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일시: 2022.12.11
제목: 성령의 담대한 마음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본문: 사도행전 28:11-15
11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디오스구로라
12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성령의 담대한 마음
성령의 기다림으로 구조를 받고 피난처인 멜리데에 도착을 했지만 인간의 동정, 하나님의 동정, 공의를 알게 하십니다. 이루어가야 하는 구원 문제에 있어 시기에 따라 다른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고침을 받았기에 때마다 주시는 담대함을 얻고 가야 합니다. 담대한 마음이야 말로 구원받고 가는 인생이고 천국갈 때까지 이유를 달지말고 형제의식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담대한 마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떠나는 인생입니다.(11절)
로마가 목적인 바울의 마지막 시간에서 석달은 대단한 시간인데 기다렸다. 시간을 천히 여기는 것은 예수님을 천히 여기는 것이다. 멜리데는 세계 최고의 휴양지가 되었는데 바울 사도도 노인이고 질병도 있는데 그곳에서 보블리오의 대접도 받으면서 이제는 안심하라 한 섬에 걸리라는 말씀처럼 한 섬에 걸렸고 정착해도 누구도 뭐라할 사람이 없었다. 내 옆에 누가 있는가가 참 중요하다.
그런데 새롭게 만난 알렉산드리아 배는 머리 장식이 디오스구로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수호신 이름이다. 그들을 기리는 자리에서는 그들을 구원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로마인들도 이 디오스구로신을 많이 좋아했고 로마의 수호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근원을 살펴보면 불륜이다. 이 세상 문화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바꾸고자 하지만 바울이 탄 배는 유라굴로 광풍에 파손이 되었다. 광풍을 통과하고 여기까지 왔던 배는 난파되었는데 그 배와 똑같은 배가 준비되어 지고 있었다.
디오스구로배는 이 곳에 정박해서 온전했다. 바울이 탔기 때문에 배가 다 깨어졌다. 그 깨어짐 때문에 모두가 구조가, 구원이 되었다. 질그릇이 깨어져야 보배가 보이는 것. 바로 이러한 마음이 담대한 마음이 된거다. 깨어져야 보배가 보인다는 마음이 담대한 마음이다. 좋고 나쁨을 우리 생각으로 정하면 안된다. 구원을 초점으로 놓으면 인생이 담대해지는 거다. 불안하니 미신을 믿는거다. 그런데 우리는 깨어져도 구원이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예수믿었더니 된 것이 무엇이냐 할 때 담대해지는 거다.
이 세상에 구원보다 좋은 것은 없다. 하나님은 최고의 것을 항상 주신다. 불륜인데도 다들 디오스구로 기호를 붙이고 떠나는 거다. 바울은 헬레니즘 문화를 표방하는 배를 여전히 타고 로마로 향한다. 진정한 물고기 표시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겉으로는 미신을 표시하고 가는 바울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속은 다 빨간대 겉만 하얀 것도 문제이다. 그 당시 문화 자체를 이해할 필요도 있다. 말씀대로 살아난 경험을 했기에 이제 바울 일행은 우상숭배 배를 타고 있지만 참 하나님을 의지하며 항해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우상숭배를 넘어선다는 것은 내 안의 가득한 우상을 발견하여 버리고 회개하는 거다. 내가 섬기던 우상이 무너지는 사건을 당하고 그 사건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상숭배의 죄악을 회개할 수 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구원받았는데도 여전히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디오스구로 상처럼 아직도 내가 떠나지 못하고 있는 우상이나 미신은 무엇인가요?
·내 안의 우상이 무너지는 사건을 겪으며 내개 들린 말씀이 있습니까?
·곳곳에서 익투스를 외칩니까? 디오스구로를 외칩니까? 하나님입니까? 제우스 입니까?
2. 남풍이 일어날 때 떠나야 합니다.(12~13절)
담대함은 우상으로부터 떠남으로 일어난다. 내가 불안할 때마다 떠나야 할 우상이 있어서 불안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다 누려야 하니 불안하다. 그 때마다 떠나야 한다. 담대함을 위해서 떠나야 한다. 그러나 떠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바울이 드디어 로마로 입성했다. 수라구사는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마지막에 바울에게 왠 시험이었는가? 멜리데도, 수라구사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워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을 계속해서 떠나게 하셨다. 사명 때문에 담대함으로.
아름다워서 사흘이나 머무른 것이 아니라 남풍을 기다리느라고 사흘 씩이나 머물렀다. 유라굴로 광풍 때에 미항에서 뵈닉스까지도 짧은 거리였다. 바람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경험을 했기에 이제는 조심조심 가는 것이 느껴진다. 겨울 남풍은 잠시이다. 유라굴로 광픙으로 변하는 데 얼마 안걸렸다. 다 반대를 해도 사랑하는 우리 식구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때가, 속절없이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지금 기다리는 남풍은 봄의 남풍이었기에 안전한 남풍이다.
