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29]2022.12.04. 사도행전28:7-10 <성령의 고침> 김양재 목사님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 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아버지, 우리가 너무 고침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고침은 성령의 고침인데 오늘 그 성령의 고침을 저희들이 받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사도행전 마지막 28장의 한 절 한 절이 너무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령 의 공의로 돌이켜 지금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미 이루어진 구 원이지만 아직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 내 모습을 보면 새로운 존재가 되었나? 그렇게 된 것이 맞나? 싶을 때가 많아요.
이 렇게 되었다 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냥 고 침이 아닌 <성령의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고침 받음은 복음 전파를 하기 위함이죠.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고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성령의 고침 첫 번째는 1.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는 것은 중요합니다.(7절)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가 바울이 맹독성의 독사가 물었는데 조 금도 상하지 않은 이 소문을 들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보블리오는 그 아픈 아버지를 고칠 목적을 가지고 바울 일행인 우리를 영접합니다.
2절에 멜리데인의 영접은요, 원어로 [프로스 람바노]인데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한글은 영접이지만 7절에 이 보블리오의 영접은 [아나데코마이]라고 높은 사람을 잘 모시는 이런 영접이에요. 그래서 이제 원어는 이렇게 뜻이 좀 다릅니다. 그러니까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가 더 높은 사람을 모시듯이 바울을 영접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276명 모두는 아니고요, 2절에는 멜리데인들이 다 영접했다는 [판타스]라는 단어가 7절에는 빠져 있는 것으로 봐서 다는 아니고 바울 과 누가와 아리스다고, 선장, 선주, 율리오 정도를 이렇게 이제 영접한 것이 아닐까. 하루도 아니고 사흘이나 보블리오는 이렇게 바울 일행에게 좋은 음식도 제공하고, 편안한 잠자리도 주면서 이제 심신이 회복되도록 우선 도왔어요. 그는 대토지를 소 유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어요. 예, 그렇지만은 다들 이제 가족 앞에 장사가 없잖 아요.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고침 받고자 바울을 높은 사람 모시듯 이 영접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자녀가 잘 된다면 뭐 사탄에게라도 뭐를 주고 뭐.. 종교도 바꾸고.. 자녀만 잘 된다면 우리가 이제 못할 일이 없잖아요. 좀 그러죠. 보 블리오라는 이름의 뜻은 이렇게 평민, 대중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 보블리오가 바로 이제 [퍼블리오스] 지금 영어 단어 Public[퍼블릭] 일반인, 대중적과 같은 뜻 을 이제 가질 것 같아요. 즉, 보블리오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살인자라고 할 때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서 앞에 나가서 바울을 손가락질을 했던 첫 번째 사람인 거예 요. 그래서 가장 높은 사람도 원어는 첫째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바울은 자신을 살인자라고 비난하던 그 보블리오의 말투와 행동을 생각할 때, 이 상처를 준 보블리 오를 용서하기가 쉽지 않죠. 옳고 그름의 가치관의 특징 중 하나가 좋은 일이든 나 쁜 일이든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예요. 이 세상 사람은 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 예요. 경조사도 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예요. 예, 그런데 항상 이제 이렇게 구원 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상대방이 욕을 하든지 떠받들든지 중요하지 않아요. 별 인생이 없다는 걸 딱 알아요. 예, 저 사람도 예수가 없으니 저럴 수밖에 없지. 게 다가 저 보블리오는 추장이기도 하고, 부자이기도 한데 왜 안 그렇겠어? 그러니까 멜리데인들을 전도하려면 내 상처의 원흉인 그 사람을 껴안는 것이 가장 복음 전파의 지름길인 거예요. 결국 독사에게 물려도 상함이 없으니까 가장 높은 사 람을 이제 만나게 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이 세상은 특별한 동정으로 섬기다가amprArr또 살인자라고 했다가amprArr 또다시 '신이시여!'하잖아요.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 들은 이 세상의 높은 사람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고, 그가 변하여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만큼 이 세상은 서열이 중요하 고, 겉모습이 너무 중요해요. 그 사람이 가진 만큼 변하기가 쉽지 않지만, 변하면 또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또 이제 어제 손흥민 선수 같은 사 람이 예수 믿으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야무진 꿈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가장 높은 사람이 왜 중요한지 아시겠죠? 어떤 성도님이 담임 목사님이 집사 시절 강의할 때도 이렇게 녹취를 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까? 또 몸빼 바지 입은 목사님 어머니가 화장실 청소를 할 때도 그 당시라면 존경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무슨 그런 리플을 읽었어요.^^
집사 시절이나 지금이나 저의 에스겔 간증이 달라질 수가 없잖아요. 메시지도 큰 틀은 같아요.
