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3 주일설교 성령의 구조목장
한 번에 가장 많은 사람을 구출한 배는? 미국 해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14000명)
목적지에 와닿아가는데 구조 받아야하지 않겠습니까?
1. 경사진 해안이 눈에 띄어야 합니다.
[38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좋은 사람과 배부르게 먹는 것입니다. 육지에 가까울수록 암초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에 항해의 목적이었던 밀을 버려야 합니다. 광풍 끝 배부르고 행복하니 버리는 적용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약도 중독도 더 좋은 것이 생기면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밀을 버리게 하시지 않습니다. 평소에 버리는 훈련을 조금씩 해야 합니다.
살려야 합니다. 괴산에 지진이 났습니다. 불이 나면 우리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완강기를 타고 내려와야 합니다.
[* 10분만에 대부분 탈출 - 911테러 모건 스탠리의 기적]
완강기를 타고 내려와야하는데, 3층부터 10층까지 있는 완강기를 92%는 모른다고 합니다. 다 화분 받침으로 쓴다고합니다. 있어도 작동할 줄도 모르고.
모건 스탠리가 8년 넘게 재난연설을 하고 시킨 덕분에 911테러때 13명만 대피가 실패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모두 살았습니다. 이 사건을 모건 스탠리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 후로 재난 안전 시스템을 뜯어 고쳤다고합니다. 여러분들도 집에 있는 완강기를 살펴보세요.
내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기에, 재난 시 모든 걸 챙겨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합니다.
[39절] 버리고 나니까 드디어 날이 밝았습니다. 칠흑같은 어둠 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느 땅인지는 모르지만, 경사진 해안이 보입니다. 경사진 해안은 다른 배를 정박시킬 수 없는 해안이란 뜻입니다. 다 버렸으니, 안전하게 상륙했다고 간증할 결말이 와야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네요. 영적으로 여명이 밝아오니까 내 삶이 조금씩 보이고 해석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광풍같은 고난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부모와 형제 자녀. 어쩔 수 없었던 죄악들이, 날이 밝으니 눈에 띕니다. 망하고 아프고 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광풍을 겪으며 식구들의 굴곡진 경사로 보입니다. 그 동안 정말 몰랐습니다. 아무도 배를 댈 수 없던 그 경사가 이제 눈에 띕니다. 그걸 보면서, 맞은 편에 나도 그 부모에 그 자녀라고. 나도 경사지니까 누구도 나에게 정박할 수 없었겠구나. 광풍을 겪으며 알게됩니다. 경사진 그 한 사람을 도와주려해도, 내 속의 경사진 곳을 보며 아파해야합니다. 눈에 띈 한 사람이 있어도 갑자기 훅 들어가면 안됩니다.
아픔을 느끼며 [39절 후반] 그 때 의논이 필요합니다.
전도하려해도 아픔을 보고 전략을 짜야합니다. 항상 삼위 하나님도 나의 아픔을 위해 의논하시고 효과적으로 돕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낮아져야 할텐데, 그렇게만하면 성령님이 도와주실텐데.. 성령이 도와주심을 인식하지 않으니까 도움을 못 받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은 항상 말씀 묵상시 알려주십니다. 의논하다는 몇번이고 심사숙고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언제어디서나 띵크해야합니다. 누구를 도와준다는 생각자체를 버려야합니다.
언니 선교사님이 워낙에 사랑의 언어가 봉사입니다. 섬김입니다.
그런데, 선교지에가서도 늘 누군가를 돕습니다. 근데 자기가 돕는다는 마음으로 하니까, 경사진 원주민들의 가치관에는 수평적인 지체가 안되고 수직적인 돕는 자가 되어 지체가 되기 어렵더랍니다. 그래서 이 곳에서 살아야겠다고 뼈를 묻기로 간증했던 적 있습니다. 제가 예전 집사때, 필리핀에서 큐티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때 여자 선교사님들만 반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분들이 큐티를 하게 되었고, 20년 후에 다시 세미나를 했더니 그 때부터 큐티를 했던 여 선교사님들이 학교사역부터 선교사역을 너무너무 잘 펼쳐서 하고 계신것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더라구요. 큐티하는데 남자 여자 따지면 정말 본인이 손해입니다. 요즘은 결과를 보여주는 삶입니다.
영어 큐티인이 나왔으니 선교지에서도 효과적입니다.
