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령의 피난처
본문: 사도행전 28장 1-2절
장소: 휘문 채플 2층 중앙
인원: 찬, 수근, 원범, & 윤제 (4/8)

출처: kingjamesbibleonline.org
내가죄인이라는것을모르는사람을결코위로할수없다고생각된다.우리가우리에게할수있는가장따듯한위로는, '내가죄인이다'라는고백인줄로진정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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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의 시초에는 은혜를 베풀었던 원주민들과 정착민들의 갈등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단순히 선악의 개념을 떠나 세상은 철처한 약육강식을 기반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바울의 경우 오직 유럽의 전도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종교 권력에 위협을 느꼈던 유대인 지도자들과 군중심리에 이끌린 다수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고 죄수의 몸으로 항해를 하고있다. 이 세상에는 진정한 피난처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다.
성령의 피난처는...
1. 삶에 우리가 있다.
1절. 안전한 구조후에 알고보니 그섬은 멜리데로 불리는 몰타섬이였다. 이 섬은 현재 전세계에서 은퇴 후 가장 살기좋은 곳 중 하나로 손꼽힌다. 멜리데는 피난처를 뜻하는 가나안의 언어이다. 멜리데는 바울과 그 일행을 위한 하나님의 피난처 였다. 계획을 잘세우고 출발하였지만 광풍을 만나 14일을 표류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이리저리 쫓기다 구조되고 돌아보니 인도된 곳 그곳이 난처였다. 우리도 말씀을 붙들고 가다보면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성령의 피난처로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누구나 표류하는 인생이지만 택자는 구조하시고 상륙하게 하신다.
사도행전 28장 중에서 마지막 장에 왔는데, 처음으로 시작하는 말은 우리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구조하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어떤 목적도 없이 허무함이 쌓아져 가게된다. 열심히만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열심히 쌓아왔던 것들이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들이 꼭 오게된다. 그런 순간들이 와서 말씀에 빗대어 돌아보니 나는 평생 교회를 다녔음에도 나에게는 우리가 없었을 때가 있음을 묵상한다. 결국, 어떠한 광풍이 나의 삶에 닥쳐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광풍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삶에 우리가 없는 것이 문제였음을 보게되는 것이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모든 것을 터 놓을 우리가 있나? 여러분의 친구는 피난처가 되나? '우리는 친구 아이가?' 하면서 속고 있지 않나?
2. 특별한 동정을 알게 하신다.
2절. 내가 멜리데를 만나 피난처로 인도가 되었지만 아직은 겨울, 추위로 인한 위험이 있다. 우리는 불을 피워야만 한다. 누가 피우는가?
원주민들, 미개인을 뜻하는 Barbarians, 즉 야만인들에게 특별한 동정을 받게 된다.
역설적인 부분이다. 사람들이 의지하던 배가 부서져 널조각에 의자하여 피난처로 떠밀려 왔는데 겨울 소낙비를 견뎌내기 위하여 원주민들의 특별한 동정을, 모닥불을 피워서 받는다. 특별한 동정은 특별한 친절이라는 단어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고 원주민들 앞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낼 때야 비로소 특별한 동정을 받을 때가 있다. 세상에서는 약한 자들을 위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 않은가?
교회로 처음 인도되어 말씀이 들리기전의 사람들에게는 우리는 마치 원주민들과 같이 따뜻한 불을 피워주어야 한다. 따뜻한 주차안내, 위로, 밥 한끼, 말씀에 불을 지펴 한 영혼이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 성령의 피난처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교회짬이 찼다고 목장에서 귀족이 되려고 하지 말고, 원주민이 되려고 힘써야한다고 생각된다. 섬기는 자들, 즉 목자들부터 늘 깨어있어야 한다.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더욱 높이 속하여 있는 권세였던 로마의 백부장, 등 으로 부터 따뜻한 불을 얻게되는 상황을 묵상한다. 바울도 그러하였지만, 진정 삶을 돌아보면 내가 갖혀있다고 생각하였던 환경이 결국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동정이였다.
말씀이 살아 운동력이 있어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성경에 적혀있는데,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이 객관화가 되니 내가 정말 죄인인 것이 인정이 되었다. 여태 환경이 열려서 착하게 살아왔지만, 광풍과도 같은 시험이 닥치니 나의 음란함, 등 죄로 가득한 본질이 드러나게 되었다. 전에는 몰랐는데, 갖힌 환경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내가 선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인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 특별한 동정을 받아, 나의 죄가 인정이 되어 마음이 평안해지게 후 나 또한 특별한 동정으로 다른 이들에게 나아가게 된 나의 오늘날이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사람을 결코 위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따듯한 위로는, '내가 죄인이다'라는 고백인줄로 진정 믿는다.
적용질문. 지금 어딘가 갖혀 있음이 하나님의 특별한 동정임이 인정이 되나? 이 특별한 동정으로 누구에게 나아가겠나?
3. 다 영접한다.