그 래도 그 직분과 지위가 제 복음을 복음 되게도, 안 되게도 하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이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니 이제 가장 높은 사람을 이렇게 항상 구원의 대상으로 생각하니까 이 보블리오를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가 자발적으로 만나자고 하니까 이게 웬 떡입니까?! 웬 기회입니까?! 이렇게 생각 을 해야 돼요. 근데 이 나에게 상처 준 지도자에 대해서 원수 갚을 생각만 한다면 서로 고침 받을 길이 없어요.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딱 그래요. 그러니까 '널조각 붙들고 겨우 상륙했는데 나를 살인자라고 동네 방에 떠들었어! 추장이면 다야! 부자 면 다야! 나를 살인자라고 했어! 죽을 때까지 용서 못해!' 이러면 이게 믿는 사람입 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믿어도 죄는 죄예요!' 또 이제 그러죠. 맞죠. 근데 부자가 하늘나라 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워서 전도하기가 그야 말로 하늘의 별따기잖아요. 죄라도 지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또 이제 통할.. 이렇 게 만날 수도 있는 거죠.
근데 그때 바로 이렇게 높은 사람이 그 집으로 일단 초대 를 해주면은 그 나를 그냥 죽는데 내어주었던 그 사람이 초대를 해주면 야! 이때 암살을 해야 되겠구나! 복수를 해야 되겠구나! 기회가 왔어! 나의 명예를 실추시킨 저들을 죽이리라! 이게 이 세상 정치죠. 근데 믿는 우리는 저들이 진짜 예수를 몰 라. 구속사를 몰라. 사랑도, 용서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잖아요. 근데 부부간도 그렇게 원수처럼 싸워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남편의 그 많은 무단 외박과 그 많은 돈을 술값으로 날렸으면 오픈할 내용이 있을 텐데 늘 결백하다고 하니까 분노가 올라와가지고 남편의 뺨을 200대를 때렸다는 거예요. 근데 남편이 처음에 말을 안 하는데 때리면 때릴수록 진 실이 조금씩 나온다는 거예요. 예, 그래서 때리다가 본인 손이 멍이 들어가지고 이 제 손에 파운데션 바르고 이제 왔다는 거예요. 받은 상처를 돌려줄 수만 있다면 때 린 거 두배로 맞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그래서 열흘쯤 지나서 남편을 또 때려서 동네 주민 신고로 경찰이 왔는데 경찰은 아내가 맞은 줄 알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돌아갔다는 거예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인 거죠. 이게 다 교회에 오기 전 옛날 일인데 지금 목자까지 하고 계시는데도 이게 믿어지지 않나 봐요. 우리는 그 믿음의 대상이라는 게 뭔가? 말씀의 원칙대로 하는 것이 사랑의 비결이라는 거예요. 나는 사랑할 수 없는데 오늘! 오늘 말씀만큼만 내가 적용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예 수 믿는 사람은 속은 자가 속인 자보다 더 나쁘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바울은 너무 분한 상태에서도 자기가 가해자, 살인자 의식을 가지고 독사 가 물고있는 데 상하지 않는 것을 지금 보여주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적용이 소문났 어요. 그러니까 기회가 올 수 있는 거예요. 왜 기회가 왔지요? 그가 바울에게 죄를 지었잖아요. 그니까 가장 높은 사람이 바울을 죽도록 놔두고, 또 살인자라고 했잖아 요. 그러니까 나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용서 만 하면 되잖아요! 그죠? 그래서 바람을 피우거나 잘못했을 경우, 지금이 복음을 전할 때다!! 하면서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왔어도 항상 옳 고 그름의 문제로 보니까, 늘 그냥 ... 과거는 우리가 다 도말 됐는데도 과거의 문 제로 죽이고 싶고, 그래서 부글거리고 또 죽고 싶고.... 맨날 죽이고 싶고, 죽고 싶 고 이걸로 결론이 나는 거예요. 부자들이 얼마나 계산을 하는데 그냥 불렀을 리는 없죠. 벨릭스 총독,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 왕 등 그들이 믿음이 있어서 바울을 사랑해서 불렀나요? 그 부자들이 그 권세를 가지고 이 초라한 노인인 바울을 보고 돈을 바라는 고로 불렀다고 했어요. 기억나시죠? 그런데 보블리오가 그냥 불렀겠습니까? 그러니까 별 인생이 없어요. 그러니까 성경이 인간론이에요. 경영학 교과서에요. 상담학 교과서에요. 모든 것 다 갖다 붙여도 성경에 답이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 전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믿고 안 믿고는 그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기회가 있을 때 그냥 전해야 돼요. 그러니 가장 높은 사람은 변화되기가 너무 힘들지만 변화되면 크게 쓰임 받잖아요. 굉장히 드물지마는. 보블리오는 이때는 모르겠지마는 후에 순교자가 됐다고 그러잖아요. 그죠? 지금은 몰라 후에는 알리라. 내가 그런 사람이 지금 얼마나 많은지 몰라, 40년부터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듣고 내가 변했다!' 어디 가면 맨날 그런 소리예요. '그때는 하나도 안 들렸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 또 이제 하는 거죠.