의논이 끝난 후
[40절] 나의 경사, 너의 경사를 보고 의논도 했습니다. 그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며 키를 풀고 늦추고 돛을 달아 바람에 맞춥니다. 목적지를 알지 못할 때는 닻을 내려야합니다. 그러나 이제 사명을 발견했고, 내 눈에 띈 영혼이 있다면 마지막 닻을 끊고 들어가야합니다. 키를 잡고 바람을 받아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내 배가 자초될지언정 저 사람의 삶과 고난 속으로 들어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더이상 사공들이 자기 힘으로,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없고 그럴 여유도 안됩니다. 대신에 작은 바람의 힘을 조금이라도 받아 육지 가까이 가기로 합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야하는데, 방관하며 사다리만 내려주고 돈만 주는 게 아니라 아픔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게 성령의 구조입니다.
성령의 구조를 위해 버려야 할 밀이 있고, 날이 샌 후 경사진 아픔을 - 정박할 수 없는 부분 봅니다. 최선을 다해 그 아픔으로 들어가기로 했다.라는 요약입니다.
적용/ 구원이 코 앞인데 무엇을 못 버리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가장 행복은 무엇입니까? 다음주 전도축제에 내 눈에 띈 경사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거기서 나의 경사짐/왜곡됨은 무엇입니까? 어떤 전략을 가지고 목장에서 의논합니까?
- 두 물이 만나 깨어져야 합니다 [41]
[41절] 하필 지나는 곳이 두 물이 만나는 곳이네요? 육지와 바다로부터 오는 물이 만나는 곳인데, 물 밑에 모래가 쌓이며 배 앞머리가 처박히게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즉 배가 암초에 걸림을 말합니다.
내가 그렇게 준비하고 기도하는데도 암초에 걸립니다. 그게 기도응답이라면 생각됩니까? 근데 그게, 기도응답입니다. 우리의 기도응답은 항상 좋은 것 아닐 수 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입니다. 기도했는데 배가 파선합니다. 기도했는데 관계가 깨집니다. 기도했는데 해고당합니다.
그러면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있다는 사인입니다. 더 좋은 응답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처럼 성령의 구원은 전혀 다른 두 물. 내 생각과 너의 가치관이 만나니 나와 너가 달라 깨짐을 말합니다. 남녀의 만남이 그렇습니다. 신자 불신자의 만남이 그럽니다. 두 세계가 충돌하니 좋은 사람 만나 맛있는 것 먹을 때는 좋았는데 살아보니까, 완전 다릅니다. 흙과 뼈가 만나니 남자는 직장고난으로, 여자는 바람고난 등으로 힘듭니다. 결혼은 내 반이 깨어질 때 배우자로 채웁니다. 깨어질 때 너무 아프니 십자가가 보입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거룩을 목적으로 두는 것입니다. 행복을 목적으로 두니까, 못 견뎌서 죽고 이혼합니다.
바로 이 땅에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전혀 다른 두 물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신이 자신의 피조물 속으로 들어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깨어졌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는 배 앞머리가 단단히 고정된 것처럼, 자신의 손과 발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합니다. 내 죄때문이에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태원 참사가 있었으나, 봉화 두 분의 광부께서는 구조가 됩니다. 지하 갱도에서 자신을 구조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반드시 구조해줬어야합니다. 거기는 지하 190M인데. 우리 주님은 더 낮고 낮은 우리 속으로 오셔서,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은 본인이 받으시고 자녀로서 얻을 특혜는 우리가 받도록 하셨습니다. 두 물이 만나 깨어져야할 때 창조주가 와서 깨져주셨습니다. 그래서 힘있는 그 분이 깨어지듯 우리도 능력있을 때 꼭 깨어져야합니다. 더 잘났고 똑똑하다고, 너를 깨뜨리면 성령의 구조는 멀리멀리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힘으로 나를 깨뜨리지 않고 자신을 깨뜨리십니다.
잘날 수록 더 안깨집니다. 자기가 품질이 좋다는 착각속에 있다는 것이 저주입니다. 조금만 학벌/재력 있다면, 자기가 안 깨어지려고 합니다. 늘 다른 사람을 깨려고합니다. 그것이 구원을 가로막는 저주입니다. 돈 있고 미모가 있을 때는 안 깨어지려고 합니다. 어떻게 깨어지나요? 이해할 수 없는 남편/아내/자녀 때문에 드디어 내 가치관이 깨어집니다. 이것이 성령의 구조입니다.
