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7 주일설교 성령의 공의
사도행전 28:3-6
김양재목사님
[3절] 특별한 동정으로 피운 불입니다. 비와 추위로 불이 조금씩 꺼져갔나봅니다. 손수 나무묶음을 모아 불 지피려고 했는데 독사에게 물립니다.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지기 시작하니, 계속 따뜻함을 유지하고자 나무가지를 던져서 선한 의도의 결과로 독사에 물립니다. 구원을 위해 따뜻하게 다가갈때, 어두움의 독사가 뜨거움을 이기지못하고 우리를 꽉 뭅니다. 우리에게는 알지못하는 독사가 이렇게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없던 것이 생긴게 아닙니다.
저도 제 속의 독사를 몰랐습니다. 독사가 체면과 교양과 돈으로 통제될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뜨거운 복음이 드러나니, 제 독사가 드러납니다. 그렇게 바울을 문 독사는 계속 물고 있습니다.
선한의도로 따뜻함으로 전도했지만, 독사같은 독설로 죽음에 이르는 상처주는 사람들에게 물리신 분들 참 많습니다. 나를 위해 전도하면 참 할 말 많아집니다. 그럴 때 또 내 속의 독사가 나오는 계기가됩니다. 따뜻하니까, 숨어있던 독사가 나오는 게, 사실은 잘 된 일입니다. 얼어있다면 계속 살인을 할텐데, 실체가 드러나게 하십니다.
한편, 독사가 물때는 어떻게 되나요? 문 채로 있다고 합니다. 카뎁스라는 단어는, 즉시 손을 털지도 않고 물린채로 있습니다. 바울이 감각이 둔해서 그럴까요? 아니겠지요. 내가 특별한 동정으로 다가갈때, 상대방 마음 속 독사가 나를 공격합니다.
바울이 물린채로 있습니다. 물린 채, 독이 섞인 말을 다 받아내고 있습니다. 받아내는 것이 성령의 공의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가정에서/회사/나라에서 정치하다보면 이 보다 더한 공의가 어디있겠어요?
다 서로 독사로 상처주는데, 한 사람이라도 받아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적용/
이 뜨거움에 나온 치명적 한마디의 독사의 말/행동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누구를 죽어라 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잘 물리고 계십니까?
- 진실로 살인한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4절]
[4절] 물린 채로 있는 것은 그래도 구원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독사가 나를 문 사건을 보며 멜리데 사람들이 특별한 동정으로 불 피우고 영접해줬는데.. 그런 바울을 보고 응급조치나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진실로 살인한 자라고 하네요. 전적으로 살인한 자라고 합니다. 이제 바울은 범죄자 중 범죄자, 살인자라는 말까지 듣네요.. 게다가 손가락질도 합니다.
이쯤, 공의가 무엇일까 생각해봅시다. 어떤 분이 평생 죄짓다가 마지막에 영접하고 죽었습니다. 이 사람은 선행할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의라고 하면 과거와 현재를 같이 두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의 죄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하나의 죄가 전세계에 알려집니다.
과거의 죄와 오늘의 죄를 같이 심판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이 심판의 근거입니다. 내 죄는 일생의 평균으로 심판하는게 아닙니다. 오늘을 시점으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근데 그게 공평하답니다. 그래서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공의에 대해서 오늘 다 같이 각인되길 바랍니다.
바로 이 공의가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공의롭지도 공평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만이 공의롭습니다.
멜리데 사람들이 오늘 특별한 동정으로 도와줍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구원때문에 그들의 동정을 받아줬지만, 그들에게는 복음이 없기에 동정이라는 말을 쓴 것 같습니다. 그들의 양심은 옳고그름만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동정은 항상, 구원에서 출발하는 동정이 되어야합니다. 금새 살인하다가, 금새 신이시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동정은 일관성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동정은 사랑을 만들수도 지을수도 없기때문에 변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믿음이없는데 착해 이런 얘기 들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동정보다는 구원이 필요한 인생입니다.
*빈곤 포르노
자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성령의 공의를 나타낼까요? 바울은 지금 독사에게 물려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선한 의도로 나무가지를 모아 불 피웠는데 독사에 물리고 살인자라고 손가락질도 받습니다.