▪ 적용해 보세요.
Q '부자면 다냐? 학벌만 좋으면 다냐?' 하면서 역차별하는 게 있나요?
Q 나를 부르는데도 '용서 못 해!' 하면서 가기 싫은 높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정말 참 여러분들은 너무 듣기 어려운 설교를 이렇게 날마다 듣고.. 부자가 다지, 왜 이런 거를 하나?, 부자면 다지!! 그죠? 내 중얼거림이었어요.^^) 어떤 권찰님-목자의 아내-이 직장 목장인데 이런 나눔을 했네요. '우리 남편 목자는 체면을 너무 중요시해서 싫은 소리를 못 해서 양육이 잘 안 돼 요. 내년에 주중 목장으로 꼭 가셔서 더 치열하게 나누고 양육을 더 받는 것도 좋 아요.' 이렇게 아내가 처방을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이제 높은 사람이고 뭐고 이렇게 무서워서 얘기를 못 하잖아요, 그죠? 다 들. 다들 뭐 높아서도 못하고 믿음이 없어서도 못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전도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이제 전도를 할 기회를 하나님이 딱! 주실 때 타이밍을 잡 아서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성령의 고침은 두 번째, 2. 아픔 속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안수할 때 고침을 주십니다.(8절) 아픔 속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안수할 때. 8절에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 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그러니까 <성령의 공의>는 결국 고침으로 연결되어야 이 공의가 무서운 게 아니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느껴지게 되는 거죠. 보블리오는 당연히 바울을 그냥 부르진 않았겠죠. 그런데 이 질병이 내 문제가 되면 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요. 그래서 부친의 병이 나을 희망을 가지고.. 그러나 이 사람이 사회적 체면이 있기 때문에 먼저 바울 일행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난 후 부 친의 병을 오픈하네요. 바울은 혹시 알았어도 그가 오픈할 때까지 지금 기다리는 거 예요. 사흘 동안. 그러니까 참.. 높은 사람은 괜히 높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사흘 동안 대접하면서 입이 간지러워서 어떻게 참았을까요?
보블리오 부친의 열병 은 지금으로 보면 말라리아고, 이질은 이제 소화기 계통의 질병으로 보죠. 우리가 3 년째 코로나에 시달리고 있지마는 .. 근데 그 당시는 이 코로나가 오면 속수무책 아 니겠어요?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풍토병인데 몰타 열병이라고도 불린 감염증인데요. 심하면 2~3년도 가고, 아주 심한 경우에는 그냥 한 사나흘 안에 죽 었다는 거예요. 보블리오는 아마 자신의 집에 이런 아픔이 없었다면, 바울이 뱀에 물려 죽지 않는 이 정말 괴상한 광경을 보고도 절대 그냥 지나쳤을 거예요. 부자들 이 남의 간증 듣고 뭐가 그렇게 또 은혜를 받겠어요? 간증을 듣고 표적을 봐도 '나 는 상관이 없어.' 그리고 '음~ 그렇네' 그리고 지나치죠. 부자들은 배가 부르잖아 요. 그러니까 돈이 해결해주면 공동체에 안 들어와도 배가 부르고 등이 따신데 '왜 가서 쓸데없이 신경쓰게 하는 얘기는 들어?' 그러니까 당연히 아무리 공동체 얘기 를 해도 심드렁하고 간절함이 없죠. 그래서 마태복음 5장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 니가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보블리오에게 이런 이제 간절한 아픔이 생긴 거죠. 바울은요, 이런 멜리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돼야 되기 때 문에 광풍 후에 또 죽음에 이르는 상처인 이 독사를 경험하게 하셨어요. 그런데 그 것이 지나고 보면 최고의 복음 전하는 비결이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당할 때는 늘 쉽지가 않겠죠. 네.. 당할 때는 늘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이 독사의 상처가 보블리 오를 만나게 하는 상처가 된 거예요. 이렇게 이제 그 뱀이 물어서 생긴 육의 상처 는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로 인한 마음의 상처 '이 살인자야!' 하는 그건 용 서 못 하죠, 그죠? 예, 제가 남편이 갔는데 저보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죄를 지셨누~?' 저한 테 이제 그러는 거예요. 또 자동차 팔아달라니까 새 찬데 '죽은 사람 차는 반값밖 에 못 받는 거 알지?' 그러니까 아무, 아무 생각이 없는 거예요. 생각이 없어. ★내 가 아픈 것보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들로 상처받는 것이 내 육의 상처 보다 훨씬 힘든 거예요. 그것이 오래오래 가는 거예요. 진짜 위로한답시고... 진짜 말을 THINK해보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구속사에요. 어 떤 말을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를 늘 생각하면서.. 바울은 그 영접에 기꺼이 응하잖아요. 그리고 응할 뿐 아니라 바울이 그 보블리오의 부친에게 들어갔다라는 단어를 사용해요.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 그 아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안수하는 거예요. 안수는 그에게 두 손을 얹어 그를 치유했다는 뜻이거든요.