결혼이라는 약속에 내 배 앞머리를 이물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결혼이라는 약속에 딱 붙어서 깨어진다면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경사진 곳으로 들어가면, 내가 깨어져야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 깨어져야합니다. 그런데, 두 물이 합해진 곳에 배가 우연히 걸린 게 아닙니다. 배를 걸었다고 능동태로 말하네요? 바울은 의지적으로 거기 정박했다고 봅니다. 두 물이 합해 전쟁터같은데 딱 스톱합니다. 구원때문에 조심조심하고 오지만 이제는 정박해야겠다고 결정합니다.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입니다. 십자가의 편에 서 있을때 딱맞는 타이밍대로 분별이 가능합니다.
내가 복음을 남편에게 전했습니다. 전하자마자 육신의 배가 깨어졌습니다.
그래도 구원을 위해 용감하게 나서야 할 때도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날마다 투표라는 게 있는데도 매일 데모하는 것들을 봅니다. 매번 양쪽 데모가 있는 것은 일상이되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조심조심해 오다가 마지막 순간에 전하는지 모릅니다.
만약 알렉산드리아호가 깨어지지 않고 항만에 상륙했다면 276명이 탄 그 배는 전설이 되었을것입니다. 배만드는 회사는 유명해졌을 거고, 선주 선장들도 항해실력이 대단하다고 알려지겠지요. 성령의 구조가 아니라 알렉산드리아호의 구조가 되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전에 바울은 한 섬에 반드시 걸리리라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호가 깨지지 않았다면 알렉산드리아 호가 섬에 걸린 셈이겠지만, 우리만 한섬에 걸려야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성령의 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우상삼는 의지하는 배가 철저히 깨어져야합니다.
암초를 만나, 응답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 큐티하고 기도하는 게 응답입니다. 이런 얘기를 예방주사처럼 늘 들어야합니다. 듣는 중에 피가되고 살이됩니다.
적용/ 내가 깨지고 있습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깨뜨리고 있습니까? 내가 구조하려는 그 사람에게 들어가 내 돈 내 시간 자존심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배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목숨을 내놓고 정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황 상황 인도받고 가야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정박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 겸손해서 겸손할 수 있습니다.
- 널조각에 의지하여 구조됩니다 [42-44]
[42절]
한 사람 구원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백부장이 한 사람 관심있어서 그랬겠나요? 누가는 백부장이라는 로마 공권력을 상징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바울을 로마까지 안전히 도착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바울과 항해하는 275명을 다 구조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잘나서 그렇습니까? 바울이 특별히 이쁩니까? 남다른 자격이 있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때문에 모두를 구조하셔야 합니다. 이런 바울의 사명에 응답하십니다.
이 사명을 하나님은 주셨고 바울은 믿음으로 그것을 받았습니다. 사명있는 그 한 사람때문에 모두가 구조됩니다. 저도 이쁜 게/자격이 있나요? 저에게도 한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가정중수와 말씀묵상. 이 사명하나 있다는 것 때문에 문제 많은 저를 데리고 가십니다. 그만큼 인간은 100% 죄인이고 행위가 거기서 거기입니다. 우리에게 사명 하나가 없어서 차이가 생깁니다. 행함으로보면 따라가지 못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못하는 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 = 가정 중수 말씀묵상. 성령의 구조를 받지 못하면 우리는 매번 행위로 심판합니다. 정죄감으로 어떻게 서로 일하겠습니까? 모두가 남과 비교하다보면. 말씀묵상하다보니 내가 문제많다는걸 이제 이해합니다. 그래도 내가 툭치면 사명 말씀 묵상 가정중수로 나아갑니다. 말한대로 살지 못하니 우리가 회개하게끔 하십니다.
중심잡는 한 사람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알고 성령의 구조를 경험한 한 사람때문에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한사람이라는 사명의식입니다. 그 사명을 내가 받아야겠는데 내가 아닌 네가 그 한 사람이야. 네가 사명받고 나까지 도와줘~ 하는 주제가입니다. 네 덕에 내가 편하고자하는 마음이 우리 중에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그렇네요.
