죄패는 교만과 나태함이라고 합니다.죄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교만과 나태함이 자신에게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외식경영학과를 지원한 상태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리사가 꿈이라고 하는데 정말 요리를 잘할 것처럼 생겼습니다.
- 시온이는 수능을 크게 망쳐서 낙심한 상태입니다. 컴퓨터공학과를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합니다. 죄패는 교만과 의심이라고 합니다. 자신보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을 무시할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수능을 망친 사건을 잘 해석하여 말씀에 '옳도다!'가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직 하나님이 온전히 믿어지지 않아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원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계속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큐티는 전혀 안 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예배와 목장을 통해 성령의 말씀을 가로막고 있는 시온이의 마음이 활짝 열리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 정우는 6개월 전 즈음 엄마를 따라 우리들교회를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고 목장도 잘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귀한 친구입니다. 댄서로 활동하고 있고 학원에서 춤을 가르치고도 있습니다. 곧 한양대 실용무용과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죄패는 내가 옳고 남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짠 안무를 보고 '저건 아닌데..'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힘들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정우가 교회에 잘 뿌리내리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지호는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이 크게 망하셔서 캐나다에서 5년을 살다가 어머니가 다니던 한인교회 분들의 소개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1때 위암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 또한 몇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가 말도 안 되는 확률로 회복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있었고 예수 믿는 엄마에 대해 판단하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로는 교회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호가 예배를 회복하고 목장에 잘 정착해서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기도제목
시온: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있도록. 운동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지호: 요즘 너무 놀기만 하는데 일상 회복할 수 있도록. 면허 딸 수 있도록. 형이 교회 나올 수 있도록.
현민: 알바 잘 구할 수 있도록. 수련회 참석할 수 있도록. 큐티 안 빼먹기. 아버지가 교회 나오실 수 있도록.
정우: 처음 맡은 프로젝트를 팀원들 기분 상하지 않게 좋은 마음가짐으로 끝낼 수 있게. 욕심 부리지 않도록.
한결: 목자의 사명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매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부목자가 잘 전역할 수 있도록. 맡은 프로젝트 성실하게 감당하고 학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품고 수업 시작 전마다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