자신의 손을 환자의 몸에 얻는 행위는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입니다'라는 고백이에요. 그 런데 자, 우리는 다 전염병 환자 격리하잖아요. 그 당시에는 약이 없어서.. 나병 환 자는 성경에도 완전히 격리했다고 나와 있잖아요. 그렇게 격리한 이런 환자를 들어 가서 손으로 얹었어요. 막 그 입장이 됐어요. 내가 힘이 있어 너를 고치겠다는 뜻 이 아니라 '주님!! 이 사람과 나는 똑같아요' 손으로 얹었어요. '이 사람과 나는 똑 같이 주님의 치료가 임해야 될 아픔이 있어요!' 바울도 생각하면 얼마나 아픔이 있 어요. 그죠? '이 사람의 아픔이 저의 아픔이에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고쳐주 세요.'라는 표현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했어요. 병이 나았어요. 이런 안수 기도 는 필요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 유명한 책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고통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 누가 그것을 없앨 수 있겠는가?! 화재가 난 집안에 갇힌 아이를 구하려면 불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불타는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사막에서 길 을 잃은 사람을 구하려면 사막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을 가장 힘들게 한 보블리오에게 바울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거예요. 믿는 우리는 어떤 경우도 치유자가 돼야 합니다. 상처를 크게 입혔을수록 그에게 들어가 안수하고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미워해야 될 대상이 아니고 안수 하고 기도해줘야 될 대상인데 마침 그가 아파서 나를 부르니까 막 '할렐루야!' 그러 고 달려가야 되는데, '내가 너를 용서 못 해!!' 아까 그 남편도 다 회개하고 지금 와서 다 목자까지 됐는데 그냥 시간만 나면 그렇게 때려주면 어떻게 해요? 과거의 잘못으로 우리는 천국을 못 가는 게 아니라 그랬잖아요. 그죠?(아멘! ㅎㅎ굉장히 당 한 게 많으신가 봐~^^) 그러니까 기막힌 남편, 아내, 자녀들과 살아내는 성도들이 너무 많은데도 우리는 그냥 내 과거의 아픔이 너무 커요. 목장에서 서로가 이제 이 렇게 가해자인 것을 인정하면 너무 나눔이 풍성할 텐데요. 우리는 그냥 가르치는 것 도 힘들고, 나를 위로해주지 않아도 힘이 들어요. 언제나 내 편만 들어주고, 나를 위로해주고 칭찬만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여자 목자님이 '나는 목사님 설교는 잘못 알았는데 목장에서는 내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여기 우리들교회에 왔는데 참, 이 목장이 한심한 나를 드러낼 자리고, 끊임없이 깨지고 A-B-C-D-E-F-G랄을 떨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으로 그 래도 처음부터 이제 그분들을 나는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목장 말고는 정말 갈 데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목장에서 목자님이 작정하고 나에게 처방을 주셔서 엄청 상처를 받았다. 나는 그냥 똑같다, 여전히. 안 되는 나 때문에 괴로웠다. 그래도 내 가 왜 안 떠났냐 하면 여기가 마지막인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안 떠났대요. 이런 분 많으시죠? 왜냐하면 나를 직면하는 게 힘이 들어요. 상처는 드러내기도 아프고, 안 드러내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목장이 괴롭고도 마지 막인 곳이 맞아요. 나를 보게 해주니까. 그리고 나는 너무나 참 100% 악하고 음란 하니까. 그걸 자꾸 칭찬해주는 말만 듣기 좋아하지만 내 실상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죠? 근데 그 얘기를 듣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인간이 지옥 뿌리에서 올라오는 자존적인 교만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냥 목장마다 맨날 다툼(struggle, fighting) 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또 한 남자 부목자님은 '참 예전 생각해보면, 술 모임 갖게 되면 늘 옛 날 학창시절 뻔한 얘기밖에 없는데 이 믿음의 공동체라는 것은 정말 설교만 있는 교회가 아니잖아요. 저희가 설교를 듣고 이렇게 나눌 수 있는 목장이 있기 때문에 산책하면서 말씀을 다시 듣게 되고, 적용 질문을 생각하게 되고.. 아! 이게 너무 크 고, 목장에서 나눔도 기쁨이지만은 특별히 학벌, 직업, 나이, 이런 거 관계없이 내 죄를 터놓고 나누고, 또 처방하고, 그리고 기가 막히게 식사가 또 공짜가 아니겠습 니까!'^^ 이러면서 너무 좋아하시더라고~. 정말 여러분, 이렇게 이 인간론인 이거에 대해서 매주 와서 1시간이 넘게 듣고 일 주일을 사는 거하고 vs. 어렸을 때부터 이런 얘기 하~~나도 안 듣고 학교 가서 교 과서만 보고 자라서 공부를 잘한 아이들하고 이거 비교가 되겠어요? 