봉화호 광부들은 얼마나 그 두 분들을 위해 체계적으로 구조해냅니까? 시간이 걸리지만 순식간에 구조됩니다. 자발적인 리더쉽이 아닐 때 모든 게 일이 되니까 명령없이 아무도 안 움직입니다. 책임추궁하다보니 아무도 안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회사에 불이나도 사람들이 문책당할까봐 움직일 수 없이 불 속에 있는 꼴과 같습니다. 문책은 이렇게 자율성을 떨어지게합니다. 엄한 부모 밑에서 날마다 야단맞다보니 성적 나쁘면 집에 안들어가곤 합니다. 가출합니다. 성적이 나쁘다고 극단적 선택을 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 좋은 인프라/시스템 속에서도 문제만 생기면 극단적 선택을 많이 하는 걸 봅니다. 누가 막아야 될까요?
이 좋은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누구 때문에 죽곤 합니까?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예수가 없으니 선택이 됩니다. 젊은 청년들은 여기에 대해 심각한 책임감을 가지기 바랍니다. 지금 뉴스는 911 사태에 책임묻느라 그러는 걸 못봤습니다. 반면 뉴스만봐도 사건하나만 터지면 책임추궁합니다. 모두가 가만히 있게 됩니다. 자발적인 리더십이 너무 필요합니다. 우리들교회가 이렇게 열악해도 카펫 다 걷고 토요일에 화장실청소, 세팅합니다. 돈받고 누구하나 하지 않습니다. 돈 받고 하다보면 하여튼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들교회는 뭐든지 안 받고 줄것만 있게 됩니다. 모건 스탠리도 그 한 사람의 위기의식때문에 연습을 계속 시켜 욕 먹었겠지요. 그래도 12분만에 다 구조됩니다. 메르디스호도 한 사람때문에 14000명이 구조받습니다. 군단장이 명령했는데, 누가 무기버렸다고 문책하겠습니까? 사람이 항상 먼저입니다. 극단적 선택은 그러므로 무조건 막아야합니다.
복지부동이 되면 안됩니다. 평소에 연습은 너무 싫습니다. 큐티와 목장은 지겹습니다. 그래도 그 위기때 살려줍니다. 평소에 갑옷은 너무 무겁지만 화살이 날라올 때 갑옷보다 더 고마운 게 어딨겠습니까?
여기서 널조각은 배의 깨어진 파편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구조는 권세있어야 될 것 같지만, 여기서 깨어진 널조각이 사람을 살립니다.
두 물이 만나 깨어지니 바로 그 깨어진 파편조각 한 조각에 우리가 너도 나도 삽니다.
[44절] '마침내 상륙하여 구조되리라' 내가 구조가 되어야하는, 많고 많은 풍성한 곡물들은 다 배를 가라앉게 만들고 오직 버려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내가 가라앉는데 내 스펙 돈이 뭐가 중요합니까? 나를 살리는 그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결단을 못하게 하면 왜 남의 나라에가서 무기버리냐고 문책이나 해댄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자발적 리더십을 줘야하고 자유를 줘야합니다. 문책 책임추궁하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인구가 절벽입니다. 하도 책임추궁하다보니 결혼도 안하고 이혼하고, 아이도 안 낳습니다.
구조에 필요한 것은 전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깨어지고 박살난 나의 고난과 내 아픔. 실패에서 산산 조각 났다고 생각한 죄악들입니다. 내가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게하셨냐는 그 원망이 해석받고나서 널조각이 됩니다. 1류대학, 피아노, 남편의 집안이 저를 구원했나요? 각종 걸레와 시집살이, 날 하대했던 배우자의 간증으로 나도 너도 구조하게 했습니다.
구조된다는 것은 수동태입니다. 구원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예 없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깨어질 뿐입니다. 지하 밑바닥에서부터 오신 예수님이 성령의 구조를 해주십니다. 걸레질 할 때 주님이 찾아오셨어요. 바닥까지 더 밑바닥에 내려가니 주님이 말씀으로 찾아오셨고, 다른 사람의 경사짐이 보이고 내 속의 경사짐도 보이고, 말 할 수 없는 내 더러움과 추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닌 너를 구조할 때 보입니다.
적용/ 내가 붙든 널 조각은 무엇입니까? 내 고난과 약재료는 무엇입니까? 나는 어디서 구조되고 싶습니까? 솔로탈출? 직장? 가정? 중독?