스데반을 생각하며 내가 살인자다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실체를 인정하니까, 섬김의 손이 독사에 물린 손이 되어도 원망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자기를 문 독사는 손에 매달려있습니다. 매달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다에 쓰인 단어입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입니다. 그렇게 죄에서 해방됩니다. 독사처럼 우리를 물었던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멸하셨습니다.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인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독사에 물려있습니다. 그런 내가 존재자체가 가해자임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래서, 미움으로 살인하고 음란으로 간음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볼 수 있고, 나에 대한 정확한 자기인식을 통해 주제파악이 됩니다. 나는 살인자야 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때 내가 받아야 할 손가락질을 대신 받아주셨던 예수님입니다. 내가 받을 돌팔매질을 대신 받아주신 이것이 공의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정말 자기 삶을 바칩니다. 그런 바울이 유대인에게 무시당해 로마인들에게 무시당하고 이제 뱃사람들, 이방인 중 야만인인 멜리데 원주민들에게까지 저 인간은 살인자야 무시받습니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존경받을 위치에서도 살인자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나는 과거의 문제를 인정해야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존재자체가 가해자맞습니다. 그러므로 난 존재가 가해자니까 누가 뭐라해도 이제 물고있는 것을 가만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가해자임을 아니까 손 물고 매달린 독사가 두렵지 않습니다. 독사가 가져올 죽음이 무섭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마귀를 물리치셨기 때문입니다.
적용/
늘 나의 과거가 인정되나요? 늘 남의 과거를 문제삼나요? 나는 피해자에요, 가해자에요?
오늘 나는 예수이름으로 구원받았습니까?
다른 사람도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음을 인정하시고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면 어떨까요?
여러분에게 살인자 인식이 있습니까?
상대가 나를 비난하며 말할 때 변명하며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공의는 아주 뜨거운 가운데서 내 독사가 나와야합니다. 나는 물린 채 살인자 인식을 인정해야합니다.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걸 말로만 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무시받게 하시는 게 아닙니다.
- 돌이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합니다. [5-6절]
[5절] 잠시동안 뱀이 물고있었으나, 바울은 짐승을 불에 떨어버립니다. 4절까지는 독사를 얘기하지만, 이제는 짐승이라고 합니다. 마음 속 독사는 받아줘야하지만, 그 뒤에 짐승은 물리쳐야합니다. 죄인은 미워하지 말아야하나 죄는 미워해야합니다. 내가 도와주지 않을 수도, 감옥에 가게 할 수도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해야 그 대상이 구원받지 않겠습니까. 이 짐승을 어디다 떨어버립니까? 바로 특별한 동정으로 피우던 그 불에 떨어버립니다.
내가 독사에 물렸다고, 불에 떨어버려야지 그 불을 꺼뜨리면 안됩니다. 내가 흘렸던 눈물 헌신 말씀으로 목숨걸며 결단했던 적용들. 바로 그 불에 짐승의 권세가 불살라집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사람을 살린다면, 짐승의 권세는 죽입니다. 말씀대로 적용하고 사명을 감당한다면 어떤 권세도 나를 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독이 섞인 말도 나를 손상시킨다거나 내가 하나님 자녀라는 가치를 폄하할 수 없습니다. 어떤 독이 섞인 말도 내가 사명대로 십자가를 길로 두고 간다면 조금도 상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공의는 조금도 상함이 없다 정도가 아닙니다
[6절] 붓든지 혹은 쓰러질 바울을 가만히 지켜보다 쓰러지면 죽이려고 합니다. 오래 기다리며 지켜봅니다. 죽나 안죽나.. 이 세상사람들이 이처럼 악합니다. 어제까진 나를 특별한 동정으로 대접해줬어도 절대 믿음의 대상이아닙니다. 악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런것으로 우리가 일희일비 하면 안됩니다.
[6절 후반] 보고 돌이켜, 그를 신이라 하더라. 내 인생도 그랬습니다. 손가락질 받던 내 인생을 신이라고 해줍니다. 바울은 신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풀이하자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라고 했습니다. 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여전한 내모습을 인정하고 불 피운다면, 나를 손가락질하고 무시했던 그들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줍니다.