이게 하나님의 말씀인데! 진짜 살아가는 방법이 여기 다 있는데. 여러분들, 아이들 이렇게 교회 안 보내고 이러시면은 진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거예요. 우리 삶이 다 모두 독사에 물려 있습니다. 날 때부터 죄인인 것이 그 증거예요. 그 래서 우리는 이제 무너진 우리의 삶, 직장... ★왜 무너졌냐 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그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 상처를 준 보블리오의 집에 들 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 집에 그냥 들어가는 걸 넘어서서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그 아픔 속으로 들어가서 지금 전염병 환자 그의 몸을 만지고, 안수하고! 안 믿는 사람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할 적용을 하나 딱! 하면 그게 소문이 나서 보블리오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거죠.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아픔 속으로 항 상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은 이제 놀라운 치유가 일어나는 게 너무 많이 있 어서 지금 오늘날 우리들교회도 이렇게 모이게 됐어요. 하지만 아무리 안수를 해도 실제로 고치신 분은 누구예요? 예수님이시죠!! 바울의 들어감이, 기도가, 안수가 주 님이 앞서가신 일을 따르는 일이자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일이기 때문에 주님이 하 신 거예요. 주님이 바울을 통해 보블리오 부친을 고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정말 여러분들! 목자의 안수를 통해서 모든 목원들이 고침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같이 손을 얹고 기도하고, 아파하고 '당신의 아픔이 내 아픔이에요. 집사 님의 아픔이 내 아픔이에요. 저도 똑같은 아픔이 있어요. 같이 기도해요.' 우리가 이래서 지금 살아나는 거잖아요
▪ 적용해 보세요.
Q 여러분은 상처 입은 치유자입니까 vs. 상처받은 피해자입니까?
Q 서로가 가해자 인식을 하나요 vs. 피해자 인식을 하나요?
이 얘기인 거죠. 그죠? 또 이제 한 권찰님이 여자 목장의 목자님께서 저에게 초등 학교 3, 4학년 아이들을 좀 섬겨보라고, 이런 봉사를 통해 제가 치유됨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목자님의 권유에 제 마음이 움직였는데 제가 초등학교 3, 4학년 아이들이 그때 많이 힘들었는데 그걸 생각하면서... 그러나 제가 지금 이렇게 교사를 하기에는 너무 매사 귀찮아하고 모든 일을 힘들어하는 스타일인데 특별히 제가 이 교회 봉사를 하면 남편 목자가 교회에서 아이들을 홀로 챙겨야 하는데 이 에 대해서 남편에게 이야기하니까 이 남편이 저에게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이 후의 일들은 걱정하지 말라!!' 그러니까 <상처 입은 치유자>는 이 대단한 상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진짜 우리들교회는 이렇게 목장에서 정말 그 사람에게 필요 한 양육과 부서와 봉사를 권유해 주셔서 정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남편 목자님은 너무 훌륭하세요. '걱정 마! 애들 다 가서 인도하면은 내가 다 볼 거야!' 지금 이 얘기잖아요. 그죠? 누군지 모르지만 박수로~~ 우리가 (짝짝짝) 대단하세요. 그러니까 상처를 한 번 입은 치유자가 되면 남들의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안타까움 이 있어요. 일로 여기지 않아요, 일로. 인생이 참 짧거든요. 하나님한테 상 받아야지 누구 사람한테 지금 상 받을 일이 있어요? 우리가 갈 나이가 얼마 안 남았는데. 성령의 고침 세 번째는 그러니까 우리가 높은 사람도 중요하고, 아픔을 가지고 들어 가서 기도하고 안수하는 게 고침이에요. 그렇게 되면은 세 번째는
3. 공동체와 함께 사명이 이어집니다. (9, 10절) 그러니까 9절에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그러니까 거기서 끝이 아니고요. 섬에서 가장 높은 지도자 집의 한 사람이 고침을 받자 섬에 있는 다른 병든 사람들 문자적으로는 나머지 병든 사람들이 바울에게 나왔어요. 예, 그러니까 이제 가장 높은 자 보블리오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아 셨죠? 예, 그러니까 우리는 부자들을 '부자면 다냐?'가 아니고 다예요! 그래서 특별 히 우리들교회 나오는 부자는 아주 존경하시기 바래요. 맨날 정말 이 기가 막힌 얘 기를 날마다 들어주고 계시지 않아요. 응 그러니까 '부자면 다냐?!' 이러지 말고 '다 다~' 이러면서~ ^^ 그래서 다 마찬가지로 이 바울의 손을 통해 고침을 받습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 다. 근데 여기서 모든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 받았다고 그러지 않고요. 다른 병 든 사람들이라고만 합니다. 그러니까 병든 사람들 중에서는 바울에게 오지 않은 사 람들도 있었던 거예요. 보블리오 부친의 소식을 듣고 '나도 고침을 받고 싶다!'