2절. 목장에서 따뜻한불을 피우고 특별한 동정으로 영접하면 영적으로도 주님을 영접하기가쉬워지는 것이다 따듯한 대접을 하게 되면주님을 만나기가 쉬워진다. '영접'으로 쓰인 단어 프로스 람바노는 원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다는 뜻이다. 원주민들의 영접이 얼마나특별했으면 그들이 처음 보는 276명을 마치 자기편인 듯, 자기들의 일부인 듯 대접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고 말씀을 적용하고 가는 특별한 동정을 하면, 하나님도 그들을 하나님의 편으로 끌어주시는 것을 경험한다.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라고 한다.
전도의 타이밍이 도래할때에, 우리는 어떤 본문으로도 우리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생활과말씀 나눔 및 기도제목들
찬이: 그림 의뢰가 들어와서 작업을 하는 한 주를 보내었다. 오랜만에 취미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로서 하는 것이기에 느낌이 남달랐다. 예전 주입식 교육에 대하여 회의적이여서 그림을 빠른 시간 안에 그려내는 것 보다 예술은 시간제약 없이 해야한다는 나름의 철학 (a.k.a. 고집)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돈을 받고 그림 의뢰를 직접 맡아 제한된 시간 안에 수준 높은 결과물 도출을 해야했었는데, 지난 날 입시예능을 비웃던 결과가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음으로 감내해야하는 현재의 고통이다. 구체적으로, 입체적으로 안보이는 부분을 대칭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쉽지않은 부분이다. (그림 결과물을 목원들에게 살짝 보여주었는데 매우 잘 그렸었다). 그래도 이 기회에 대하여 참 감사하다.
저번주에 청년부 앞에서 간증을 하고 난 이후, 많은 분들께 간증 관련하여 내게 톡을 보내주셨었는데 목원들이 찍어준 나의 간증동영상을 몇번 돌려보니 스스로도 다시 울컥하기도 하였다. 또한 간증을 한 후 받았던 연락들 중에 예전 섬겼던 중고등부 수련회 스탭 (문서 디자인)으로도 혹시 다시 섬겨줄 수 있는 지 물음을 받았는데 일하고 있는 일정과 겹치지만 않는다면 섬기는 적용도 해보기로 하였다. 또한, 간증을 한 후 뜻하지 않게 (전도축제 이후)건설현장에서 아시는 분과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일을 제의받기도 하였다. 현재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스스로 원하고 있는 상황인데(게임중독, 등 피하기 위하여) 마침 이 일에서는 아침형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세팅이기에 고려해보고 있다.
우리가 공동체에서 의논하며 가는 부분에 있어서, 나는 그런가 생각이 들었고. 모든 것을 터 놓을수 있는 친구가 있는 가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것 같다. 내가 경험을 해보았으니 공감을 할 수가 있고, 뿐만 아니라 자세히 조언을 해줄 수 있던 적이있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공감의 문제는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내가 처한 환경에 대하여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고 교회 공동체가 나에게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다 지나고 나니 하나님이 또 이렇게 나를 쓰시는 것을 묵상하고 가게된다.
말씀이 들리고 나서 갑자기 한 개인이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되어 가는 것 같다.
우리가 되는 부분. 목장에서 맞는사람도 있고 안맞는 사람도 있는데, 아마 내년 새로 재편성되더라도 목장에 의지하는 부분보다는 양육교사를 통하여 성화되어져 가는 과정에서는 섬김을 받는 사람보다는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섬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주신다.
피난처가 되려면 나의 죄를 고백하고 가는 것이 최고라고 하셨는데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되었다 함이 없고, 100프로 죄인이지만 구조받고 가는 것 같다. 말씀이 들려도 우리 모두 같은 죄인이지만, 보다 분별하여 지혜롭게 말을 하고 돌아오는 속도가 빠른 부분인 것 같다.
원범: 여자친구가 다니는 안산교회의 부응회에 김양재 목사님이 강사로 오셨었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고, 여자친구가 우리들교회 공동체에 호의적으로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 나도 같이 들었다. 김양재 목사님께서 less serious하게 하고 대중 친화적으로 말씀이 비교적 안들리는 청중들도 재미있어 할 수 있도록 말씀을 해석해주셔서 나에게도 은혜가 되었다.
나*키 신발사는 새로운 재미와 취미가 생겼었는데, 일단 2개 (주황색 범고래 스똬일)를 사고 끊었다 (앱은 아직 못지웠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았는데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예전 모습에 비하여 많이 변해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괴리감이 느껴졌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지 못나 생각하게 되었다 (고구마, 렛스기릿).
항상 이겨야한다, 잘 생겨야한다, 남을 앞서고자 하는 마음이 평소에 있기에 운동중독이라는 이슈가 있는데, 나의 컴플렉스를 내가 보여지는 것으로 감추려는 것 같다는 묵상을 하게 되었다.