[나눔]
- 나를 구조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경민 - 어줍잖은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 또 여러가지를 생각하지 않게하려는, 규격화/공식화하려는 단순함이다.
그리고, 저는 제가 적당히 관계를 유지하자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가해자 짓을 해본 적 없었던 것 같다.
박경찬 - 취직. 취직이 너무 고픈 상황이다. 취직만 하면 해결 될것처럼 느껴진다.
이서호 - 아무래도 취직같다. 그래도 번아웃이 온 상태라 가능할까 모르겠다. 개선을 해야한다 하지만, 계속 미뤄지고 있다. 답답하다. 좀 집에 있으면 안될것같긴하다. 애초에 나가서 카페를 가던가 해야겠다. - 큐티해볼 수 없겠나? 아 큐티는 좀...
- 다음 주 전도축제에 데려오고 싶은 경사진 사람.
이경민 - 형과 엄마.. 최근에 형과 또 싸움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고있냐 물었지만 안 구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또 나가라 마라 하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엄마 말에 의하면 형은 계속 말을 바꾸는 상황이다. 계약을 심지어 하고 싶은 마음이다. 달래서도 해봤지만 지금 이렇게 되니 마음이 차갑게 된다.
- 내가 이 상황 가운데 깨지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깨뜨리고 있습니까?
박경찬 - 거의 우리 집 개와 같은 입장이지 않나.. 취업준비하면서 집에만 있으니까, 엄마를 참 힘들게 하고 있지 않나싶다.
유다니 - 게임을 많이해서 나도 깨지고 있다.
이서호 - 이걸 얘기하고 싶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깨지고 있다. 이런 생활 자체가..
- 내가 의지하게 된 널조각/고난과 약재료는 무엇입니까?
박경찬 - 어릴땐 내가 고난이 없다고 생각했다. 형이 아프고 엄마아빠 싸울 때도 항상 미적지근해졌던 이유가, 내가 힘든걸 말할 수 없어서 그랬다. 그래서 괜찮아 괜찮아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 것 같다. 원만하게만 지내려는 나의 캐릭터.
이서호 - 취준이라는 이 기간같다. 너무 길어지니까.. 심적으로 부담된다. 그동안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니까 부모님도 아무말 안하시지만 고마우면서도 스트레스가 많이 있다. 지금이 고난이다. 사회적인 시선이 또 부담스러운 게 있다. 이번에 학원 수료한 사람들끼리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아직 취업을 못했으니까 나가지 않았다.
- 구원이 코앞인데 무엇을 못 버리고 있습니까?
이서호 - 돈, 사람, 친구들. 요즘 번아웃이 와서 취업준비도 어렵다. 유튜브만 보고 딴짓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집 나가면 돈 나가니까..
안식 -
나 보다는 가족들의 모습을 많이 봤다. 아빠의 광풍을 이미 맞았다는 주장. 돈이 급한 상황이 아닌데 가겠다고 했던 상황. 그렇게 되니까 그냥 순종하고 이제 형이나 누나에게 집중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명랑운동회에 간신히 꽂아넣어서 다녀온 형. 근데 중간에 나왔지만, 양육에 대해 하도 듣고와서 아침부터 우릴 불러 양육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그러면서, 놀라웠던 점은 아빠와 소통안되서 힘든 얘기를 막 했는데 형은 가족인데 왜 그걸 이해 안해주냐고 반문하는것. 예전같으면 아빠와 자기를 동일시 하는 부분때문에 피해의식 또 올라오나 했지만 이번에는 아빠를 폭넓게 이해하는 걸 보면서, 우리 형이 참 공감능력이 되게 좋은 사람이구나 했다. 그래서 또 이렇게 보여주시는 게 있으니, 내가 돈과 자존심이 깨지리라하며 버릴 것을 각오하게된다. 솔직히 겁난다.
[기도제목]
김준범
- 감기 안 걸리고 건강할 수 있게
- 수요일까지 담배 잘 참을 수 있도록
유다니
- 게임 중독 잘 관리되도록
- 양육숙제 잘 할 수 있도록
박경찬
- 면접 잘 준비 할 수 있도록
이서호
- 취업공고 잘 보면서 붙어갈 수 있도록
- 김장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안식
- 형이 마음이 열려서 목장과 공동체에 잘 들어올 수 있도록
- 목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까지 귀찮고 불편한 목장을 다같이 붙어갈 수 있도록