며 나온 사람은 다 고침을 받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던 거죠. 그들은 자 기 집을 떠나 바울을 보러 오는 수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침 받은 여럿에 포함 되지 못했어요. 저는 현장 예배의 축복이 이렇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예, 그렇게 진 짜 우리가 온라인으로 듣는 거하고 정말 저는 이제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을 합 니다. 한 사람이 받은 주님의 치료는 언제나 우리를 여럿으로-공동체로- 부르십니 다. 교회가 그렇잖아요. 이 세상에 혼자 있는 교회가 어디 있어요? '혼자 잘 믿으면 돼~ 혼자 예배드리면 돼~ 혼자 말씀 묵상하면 돼~' 이런 혼자 교회는 주님의 사 전에는 없어요! 심지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공동체로 계시잖아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북한처럼 특별한 경우도 있긴 있지만 그들 도 그들 나름대로 끈끈히 맺어져 있는 우리가 있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꼴보기 싫 은 지체가 있고, 조직이 마음에 안 들어도, 리더십이 인정이 안 된다고 해도! 주님 이 여럿을 함께 부르신 교회 공동체를 떠나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럿이 함께 고침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붙어만 있으라!'라고 제가 늘 외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아도 그저 예배의 자리에 와서 앉아만 있으라고! 우리 아까 간증 하신 집사님 아버지. 그냥 와서 앉아만 계시라고~ 지금은 있는 대로 그냥 목장 욕 을 하고 그냥~ 그래도! '왜 나를 아무도 안 가르쳐주는 거야!' 너무 귀엽지 않으세 요?^^
★그러니까 우리는 들을 말도 없고 할 말도 없어도 그냥 목장 예배에 가서 함께 밥 먹고 앉아만 있으라고 날마다 부르짖어요. 붙어만 있으면 수지 맞는다고 그러죠? 우리들교회! 성령의 고침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 다 그런 고침을 경험하셨죠? (예!) 고치다의 원어인 [테라페오오]는 그 영어 [테라피]의 어원이에요. 기본적으로 섬기 다, 돌보다 근데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일이 고침이기 때문에 고치다, 치료하다라 는 뜻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어요. 신약에서는 대부분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대해 쓰 였는데요.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다니시며 힘쓰셨던 치유 사역이 바울의 손을 통해 이제 멜리데 섬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마가복 음 16장 18절에 보면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 람에게 손을 얹은즉 낳으리라 이 유명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치유 구절이 바울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잖아요! 뱀을 만지고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고! 완전히 병든 자 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니라! 이거는 이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 총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쭉 보면 문자적으로 멜리데는 이제 금세 떠날 곳이잖아요,
석 달 만 에. 이럴 때는 마구 기적을 베풀어도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도 기적을 베푸시면 늘 떠나셨어요. 한 곳에서 계속 치유 사역을 하는 건 굉 장히 위험합니다. 그냥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치유 사역을 했지만 떠나야 되 는데 그 후에 양육은 성령님이 시키실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21세기 한국의 남 한. 그중에서도 서울 경기에 있는 우리들교회는 이제 기독교가 들어온 지도 한 세기 가 지났고, 세계 10위권에 들어갔고, 어제는 축구 16강에도 들어가는 엄청난 축복 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뱀을 집어도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표적은 어떻게 적 용을 해야 할까요? 구속사적으로 한번 생각을 해볼게요. 마가복음 16장 9절에서 11절까지 보면요.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 하니라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렇게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잘 외쳐줄 사람이 여기 보니까 똑똑한 사람과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성경은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라고 해요. 