내 열심으로 살때는 살인자였으나, 돌이켜 말씀앞에 나를 직면하면 전혀 새로운 존재. 어머니 뱃속에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사람이 됩니다. 나를 빚어가십니다. 바울을 보며 살인자라고 정확히 말했던 원주민들이 듣고보니 바울이 진짜 살인을 했듯, 이번에도 원주민들은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정확히 해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변덕어린 말에 상처받지 말고 그때마다 들을말을 들었네~ 하는 적용을 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나때문에 모든 환경은 수고해주는겁니다.
적용/
사랑해야 할 죄인은 누구고, 미워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바로 이게 공의입니다.
내 인생은 공평합니까? 불공평합니까?
[나눔]
Q. 내가 말을 들어 줄 수도 있지만, 안 듣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Q. 나는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유다니 - 부모님 두 분이 맞벌이하시니까, 할머니가 돌봐주심. 그런데 극진이 챙겨주셨는데, 밥을 차려주고 심지어 게임하느라 밥을 안먹으면 떠먹여주시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매번 그런걸 무시하다보니 서운해하셔서 거리가 생겼다. 세상적으로 보면 할머니가 피해자고 내가 가해자라 부모님도 나를 많이 혼내셨다. 그러나 목장에 물어보시고했을 때 할머니랑 나를 거리를 좀 두게 할 필요가 있다는 피드백을 받고 그 후로 눌리지않고 편안해졌었다. 부담스러울 뿐만아니라 밉기까지 했었다. 너무 제한 두는것 같으니까.
김준범 -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좋기만 한 것 같다. 그냥 대화할 때 뚝뚝 대화가 끊길 때가 있긴 함. 가끔 그런 느낌을 받긴하지만 어느 포인트에서 그런지는 잘 생각이 안난다.
이서호 - 최근에는 가해자 피해자가 잘 없는 것 같다. 스스로 불편해지거나, 먼저 분란 만들기 싫어서 묻고 넘어가는 부분은 있긴하다.
박경찬 - 여자친구와 관계가 참 좋긴하지만, 사랑의 언어가 달라 힘들다. 여자친구는 거의 매시간 같이 붙어있길 원함. 같이 못 있으면 전화로라도 함께 연결되어있는게 중요할정도. 그런데 막상 떨어져 지내보면서 적응이 되는 부분이 있어 신기하다. 지금까지는 참을만하니까 참는데, 결혼한다고 가정하면 잘 붙어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음.
결혼을 한다고하면, 신결혼을 하고싶으니까 나부터 나오게 되지만 아직 믿는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친구는 구원받은 것 같다고 하며 막 표정이나 따뜻해보이는 느낌을 표출하곤 하는데, 난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 없으니까 믿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쓰레기처럼 살다가 마지막에 믿고 천국간다는 게 좀 불공평한것같음
그 이유가 엄마아빠같다. 매번 싸우고,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이.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왜 그런걸까.
김태석 - 나도 경찬이 말에 좀 공감이 간다. 왜 부당한 부분들이 있을까 싶다. 공의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볼 땐 공의라고 하니까 그렇게 받아들여야겠구나 정도로 생각하는 중. 하나님의 생각을 인간이 읽어내는건 불가능하니까.
[기도제목]
기도제목
김태석
- 동생 교회 나올수있도록
- 운동 할 때 다치지 않도록
김준범
- 운동할 때 다치지않도록
- 여자친구와 안 맞는 부분 알아오기
이서호
- 잘 쉬고 첫 출근 잘 하고 올 수 있도록
박경찬
- 손목 빨리 낫게 해주시도록
- 취직될 수 있도록
- 지금으로는 사랑해야 할 죄인이 아빠인데, 좀 더 사랑 할 수 있는 한 주가 되도록
유다니
- 믿음이 생길 수 있도록
-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안식
- 형과 누나에게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죄인임을 인정하는 구원의 기도 끊이지않도록
- 사건을 옳고그름을 받아들이지않고 항상 묻고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