급한 때 일수록 돌아가라고 한다. 이제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지금 이제 멜리데에서는 석달, 수라구사에서는 사흘, 레기온에서는 하루, 보기온에서는 일주일. 이 것을 어떻게 인도함을 받겠는가?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전문가들이 최고로 치는 A급 결혼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사인을 주셨다. 우선은 감정이 말을 안듣고 장로 딸, 아들이라도 믿음으로 확인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기에 무언가 한쪽으로 불안한 것이 있었다. 남편이 선을 130번을 봤었다. 30살 밖에 안된 사람이. 지나고 보면 불안한 말이다.
육개월 교제하는 동안의 남풍은 너무도 잠시의 남풍이었다. 결혼 첫날부터 북동풍이 몰아닥쳤다. 바울이 떠날 때도 잠시 남풍이 불었다. 그러니 이런 문제는 모자쓰고 하늘을 못본다. 내 밑에만 보이는 거다. 그런 것처럼 아무리 말을 해도 성령님이 아니고는 해석이 안된다. 해석도 안되고 환경만 바라보고 디오스구로 장식을 달고 쌍둥이 별자리를 보며 완전히 제우스의 아들이라는거.. 세상 정욕도 모르고 무서운 항해를 시작했었다.
담대함이라고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 이후에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하며 조심조심 남풍이 불 때를 기다리며 한 걸음 씩 가고 있는 거다. 드디어 이탈리아 로마반도에 도착을 했다. 보디올까지 남풍 덕분에 340km떨어졌는데 이틀만에 도착했다. 그만큼 남풍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남풍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바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바람이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출발을 하면 누구도 갈 수 없는 거리를 가게하셨다.
레기온에서 보디올은 큐티 선교회가 13년만에 세워지니 남풍이 솔솔 불어서 선교회를 창립하고는 3년만에 우리들교회가 창립이 되었다. 사인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다들 주변에서 다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이 정도면 괜찮겠지는 없다. 치기로 결정하면 안되고 성령께서 일하심은 남풍이 불듯 자연스럽게 일하신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신다. 내 생각이 맞더라도 그 생각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감정이 상하고 다친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령의 공의가 맞춰져가지 무조건 상대방을 기다리나는 것은 아니다.
사명을 위해서 남풍이 불듯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진행되어야 한다. 복음 특공대 276명이 이 배에 타고 있다. 겉으로는 죄수지만 속으로는 죄수가 아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양육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로마로 향하고 있다. 복음의 폭탄을 실은 배가 용의 권세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거다. 그러니, 남풍이 안 불수가 없다. 모든 준비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남풍을 불게 하셔서 이 배를 빨리 로마로 보내신 거다. 엄청난 죄인이지만 우리들호에서 고침받고 훈련받고 다들 로마로 향하고 있음을 믿는다.하루하루 큐티해야지 기다려야 할 때인지, 떠나야 할 때인지 안다. 날마다 공동체에서 물어봐야 한다. 공동체가 찌질해도 그 답을 주신다. 잘못된 답에도 책임을 지신다.
<적용질문>
·사명이 있어 남풍을 기다립니까? 내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 남풍을 기다립니까?
·여전히 북풍이 부는데, 즉 모든것이 삐걱거리는 잡음이 들리는데 남풍의 환상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시작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기다려야 할 때입니까? 떠나야 할 때입니까?
3. 형제들이 맞으러 올 때 이와 같이 로마로 가야 주십니다.(14~15절)
점점 목적지로 다가가고 있다. 로마가 코 앞에 보인다. 로마로 가야 되는데 담대함이 너무 필요한 거다. 석달 동안 멜리데에 있을 때, 그 석달이 천금같은 시간이었는데 석달 동안 토인들과 있게 하셨다. 이 것도 공동체에 물어보면 알려준다. 오늘 중요한 것은 그렇게도 가고 싶은 곳 내 주님 계신 곳인 줄 알고 그 가고 싶은 로마에 결국이 무엇이었나? 로마에서 결국은 참수형이 기다렸다. 그러니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다.
목적을 위해서 떠나야 한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어도 예루살렘으로, 로마로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짧고 우리는 밑등이 잘려진 나무같이 다 죽는다. 죽기 전에 할일이 많은데 왜 멜리데에서 석달을 있게 하시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그러니 잘 죽는 것이 최고의 상이다. 이왕이면 사명따라 죽는 게 최고이다. 젊은 날에 헌신해야 한다. 다 대단한 분들은 10대에 헌신을 했다. 알렉산드리아 배의 정착항구가 보디올이다. 거기에서 로마까지 거리는 220km인데, 우리 같으면 대륙에 도착했으니 달려가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머물었다. 자기 일정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바울은 겉으로 죄수였기에, 바울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호송 책임자인 율리오에게 있다.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내 위에 세워둔 질서에 묻고 가야된다. 가정, 직장에서도 내 위에 세워주신 질서에 묻고 가야한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쓸 때 예루살렘에서 증거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거하리라의 말씀을 듣고 떠났으면 금새 도착했을 거다. 하지만, 사명은 그때 그때 주신 하루하루의 말씀을 보고 가는 거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선교이고 천국이고 최고의 담대함의 비결이다. 말씀대로 했는데 뭐가 걱정인가? 그렇게 인도함 받으면서 모든 과정을 다 겪으면서 왔다. 그것이 하나님의 컨셉이다. 이 곳에서 형제들을 만났다. 로마로 가기 직전에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서 교제하는 거다. 이처럼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도 말씀과 문서를 보내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로마로 가는 길이라 이해할 수 있다.