이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에 제자들과 남자들도 안 가는 무덤 에 갔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들교회가 이렇게 귀신 들린 사람, 눌린 사람, 아픈 사 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사모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신경질 귀신, 돈 귀신, 여 자 귀신, 남자 귀신, 공부 귀신, 음란 귀신! 딱 일곱 귀신만 물러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정말 예수님을 외치시기를 바래요. 그런데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 가 외쳤지만 11절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마리아 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보고도 다 믿지 못했어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 창녀였고, 귀신들렸기 때문에 더 믿지 못했을 수 있는데요. 제가 제 남편의 구원을 에스겔 말씀으로 전했을 때, 제 곁에 주로 여인들은 모두 기뻐했어요. 그러나 제자 들이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많은 목사님들은 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이해도 못했어요. 심각하게 듣지 않았어요. 평신도인 제가 에스겔을 읊어대니까 집중해서 듣지 않았어 요. 그러니까 저와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만 저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목 사님들께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한참 하다가 마침내 포기했습니다. 3년 정도 지 나니까 가까운 데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고, 또 이제 인정하기 시작하는 목사님들 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저는 성경을 볼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다 제 이야기인가! 예, 이 남자들은 말이죠. 예수님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는데도 믿지를 못했어요. 예 수님의 제자들이잖아요.
예수님이 살아났는데 믿지를 못하는 거예요. 마가복음16:12-18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 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 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 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그러니까 12절에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 양육해주셨잖아 요.
그래서 자세히 말씀을 풀어주셔서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그랬습니다. 그 래서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전했어요. 13절에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때도 안 믿었어요. 여러분, 안 믿는 것이 남자들의 주제가 같아요. 남자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그렇게도 안 믿어지십니까?!' 하여튼 주일 설교 끝나면 남자들은 다 이해 를 못했다고 그래요. 14절에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그러니까 제자들이 지금 부활의 주님을 전하 는데 믿었다는 내용이 전혀 없어요. 복음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배척할 때 쓰는 강한 용어가 완악인데.. 제자들이 이 부활을 바위 같은 마음으로 안 믿었다는 거예 요. 예, 그러니까 이 단어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으실 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강력한 용어인데 예수님은 애정을 가지고 가르치셨는데 제자들의 모습은 이렇듯 완 악하고 믿음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부활의 몸이기 때문에 음식을 드시지 않아도 됐는데 또 그들의 수준으로 낮아지셔가지고 음식을 먹어주셨어요. 그러니까 여자들은 남자들의 수준으로 낮아져야 될 필요가 있어요.
기꺼이 내려가 주셔야 돼 요. 자꾸 '왜 뭘 못하냐?!' 이러지 말고. 우리들교회도 그렇고, 옛날에 큐티 모임 때도 그렇고 천 명의 여자가 나와도 일은 몇 명의 남자가 하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저는 남자들을 존경합니다. 여자들은 입만 은혜받고 하지... 이거 의자 하나를 안 치 워~ 다.. 다 이거 지금 카펫 깔고, 의자 깔고 하는 거 다 남자들이 해요. 우린 남자 없으면 못 살아.