술 친구는 많은데 성령 안에서의 친구가 있는지 돌아본다. 이러한 교회 안에서도 신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상대가 많지는 않다는 묵상이 된다. 술을 끊는 적용을 하였지만, 언제든지 돌아갈 여지가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이 된다. 특별한 동정 관련하여 - 나는 과연 주변 사람을 감싸주는 사람인지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나의 경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목원들에게는 그런 사랑은 있지만, 세상사람들에게 조차 그러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을 쉽게 미워하고쉽게 사랑하는 죄인이구나 그런 것 같다는 묵상을 하게 되었다. 어떤 말씀이든 자신의 간증을 해야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말을 했을 때 아직까지는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를 더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나라는 존재는 하루도 말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든다. 말씀이 없으면 직분상관이 없으니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윤제도 미국가게 되면서 꼭 붙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근: 불신교제를 끊어내는 과정을 양육교사에서 솔직하게 오픈을 하였다. 많은 분들이 위로를 해주셨고, 이번 주는 큰 헤프닝은 없었던 것 같다. 불신을 끊어내니 다른 불신이 들어오려고 했었다. 잘 경계하며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번 주 영수증 사건이 있었는데, 잠깐 마음에 큰 요동이 있었다. 그런데 주중에 목장에 묻고 목원들의 의견을 받으니, 요동이 많이 줄어들었던 것 같다. 나의 기억이, 나의 생각이 항상 옳지는 않구나를 묵상할 수 있었던 기회였고, 또 이러한 나의 요동이 나의 근심으로부터 오는 건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스스로 덜렁된다고 단순히 치부하였던 같은데, 근본적으로 나에게는 성령의 안식을 잘 누리고 가는 게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매일 말씀 묵상과 양육교사 과제들을 통하여 평안한 마음을 누리며 가게되는 한 주였다. 휴가를 내어 어머니 병원에 친형과 함께 동행하였고 굳이 꼭 휴가를 내어야 할 까 생각이 처음에는 있었지만, 적용을 하여 셋이서 막상 시간을 함께 보내니 모두가 만족하는 평안한 시간이였던 것 같다.
양육교사 8주차는 과제를 (6개) 제 시간에 다 제출을 하였다. 나머지 독후감들도 catch up하여야하는데, 바쁘다고 생각은 들지만 이 시간들을 통하여 마치 하나님이 나에게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여쭈고 계시는 것 같다.
직장에서 진급을 앞두고 연말을 준비하고 있는 데 이번 주 문득 찬양, 금과 은 나 없어도,의 가사가 떠올라며 눈물이 살짝 났다. 개인적으로 매우 은혜가 되는 찬양이다. 직장에서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시기일 수록 말씀에 붙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윤제:작년 4월부터 청년부에 등록 후 매 주일을 지키고, 모든 양육과정 가운데 비로소 내가 죄인임이 깨달아졌고 부목자로 또 양육자로 섬기게 되며 구속사적 공동체인 목장의 한 섬에 걸리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세상가치관으로 가득찼던 유펜 박사과정에서 한국으로 떠밀려오듯 인도된 사건을 통하여, 한국에서의 지난 5년은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성령의 피난처와도 같았다. 한국이 단순히 나의 성령의 피난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지난 5년동안 갇혀지낸 대학원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들교회로 인도되어 구속사적으로 말씀이 조금은 들려왔고 목장공동체가 갇혀있던 대학원생활에서 나를 구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 스스로 되었다함이 없음을 묵상하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한 주였다. 마치 미국에 가면 새로운 삶이 나를 기다릴 것만 같고, 나의 상대적 갇힌 환경에서 구조가 아닌 탈출을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의 옛 습관들과 성향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한 건 아닌 것을 이제 다시 깨닫는다. 나에게 게임 (롤)은 힘들었던 갇힌 생활을 위한 스스로의 도피이자. 합리화를 위한 중독이었다. 스스로 게임 이해도가 높다고 여겨 게임을 통해 높은 승률 및 통계적 우위를 유지함으로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안도감을 얻을 때가 있었고, 한 번 앉아서 마우스를 잡으면 움직이지 않고 10시간 이상 몰두를 한 날들이 많았다. 이제 이런 습관이 희미해졌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는데, 생명의 말씀인 큐티를 하지 않은 날에, 지웠던 게임을 깔아 다시금 게임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게임을 지웠지만, 옛습관을 쫓아가는 연약함에 주님은 특별한 동정을 베풀어주셨음이 깨달아져 눈물이 났다. 오늘 설교 말씀에서는 광풍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없는 게 문제라고 하셨는데, 혼자서 광풍을 이기려는 못난 교만에 회개가 되었다. 적용으로 영문 큐티보다 한국큐티를 시작했다.새로운 터전으로 나아가는 나의 마음 자체는 평안하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나의 죄를 보고, 또한 목장같은 공동체에서 붙어가는 것이 답인 것 같다. 나의 열심으로 오버하지 않고 나의 삶에 대한 통제를 조금은 내려놓는 적용이 나에겐 필요한 부분이라 모두에게 꼭 기도를 부탁한다.
존경하는 목자형과 또 목원들과 함께 우리가되어 말씀을 같이 보고 갈 수 있어서 너무 은혜였음 또한 고백한다.
영육이 강건한 목장이 되길 기도드린다. 렛스기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