배가 파손되고 멜리데인들을 고치고 전도하고 오는 길이다. 그런데 오늘 주 안에서 형제들을 만났다. 이 형제들을 만난 것이 바울이 담대함을 얻은 비결이라고 나왔다. 그러면, 멜리데 토인들이 영접한 것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가? 형제들은 고난을 겪은 성숙한 죄인들의 만남이다. 서로 죄인됨을 확인하는 만남은 이 세상의 최고의 기쁨의 공동체이다. 로마로 가는 담대함의 비결이 되는 거다. 바울은 여기서 7일 간의 시간을 보디올에서 믿음의 형제들과 보내고 격려를 받았다.
7일의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이다.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그 시간 동안 보내고 드디어 그리고 외치던 로마로 입성하게 된다. 형제들이 맞으러 나왔다고 번역한 헬라어는 마중을 의미하는데, 높은 사람 귀한 사람 이런 사람들을 맞이하러 나가는 개선장군을 맞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아판테시스. 그런데, 너무나 늙고 병들고 초라한 바울이 이제 로마로 들어가는 이 순간을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돌아온 개선장군으로 영접을 해주시는 거다.
사람들이 볼 때에는 백부장이 볼 때는 초라한 죄수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판테시스의 단어르 쓰시면서 하늘나라 최고의 장군으로 맞아 주시는 거다. 비록 백부장의 질서 가운데에 있지만 하나님 눈에는 모든 천군천사 위의 장군으로 봐주시는 거다. 이 모든 질서에 있지만 여러분이 이렇게 질서를 지키고 마지막까지 죄인의 입장으로 묻고 듣고 허락받고자 한다면 여러분들은 개선장군으로 하나님께서 영접해주신다.
형제들과 죄인들의 나눔을 하면서 이와 같이 로마로 가는 거다. 이 말씀 붙들고 오늘도 내 자리를 지키며 살아낼 때 저 천국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고의 개선장군으로 맞이해 주실 줄 믿는다. 형제의 나눔에는 안식이 있다. 바울의 소식을 듣고 맞으러 온 로마 성도들의 역할이 이렇게 컸다. 소식을 들을 때 관심을 가지면 할 수 있는 섬김이었고 이 섬김이 바울에게 가장 큰 안심을 주었다.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밥 한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마음을 움직이는.. 또 한 주를 살 수 있는..
인생이 뒤바뀔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주는 최고의 응원인 거다. 성도들의 맞으러 옴이.. 하나님께 감사하니 담대한 마음을 얻는다. 담대한 마음은 성경에서 여기에서만 쓰인 단어이고 용기라는 뜻이다. 주님이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었다. 담대하라. 너가 예루살렘에서도 증거했듯이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하니라. 담대하라. 주님은 이 명령형으로 많이 쓰셨다. 환난 중에 어떻게 담대하는가? 이 환난 많은 세상을 주님이 이기셨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대로 내가 내 자리 잘 지키고 믿음을 붙잡는 거만으로.. 남풍을 움직이시는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 내가 내 자리를 잘 지키면서 믿음을 붙잡는 것 만으로도 옆의 사람에게 큰 담대함을 주는 비결이다. 주님이 남풍을 주시니.. 요란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
<적용질문>
·누구의 소식을 들을 때 감사와 담대함을 얻었나요?
·로마가 코앞이라고 내 방법대로 가나요?
·아니면 질서와 교제와 순종을 통해 이와 같이 로마로 가고 있나요?
김준 목장보고서
일시: 2022.12.11
장소: 카페 두레브
참석: 김준, 고영광, 윤석준, 정석진
나눔 및 목장소식:
- 한 주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근황을 나누었고, 주일설교 말씀을 통해각자 느낀점을나누었습니다.
- 적용질문을 통해 각자 공동체를 통해 북풍과 남풍의 때를 잘 묻고 있는지 나누었습니다.
기도제목:
A:
1. 큐티하기
B:
1. 하루하루 맡기신 자리를 잘 지키기
2. 큐티하기
C:
1. 어머니 건강
2.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생기도록
3. 신교제, 신결혼
D:
1. 회사에 일할 좋은 사람이 잘 뽑히도록
E:
1. 큐티하기
2. 주일성수 가능하도록 인도해주시길
F:
1.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2. 큐티하기
3. 신교제, 신결혼
4. 17일 1종 보통 시험 합격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