그런데 진짜 안 믿는 인간들인데 일은 다 남자가 해요. 구속사적으 로 잘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15절에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아니! 이런 인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대단한 명령을 주시는 거예요. 16절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 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러면서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 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 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믿지도 않는 자들에게 양육할 기회도 안 주시고 곧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 파하라고. 날마다 그냥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결국 이런 길을 가게 돼 있는데요. 그 러니까 ★표적이 언제 오냐하면, 내가 말씀을 따르고 그냥 순종해서 복음을 전파하 면 표적이 따른다는 거예요. 복음을 전파하면 표적이 따른대요. 그러니까 우리 목장 에서 늘 복음을 전파하니까 표적이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치유를 받게 되는 줄 믿 습니다! 그러니까 전파하지 않으니까 표적이 안 따르는 거예요. 이런 배경으로 이렇 게 이제 이 뱀과 독의 그 표적이 나오는 거예요. 복음을 전파하되 십자가의 복음 을 전파해야 표적이 따르는데요. 그러니까 이제 에스겔 아내를 하루아침에 데려가고 슬퍼하지 말라고 너는 이와 같이 표징의 선지자가 되라고 하는데 오늘 이렇게 표적 이 따르면서 무슨..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 새 방언이잖아요. 그죠. 귀신을 쫓아 내고. 이 새 방언이 뭐예요? 믿는 자에게 따르는 새 방언을 잘 쓰면 또 여전히 뱀 을 집어도,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표적이 따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바울 이 뱀을 잡고 있어도 해를 받지 않았잖아요. 그죠? 이게 로테이션 되는 거예요. 그 러니까 ★진정한 표적은 이제 뱀 잡고 독 마시는 걸 더 넘어서 새 방언- '네가 옳 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게 새 방언이에요. 이게 복음을 전하는데 최고의 방언이에요. 그러니까 이번 주에도 아내 집사가 '제가 오늘 목장에 참석한 것은 남편과 이혼할 결심을 하고 목장에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그러니까 그냥 목장에서 이혼 경력이 있는 부목자, 목원들이 들고 일어나서 막~ 권면을 하니까 순간 은혜가 임해가지고 감동을 받아서 이혼을 결심했던 마음이 다 녹아내리고~ 목장, 교회 다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그냥 딱! 그 목장에서 그냥 사라졌다고! 이걸 간증해주셨어 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한 번만 와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목장에 한 번만 와보라고! '목장이 아니었으면 내가 말씀을 듣고 큐티를 해도 이혼할 뻔했고, 공동체도 떠날 뻔했지만은 진짜 이 목장을 통해서 이혼 결심이 순간 사라지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는 거예요!' 이혼을 선언한 그날 남편은 목장이 끝난 후에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미 안해~' 이 새 방언을 이렇게 써가지고.. 지금 엄청 예배, 목장, 양육에 집중하며 삶 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 남편이. 할렐루야! 그러니까 이게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르리니입니다.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이 성령의 고침을 경험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죠.
10절에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그러니까 보블리오와 순박했지만 기복적이었던 원주민들은 이제 단지 병을 고치는 고침이 아닌 그 너머의 진짜 치료! 진짜 치유! 진짜 고침을 경험했던 것 같아요. 그 래서 이제 바울은 로마로 가야 하는데 나에게 허락한 이 순간에 나에게 붙여준 한 사람을 고치려는 이 마음! 구원을 향한 이 매 순간! 매 순간!이 결국 로마인 것입니 다! 이미 바울은 매일매일 로마에 도달하고 있어요! 예, 그리고 그 계획에 없었던 멜리데에서의 체류는 하나님을 그들에게 전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 날마다 로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로마로 가는 바울 일행의 사명에 동참을 합니다. 후한 예로 바울 일행을 대접하고 떠날 때에 필요한 물건들을 배에 실어줍니다. 그래 서 파선돼서 버렸던 물품들이 다시 다 채워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강건하리라!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예배가 회복되면 다시 또 여 러분들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십니다! 초대교회 설교자로 유명한 요한 크리스도 스톰은 멜리데 사람들이 이때 회심해가지 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대요. 보블리오는 멜리데의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가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거기 지하묘지 카타콤이 발견됨으로 멜리데 섬이 복음화되었 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에 대해 은인이 돼야 하는데 그래서 일단 눈에 보이는 은혜 베푸는 게 참 쉬운 방법이에요. 그러니까 뱀 집고 독 마셨는데 멀쩡한 게 멜리데 사람들한테는 '와우!' 그게 그래서 반드시 또 필요해요. 그런데 거기에 머물러 있으 면 안 돼요! 그러니까 내가 너무 수준이 낮지만 복음은 전파돼야 하기 때문에 뱀에 서, 독에서 표적을 주신 거예요. 근데 병 낫는 데만 쫓아댕기고 밤낮 병 낫기 위해 서만 기도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 이후는 성장해가야 되는 거예요! 거룩을 이 루어가야 되는 거예요! 좀 더 성숙해져 가면, 광풍과, 독사와, 시기, 질투, 모함, 매 맞음 당할 때마다 해를 받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고침! 성령의 고침의 열 매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해되셨어요? ▪
적용 질문이에요.
Q 공동체에 들어가서 기뻐하고 있습니까?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Q 이제 고침 받고 사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Q 내년에는 어디서 후한 예로 대접하고 섬기시겠습니까?
[기도제목]
교희
1. 두려움의 수건을 벗어버리고 존재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안심하도록
2. 완벽하고싶지만 완벽하지 않은 나를 수용할수 있도록
보련
1.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감사하는 마음 가질 수 있도록
세정
1. 내 인생이 너무 보잘 것 없는 텐트라고 생각하며 남과 비교하게 되는 마음을 잡을 수 있게 해주시고 장막에 치중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성령에 삼켜져서 늘 담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은우
1.존재 자체가 예수그리스도의 편지인 것을 알고 기쁘게 22년 마무리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